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분화 (7)
훈련이 끝나고, 늦은 밤.
동료들은 개인 훈련을 하거나 취침하러 흩어졌다.
나도 눈을 붙이기 위해 임시 작전 본부의 빈방으로 향했다.
잠깐 몸을 눕히니 졸음이 밀려왔지만 지금 당장 숙면에 취할 수는 없었다.
잠을 자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이번 몬스터를 이길 힌트는 내 일기장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녀석을 구성하고 있는 페이지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겠지.
틈틈이 자각몽을 발동해, 내 일기장을 뒤져볼 필요가 있었다.
곧 잠에 빠져들며 자각몽 속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흰 벽으로 막힌 공간. 백지로 이뤄진 세상이 있다면 이와 같을까.
아직 여기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는 내 일기장이 있었다.
중앙에 놓인 두껍고 묵직한 노트 한 권.
여기에 내가 아는 모든 몬스터들의 공략법과 어떻게 최후의 인류가 되었고, 어떻게 홀로 지구에서 살아남았으며 무엇을 위해 회귀했는지 적혀있다.
나는 일기장 앞에 다가갔다.
그 앞에 털썩 앉아, 천천히 일기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 몬스터도 태풍처럼 수만 장의 일기장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중에 핵심이 되는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그 몬스터의 본질이 되는 페이지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뭐라고 검색해야 하지?’
이 두꺼운 일기장에서 그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검색할 키워드가 필요했다.
태풍 때는 녀석이 명확하게 ‘태풍’이어서, 태풍이라고 검색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
녀석을 정의할 명확한 단어를 알아내야 했다.
‘불, 마그마, 용암…?’
우선 다 넣어 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차례대로 불, 마그마, 용암을 키워드로 검색해 일기장들을 추려냈다.
그중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불’이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세상에서 한 명의 인간은 원하는 대로 빛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핸드폰의 보조 배터리를 언제까지 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우선은 원시적으로 ‘불’을 피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라이터와 가스버너 없이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다. 초기 인류가 ‘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알 것 같다.」
대체로 로빈슨 크루소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 뿐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다.
다음으로 ‘마그마’와 ‘용암’이 나오는 일기를 살폈다.
일기에 적기엔 생소한 단어라 그런지, 검색된 페이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천천히 읽어보던 중, 꽤나 흥미로운 도입부가 적힌 페이지를 발견했다.
「그 많던 몬스터와 던전은 전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애초에 몬스터는 무엇으로부터 탄생한 거지?」
내가 이런 일기를 썼던가?
이게 왜 검색에 걸렸는지는 더 읽어보니 알 수 있었다.
「… 세 번째 가설은 지하다. 지구의 맨틀, 혹은 외핵이나 내핵. 여튼 인간이 뚫지 못한 지저의 세계.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듯 몬스터가 지구의 표피 아래에서 생성되어 던전을 통해 지상으로 방출된다는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지하에서 몬스터가 탄생했다는 가설 때문에 ‘용암’이라는 단어를 썼고, 이게 검색에 걸린 듯했다.
첫 번째 가설은 우주, 두 번째 가설은 바다, 세 번째 가설이 지하라고 쓰여있었다. 문과인 주제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찰했던 모양이다.
읽다 보니 몬스터가 왜 생겨났는지 고뇌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몬스터의 정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미래에도 밝혀내지 못할 주제다.
몬스터는 오직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움직인다.
잔악하지만 인간만 노릴 뿐, 날아다니는 참새가 머리 위에 앉아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몬스터다.
누군가 의도를 갖고 만들어낸 게 틀림없었다.
이에 대해 끝까지 고민했어야 했는데, 언젠가부터 부질없다고 느끼며 포기해버렸다.
고작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 인류를 되살릴 수 있을지, 시스템이 진짜로 내 염원을 들어줄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시 고민해야 한다.
고작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 나는 회귀했고, 시스템은 정말로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이번엔 왜 몬스터가 생겨났는지, 왜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건지 알아내야 한다.
‘일이 무사히 끝나면 천혜 길드장을 찾아가야겠군.’
나 혼자서는 도저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태생 연구가인 천혜 길드장과 이야기해본다면 내가 몰랐던 사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강남 길드라는 장애물도 치워줬으니 이미 헌터 협회 몰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 회귀 전에는 밝혀내지 못했던 진실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천혜 길드장과 얘기라도 해보려면 지금은 그 몬스터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일기장을 읽었다.
불, 마그마, 용암, 화산을 키워드로 검색해 찾아낸 페이지를 모두 읽었지만, 그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페이지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키워드 선정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녀석은 불을 쓰고, 마그마를 다루며, 화산을 폭발시키는 재해 그 자체이다. 또한 상태이상으로 쓰는 ‘변이’는 전염병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위험한 녀석을 한 단어로 정의하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변이라….”
불현듯, 이전에 몬스터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읽던 논문 중 잉어의 유전적 변이와 종 분화를 연구한 논문을 읽었던 게 떠올랐다.
여기서 ‘분화’라는 단어는 화산 방출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왜 여태 이 단어로 검색할 생각을 못 했을까. 이것만큼 그 녀석을 정의할 만한 단어가 없었다.
‘분화’를 키워드로 검색하자, 단 한 장의 페이지가 나타났다.
나는 그 페이지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건 확실히 그 몬스터, ‘분화’의 핵심을 이루는 페이지였다.
***
한편 붉은 게이트 안.
류진은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정신을 잃는 순간,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류진의 몸을 장악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곳은 마그마가 들끓는 솥처럼 변질되어버렸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기도와 폐가 타들어 가는 듯했다. 정신이 몽롱하고 식은땀이 흘러내려 갈증을 느꼈다.
최소한의 생명 활동만 하고 있음에도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류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또렷하게 보기 위해 애썼다.
‘저 몬스터… 정체가 뭐지?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보인다.’
류진의 눈앞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금빛과 적빛을 오고 가는 긴 머리카락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혹적인 얼굴과 찬란한 적빛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나, 분명히 사람의 형상이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비유법으로 여신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그 누구도 몬스터라고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그녀는 문득 시선을 돌려 류진을 바라봤다.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은 눈에 그늘을 만들어, 태양처럼 뜨거운 색의 눈동자를 서늘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 눈빛에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열렬함이 있었다. 마주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이 멍해졌다.
그러나 류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에 지지 않을 만큼 올곧은 눈으로 그녀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류진을 보며 매혹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천천히 입술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흘러나오는 음성은 우아하고 심지어는 따뜻했다.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고운 음색이었다.
『인간은 참 신기하지. 저 인간에게… 너 같은 아들이 있다니.』
그녀가 말하는 ‘저 인간’은 류진의 아버지인 만성 길드장이다. 아버지를 모멸하는 말이 분명했으나, 류진은 그다지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류진이 진작부터 아버지에게 혈연으로서 느껴야 할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목소리가 세이렌의 노래처럼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지 않았던 류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넌 정체가 뭐지? 왜 날 죽이지 않는 거냐.”
『그걸 네가 안다고 해서 이 상황이 달라지진 않아. 차라리 어떻게 빌어야 계속 살려줄지를 묻는 게 어떻겠니.』
“…… 그래, 질문을 바꾸지.”
류진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자신은 죽을 운명이고, 그럼에도 죽지 않은 이유는 써먹을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에 따라 류진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 이 점을 이용해야 한다.
고작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목숨을 건 도박이 되었으나, 어쩌면 질문 하나로 그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류진은 그녀의 약점으로 추정되는 자의 이름을 입에 올려 보기로 했다.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나?”
류진은 그녀가 동요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에겐 어떤 동요도 없었다.
류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꿰뚫고 있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답할 뿐이었다.
『이유영은 네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남기면 나를 만나러 올 거란다. 그래서 넌 살아있는 거야.』
“이유영에 대해 아주 잘 아나 보군.”
류진이 한 번 더 그녀를 도발하듯 말하자, 그녀는 천천히 눈꺼풀을 내려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위협적으로 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저 꼴이 나고 싶은가 보구나.』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그의 아버지, 만성 길드장이 있었다.
주위에는 몬스터들이 드글대고 있었고 몬스터들은 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움직이면 몬스터들의 공격이 쏟아질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고문도 저런 고문이 없었다.
류진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사실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고, 그녀는 웃었다.
『그래… 이유영? 아주 잘 알지. 누구도 나만큼 이유영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넌 왜 그렇게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거지? 그는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이유영은 만성 길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중국인도 아니고, 만성 길드 소속의 헌터도 아니었으며 붉은 두건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류진의 말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 인간들은 이유영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유영, 혜성처럼 나타나 붉은 두건을 도와준 은인.
그는 이 몬스터를 없애고 싶다고 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왜 이유영은 그런 목적을 가진 걸까, 왜 몬스터는 이유영을 원하는 걸까.
류진은 모른다. 류진이 이유영에 대해 아는 건 그가 직접 봐온 며칠의 시간이 전부였다.
다만 원래 사람은 서로에 대해 완벽히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류진은 붉은 두건의 은인인 그가 이곳에서 몬스터에게 당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류진이 몬스터를 게이트에 가둔 채 죽는다면 몬스터는 소멸된다.
아버지와 동생까지 살해하는 꼴이 되겠지만, 그리하여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몬스터는 류진의 그 속셈을 이미 다 꿰고 있는 듯이 류진을 살려두고 있었다.
녀석의 말대로 이유영은 분명 이 게이트로 류진을 구하러, 몬스터를 죽이러 돌아올 것이다.
스스로 함정에 들어오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될 바에야, 류진이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 어느샌가 류진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눈을 희번뜩하게 뜨며 말했다.
『얘, 죽으려고?』
순식간에 공포가 류진의 육체를 장악했다. 죽음을 각오했음에도 본능이 그녀에게서 극한의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는 류진의 양 뺨을 잡고 턱을 으스러트릴 것처럼 힘을 주어서 쥐었다.
“큭…!”
『걱정 말거라, 이유영이 오면 내 친히 목숨을 거둬줄 테니…. 허나 나를 자꾸 자극하면 사람 꼴로 죽지는 못할 거야.』
혀를 깨물 수 없이 턱을 붙잡고 있는 탓에 류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발에 큰 화상을 입어 저항할 수 없었고, 방금 마지막 수단까지 이 여자한테 막히고 말았다.
류진은 공포감을 웃도는 분노를 다스리며, 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바랐다.
‘이유영, 제발 오지 마라…! 이곳에 오면 죽고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