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분화 (8)
이틀 뒤.
‘붉은 게이트’ 공략을 위한 선발대가 출전하는 당일.
나는 왠지 간지러운 귀를 파며 기자회견장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너머에는 중국의 기자들과 허가를 받은 외신기자들이 선발대 지휘관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저녁, 길버트는 아는 기자들에게 이번 공략대의 선발대가 결정되었다는 정보를 흘렸다.
선발대의 지휘관은 여태까지 모습을 감추고 활동하고 있던 ‘붉은 두건의 수장’이라고 얘기했고, 기자들은 신나서 그대로 기사를 내보냈다.
사람들은 SNS와 여타 커뮤니티를 통해 열심히 그 기사를 퍼 날랐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도 급보가 터졌다.
붉은 게이트 공략의 후발대는 에덴의 헌터들로 구성될 거라는 뉴스였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붉은 게이트에 다시 집중되었다.
후발대가 타국의 헌터들이라면 선발대가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된다는 중국 여론과, 선발대는 원래 탐사대와 비슷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몇몇 국가의 여론이 거세게 부딪혔다.
또한 많은 이들이 선발대 지휘관이 된 ‘붉은 두건의 수장’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 사달이 날 때까지 붉은 두건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죽었다고 알려진 만성 길드장의 첫째 아들이 사실은 살아있었고, 그가 붉은 두건들을 다시 집결시켰으며, 사실은 저 붉은 게이트도 그가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저 게이트 안에 있기 때문에 이게 사실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이런 얘기를 사람들이 믿어줄 리가 없었다.
그 탓에 사람들은 붉은 두건의 수장에 대해 온갖 추측을 하던 중이었다.
사실 붉은 두건은 중국 정부가 만성을 무너트리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다, 중국 정부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공작대의 소행이다.
억측과 찌라시가 난무하던 중에 드디어 붉은 두건의 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중국 정부 기관과 한국 헌터 협회의 협의 끝에 공식적인 기자회견장이 열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협회장과 부협회장은 내 공적을 붉은 두건의 수장에게 넘기기로 했다고 말하자, 나를 머저리, 멍청이,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 등으로 부르며 온갖 비난을 쏟아부었다.
나는 그 둘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백 번은 넘게 해야 했다.
어쨌든 녀석들은 중국 정부와 잘 이야기해서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준비해줬다.
이 기자회견에서 나는 붉은 두건의 수장을 연기하면 된다.
그때, 내 옆에 있던 후발대 지휘관인 사빈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너 정말 그러고 들어갈 거냐…?”
“맨얼굴로 들어갈 수는 없잖습니까.”
“아니, 변장이라든가 좀 더 정상적인…, 됐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사빈은 더는 내 얼굴을 보기 부담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내가 지금 ‘도깨비 가면’을 쓰고 머리에는 붉은 두건을 메고 셔츠 깃에 부착한 마이크는 음성 변조 기능이 달려 있어서 아저씨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부담스러워할 일인가?
나는 상처 받은 마음을 추스르며 기자회견장의 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이 기자회견이 끝나면 곧바로 붉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답지 않게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사빈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적당히 하고 나와. 어차피 선발대는 본보기야. …괜히 나서다 죽지 말고.”
방금까지 내 얼굴 보고 뭐라고 하더니, 무심한 말투로 응원인지 위로인지를 건네고 있었다.
그래도 녀석의 한마디에 몸에 긴장이 풀렸다.
나는 문을 밀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후발대가 나설 일은 없게 해드릴 겁니다.”
사빈은 혀를 차며 나를 기자회견장으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져 나오며 기자들은 나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 사이를 걸어 단상 위에 올라갔다. 나를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카메라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지금부터 전쟁의 시작이었다.
***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선발대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붉은 게이트로 향했다.
붉은 게이트 근처는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되어 있었고, 드론과 헬기가 우리를 따라오며 영상을 생중계로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었다.
구지상은 캡모자에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붉은 천을 복면처럼 써서 얼굴을 가렸다. 고주연도 구지상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반면 정하나와 길버트는 당당히 얼굴을 내보이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고주연과 구지상이 조금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가린 탓에, 드론은 집요하게 그 둘을 찍으려고 날아왔다. 그걸 정하나와 길버트가 웃으면서 카메라를 막아주는 상황이었다.
정하나는 웃는 얼굴로 복화술을 하며 말했다.
“누구, 실수로 드론 좀 부숴줄 사람?”
“내가 할게.”
“안 됩니다, 고주연 씨가 하면 누가 봐도 실수가 아니잖습니까.”
고주연이 화살을 만드는 순간 이 사람이 고주연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수로 드론을 부수려면 내가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내가 가능성 스킬을 발동하려던 때, 길버트가 나를 막았다.
“에헤이, 스킬 쓰지 마. 다들 좀만 참아. 다 왔잖아.”
길버트의 말대로 우리는 붉은 게이트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붉은 게이트는 미미하게 주변의 먼지들을 흡수하고 있었는데, 사람 한 명의 체중을 빨아들일 만큼 큰 동력은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이건 류진의 체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이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버거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제 류진을 이 게이트에서 꺼내올 시간이다.
나는 게이트를 넘어서기 전, 공략대원을 향해 돌아섰다.
나를 포함해서 고작 다섯 명의 헌터들. 아마 지금쯤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고 있거나 우리만 보낸 세상을 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빈이 이끄는 후발대에 뒤처지지 않는 강한 부대다.
“여러분은 제가 선택한 최정예 헌터들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 몇십 명의 헌터들을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으니,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 50명의 헌터들을 합친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세간이 뭐라고 하든 우리에겐 실력이 있었다.
“선발대에서 끝내고 옵시다.”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주연과 구지상은 고개를 끄덕였고, 길버트는 미소를 지었다. 정하나는 우렁차게 기합을 지르며, 공략대의 출전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우리는 천천히 붉은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우리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두를 위해, 다섯 명이지만 오백 명은 되는 듯한 당당한 모습으로 게이트를 넘었다.
***
지잉
붉은 게이트는 이전과 다름없이 우리를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시켜줬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공간이었다.
게이트를 넘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바닥 군데군데 고여있는 마그마 웅덩이와 용암이 굳어서 생긴 화성암 무더기가, 이곳이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나는 답답한 가면부터 벗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붉은 두건들이 모여서 훈련을 하거나 회의를 했던 곳은 텅 비어 있었고, 마그마의 영향을 받아 벽과 바닥이 훼손되거나 무너져 있었다.
저 중앙에서 류진은 붉은 두건들에게 맥주를 나눠줬는데.
지금은 매캐한 잿가루만 떠다녔다.
“이거 완전히 던전처럼 변해버렸군….”
길버트는 검게 변한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말대로였다.
이곳은 더 이상 류진의 스킬로 만들어진 ‘아공간’이 아닌, 던전으로 봐야 한다.
나는 천리안을 발동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제외하면 전부 잿빛 먼지로 뒤덮여 있어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구지상의 천이통도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은 귀를 막으며 말했다.
“이상한 노랫소리 같은 게 들려서 제대로 소리를 듣는 게 어려워요. 이유영 씨는요?”
“별 소득이 없습니다. 여기를 제외한 다른 곳은 전부 화산재 같은 것에 덮여 있어요.”
“…에덴에서 만난 몬스터도 그렇고, 몬스터들이 저희 스킬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네요.”
구지상의 말대로였다.
태풍 던전 때도 나는 천리안 스킬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구지상도 천이통을 쓰지 못했고, 구지상이 활약하기 어려운 공중전이 많았다.
게다가 태풍이 만들어낸 갑옷은 근접전에 특화된 미카엘이 싸우기 어렵게 만들었다.
몬스터들은 내 일기장을 손에 넣으며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태풍 때 한 번 실패해봤으니, 분화는 더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공격해올 것이다.
우리도 그에 맞춰 지능적으로 대처해야 했다.
천리안이 생기면서 그다지 쓰지 않았던 스킬인데, 이번 던전에선 이 스킬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탐색 스킬로 예민해진 오감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작은 소리와 냄새까지 분별해냈다.
붉은 두건이 훈련하던 훈련장을 지날 땐 그날 먹고 마신 맥주와 미미한 바다 냄새까지 느껴졌다.
나는 훈련장을 지나면서 나를 따라오던 공략대를 멈춰 세웠다.
“고주연 씨, 공격 준비해주세요.”
탐색 스킬은 몬스터를 발견했을 때 그 위치에 붉은 점이 나타난다.
지금 내 시야에선 류진의 방, 그곳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서 선명한 붉은 점이 떠오르고 있었다.
몬스터가 위장하고 숨어있는 듯한데 하필이면 류진의 방이라는 게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나는 고주연에게 20m가량 떨어져 있는 류진의 방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방을 구성하는 기둥에 꽃 문양이 조각된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탐색 스킬로는 저곳의 기둥이 몬스터라고 판단됩니다. 화살로 맞추실 수 있겠습니까?”
“문제없어. 부수면 되지?”
“일단은 맞추기만 해보죠. 원래 류진 씨의 방이어서 부수면 길버트 씨가 슬퍼할 겁니다.”
내 말에 길버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다만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필 몬스터가 류진의 방에 있다는 게 누가 봐도 고의적이었으니까.
고주연은 잠깐 길버트를 쳐다보다가 곧 칠성활을 소환했다.
이어서 스킬을 발동해 화살을 만들었는데, 이전에 보여준 화살과는 달리 평범했다.
정말로 기둥을 망가트리지 않으려는 듯했다.
고주연은 가벼운 손길로 망설임 없이 화살을 쐈다.
탕!
명쾌하게 뻗어나간 화살은 정확히 기둥의 문양에 꽂혔다.
고주연이라면 저 기둥을 박살 내고도 남았겠지만, 화살은 단순히 벽에 꽂히는 수준에서 그쳤다.
길버트는 그걸 보며 말했다.
“이야, 이 아저씨를 위해서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주다니, 감동이네.”
“…당신은 입을 열지 않는 게 좋겠어.”
길버트의 말에 고주연이 차가운 답을 내놓던 중, 갑자기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진동의 원인은 화살이 박힌 기둥이었다.
기둥을 중심으로 주변의 구조물들이 움직이며 퍼즐처럼 맞춰졌고 그에 따라 진동음이 점점 커졌다.
서로 짜 맞춰지던 구조물들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합체했다.
그 끝에 만들어진 것은 거대한 바위 골렘이었다.
쿠구궁!
골렘이 만들어지며 류진의 방은 붕괴되었고, 그 주변에 있던 회의실과 훈련장까지 무너지고 있었다.
벽과 천장이 붕괴되며 암석이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정하나는 우리의 머리 위로 암흑을 펼쳐 방어하며 말했다.
“야이씨, 이거 그냥 한 번에 해치웠어야 하는 거 아냐?!”
“길버트 씨를 위하는 게 아니었어요!”
“이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셋이서 투덕거리던 때, 골렘의 뒤에 있던 벽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벽 너머에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붉은 두건의 은신처였던 이곳이 우물 안이라고 느껴질 만큼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강을 이루는 마그마와 그 강 건너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황금의 성.
무너져 사라졌어야 할 만성 길드의 본부가 황금빛을 뽐내며 성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때, 화살이 꽂힌 꽃 조각을 머리에 단 바위 골렘은 형체를 완성하며 눈을 떴다.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우리를 바라봤다.
저곳으로 가려면 이 골렘을 해치워야 한다.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저 황금의 성에 분명 보스 몬스터와 류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