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붉은 두건 (3)
청해객잔의 주인장은 위층에 있는 방을 하나 내줬다.
무료로 묵고 가라며 만두까지 서비스로 내준 덕에, 진준성과 나는 방에서 만두를 나눠 먹고 있었다.
만두 안에는 탱글거리는 새우가 통째로 들어있어 만두소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한 입 베어 물면 촉촉한 육즙이 흘러나와 입안에서 풍미가 감돌았다. 쫄깃한 만두피는 씹는 맛을 살려줘서 다 먹고 난 뒤에도 또 생각나는 훌륭한 맛이었다.
주인장이 요리를 잘한다던 길버트의 말이 사실이었다.
“붉은 두건 사람들 중에서 청해객잔 사장님이 제일 요리를 잘하신대요.”
진준성은 행복한 얼굴로 만두를 먹으면서 말했다.
주인장에게 붉은 두건에 대해 물어보라고 시켰더니, 얻은 정보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입에 있던 만두를 씹어 삼킨 뒤 말했다.
“붉은 두건에 대한 정보 좀 얻었나 보네.”
“네, 저희가 붉은 두건 편이라는 걸 알리니까 사장님이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물어본 것도 대부분 답해주셨고요.”
진준성은 만두를 먹으면서 알아낸 정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붉은 두건’은 만성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시민에게 돈을 갈취하고 길드와 헌터를 독점하는 만성의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청해객잔의 주인장 부부처럼 비각성자도 속해 있는 조직이었다.
예전에 만성의 탄압을 받은 적이 있어서 한 번 와해되었는데, 지금의 수장이 다시 사람들을 집결시켰다고 한다.
“수장의 능력이 굉장한가 봐요.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에서도 엄청 신뢰가 느껴졌어요.”
한 번 와해된 조직을 다시 세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수장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녀석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능력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
길버트였다.
우리와 함께 방에 들어온 녀석은 창가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조금 전.
녀석은 동전을 던져 나를 수장에게 데려가 줄지, 말지를 결정했다.
적(赤) 글자를 확인한 녀석은 순순히 나를 수장에게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다.
쿨한 결정이었지만, 솔직히 미심쩍었다.
녀석은 밤이 되어야만 수장을 만날 수 있다면서 내게 기다리라고 했는데, 사기꾼에게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수장의 오른팔이라 하는 것도, 대뜸 날 수장에게 데려다준다는 것도 수상했다.
나는 만두를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언제 출발할 겁니까?”
“달 뜨면. 그 전엔 문을 안 열어주거든.”
“어디로 가는데요?”
“가까우니까 걱정 마.”
왜 만성의 스파이가 수장의 오른팔인지 물어봤을 때도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더니, 이번에도 제대로 된 답은 내놓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의심하는 걸 관두고 눈앞에 있는 만두나 먹었다. 쓸데없이 고민하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만두라도 하나 더 먹는 게 내게 이로운 일이었다.
한편 길버트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만두 접시가 비었을 때쯤, 녀석은 진준성을 흘긋 보며 말했다.
“그 꼬맹이는 데려갈 건가?”
“데려가겠습니까? 어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래, 잘 생각했어.”
진준성을 억지로 데려가려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준성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자, 잠깐만요! 이 위험한 곳에 절 혼자 두고 가시려고요? 당연히 데리고 가야죠.”
이 녀석이 또 분리불안 있는 강아지처럼 데려가 달라고 하고 있었다.
길버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게다가 밤에 출발하면 제대로 잠자기 어려울 테니, 진준성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나랑 합류하는 편이 나았다.
내가 안 된다고 말하려던 때, 창밖을 보고 있던 길버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곤란한데. 네 길드장이야 얼마나 난 놈인지 잘 알아서 데려간다지만, 너는 뭘 믿고 데려가야 하지?”
저 녀석이 우리 길드원에게 냉혹하게 말하고 있었다.
진준성은 길버트가 반대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진준성의 자존심을 건드린 듯, 진준성은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절 안 데려가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내가 왜?”
“아저씨도 잘 아시죠, 전쟁의 승패는 언제나 전략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거. 붉은 두건의 목적은 만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거 아닌가요?
“뭐, 맞긴 하지.”
“저는 시스템에게 선택받은 전략가예요. 제가 있으면 붉은 두건의 승리가 더 확실해질걸요?”
길버트는 진준성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 나를 쳐다봤고, 나는 아들 자랑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말했다.
“사실입니다. 준성이는 전략에 관련된 스킬을 갖고 있는 특수계 헌터입니다.”
나도 모르게 진준성에게 동조해주는 것 같았지만, 진준성이 훌륭한 인재인 건 사실이었다.
길버트도 진준성의 말에 혹했는지 아까보다 호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감이 보기 좋네.”
“그럼 데려가 주시는 거죠?”
“너희 길드장이 허락하면.”
그 말에 진준성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날 쳐다봐도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길버트의 태도를 보니 갈등되었다.
나는 아까부터 진준성을 똑바로 보지 않고 있는 길버트를 잠시 쳐다봤다.
길버트는 처음부터 진준성에겐 어딘가 친절했다. 처음엔 어른으로서 미성년을 배려해주는 줄 알았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에덴에서 만났을 때 녀석은 여동생의 대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상금을 노린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대학 갈 나이인 진준성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진준성이 내 옆에 있는 게 진준성도, 나도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
분명 내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건데, 어쩐지 매번 진준성에게 말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길버트에게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준성이도 데려갈 테니, 길버트 씨도 뭔 일 생기지 않게 조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대학에 합격한 어린애라서요.”
내 말에 진준성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길버트 역시 피식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날 밤, 우리는 길버트를 따라 가게 1층으로 내려갔다.
마감하고 있던 주인장 부부는 기다렸다는 듯 우릴 주방으로 안내했다.
익숙하게 주방에 들어간 길버트는 주방에 있던 커다란 냉장고를 들어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가게 밑으로 향하는 비밀의 문이 드러났다.
길버트가 그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길버트는 앞장서서 그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깝다고 하더니, 가게 밑이 목적지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딱히 달이 뜨고 나서 올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 시간이 되도록 시간을 낭비하고 온 건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어떤 새로운 공간도 아닌 그저 벽이었다.
길버트는 그 벽을 쳐다보면서 진준성에게 말했다.
“이봐 전략가 꼬맹이.”
“절… 부르시는 거예요? 제 이름은 진준성인데.”
“그래. 네가 웬 수상한 아저씨를 따라서 이상한 공간에 왔는데, 대뜸 벽이 보여. 그럼 어떻게 할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길버트는 그 질문으로 진준성을 시험해보는 것 같았다. 진준성도 그걸 아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스킬을 발동한 진준성은 천천히 이곳을 둘러봤다.
녀석의 눈이 푸르게 빛나며 벽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곧 생각에 빠졌다.
녀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분명 ‘달이 뜨지 않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열리지 않는다’도 아니고, ‘열어주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특정 시간에만 문을 열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일 거예요. 그렇죠?”
“계속해봐.”
“…비밀의 문은 냉장고를 옮겨야 나타나는데, 정작 냉장고를 옮긴 건 아저씨였죠. 즉, 아저씨가 만나려던 문지기는 가게 사장님이 아니고, 이 지하 공간도 최종 목적지는 아녜요.”
듣고 보니 전부 맞는 말이었다.
진준성은 나랑 길버트의 눈치를 한 번씩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스킬로 이곳의 지도를 확인해봤더니, 지하엔 숨겨진 공간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시간에 맞춰 이 벽을 보러 왔다면, 여기가 문지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인 건 분명해요. …맞죠?”
“맞다고 해보자. 그래서?”
“…그렇다면, 문지기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러니까… 헌터의 스킬이나 던전 아이템으로 문을 만들어주는 사람일 거예요. 그 문 너머에 공간은 여기 말고 다른 곳과 이어질 거고요.”
요약하자면 이 벽은 문지기와의 접선 장소이고, 문지기는 시간 맞춰 온 길버트에게 게이트나 웜홀 같은 걸 열어줄 거라는 얘기였다.
솔직히 길버트가 우릴 속이고 여기에 가둬놓으려는 속셈인지 의심하고 있었는데, 진준성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준성은 길버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용히 진준성의 추리를 경청하고 있던 길버트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 꼬맹이는… 적으로 두면 안 되겠네.”
그 말인즉슨, 진준성의 추리가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길버트는 허공을 보고 외쳤다.
“들었지? 얼른 문이나 열어줘.”
누군가 우리의 말을 듣고 있었던 건가?
나랑 진준성이 주위를 둘러보던 때, 돌연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잉!
이상한 소리가 점점 크기를 키워가며 돌연, 벽 한가운데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간이 칼에 베인 것처럼 찢기며, 벽 위에 난데없이 흉터가 생겨났다. 그 안에선 붉은빛이 흘러나오며 일렁거렸고, 빛이 퍼져가며 흉터의 크기를 점차 키워갔다.
곧 우리의 눈앞에 남은 것은 붉은빛의 게이트였다.
처음 보는 빛깔의 게이트에 당황하던 때.
익숙하게 그 광경을 보던 길버트가 말했다.
“문 열렸다. 들어가자.”
이게 녀석이 말하던 ‘문’이었던 건가?
누군가 스킬로 게이트를 만들어낸 것 같은데,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붉은색 게이트도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고, 스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길버트는 앞장서서 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진준성은 자신의 추리가 정답이었다는 것에 뿌듯한 듯, 길버트를 따라갔다.
어쨌든 이 스킬의 주인도, 붉은 두건의 수장도 게이트 안에 있을 테니,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수상한 붉은 게이트에 향했다.
***
게이트를 넘어서는 느낌은 일반적인 던전 게이트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그곳을 통과했다. 길버트가 우릴 속이고 이상한 곳으로 데려올 가능성도 없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이트를 완전히 통과하자, 던전처럼 새로운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대의 석굴 사원에 들어온 것 같은 신비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는데, 술집 지하에서 통해 왔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곳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모여서 훈련을 하거나, 벽에 그림을 그려가며 무언가 회의를 하거나, 무기를 정비하는 등, 전투 기지로 이곳을 사용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때, 붉은 두건을 쓴 한 무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방금 그 추리는 누가 한 거야, 그 꼬맹인가?”
그들은 모두 진준성의 추리를 들은 건지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진준성은 갑작스러운 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내 뒤에 숨어버려서, 나는 진준성을 대신해 물었다.
“이 친구가 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들렸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들으라고 한 얘기 아니었어?”
내가 길버트를 쳐다보자, 길버트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갑자기 왜 진준성을 시험하나 했더니 이들에게 진준성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길버트는 은근히 우리를 그들에게 떠맡기면서 말했다.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쉬우라고 마련해준 이벤트라고 생각해. 대장 좀 만나고 올 테니까 이벤트 잘 즐기고.”
녀석은 그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붉은 두건들이 우리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끌고 가는 탓에, 녀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붉은 두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입인지, 어쩌다 여기에 왔는지, 길버트와는 어떻게 만났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그런데 문득 그 질문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이유영…?”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여서 나는 자리에 멈춰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유영, 너 이유영이지! 나, 나 좀 구해줘!”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팔다리가 포박된 채 구속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