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분화 (6)
세상에는 드물게 ‘수인’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있다.
그들은 종합능력치와 무관하게 강력하고 고유한 그들만의 힘을 갖고 있다.
회귀 전에 나는 이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읽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전승이나 신화, 설화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는 대체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몬스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헌터의 스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원리까지 밝혀내진 못했지만, 상당수의 사례를 분석해 사람들이 오래 두려워해 온 존재일수록 강하다는 관계성을 증명했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 나타난 ‘강철이’는 같은 등급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제법 강한 편에 속했다. 그 외에도 ‘마왕’이나 ‘블랙드래곤’처럼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괴물로 여겨온 존재는 차원이 다른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 작자는 헌터의 스킬에도 동일한 원리가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대지를 숭배하고 신격화했다. 그래서인지 구지상의 ‘대지의 포효’는 타고나길 강하다. 인어나 켄타우로스 같은 설화 속의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헌터들 역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비슷한 논리로 길버트의 ‘늑대인간’ 역시 상당히 강한 스킬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작자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진 않는다.
전투 경험이 있는 헌터라면 모두 알 것이다.
강한 스킬이란 허상에 가깝다.
구지상은 공중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어로 변하는 스킬을 갖고 있던 헌터는 물속이 아니면 그 스킬을 쓰기 어려워했었다.
이처럼 스킬은 상황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몬스터와의 상성에 따라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도 있고, 안 쓰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상대적이고 변칙적인 힘이 바로 ‘스킬’이다.
그래서 나는 길버트의 스킬을 듣고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공격계 헌터에게 요구되는 힘은 압도적인 공격력이다. 고주연처럼 단 한 방의 공격일지라도 반드시 먹히는 스킬을 써줘야 한다.
다만 ‘늑대인간’ 스킬로 그런 공격이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길버트에게 물었다.
“길버트 씨, 전투할 때 다른 보조 스킬이나 무기를 사용하십니까?”
“음, 그래. 늑대인간이라는 말만 들어서는 신뢰가 안 가지?”
“스킬 간에 상성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번 몬스터는 마그마를 다루고 그 탓에 접근이 어렵습니다. 정하나 길드장이 최대한 보조해주겠지만, 가능한 한 번의 공격이 치명타로 작용해야 합니다.”
“내 공격이 몬스터에게 먹힐지 신뢰를 달라는 거군, 좋아.”
이해가 빠른 녀석이었다.
길버트는 뭔가를 설명해주려는 듯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 뒤, 한 손을 들어 햇빛을 이용해 그림자를 만들었다.
손으로 강아지 모양의 그림자를 만들며 난데없이 그림자 연극을 시작한 녀석은 말했다.
“자, 다들 어릴 때 늑대한테 물리면 다신 집에 못 돌아온다는 말은 들어봤지?”
“영국에는 늑대가 있어? 한국엔 없는데.”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정하나의 태클에 길버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늑대한테 물리면 아주 아프지, 피도 나고 뼈도 부러지고, 운 나쁘면 살이 뜯어먹힐 거야. 그치? 근데 나한테 물리면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끔찍한 일?”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 연극을 이어갔다.
녀석은 손가락을 움직여 강아지가 햇빛을 먹어 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강아지에게 먹히면서 빛 조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그림자만이 남았다.
길버트는 그것을 보며 말했다.
“내 이빨에 물리면 그 부위는 소멸된다. 빛이 그림자에 먹힌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거야.”
“뭐야 그 무시무시한 스킬은…? 소멸? 힐 해도 안 낫는 거야?”
“음, 물린 부위를 즉각 도려내면 힐이 들어갈지도 모르겠군. 사람한테는 안 써봐서 확답할 수는 없어. 이건 서브 스킬이거든.”
확실히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다.
길버트의 말대로라면 저 스킬은 ‘생명의 의지’의 카운터나 다름없다.
아무리 생명의 의지라고 해도 소멸된 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 하다못해 세포 하나라도 남아있어야 발동되는 스킬이니까.
하지만 그렇다는 건 내 일기장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들에게도 카운터라는 뜻이 된다.
그놈들 역시 나랑 마찬가지로 끝없이 재생하며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파괴해야 재가 되어 사라진다.
길버트와 내가 합공한다면 좀 더 확실하게 몬스터를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길버트 씨를 공략대에 넣은 건 잘한 일이었네요.”
“그럼, 이제 댁들이 나한테 스킬을 알려줄 차례지? 고주연 양의 스킬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새로 온 이 아가씨랑 너네 둘의 스킬은 내가 잘 모르거든.”
녀석은 정하나와 구지상, 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길버트가 솔직히 밝혀준 것 같으니, 이번엔 우리가 솔직히 밝혀줄 차례긴 했다.
그렇긴 한데….
나는 아직 가능성 스킬에 대해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심지어 동료들한테도 내 메인 스킬이 두 개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미카엘이 강제로 내게 강화 스킬을 써서 알아냈을 때를 제외하고, 메인 스킬을 타인이 알게 된 적은 없었다.
그걸 지금 여기서 내 입으로 밝혀도 되는 건가?
그때, 정하나가 나를 힐긋 보며 히죽였다.
그러더니 먼저 자신의 스킬을 밝히기 시작했다.
“좋아, 내가 먼저 밝혀주지. 난 무슨 공격이든 흡수할 수 있는 ‘암흑’ 스킬을 갖고 있어. 방어계 스킬이고, 이번엔 이유영의 부탁으로 너희한테 방어구를 만들어줄 거야. 적을 도발하는 서브 스킬도 있으니까 방어는 나한테 맡겨!”
정하나의 멋진 발표에 구지상이 박수를 쳐줬다. 고주연과 길버트도 적당히 짝짝 손뼉을 쳐줬고, 분위기를 이어받아 구지상도 입을 열었다.
“제 스킬은 대지를 조종할 수 있는 스킬이에요. 지구의 물질로 만들어졌다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요. 지진을 일으키거나, 땅을 출렁출렁하게 만들 수도 있구요.”
“이런 시멘트 바닥도 움직일 수 있나?”
“네, 보여드릴까요?”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앉아있던 건물의 옥상이 흔들리며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바닥이 시멘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나, 여기가 옥상이라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녀석은 땅을 뜻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모두가 작은 탄성을 내던 때 갑자기 아래에서 큰 소리가 났다.
쿠구궁!
낡은 건물이어서 살짝 흔들린 것뿐인데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정하나는 구지상의 등짝을 내려치며 말했다.
“힘 자랑하냐! 얼른 스킬 집어넣어!”
“어어, 이상하다, 정말 살살 썼는데.”
구지상은 당황하며 스킬 발동을 멈췄다.
건물은 서서히 흔들림을 멈추고 잔잔해져 갔다.
완전히 잠잠해진 시멘트 바닥을 쓸어보던 길버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 마음먹고 스킬을 쓴다면 인간 재해가 따로 없겠어.”
“에이, 겉보기만 요란한 거예요. 서브 스킬도 전투에 관한 스킬은 거의 없고….”
구지상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서브 스킬들을 돌이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고민까지 해야 할 정도면 종류가 꽤 많은 모양이다.
그때 정하나가 팔꿈치로 구지상을 쿡 찌르며 말했다.
“너 그 스킬 있잖아, 소리 잘 듣는 거. 그건 말해줘야지.”
“맞다! 서브 스킬 중에 먼 곳에 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천이통’이라는 스킬이 있어요. 이걸 발동하면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 대체로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태풍 던전에서는 쓸모가 없었으니까… 절대적인 건 아닌 것 같아요.”
길버트는 작게 감탄했다. 만능계 메인 스킬에 전략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천이통 스킬. 이 두 개만 봐도 구지상이 얼마나 대단한 헌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길버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 녀석과 고주연 양, 창 쓰는 녀석이랑 그 꼬맹이까지… 전부 네 길드원이란 말이지?”
“….”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그런 길드원들을 둔 길드장의 스킬은 뭔지 말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고주연의 스킬은 모두가 알고 있어서인지 다들 따로 묻지 않고 내가 발표하기만을 기다렸다.
정하나와 구지상, 고주연까지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말을 안 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힐러입니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힐 스킬에 숙련도가 쌓여서 타인에게도 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자힐은 자동 발동이어서, 웬만하면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킬 더 있죠?”
고주연과 구지상이 동시에 내게 물었다.
방금까지 조용히 있던 고주연이 지금은 눈을 또렷하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구지상 역시 장난기 없는 얼굴로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도저히 거짓말로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얼굴들이었다.
다음으로 설명해야 할 ‘가능성’ 스킬.
나도 아직 이 스킬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상당히 특별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몬스터의 스킬을 쓸 수 있는, 가히 사기적인 스킬이니까.
그래서 더 말하기 꺼려졌다.
몬스터의 스킬을 쓴다는 게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특별하다는 건 이질적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걸 말해도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줄까.
내게서 거리감이나 느끼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운을 뗐다.
“…… 메인 스킬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싸워본 몬스터의 스킬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어차피 말해야 한다면 제대로 설명하는 게 낫다.
말로만 듣는 것보단 직접 보는 게 더 믿기 쉬울 테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능성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열풍이 발동되며 내 손 안에서 작게 일렁이는 붉은 아지랑이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고주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고주연 씨, 강원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싸웠던 몬스터를 기억하십니까? 이건 그 몬스터의 스킬입니다.”
“…기억해. 그 스킬을… 네가 가져간 거야?”
“비슷합니다.”
고주연은 믿기 어려운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를 만난 듯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다.
다르게 해석해볼 여지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나는 이어서 다른 가능성 스킬을 발동하며 정하나를 바라봤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이번엔 손안에서 작게 스파크가 일어나며 금빛의 전격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정하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악마의 미궁의 보스 몬스터가 쓰던 스킬, 기억하십니까? 이건 그 녀석의 스킬입니다.”
그 말 많던 정하나도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스킬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몬스터의 스킬을 가져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메인 스킬이 두 개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그저 신기하다는 반응을 해주며 넘어가길 기대했던 걸까.
내 말이 끝나고 내려앉은 침묵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냉기를 느꼈다.
구지상은 심각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고, 고주연은 여느 때와 달리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는 듯했다. 정하나는 입을 틀어막고 방황하는 눈동자를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타파하려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다른 이들이 아닌 길버트였다.
“끝내주는 스킬이네. 우리 공략대 지휘관으로 손색없겠어.”
길버트는 나랑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히려 더 빠르게 수용한 것 같았다.
녀석의 말 덕분에 나도 정신을 차렸다.
동료라고 해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회귀자이고 최후의 인류이며, 이들과 다른 시간선에서 살던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사실은 나와 이들 사이에 큰 간극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나는 동료들에게 나를 이해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간극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모여있는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었다.
나는 네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살아있다면 언제든,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 자가 죽은 이를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힘을 합쳐 류진 씨를 구하기 위해 모였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내 말에 고주연과 구지상, 정하나, 그리고 길버트가 나를 쳐다봤다.
드디어 각자만의 상념을 깨고 목적을 상기한 것 같았다.
나는 이들이 이 이상 흔들릴 수 없도록 확고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오늘과 내일은 합을 맞추고 팀 훈련을 진행하죠. 그리고 이틀 뒤에 바로 게이트에 들어갑니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우리의 머릿속에는 오직 두 가지만 남겨야 한다.
류진을 구하는 것, 그리고 몬스터를 죽이는 것.
그럴 수 있도록 지휘관인 내가 이들을 이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