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붉은 두건 (5)
“내가 류차오의 형이라는 걸 알아보는 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군.”
붉은 두건의 수장, 류진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타국에서 온 내가 류차오와의 관계를 알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만 그에 대해 숨길 생각은 없는지, 녀석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만성 길드장, 그러니까 아버지를 결딴내는 것은 내 오랜 숙원이다. 나는 그 일을 한 번 실패했고, 지금 이렇게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어.”
그는 오래전부터 만성의 수탈과 착취에 반대해왔고,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과 함께 만성 길드장을 끌어내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동료들 중에 밀고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밀고자가 바로 류차오였다고 한다.
“설마 동생이 배신할 줄은 몰랐어. 그 안일함이 내 실패의 원인이다.”
류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그 실패가 그를 주저앉히지 않았기에 그는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다. 류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고작 복수가 아니야. 나는 만성 길드장의 ‘패배’를 원해. 이유영 길드장, 너는 내게 승리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는 내게 확신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승리를 위해 ‘나’라는 변수도 사용할 수 있으니, 도박에 뛰어들 만한 확신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제겐 긴 시간을 증오해온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알량한 복수심이 아니라 그 녀석의 진정한 패배를 원해서, 지금 이 자리에 여전히 살아있고, 아직도 숨 쉬고 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인류를 멸망시킨 ‘오류’를 이기기 위해서다.
그 녀석에게서 승리를 얻어 인류 멸망을 막고, 몬스터가 멸종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직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그 많은 일기를 쓰고 회귀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만성 길드장에게 변이라는 힘을 준 몬스터는 절대로 살려둬선 안 되는 녀석일 겁니다. 그 몬스터는 제가 죽이겠습니다. 그게 저의 ‘승리’를 위한 일입니다.”
나는 류진을 쳐다봤다.
류진도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한참 시선을 맞춰오던 그는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승리를 가져와라, 반드시.”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서로의 승리를 위해.
***
그날, 류진은 붉은 두건들에게 선포했다.
이틀 뒤 붉은 두건의 수장은 만성 길드 본부에 침입할 것이다.
목표는 만성 길드장에게 ‘변이’를 당한 이들을 구해내는 것.
그리고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붙잡아 저지른 죄를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붉은 두건들은 수장의 선포에 따랐다.
수장이 본부의 핵심 인물을 붙잡는 사이, 붉은 두건들은 만성의 지부들을 전복시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각 부대의 부대장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진준성이 그사이에 끼어서 전략을 짜는 걸 도왔다.
나는 길버트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녀석은 진준성을 쳐다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쟤는 어쩌다 네 길드원이 된 거지?”
어쩌다 진준성이 우리 길드원이 됐는지, 나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우연의 연속이었다.
야생의 몬스터를 잡으려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하나 발견했고. 그게 하필 회귀 전에 사이가 안 좋았던 ‘협회의 진준성’이 쓴 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녀석을 헌터로 각성시킬 겸 같이 몬스터를 잡았다. 그랬더니 각성자가 된 녀석이 우리 길드원이 되고 싶다고 졸라서 길드원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러 사정이 있었습니다.”
길버트는 내가 답할 마음이 없다고 오해한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꿀 겸 녀석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쩌다 이중스파이가 된 겁니까?”
“뭐, 여러 사정이 있었어.”
녀석은 능청맞게 웃으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준성이가 저희 길드원이 된 건… 솔직히 협회에 보내려고 했는데, 저 녀석이 제 길드에 오고 싶다고 해서 받아줬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원래는 협회원이 될 재목이셨군? 어쩐지 너랑은 안 어울린다 했어.”
길버트는 진준성을 보는 시선이 나랑 비슷한 것 같았다.
녀석은 습관처럼 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며, 내게도 한 대를 권유했다. 내가 흡연자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 텐데 굳이 권하고 있었다.
내가 거절하자, 녀석은 말했다.
“한 대 피우면 왜 이중스파이가 됐는지 얘기해줄게.”
“…담배 안 피우는 사람한테 왜 그렇게까지 합니까?”
“너도나도 살기 힘든데… 나만 폐가 망가지면 서럽잖아. 자, 얼른 받아.”
어이가 없었지만, 녀석이 왜 이중스파이가 됐는지 궁금해서 담배를 받았다.
녀석은 친히 불까지 붙여주며 말했다.
“에덴에서 말한 거, 전부 거짓말은 아니야.”
뭐, 그게 거짓말이라면 길버트가 진준성에게 관심을 보였던 게 굉장히 수상해진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길버트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내 여동생이 살아있었다면… 딱 대학 다닐 나이거든.”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광채가 스미지 않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한테 담배를 권유한 건가.
한동안 잿빛 연기만이 퍼졌다. 한참 뒤, 그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각성자 하나를 만성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친구 나이가 너만 했나, 젊은 애였지. 보니까…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멋진 청년이더라고. 그래서… 못했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녀석은 담뱃재를 툭툭 털어낸 뒤 말을 이었다.
“그걸 못해서… 내 여동생은 죽었어.”
길버트의 목소리에는 허무가 껴있었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 속에서 그가 느꼈던 참담한 심정이 전해졌다.
짧은 정적은 내가 그와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시고 내뱉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내가 만성에 간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고, 돈을 벌려던 이유는 동생을 위해서야. 그러니까, 그날부로 나는 살 이유를 잃었지…. 그런데 말야, 내 억울함을 풀어줄 것 같은 녀석이 날 찾아왔어.”
길버트는 붉은 두건들 사이에서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류진을 쳐다봤다.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등장한 녀석이 바로 류진인 것 같았다.
나는 다 태운 담배를 손에 쥐며 말했다.
“그래서 오른팔이 된 겁니까?”
“그렇지 뭐.”
길버트는 담뱃재를 털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더니 문득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얘기했다.
“자, 이 모든 건 너한테 반드시 성공해오라는 짐을 지우기 위해 한 이야기다.”
녀석은 짐을 지우듯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저 장난 같은 행동이었지만, 내 어깨는 짐을 짊어진 듯이 무거워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각자만의 사정이 있다.
이중스파이인 길버트에게도, 류차오의 형인 류진에게도, 하물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진준성과, 마냥 미운 짓만 하는 줄 알았던 미츠하에게도, 사정이 있다.
그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이곳에 모였다.
생존을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어쩌면 가족을 위해, 아니면 잃어버린 것을 위해.
만성을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로 이곳에 모여, 결의를 다지며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것이다.
나 역시 만성을 무너뜨리러 이곳에 왔다.
에덴과의 동맹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그 목표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결의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를 감당해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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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류진은 청해객잔 주인장의 도움을 받아 붉은 두건들에게 시원한 맥주를 보급했다.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주며 그는 붉은 두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 중앙에 선 류진은 입을 열었다.
“모두 들어라! 우리에겐 깊은 갈증이 있다. 집 앞의 우물을 빼앗기고, 물을 사 마실 돈을 빼앗겼으며, 물을 길어올 사람까지 빼앗겼다. 누가 그 모든 것을 빼앗았는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옳소!”
“제대로 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우리는 끝내 붉은 두건을 머리에 멨고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혈액처럼 흘러,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호전적인 외침에 모두가 환호했다. 열광하며 설움을 표출했다.
류진은 그들을 향해 거품이 넘치는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자, 건배사를 외치자!”
우렁찬 소리가 류진의 외침에 화답하며, 사람들은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진준성과 함께 물잔을 들고서 그들을 바라봤다.
깊은 갈증을 값싼 맥주로 달래보는 이들.
그 목마른 자들을 비추는 달빛은 오늘따라 유독 밝게 느껴졌다.
***
한편, 한국.
에덴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그 파동도 점점 잔잔해지며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아갔다.
이유영의 기자 회견으로 한국의 대표 헌터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기자 회견 이후, 이유 길드는 끊임없이 주목을 받고 있었다.
경비 대장인 호두의 활약으로 외부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진 못했지만, 길드의 전화는 끊임없이 각종 연락이 쇄도하고 있었다.
…라고, 윤지석이 투덜거렸다.
그 모든 일은 윤지석의 몫이었으니까.
신윤현은 지하에서 열심히 각종 포션과 약을 만들었고, 고주연은 출국 날짜를 기다리며 길드의 훈련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김신욱은 방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유 길드가 주목받으며 김신욱에게도 여러 가지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는 답장을 꼬박꼬박하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어서 대체로 무시했다.
오늘은 그 밀린 연락들을 확인만 하고 있었는데, 스크롤을 내리던 중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김신욱이 구지상에게 문자를 하나 보내놓았다.
그것도 굉장히 이상한 문자를.
「곧 간니ㅣ다ㅏㅏㅏㅏㅏㅏㅏ.」
보낸 시간을 보니, 회식 때 술에 취해서 문자를 보낸 것 같은데.
왜 하필 구지상한테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구지상은 문자를 읽고 씹은 듯했다.
김신욱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덮었다.
이래서 사람이 술을 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먹고 정신이 나가서 무슨 개 같은 짓을 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흑역사를 곱씹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하며 채팅방을 나갔다.
김신욱은 여행 갈 짐이나 챙기기로 했다.
이유영이 진준성을 데려가서 고주연과 둘이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편히 날아갈 수 있었다.
어차피 만성은 이유영이 알아서 때려잡을 테니, 그냥 휴가 가는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짐이 모두, 이유영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