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분화 (5)
나는 붉은 게이트를 공략할 공략대원을 한 자리에 모았다.
장소는 고주연과 정하나가 싸웠던 옥상.
정하나는 전부 모인 공략대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았다, 이번 공략대 수준.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그 말에 구지상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죽으면 안 돼요…!”
“얌마, 밈 몰라, 밈? 이따위 인원으로 공략대라고 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거잖아!”
정하나는 MZ세대답게 밈(meme)을 쓴 모양인데, 이 중에서 정하나의 개그를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일단 나는 유행에 뒤처지는 회귀자이고.
내 옆에 있던 고주연은 사이버 세상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구지상은 인터넷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40대 영국인 아저씨라 한국의 밈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정하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공략대원이라고 모은 사람들은 이들이 전부였으니까.
정하나는 저 수상한 게이트에 들어갈 사람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냐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야 이유영! ‘정하나가 이래서 화를 내나 보군….’ 이러고 있지 말고 해명 좀 해보시지?!”
날 과장스럽게 연기하던 정하나는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다행히 내겐 변명거리가 많았다.
이번 붉은 게이트 공략은 이 인원으로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승률을 뽑아낼 수 있다.
“…저희가 싸워야 할 몬스터는 악마의 미궁에서 싸웠던 마왕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한 명 한 명이 A급 던전은 혼자 공략할 수 있을 만큼 강해야 합니다.”
“내가 따져 묻는 건 그게 아냐. 인원이라고, 인원! 마왕보다 더 센 몬스터를 어떻게 다섯 명이서 물리쳐?”
“이 이상은 곤란합니다. 제가 아니라 정하나 길드장이 곤란해질 겁니다.”
그 말에 정하나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정하나가 금방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정하나 길드장, ‘암흑’ 스킬로 만들 수 있는 갑옷은 몇 개입니까?”
“어… 크흠, 백… 백 개?”
“백 개나 만들 수 있으면 제가 실수를 했네요. 공략대원을 늘려야겠습니다.”
“자, 잠깐!”
정하나는 다급하게 내 어깨를 잡았다. 돌연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해오더니 남들이 듣지 못하게 내 귀에만 속닥거렸다.
“방금 건 농담 농담. 그냥 이 다섯 명으로 가자! 단출하고 좋네, 하하!”
다행히 금방 이해한 듯했다.
다섯 명 이상이면 정하나가 곤란해지는 이유, 그건 정하나의 암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하나가 약해서는 아니고. 이번에 상대할 몬스터가 너무 강한 게 문제다.
우선, 우리가 상대할 몬스터.
그 녀석의 공격을 방어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심판의 물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구지상의 대지의 벽을 녹일 정도의 화력을 갖춘 녀석이다.
그걸 방어할 수 있는 건 정하나 밖에 없다. 하지만 정하나에게도 꽤 버거운 상대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정하나에게 더 어려운 걸 부탁할 생각이다.
그 몬스터를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략, 그건 정하나의 스킬로 만들어진 ‘방어구’다.
갑옷만 있다면 용암을 분출해내는 녀석과 근접전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내가 죽어 나갈 필요도 없고, 구지상과 길버트도 좀 더 편하게 녀석을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하나처럼 스킬을 형태가 있게 변형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어서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는 필시 체력 소모로 이어진다.
즉, 이번 전투에서 정하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갑옷은 한정되어 있다.
이건 정하나가 부족한 게 아니라 몬스터가 너무 강한 게 문제다.
지금 시기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위력을 가진 몬스터가 등장한 거니까.
회귀 전과 비교해봐도 정하나는 이전보다 더 빠르고 영리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정하나를 떼어내며 왜 이렇게 인원이 적은지, 한 가지 이유를 더 설명했다.
“이번에 무사히 공략에 성공한다면, 공적은 붉은 두건의 수장과 정하나 길드장이 가져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생각해주세요.”
“엥? 뭔 소리야?”
“거래가 있었습니다. 이번 게이트 공략의 공적을 붉은 두건 수장의 공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내가 길버트를 쳐다보자, 길버트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붉은 두건의 수장은 저 게이트 안에 있지만, 아니, 애초에 저 게이트 자체가 붉은 두건의 수장이 만들어낸 거지만. 이번 게이트 공략은 붉은 두건의 수장, 류진의 공적이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저 능구렁이 아저씨가 아니면 떠올리지 못할 법한 생각이었다.
이 비밀을 지키려면 인원을 늘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평소처럼 다수 인원으로 구성했다간, 여러 윗대가리들이 어떻게든 자기네 나라의 헌터를 끼워 넣으려고 할 것이다.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면 공략대 분열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때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고주연이 말했다.
“얘랑 나도 붉은 두건으로 변장해야 해?”
고주연이 가리킨 것은 본인과 구지상이었다.
고주연과 구지상이 변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한국 헌터들이 해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붉은 두건의 수장으로 변장한다고 한들 사실상 게이트 공략은 한국 헌터들의 공적이 될 게 뻔했다.
정확히는 수호 길드와 이유 길드의 공적이 되겠지.
뭐, 솔직히 사실이고. 그러면 안 될 이유도 없다.
“변장 안 하셔도 됩니다. 거기까진 거래 안 했습니다.”
“잠깐잠깐. 에이… 이럴 거야?”
길버트는 다급하게 내 어깨를 잡았다. 데자뷰인가? 녀석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해오며 남들이 듣지 못하게 내 귀에만 속닥거렸다.
“잘 생각해봐. 만에 하나 공략대가 실패하면 욕을 얼마나 처먹을지 예상이나 가? 너희 길드원들이 욕먹게 두고 싶어?”
“실패할 일 없습니다. 이건 속단이 아니라 각오입니다.”
“거참 말 더럽게 바르게 하는 청년일세. 한 번만 잘 생각해보지? 응?”
길버트는 간절해 보였지만, 솔직히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고주연과 구지상이 하겠다고 하면 모를까, 딱히 나랑 길버트 사이의 거래에 둘을 끼워 들이고 싶진 않았다.
그때, 귀가 밝은 구지상이 이 모든 걸 엿들은 듯 입을 열었다.
“이유영 씨, 저도 붉은 두건인 척 변장하고 가도 될까요?”
“…구지상 씨가요?”
“생각해보니 팬분들도 많이 걱정하실 것 같고… 길드장님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데 제가 이름을 드러내는 것도 살짝 망설여져서요. 뭣보다 나쁜 일도 아니잖아요! 에덴과의 동맹을 위해서도 그쪽이 더 좋을 것 같구요.”
저 녀석은 부처인가?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않나?
이번 게이트를 무사히 공략하고 나오면 헌터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폐쇄적이었던 에덴의 태풍 던전 공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공적이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그걸 포기하고 있었다.
구지상이 그러겠다는데 내가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때 옆에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고주연도 입을 열었다.
“그냥 붉은 두건만 쓰면 되는 거야? 얘 말 들으니까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아서.”
“…고주연 씨도 붉은 두건 행세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안 하면 가족들이 걱정할 거 아냐. 보니까 외신 기자들도 주목할 일인 것 같은데.”
붉은 게이트는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다. 그곳의 선발대로 들어간다면, 그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없겠지만 그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엔 아까운 명성이었다.
다만 구지상과 고주연에겐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이야기를 초조하게 듣고 있던 정하나도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난 변장 안 해.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 완전 방어 수호 길드장 정하나로 들어갈 거야. 이런 훈훈한 분위기여도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할 거라고…!”
“알겠습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합니다.”
“너희가 다 그러니까 왠지 나도 ‘이 모든 건 붉은 두건을 위해…’라고 해야 할 것 같잖아, 난 한국인인데!”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는 건데, 정하나는 열심히 변명하고 있었다.
큰 길드를 이끌고 있는 정하나는 나 같은 선택을 해선 안 되고,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솔직히 길버트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찜찜하긴 하지만, 공적도 결국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얻을 수 있다.
다섯 명이 힘을 합쳐 그 몬스터를 공략하고 류진을 구출한 이후의 얘기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길버트를 쳐다봤다.
구지상과 정하나, 고주연과 나는 서로 어느 정도 합을 맞춰본 경험도 있고 이미 동료 의식이 깔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 스파이 아저씨와는 서로 스킬도 잘 모르고, 같이 전투해본 경험도 없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최소한 길버트의 스킬이 뭔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길버트 씨,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음. 슬슬 내 스킬이 뭔지 궁금해할 타이밍이지?”
하여튼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녀석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고주연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네 동료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아주 가까이에서 봤는데.”
그 말에 고주연이 눈을 꿈뻑거렸다.
내가 구지상, 사빈, 류진과 만성 본부에 들어가 있던 동안 고주연과 길버트는 만성의 헌터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서로 스킬을 봤던 모양이다.
고주연이 길버트를 쳐다보자 길버트는 답례로 눈을 찡긋거렸다. 고주연은 차가운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 늑대야.”
“….”
“자, 여기서 잠깐.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상당히 이상한 아저씨가 됐어, 그렇지?”
길버트는 난처해 보이는 얼굴로 고주연에게 다시 설명할 기회를 줬다.
고주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늑대가 아니라 개였나 봐. 개가 될 수 있어.”
“아니아니, 아니. 일부러 그러는 거야?”
고주연한테 설명을 시킬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뭔 짓을 했길래 고주연한테 미움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난 고주연 편이라서 길버트를 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길버트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긁적이며 멋쩍게 얘기했다.
“다른 좋은 표현이 있잖아. 왜, 뱀파이어랑 반대되는… 응? 그거.”
길버트가 준 힌트에 정하나와 구지상은 단번에 같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늑대인간?”
“그래, 그거.”
길버트는 한숨을 쉬었다.
늑대인간. 신화나 민속에서 나오는 늑대 반인반수. 세상에는 드물게 관념 속에나 존재할 법한 수인이 되는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굉장히 강하다.
“오오오, 진짜 늑대인간이야? 진짜? 변신해보면 안 돼?”
정하나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길버트를 쳐다봤다.
길버트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시선을 피했다.
수염 난 40대 아저씨가 로망의 궁극체인 늑대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니, 이런 괴리감도 없었다.
하지만 구지상도 정하나처럼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보름달 보면 힘이 더 강해져요?”
“이봐…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만화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라고.”
“그래도 하울링은 할 수 있죠?”
“제기랄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
길버트는 구지상과 정하나에게서 도망치듯 등을 돌렸다.
세 사람은 얽혀서 떠들었지만, 나는 그저 신기해하고 있을 수 없었다.
늑대인간, 수인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함은 증명된다. 내가 녀석에게 이기는 그림이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길버트는 타고나길 강한 녀석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버트의 스킬은 우리가 싸워야 할 몬스터와 상성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