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분화 (1)
베이징 공항.
이 혼란한 시국, 공항엔 출국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베이징 한복판에 출몰한 붉은 게이트와 만성 길드 본부의 붕괴, 그리고 붉은 두건이 일으킨 전쟁.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에서 도망치듯 떠나고 있었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 사이로 한 여자가 당당히 입국했다.
160이 되지 못하는 작은 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짤막한 베이지색 머리는 복슬복슬하게 펌까지 해서 귀여운 이미지를 풍긴다.
그녀의 이름은 정하나.
대한민국 1위 길드, 수호 길드의 길드장이자 ‘완전 방어’라고 불리는 뛰어난 방어계 헌터.
정하나는 공항을 빠져나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붉은 게이트’에서 퍼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이 공항에 있는 그녀에게도 보였다.
정하나는 불길함을 뿜어내는 붉은 기운을 보며 중얼거렸다.
“혼란하다, 혼란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로 인해, 현재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세계 2위에 오른 만성 길드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고, 몬스터와 싸워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헌터끼리 싸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만성 길드 본부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붉은 게이트까지.
이렇게 악재가 겹칠 수는 없었다.
다만 정하나는 저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이다. 정하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땅꼬마 한국인!”
저음의 목소리가 정하나의 귀청을 때렸다.
지금 돌아보면 ‘땅꼬마 한국인’이라는 걸 시인하는 꼴이었으나, 정하나는 욱하는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돌아보며 소리쳤다.
“누구보고 땅꼬마 한국인이라는 거야!”
“이야, 바로 돌아보네. 오랜만이다?”
그곳에는 김신욱이 있었다. 그것도 2인용 자전거를 탄 채로.
정하나는 너무 황당한 광경을 목격하면 말문이 막힌다는 사실을 이때 제대로 경험했다.
설마 저걸 타고 정하나를 마중 나온 걸까? 제발 아니었으면 하지만, 정하나는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뭐야?”
“뭐가?”
“아 왜 자전거냐고, 자동차 어디 갔어, 자동차!”
김신욱은 정하나의 격한 반응을 즐기는 듯이 킥킥대고 웃었다.
그는 대답 대신 정하나에게 노란색 헬멧을 던져줬다.
진짜로 이걸 타라는 걸까?
지금부터 이 자전거를 타고 붉은 두건 지부에 가야 한다고?
중국에서 일어난 대형 사태를 도와주기 위해 온 귀한 손님한테, 이런 대우를 해도 되냔 말이다.
아니, ‘붉은 두건’ 측에서 이런 대우를 했을 리가 없다.
이건 김신욱이 장난치기 위해 벌인 일이 틀림없었다.
정하나가 이를 가는 사이, 김신욱은 얄밉게 뒷좌석을 탁탁 치며 말했다.
“차 막혀서 이게 더 빨라, 얼른 타라.”
“웃기고 있네! 너 그냥 이거 타보고 싶어서 빌려온 거지!”
“이야, 안 그렇게 생겨서 예리한데?”
“야! 아우, 이걸 그냥…!”
정하나는 노란 헬멧을 그에게 집어 던졌다. 김신욱은 그걸 피구 공처럼 받으며 손으로 뽀득뽀득하게 닦았다.
그의 모든 행동이 정하나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지만, 정하나는 참고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 김신욱이 닦고 있던 헬멧을 잡아채서 머리 위에 쓰며 말했다.
“빨리 출발해!”
“예에 마님.”
어쨌든 길을 아는 건 김신욱뿐이고, 걸어가는 것보단 이게 빠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해지자면 정하나도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 싶었다고 하면 왠지 지는 기분이 들어서 정하나는 못 이기는 척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두 사람이 탄 자전거는 팽팽 굴러 도로 위를 달렸다.
빠져나가는 차는 많았지만, 들어오는 차는 많이 없어서 두 사람의 자전거가 달리는 도로 위는 한적했다.
능숙하게 길 안내를 하던 김신욱은 빨간불에 멈춰 서며 말했다.
“근데 구지상은 널 왜 부른 거냐?”
“당연히 내가 필요해서지. 그걸 몰라서 묻냐?”
정하나는 자신감 넘치게 답했다.
실제로 구지상도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 싸워야 하는 몬스터는 위력이 너무 세서 정하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정하나는 바쁜 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와준 것이었다.
김신욱은 정하나의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자식은 왜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인 걸까? 정하나는 헬멧 쓴 머리로 등짝을 들이받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투닥거리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임시 작전 본부 근처에 있는 ‘응급 치료 구역’이었다.
응급 치료 구역은 만성 본부 근처의 건물을 급하게 개조해 응급 환자들을 받는 곳이다. 만성 길드 본부가 붕괴하며 피해를 받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출입구는 붉은 두건을 쓴 이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김신욱이 정하나를 데리고 들어가자,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붉은 두건이 정하나를 알아본 듯 반겼다.
“‘완전 방어’의 정하나 길드장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하나는 오랜만에 듣는 칭호에 우쭐해져서 광대가 솟아올랐다.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을 가진 뒤, 그와 악수를 나누며 답했다.
“수호 길드장 정하나입니다. 구지상 씨의 요청으로 도움을 드리러 왔습니다.”
“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같은 방어계 헌터로서 존경하고 있었어요. 정하나 님이 직접 도와주러 와주시다니, 감격스럽네요.”
정하나는 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거지!’라고. 요즘 떨어져 있던 자신감이 단번에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좀 더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어른스럽게 넘어가야 했다.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힐러들과 의사, 간호사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하나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더 이상의 사상자가 없도록 최대한의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정하나의 말에 붉은 두건은 감격한 듯 눈을 빛내며 정하나를 바라봤다.
정하나는 어른스럽게 인사를 마친 뒤 멋지게 돌아서 치료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이 ‘완전 방어’ 정하나가 온 이상, 더는 누구도 다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땅꼬마가 폼도 잡을 줄 아네.”
굉장히 멋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김신욱이 초를 치고 들어왔다.
얄미워서 등짝이라도 후리고 싶었지만, 이곳은 환자가 있는 공간이다. 병원에서 떠들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정하나도 알고 있었다.
정하나는 얌전히 김신욱의 팔을 꼬집어 비틀며 안쪽으로 향했다.
구지상은 쓰러진 이유영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응급 치료 구역에 온 것이다.
정하나는 왜 이 사건에 이유영이 직격으로 피해를 입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에덴 파티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영은 아마 ‘에덴 파티 납치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의를 실현했을 것이고, 거기까진 정하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왜 이번에도 그가 생사의 고비를 넘어 이곳에 쓰러져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유영은 넝마짝이 되어 구지상과 에덴의 헌터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렇게 무리를 해야만 한다면, 아니, 사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동맹 길드에 좀 더 의지하면 안 되나?
정하나는 수호 길드를 위기에서 구해준 이유영에게 언제든 은혜를 갚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정하나에게 의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길드원이 아니라서? 아님… 도움이 안 되나….’
구지상이 아니었다면 정하나는 이유영이 쓰러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정하나는 잠깐 절망했지만, 살면서 ‘정하나는 도움이 안 된다’라는 말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금방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 자식은 방금 깨어났으면서 왜 일을 하고 있어?”
그때 김신욱이 먼 곳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정하나의 상념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뭐야, 누가?”
“누구긴 누구야, 우리 길드장이지.”
정하나는 얼른 김신욱이 보고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정말로 멀쩡하다 못해 멀끔해 보이는 이유영이 환자에게 힐을 넣고 있었다.
김신욱은 혀를 차며 불평했다.
“저거 저거, 한 달은 누워 있어야 했는데.”
“얌마, 깨어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일어나자마자 게이트 들어갈 생각부터 하는데 이 말이 안 나오게 생겼어?”
“오케이, 납득.”
이유영과 함께 악마의 미궁을 공략했던 두 사람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유영이라는 전력은 강력해서 공략이 힘든 던전일수록 그의 힘은 필요하지만. 그래도, 이유영이 넝마짝이 된 걸 본 사람이라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그의 힘이 필요하다고 해도 매번 죽음과 같은 결과를 안겨야 한다면 그가 없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스템이 헌터를 한 명만 만든 것도 아니니까.
그때였다.
“저랑 던전에 들어가는 게 싫습니까?”
방금까지 저 멀리서 환자를 치유하고 있던 이유영이 김신욱과 정하나의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으아악!!”
두 사람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탓에 정하나는 김신욱과 함께 간호사 선생님한테 주의를 받고 쫓겨나고 말았다.
***
‘진짜 같이 들어가기 싫은가?’
정하나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는 바람에 우리는 그곳을 나왔고, 그렇게 유야무야 화제가 넘어갔다.
지금은 구지상이 합류하며 김신욱은 자리를 뜨고, 정하나는 구지상과 재회의 반가움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보며 정하나가 왜 나랑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했는지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뭐, 어차피 싫든 말든 나랑 같이 붉은 게이트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김신욱 말대로 내가 한 달이나 누워 있었다면 모를까, 나는 공략대를 구성하던 중에 눈을 떴다.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류진을 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류진이 가둬놓고 있는 몬스터를 내 손으로 없애야 했다.
그 녀석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헌터가 정하나다.
구지상이 연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했을 것이다.
녀석의 공격은 단 한 방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강하다.
정하나의 완전 방어, 암흑 스킬이 꼭 필요했다.
나는 구지상과 재회의 기쁨을 다 나눈 것 같은 정하나에게 물었다.
“정하나 길드장, 지금 스킬로는 어느 정도의 공격까지 막을 수 있습니까?”
“왜, 왜? 설마 나 안 데려가려고?”
“…이번에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가 상당히 강해서 하는 말입니다. 악마의 미궁에서 만난 보스 몬스터보다 더 강합니다.”
‘마왕’과 싸울 때 정하나의 방어는 완전 방어라는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이번에도 그 정도의 방어밖에 펼칠 수 없다면, 방어계 헌터는 정하나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
인원을 더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정하나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가며, 확고하게 말했다.
“내가 아직도 그때의 정하나인 것 같냐?”
“얼굴은 똑같아 보이긴 합니다.”
“아오, 그 말이 아니잖아!”
정하나는 벌떡 일어나,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말을 이었다.
“세 배! 마왕보다 세 배는 더 세도 막을 수 있어. 니들이 S급이라 해도 날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난 너희 둘 공격도, 어? 막을 수 있으니까…!”
뒷말은 살짝 자신 없어 보였지만, 어쨌든 그때의 정하나보다 스킬이 성장한 것 같았다.
한 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한데, 이어지는 구지상의 말에 나는 생각을 집어넣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수호 길드장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헌터의 강함은 등급순이 아닌걸요.”
“네가 말하니까 전교 1등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는 것 같거든?”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됐어! 치사하게 니네만 S급 되고. 안 그래도 배 아파 죽겠으니까 딴지 걸지 마!”
이런 분위기에서 정하나에게 S급인 내 스킬을 한번 막아보라고 하면 소시오패스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정하나의 스킬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는 눈으로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정하나에게 한 가지 제안해봤다.
“그럼 고주연 씨의 화살도 막아낼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한 번 시험해보죠.”
“엥?”
고주연. 정하나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략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헌터다.
고주연의 성장도 확인해볼 겸, 두 사람이 부딪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뚫는 화살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
둘 중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전략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