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
23화. 걸어서 악몽 속으로 (1)
미리내 병원.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응급실이 갖춰져 있는 대형 병원이다. 가본 적이 없어도 동네 사람이라면 익숙한 병원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며 높다란 병원 건물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1년 경력직 헌터인 내 눈에는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8시라….”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가면 저녁은 챙겨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
병원은 고요했다.
시간이 늦어서 다른 곳은 셔터가 내려가 있었고, 응급실만 방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응급실로 향하는 내 발소리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병원은 원래 떠들면 안 되는 곳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나?
아무래도 이 병원 역시 신라 고등학교처럼 야생의 몬스터한테 점령당한 듯했다.
나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몬스터에 대비하며 응급실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 틈새로 희뿌연 기체가 터져 나왔다.
샤아악
본능적으로 입과 코를 팔로 가렸으나, 눈앞에 알림창이 하나 떠올랐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수면’에 저항합니다. ]‘수면’은 그 자리에서 기절한 듯 잠을 자게 하는 상태 이상이다.
수면을 쓰는 몬스터는 마비나 독을 쓰는 몬스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수면 자체는 직접적으로 생명에 위해를 끼치는 상태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여기는 병원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전부 잠든 상태라면 그것만으로 비상이었다.
나는 희뿌연 공기를 걷어내며 응급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길 바랐지만, 안내 데스크에는 간호사들은 졸도한 듯이 쓰러져 있었고, 침상에는 환자들이 곤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
그리고 그들의 머리에는 두 개의 더듬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달팽이처럼 솟은 두 더듬이가 천천히 꾸물거렸다.
나는 간호사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요, 제 목소리 들립니까?”
그러자 간호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몸에서 흰색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 응급실에 퍼져 있는 흰색 연기와 같은 연기인 것 같았다.
[ 상태 이상, ‘수면’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수면 가스를 내뿜고, 머리에는 두 개의 더듬이가 자라난 걸 보면 이 사람들 역시 몬스터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병원을 점령한 녀석 역시 금돼지처럼 사람을 몬스터로 만드는 끔찍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역시 병원을 점령한 몬스터부터 찾아내야 한다.
나는 가능성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몬스터의 위치를 탐색하는 흑견의 능력이 오감을 예민해지게 만들었다.
위치가 파악되는 순간, 레이저 포인터의 붉은 점처럼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속전속결로 물리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스킬이 발동된 순간.
지이잉!
“윽!”
붉은 점이 다닥다닥 생기기 시작하더니, 금세 시야를 점령했다.
곧 온 세상이 붉은빛으로 보이며 눈알이 터질 것만 같이 아파 왔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고 숨을 쉬는 게 괴로웠다. 오감이 미쳐서 날뛰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 가지가지 하네.”
흘러나오는 피눈물을 닦아내며, 나는 애써 주위를 둘러봤다.
온 시야가 붉은빛이라는 건 이 공간 자체가 몬스터라는 건가?
아니면 병원 자체가 몬스터가 됐다는 뜻인가?
아니, 기억 속을 더듬어도 그런 해괴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없다.
‘대체 뭐 하는 몬스터야? 금돼지처럼 능력이 업그레이드됐나?’
나는 스킬을 해제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응급실에 들어오자마자 터져 나왔던 ‘흰색 연기’를 의심해야 할 때다.
다행인 건 내겐 이런 상황에 쓸 만한 서브 스킬이 있다는 것이다. 십만 장이 기록된 일기장에서 알고 싶은 몬스터를 검색할 수 있는 서브 스킬이.
하필 상태 이상 ‘수면’을 쓰는 몬스터 앞에서 ‘자각몽’이라는 서브 스킬을 써야 한다는 게 꺼려졌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선 이 공간이 몬스터거나, 기체가 몬스터로 보이고.
그럼 광역 스킬을 써야 할 텐데.
그런 짓을 했다간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몬스터의 공략법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단단히 잠그고 앉아 자각몽 스킬을 발동했다.
눈을 감고 서브 스킬을 발동하자, 곧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그렇게 난 꿈의 세계로 자진해서 들어갔다.
***
눈을 뜨면 흰색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전과 다름없는 백지 같은 세상이다.
중앙에는 내 일생이 담긴 거대한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일기장 앞에 선 나는 감상에 빠질 것 없이, 곧바로 ‘수면’ 상태 이상을 거는 몬스터를 검색했다.
‘상태 이상, ‘수면’을 쓰는 몬스터를 분류한다. 그중 올해 한국에서 발생한 던전을 뽑아보자.’
내 생각과 동시에 일기장이 스스로 움직였다.
‘수면’을 거는 몬스터의 공략법들이 일기장 위로 솟아올랐고, 올해 생긴 던전이 아니거나 한국에서 생긴 던전이 아니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꿈달팽이에 관한 창이 빛을 발하며 영상을 재생시켰다.
내가 미친놈처럼 일기를 써 내려가던 장면이 보였다.
몬스터의 정체가 꿈달팽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병원에 들어찬 흰색 기체의 정체도 추측할 수 있었다.
그 기체는 아주 작은 입자 크기로 분열된 꿈달팽이 그 자체일 것이다.
꿈달팽이는 물리적 타격에 분열하는 놈이다. 한 대 때리면 두 마리가 된다. 또 때리면 더 늘어나겠지.
그러니 아주 작은 입자 크기까지 분열해서 기체 형태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놈을 해치우려면 분열할 틈을 주지 않고 죽여야만 한다. 쉬운 방법으로는 불로 태우는 것도 있지만, 병원에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차라리 꿈속에서 상대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녀석이 거는 상태 이상, ‘수면’에 걸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철퍽!
무언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느낌에 순간 몸을 피했다.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보니, 불쾌감을 있는 대로 자극하는 모습의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팔뚝만 한 크기에 솟아 나온 더듬이. 축축해 보이는 미끄러운 몸체.
한마디로, 거대한 민달팽이.
내 자각몽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스스로 와줬다면 환영이다.
나는 내 앞까지 기어 온 몬스터를 발로 밟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는 순간부터 하늘에서 수많은 민달팽이들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후두둑!
철퍽!
철퍽!
머리 위로 떨어지는 민달팽이를 쳐냈지만, 다음 순간 백 마리는 넘는 달팽이가 내 위로 떨어졌다.
마치 내 자각몽 속, 이 백지 같은 공간 자체를 무너트리려는 것 같았다.
스킬을 쓸까? 아니, 분신만 죽여선 의미가 없다. 본체를 죽여야 한다.
본체한테 가려면 이 녀석이 왜 자각몽에 침입해서 이 지랄을 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요지는 당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숨을 참았다.
처덕처덕 쌓여가는 민달팽이들이 어느새 내 어깨까지 들이찼고, 금방 내 머리까지 차오를 것 같았다.
차갑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미끈한 덩어리들이 나를 옥죄어 오며 마구 꿈틀댔다.
‘습도 죽여주는 게 꼭 대왕프로그의 뱃속에서 3일을 버티던 때 같네.‘
다행인 건 내가 이 상황이 꿈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꿈을 꾸게 할지는 몰라도 별로 상관없다.
최후의 인류인 나는, 이미 온갖 지랄맞은 상황으로 단련되어 있으니까.
***
눈을 떴을 땐, 조금 전과는 다른 검은 천장이 나를 반겼다.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아직도 팔뚝만 한 민달팽이가 붙어서 꿈틀대고 있었다.
하나씩 잡아서 바닥에 집어 던지자, 민달팽이 잡몹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이 어딘지 파악했다.
동굴이었는지, 길게 뻗은 굴의 끝에는 출구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뭔가 찝찝한데.’
저기로 나가라고 대놓고 유도하는 느낌이라 반발심이 들었다.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땅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거대한 물줄기가 굴의 천장을 부쉈다.
콰과각!
좋아, 스킬이 제대로 발동된다는 것도 확인했고.
내가 박살 낸 천장에선 잔해들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떨어지는 잔해를 디딤돌 삼아 밟아 오르며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올라갔다.
탁! 탁!
구멍 위로 머리를 내밀며 양옆을 붙잡고 가뿐하게 구멍을 빠져나왔다.
넓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이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굴 바깥에 올라서자, 눈앞에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절망이 내려앉은 것 같은 붉은 하늘.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하늘과 땅, 바다를 가릴 것 없이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바다가 분노한 것처럼 요동치며 세상을 뒤엎었고, 반대편에선 화산이 붉고 뜨거운 액체를 흘려댔다.
하늘에서는 벼락이 쳤으며, 여기저기서 태풍이 몰아쳤다.
그러니까 여긴, 인류 멸망을 앞둔 세상이다.
“하하…! 이렇게 나오네?”
기가 막힌 상황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 자각몽에까지 간섭한 걸 보면 꿈달팽이도 최소 B급 능력은 갖췄을 것이다. 지능 역시 올랐을 테고.
아마 날 자극할 생각으로 이런 기억을 보여주는 모양인데.
“자극해서 뭐 하려고?”
녀석은 오히려 날 자극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이 녀석의 꿈에서 벗어나려면 숨어있는 분신을 찾아야만 한다. 녀석은 분명 내가 건드리지 못할 만한 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서 탐색을 시작하려던 순간.
슈우우욱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시리게 빛나는 화살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뿜어내던 익룡은 그 화살에 심장이 꿰뚫려 떨어졌다.
쿵!
나는 재가 되어 사라지는 익룡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꿈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생생한 입체감이다.
이 화살의 주인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만난 사람이기도 하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그곳에는 내가 예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유영!”
익룡이 떨어지던 방향으로 도약해온 고주연의 앞에는 또 익숙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고주연이 부른 사람. 이유영. 정확히는 과거의 이유영.
멸망해 가는 세상, 고주연의 화살에 죽은 익룡.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가는 고주연.
아마 다음 대사는 이럴 것이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
왜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냐면.
이 기억은 고주연이 죽는 순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