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분화 (12)
“어이, 지휘관.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어느새 1층으로 내려온 길버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떨어진 샛별’을 소환하며 말했다.
“주작의 분신은 다 해치우셨습니까?”
“저기 보여? 깔끔하잖아.”
길버트는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가리켰다.
녀석의 말대로 그곳에는 티끌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변신도 안 하고 전부 해치우신 겁니까?”
“너희 그 ‘변신’이라는 말 좀 안 할 수 없냐…? 스킬이야 스킬.”
“예, 지금부턴 스킬로 변신하셔야 합니다.”
길버트는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고 투덜거리다가 스킬을 발동했다.
길버트의 두 손에서 길게 손톱이 뻗어 나오며 변신이 시작되었다.
손발을 시작으로 덩치가 커지며, 잿빛의 털이 피부를 덮었다. 턱관절이 튀어나오며 갯과 동물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솟았고, 두개골이 변형됨에 따라 측면에 달려있던 두 귀는 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변신이 끝나며 길버트는 커다란 늑대인간으로 변했다.
반인반수, 늑대이면서 인간처럼 걸어 다니는 ‘늑대인간’.
그는 금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감상 끝났으면 가지?”
낮고 그르렁대는 짐승의 목소리에 길버트의 음성이 섞여 있었다.
합동 훈련을 하며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구경할 수밖에 없는 변신이었다.
“선공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두 날개를 잃고도 뻗대고 있는 주작을 바라봤다.
주작은 여전히 정하나의 도발에 넘어가서 이쪽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지금이 완전히 잿가루로 만들어버릴 기회였다.
주작 공략의 마지막 단계. 길버트와 내가 합공을 펼쳐 주작을 공략할 것이다.
주작의 약점은 머리와 가슴이다. 두 날개를 뜯어냈으니, 공략 난이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길버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주작에게 향했다.
나는 떨어진 샛별에 스킬을 주입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떨어진 샛별’이 마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파지직!
떨어진 샛별이 낙뢰를 흡수하면서 붉은 스파크를 일으켰다.
정하나에게 공격을 쏟아붓던 주작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듯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흩어진 상태였고, 길버트는 주작이 고개를 튼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콰드득!
늑대 인간의 날카로운 이빨이 주작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주작은 날뛰며 길버트를 떨어트리려 했다. 그러나 주작이 길버트를 떨어트리는 것보다 길버트가 녀석의 목을 절단내는 게 더 빠를 듯했다.
길버트에게 물린 순간 소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끼에엑!』
주작이 처절하게 포효하며 사방으로 화염을 분사했다.
하지만 정하나의 암흑이 빠르게 길버트를 보호했고, 나는 곧바로 떨어진 샛별을 녀석의 가슴 정중앙에 꽂아 넣었다.
푸욱
목을 절단내고 가슴을 찌르며, 두 급소를 모두 파괴했다.
주작은 재가 되어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으나, 죽어가면서도 발악할 생각인지 온몸에서 화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나는 길버트를 바깥으로 쳐내며 대신 그 불길을 받았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녀석의 최후의 발악은 지독하게 뜨거웠다.
S급 방어력을 지닌 내 몸의 절반이 새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도 녀석이 재가 되어 사라지며 불길도 사그라들었고, 나 역시 생명의 의지가 발동되며 새 살이 돋아났다.
무감각으로 인해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길버트와 정하나가 내 꼴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나는 떨어진 샛별에 묻은 잿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들 공략 수고하셨습니다.”
“넌 인마… 됐다. 잠시 쉬어가자고. 다들 고생했어.”
“으어… 지쳐서 잔소리할 힘도 없네.”
정하나는 바닥에 털썩 누웠다. 길버트는 그 옆에 앉았고, 나도 회복에 전념할 겸 자리에 앉으며 위층을 향해 손짓했다.
언제든 공격 지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구지상과 고주연은 그제서야 1층으로 내려왔다.
나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위층으로 올라가죠.”
다들 힘들긴 했는지 내 말을 듣자마자 몸을 늘어트렸다.
주작은 강한 상대였다. 최소 공략대 100명은 투입되어야 공략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녀석의 힘보다 우리의 실력이 우월했다.
이 승리는 우리 다섯 명이서 충분히 보스 몬스터까지 공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줄 것이다.
나는 공략대가 늘어져 있는 동안 부상 정도를 확인했다.
심각한 부상은 없었지만, 길버트와 고주연은 피부가 붉어질 정도의 1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제일 공격을 많이 받은 정하나가 이 중에서 제일 멀끔했고, 방어력이 S급인 구지상 역시 작은 부상도 없었다.
나는 고주연과 길버트에게 차례대로 힐을 넣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에게 살아가는 것의 힘이 스며듭니다. ] [ 생명의 의지가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녹색의 빛이 피부를 감싸며 손상 부위가 자생했다.
화상이 심하지 않아서 치유되는 속도가 빨랐다.
그때 엎어져 있던 정하나가 지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여기… 에어컨 없어? 만성 길드 본부라며.”
정하나의 말대로 이곳이 만성 길드의 본부 건물이라면 어디에든 냉각기가 있을 게 분명하다. 낙뢰를 쓰면 잠시나마 기기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더우면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만 불리해진다.
더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나는 천리안을 발동해 위층을 탐색했다.
그러나 여전히 화산재처럼 퍼진 잿빛 연기에 시야가 가려져 탐색이 어려웠다.
별 소득 없이 스킬을 종료하자 길버트가 말했다.
“여전히 천리안으로는 안 보이나?”
“예. 정체불명의 연기에 가려져 있습니다.”
“음, 연기 말이지. 연기….”
길버트는 연기라는 단어를 몇 번 더 중얼거리며 위층을 올려다봤다.
계단 위를 바라보던 녀석은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신경 쓰이는 게 두 가지 정도 있거든. 첫 번째는… 이 건물이 정말 만성 길드의 본부가 맞느냐는 거야.”
그 말에 늘어져 있던 공략대원들이 길버트를 주목했고, 길버트는 여전히 위층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몬스터가 꽤 날뛰었지? 아무리 정하나 양이 대단하다고 해도 말야, 건물이 타지 않는 건 이상하지 않나? 게다가 구지상이랑 고주연 양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 만성의 본부가 무너진 걸 똑똑히 봤어. 이유영은 그 밑에 깔리기도 했었고.”
“그럼… 여긴 뭔데?”
“몬스터가 만든 곳이겠지. 쉽게 말해서 ‘던전’.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즉 에어컨이나 냉장고가 있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절망적인 소식에 정하나는 다시 엎어졌다.
나는 정하나의 어깨를 툭툭 쳐서 대충 위로하며 길버트에게 물었다.
“두 번째는 뭡니까?”
“음. 탑에 갇힌 공주가 늘 그렇듯이, 대장은 꼭대기에 있다고 쳐보자고. 그럼 류차오와 만성 길드장은 어디에 있지? 이유영, 네가 천리안으로 본 연기는 정말 몬스터의 수작인가?”
류차오는 연기에 관한 스킬을 갖고 있고, 내 시야를 가로막았던 것 역시 자욱한 연기다.
그렇다면 그 화산재 같은 연기의 정체는 류차오의 스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리한 지적이었다.
길버트는 위층을 바라보며 마저 얘기했다.
“류차오가 만성 길드장처럼 몬스터가 되었든 아니든, 우리의 적일 가능성이 높아.”
“왜? 우리가 붙잡으러 온 거라서?”
“그래. 여차하면 몬스터랑 손잡고도 남을 놈이거든.”
뭐, 녀석이 적이 될 가능성도 당연히 생각해봤다.
그 녀석 성격상 얌전히 우리에게 붙잡혀 주진 않을 것이다.
이 게이트에서 나가면 기다리는 건 법의 처벌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중국 정부, 에덴, 한국 헌터 협회, 뭐 다른 어떤 나라든 간에. 만성 길드의 책임자가 던전에서 죽어버리는 시나리오는 바라지 않아. 이 사태를 책임질 시나리오의 악역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너희의 목숨이다.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죽여.”
길버트의 말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류차오처럼 교활한 녀석이라면, 우리가 녀석을 죽이지 않고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헌터 류차오에겐 이중 누구도 패배하지 않겠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녀석이 변이에 걸렸거나, 혹은 몬스터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하기 까다로워진다.
그래도 여기선 공략대 지휘관으로서 대원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나는 길버트를 포함한 모두에게 말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안 죽습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 걱정 마세요.”
정하나가 똥폼 잡는다며 웃었지만 정하나를 포함해서 내가 진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다른 녀석들도 나와 같은 각오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 공략대 전원의 목숨을 자기 목숨처럼 짊어질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이 닥치든 우리는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붉은 게이트 공략대가 대화하는 소리는 연기를 타고 쉽게 3층까지 도달했다.
3층에는 그 대화의 주인공인 류차오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류차오는 한없이 여유로웠다.
자칫하면 몬스터에게 살해당하고, 삐끗하면 형한테 살해당하고, 실수하면 저 공략대에게 살해당할 상황.
하지만 그는 상황을 직시할수록 실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살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던가?
형을 만성의 배신자로 만들었을 때?
그땐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 다들 류차오가 형을 미워해서 그런 짓을 벌였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더 재밌어 보이는 쪽을 선택한 것뿐이다.
류차오는 그런 인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밖에 몰랐고, 재밌을 것 같은 일만 해왔다. 운 좋게 부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류차오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입 바른 인간은 그를 ‘반사회성 인격장애’라고 칭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말을 꺼낸 사람은 모두 류차오의 손에 죽었다. 그 누구도 류차오에게 ‘비정상’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류차오는 지금 극한의 스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다만 몬스터 앞에서 복종해버렸으니, 굳이 따지자면 몬스터의 편일지도 모른다.
“늑대 아저씨랑 이유영만큼은 꼭 죽여야겠지?”
몬스터가 이유영은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지만, 만약 죽여서 데려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며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남은 결말이 죽음뿐이라면 가장 화려하게 죽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결말만 남은 인간과, 죽음을 모르는 인간.
둘 중 누가 강할지 시험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류차오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