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분화 (3)
‘정하나의 암흑으로 고주연의 화살을 막아라.’
언뜻 보면 고주연은 S급인 나랑 구지상보다 약한 상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지를 다루는 구지상과 여러 가지 스킬이 있는 나도, 고주연의 화살만큼 ‘공격적’이진 않다.
공격계 헌터들이 강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죽이는 데 특화된 헌터들로, 스킬 자체의 살상력이 굉장히 높다.
어쩌면 나랑 구지상의 스킬을 받아내는 것보다 고주연의 화살 하나를 막아내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정하나 역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하나는 결국 허락했다.
같은 공략대로서 팀원의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는 설득에 넘어오고 말았다.
신인 헌터와 겨룬다는 게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그런 것으로는 자존심이 상하진 않는 모양이다.
나는 고주연을 데려오기 위해 임시 작전 본부로 향했다.
겸사겸사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도 전할 생각이었다.
고주연은 진준성이 있는 임시작전본부에서 진준성을 호위하는 중이었다.
아직 만성과의 전쟁은 진행 중이고, 만성에서 노리는 것은 당연히 작전 참모다.
다행히 참모가 붉은 두건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며, 심지어는 성인도 아닌 헌터라는 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길버트와 고주연, 김신욱이 돌아가며 진준성을 경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적당히 조언이나 해줄 줄 알았는데, 진준성이 왜 이렇게 막중한 임무를 떠맡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본부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던 중, 층계에서 떠들고 있던 붉은 두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 붉은 게이트가 있다는 건 아직 대장님이 살아있다는 거야.”
“그런 거겠지? 대장님이 만성 길드장을 포획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그래, 무사히 모시고 오기만 하면 돼. 그러면 되는 거야….”
그 쓸쓸한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이 짧은 대화로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함부로 방해할 수 없었다.
류진은 내게 말했다.
만성 길드장과 부길드장, 그리고 몬스터를 끌어안고 죽을 테니 붉은 두건에겐 그가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전하라 했다.
허나 나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붉은 게이트는 살아있다. 사람이 죽으면 대체로 그 스킬도 사라지기 마련인데, 아직 붉은 게이트가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류진 역시 살아있다는 뜻이다.
류진이 무슨 선택을 했는지는 스스로 전하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녀석을 살려내서 말이다.
그때 붉은 두건들이 이어서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계단에 서서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붉은 게이트가 대장의 스킬이라는 건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참모님이 그러셨잖아. 세간에서 붉은 게이트를 손가락질하며 무슨 악재인 것처럼 떠드는데… 왜 발설하지 말라는 걸까?”
“그것도 다 대장을 살리기 위해서야. 악재인 것처럼 소문이 퍼져야, 더 강하고 제대로 된 공략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길버트 씨가 그랬어.”
“길버트 씨가?”
“그래, ‘그 사람’이 깨어나면 대장을 구하러 공략대가 출발할 거래. 그때까지만 견디자고.”
그 사람?
깨어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정황상 나를 말하는 것 같은데.
길버트는 벌써 날 공략대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하긴, 길버트만큼 서둘러 류진을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어나서 화신을 찾겠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바로 본부에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할 걸 그랬다.
나는 더 늑장 부리지 않기 위해 곧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한 발 딛기 무섭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에 팔을 걸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팔을 피하며 녀석의 다리를 걸었다. 그러나 녀석은 가볍게 뛰어서 내 반격을 피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이구, 왜 이렇게 날이 서 있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게 다가온 건 길버트였다.
적이 아니었다.
류진이 어깨동무하면서 희생 각을 세웠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어깨동무하려던 놈을 패려고 했다.
길버트가 나보다 강한 놈이라 다행이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뭐, 괜찮아. 근데 대장을 못 구했다고 약간 맛이 갔다거나… 그런 거면 곤란해.”
길버트는 반만 뜬 눈으로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하는 건 해놓고 미치는 게 마음이 편한 성격이다.
벌써부터 미칠 수는 없었다.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제 길드원들을 만나고 싶은데, 어디에 있습니까?”
“음. 따라와.”
길버트는 나보다 앞서 계단을 올라갔다.
층계에 있던 붉은 두건들은 길버트를 보고 인사하다가, 뒤따라 올라오는 나를 보며 귀신 본 듯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한 뒤 마저 길버트를 따라갔다.
뒤에서 그들이 ‘그 사람’이 드디어 깨어났다, 이제 대장을 구할 수 있겠다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싫지 않은 기대였다. 솔직히 류진을 데려오지 못한 시점에서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되려 기대받고 있으니 감사할 정도다.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걸어가던 길버트는 문득 눈을 흘겨 나를 바라봤다.
“넌 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제가 깨어나서 류진 씨를 구할 수 있겠다는 얘기 말입니까?”
“그래. 난 네가 없으면 붉은 게이트 공략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우리 참모님이 계속 반대해서 말이야.”
참모라면 진준성을 말하는 걸 텐데, 왜 ‘우리’ 참모님이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진준성이 반대하는 이유는 정하나와 김신욱이 떠들던 것과 비슷할 것이다. 녀석들이 보기에는 내가 무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리하지 않았다.
내겐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고문이다.
“몬스터가 아직 붉은 게이트 안에 있습니다. 아직 류진 씨와의 약속을 못 지켰고요. 들어가야 합니다.”
“좋아. 그 말 그대로 꼬맹이한테 전해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길버트는 임시 작전 본부의 가장 안쪽에 있는 회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진준성은 그곳에서 고주연과 함께 있다고 한다.
회의실 문 앞까지 도착하자 길버트는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녀석을 따라 안을 살펴보니, 회의실의 낡은 칠판 앞에 서 있는 진준성이 보였다.
칠판에 적힌 것들로 미루어보면 지원받은 무기와 물자를 각지에 조달하는 최단 루트를 검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국어로 쓰여있어서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갖가지 가능성의 장단점을 적어가며 자금이 제일 적게 드는 루트를 찾는 듯했다.
타닥타닥 거침없이 분필을 움직이며 나오는 글자들이 모두 중국어라, 새삼스럽게 저 녀석이 정말 천재는 맞구나 싶었다.
그 경이로운 모습에 못 보고 지나칠 뻔했는데, 회의실에 한쪽에는 고주연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다행히 진준성 옆을 지켜주며 잘 있었던 모양이다.
길버트는 문을 똑똑 두드리며 안에 있는 진준성을 향해 말했다.
“참모님, 시간 좀 내주지?”
“생각할 게 있어서요. 다음에 와주세요.”
진준성은 믿을 수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길버트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쪽에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길버트는 입 모양으로 ‘봤지?’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더니 한 번 더 문 안쪽을 향해 말했다.
“그러시다면야 어쩔 수 없지. 들었지, 이유영? 기다리자고.”
“잠깐, 누구요?!”
진준성은 후다닥 뛰쳐나와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소리에 뒤에서 자고 있던 고주연도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진준성은 나를 보며 울먹이는 얼굴로 외쳤다.
“길드장님…!”
아까까지 차가운 목소리로 길버트에게 반응하던 진준성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게 벌써 몇 번은 되는데, 이런 반응을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뻘쭘하게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멀쩡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지상이 형이랑 사빈 씨가 길드장님 업고 급하게 치료받으러 가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다 나으실 거 아는데도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녀석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이건 내 잘못이 맞다.
나는 진정하라는 의미로 녀석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했다. 다행히 맞는 행동이었는지 진준성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진준성이 훌쩍이는 동안, 고주연이 눈을 비비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고주연은 진준성의 머리를 털짐승처럼 쓰다듬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괜찮습니다. 걱정할 일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쿨하게 한마디 하며 고주연은 내 걱정을 끝낸 듯했다.
고주연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어쨌든 나 역시 두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기에, 멀쩡한 두 사람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이 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료란 그런 거니까.
우리는 그렇게 길버트를 병풍처럼 세워놓고 훈훈하게 재회의 반가움을 나눴다.
***
진준성은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녀석은 회귀 전의 협회 진준성만큼이나 사령탑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류진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붉은 두건은 심리적 동요가 상당했다. 하지만 중심을 잃었음에도 그들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진준성의 전략 덕분이었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붉은 두건의 이념이 이뤄지길 바라며 참모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준성은 붉은 두건이 그 사실을 은근히 인식하게 만들었고, 붉은 두건은 여기서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일어섰다.
그렇기에 류진이 없는 지금, 진준성은 붉은 두건에게 있어 더욱 원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었다.
진준성은 아직 그들에겐 자신이 필요한 만큼 전쟁이 끝날 때까진 이곳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당장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진준성의 결의가 엿보여서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길버트는 진준성이 어설프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단 이곳에 있는 게 안전할 거라고 말했다.
임시작전본부에는 붉은 두건만 있는 게 아니다.
만성 길드장이 처벌받는 걸 두 눈으로 봐야겠다며 이곳에 남은 타국의 대표 헌터들도 있었다.
즉, 여길 쳤다간 국가 문제로 번지게 된다.
안 그래도 핑계 하나만 생기면 당장 만성 죽이겠다고 쳐들어올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임시 작전 본부의 위치가 발각된다고 한들, 만성의 헌터들이 여길 쉽게 칠 수는 없었다.
전쟁의 승기는 붉은 두건이 쥐고 있고.
게이트에서 만성 길드장과 류차오를 무사히 끌어내 온다면 만성의 패배는 확정이다.
그러니 진준성을 무사히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붉은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하는 게 제일 안전한 길이라는 게, 길버트의 주장이었다.
나 역시 녀석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번에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는 전략보단 압도적인 무력이 필요하다. 진준성을 그 위험한 곳에 데려가고 싶진 않고, 진준성만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위험했다.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공략한 뒤, 진준성과 함께 한국으로 떠나는 게 최선의 방안이었다.
그러기 위해 서둘러 게이트 공략대를 구성해야 한다.
공략대엔 정하나와 구지상, 고주연과 한 명의 도움이 더 필요했다.
김신욱은 악마의 미궁, 태풍 던전까지 다녀온 탓에 누적된 피로도가 상당할 테니 이번에는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진준성을 지켜줄 이유 길드 헌터도 필요하니 여기에 남는 게 좋을 것이다.
사빈은 같이 가준다면 좋겠지만, 녀석에겐 후발대를 맡아달라고 하고 싶었다.
미카엘은 지금쯤 붉은 게이트 공략에 에덴의 헌터를 파견할 기회를 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좀 봐야 할 테니, 선발대에 에덴의 헌터를 끼워 넣는 건 쉽지 않다.
지금 전 세계가 원하는 것은 적당히 쓰고 버릴 패.
별 볼 일 없는 헌터들이 겁도 없이 들어가서 실패하고 오길 바랄 것이다. 저 게이트 안에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않을 핑계가 필요하니까.
결국 마지막 한 명은 ‘이 녀석’만큼 알맞은 인재가 없었다.
“길버트 씨.”
“음?”
“공략대에 당신이 들어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영국 대표 헌터인 길버트는 소속된 길드가 없는 솔로 헌터로 알려져 있다.
대형 길드들 간의 기 싸움에 눈치 없이 끼어들기 딱이었다.
적당히 이번 납치 사건 피해자로서 공략대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될 것이다.
게다가 류진을 구해야겠다는 목적이 확실한 녀석이다.
어떤 헌터들보다도 류진을 구하는 데 필사적으로 움직일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은 나보다 강하다.
길버트가 공략대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 이보다 확실한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