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분화 (13)
휴식을 마친 공략대는 위층으로 향했다.
내 천리안과 구지상의 천이통이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직접 층을 돌아다니며 내부를 탐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류진이 다른 층에 있을 수도 있고, 귀찮지만 만성 길드장과 류차오도 찾아야 한다.
번거롭더라도 확실하게 탐사하며 나아가야 했다.
우리는 2층의 방을 하나씩 빠르게 확인해 나갔다.
다섯 명이 흩어져 효율적으로 움직이니 생각보다 탐사 속도가 빨랐다.
확인을 마치고 층계에 모인 공략대는 각자 본 것들을 공유했다.
“본 사람 없음! 뭐 제대로 된 가구 같은 것도 없이 방은 전부 텅텅 비어있었고.”
“저도 아무도 못 찾았어요.”
“나도 본 거 없어.”
“음, 그럼 2층에는 아무도 없었나 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장 3층으로 향했다.
2층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이 위층에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계단 위로 흰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공기가 무거웠다.
“류차오… 3층에 있는 것 같네요.”
연기 사이에 매캐한 담배 향이 섞여 있었다.
지독한 골초였던 류차오한테서 나던 담배 향과 같은 향이었다.
길버트는 손으로 연기를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웬만하면 연기는 마시지 마. 류차오한테 약점이라든가, 너희가 가장 들키기 싫은 생각을 들키게 될 거야.”
“뭐야 그게? 너무 무서운데?”
“그렇지? 정하나 양이 이 연기를 다 마셔주면 고맙겠어.”
정하나는 자기가 무슨 공기 청정기냐며 투덜대면서도, 스킬 ‘암흑’을 발동해 방어막을 펼쳐 자욱한 연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암흑이 연기를 흡수하며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나아갈 수 있었다.
공략대는 정하나를 선두로 나아갔다.
정하나의 뒤로 나랑 길버트, 그 뒤로 구지상과 고주연이 따랐다.
연기가 자욱해 흩어져서 탐색하는 데 무리가 있었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방문을 하나씩 열어 탐사했다.
“뭔 놈의 방이 죄다 텅텅 비어있어? 여기 원래 이래?”
“그럴 리가. 온갖 금은보화가 넘치는 곳이야. 하지만 몬스터가 만든 던전이라면… 굳이 채워놓을 이유도 없겠지.”
길버트의 말대로였다.
적당히 본부와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해놓고 우리에게 혼란을 준 다음, 자연스럽게 위층으로 유도하는 구조의 던전이다.
위층으로 향하는 길밖에 없어서 스스로 함정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거기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까지 몬스터의 계략이라면, ‘분화’는 ‘태풍’보다 훨씬 똑똑한 녀석일 것이다.
그런데 정하나가 다음 방문을 열어보던 때.
귓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유영 씨는 정체가 뭘까? 언제까지 직접 말해주길 기다려야 하지? 만약 계속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이유영 씨를 믿을 수 있을까….』
구지상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구지상을 쳐다봤다. 구지상은 방 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뭐지?
『뭔가 이상하단 말야. 왜 쟤만 메인 스킬이 두 개냐고. 거기다 서브 스킬도 무진장 좋은 거 갖고 있고. 숨기는 게 한두 개가 아닌 것 같고…. 수상해. 신뢰가 안 가.』
이번엔 정하나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나는 앞에 있던 정하나를 바라봤다. 정하나는 전방에서 암흑 스킬을 펼치며 연기를 흡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생명의 의지가 저항한다는 창이 뜨지 않는 걸 보면, 이건 상태 이상이 아니다.
그럼 이 환청의 정체는 내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거나,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 연기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 문득 길버트와 눈이 마주쳤다.
길버트도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직감적으로 녀석이 나랑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길버트도 공략대의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나는 즉시 공략대에게 말했다.
“여러분, 현재 류차오가 스킬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어떤 소리가 들리든 전부 무시하세요.”
“뭐? 스킬?”
“어떤 스킬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간질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때, 연기가 확산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를 메웠다.
정하나가 곧바로 암흑을 펼쳐 대응했지만, 연기가 확산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와 동시에 연기 속에서 류차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버트 씨랑 이유영 씨, 제가 동료분들의 속마음을 들려드렸는데 잘 들으셨어요?』
녀석의 말에 현혹될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었다. 그건 길버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스킬 속에 목소리를 섞어서 쓴다면 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하다.
나는 침착하게 녀석을 찾아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한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 안타까울 만큼 동료들한테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저만 듣기엔 아까워서 공유해드렸어요, 하하.』
공략대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 연기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 그림자를 찾았다. 그러자 복도 끝에서 무언가 사라지는 게 언뜻 보였다.
신장이나 연기가 퍼져 나오는 방향을 보면, 저건 류차오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내가 발을 움직이자, 또다시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촉이 좋구나? 이유영 씨만 저를 발견하셨어요! 정말 대단하네? 구지상 씨 생각대로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거 아니에요?』
“다들 저 녀석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공략대는 류차오의 말을 들어버린 것 같았다.
구지상은 입을 틀어막고 파리해진 안색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래선 류차오의 뜻대로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이유영 씨! 제 말을 들어주신다면, 당신의 비밀은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지금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잖아요, 그쵸?』
녀석의 한마디 한마디가 공략대에게 혼란을 안기고 있었다.
갑자기 내 비밀을 들먹이는 거나, 구지상의 심리를 뒤흔드는 거나. 녀석이 타인의 생각을 읽어서 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럴 리 없다.
그저 교묘한 말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을 뿐, 녀석의 말은 전부 속이 빈껍데기 같은 말이었다.
류차오는 복도 코너에서 사라지며 목소리를 냈다.
『정정당당하게 이유영 씨와 저, 둘이서 승부를 봐요. 제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머리 긴 여자분은 지금 죽일 거예요.』
“….”
『그 여자만 이유영 씨를 의심하지 않던데, 각별한 사이라 그런 거겠죠?』
나는 걸음을 옮겼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저 녀석을 입 다물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녀석의 말에 따르는 것이다.
지금은 공략대가 분열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먼저 류차오를 입 다물게 만들어야 했다.
내가 혼자서 움직인다고 해도 공략대는 나를 찾아올 것이다.
고작 몇 마디 말에 흔들릴 만큼 우리 공략대는 나약하지 않다.
지금은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
류차오는 내게 잡히지 않을 속도로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녀석을 따라가며 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신발 밑창에 뜨거운 열을 집중시켜 걷는 곳마다 탄 흔적을 남겼다.
이렇게 신발 자국을 남기면 동료들이 날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올라가던 중,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소리에 집중해보면 2~3층 정도 아래다. 냄새를 맡는 소리와 걷는 특징으로 보아, 나를 따라온 녀석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녀석과 합류한다면 상황은 우리가 유리해진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멈춰 서며 류차오를 향해 말했다.
“술래잡기하냐? 정정당당하게 붙자며. 슬슬 멈추지?”
합류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꽤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나보다 반 층가량 앞서고 있던 류차오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료랑 합류하려고 멈췄나요?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귀신같이 맞추는 탓에 할 말을 잃었다.
이미 들켰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뻔뻔하게 대답했다.
“너한테 원한 있는 사람이 따라오겠다는데 내가 막을 수는 없잖아?”
순간, 나를 좇던 녀석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게 느껴졌다.
목소리가 들렸으니 확신을 갖고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이 발걸음 소리는 그 녀석 말고는 낼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네 발로 걸으며 나를 따라오진 않을 테니까.
나는 녀석이 내 공격을 이어줄 거라 믿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콰광!
벼락이 류차오에게 무작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만 맞아도 죽기 직전까지 아플 테니 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류차오는 곧장 연기 속에 모습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녀석이 사라지기 직전, 나를 쫓아온 늑대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를 넘어 녀석을 덮쳤다.
콰드득!
늑대인간이 된 길버트는 어느 때보다 더 무자비하게 류차오를 물어뜯었다. 자욱한 연기에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류차오는 길버트에게 완전히 사냥당하고 있었다.
어깨가 통째로 물어뜯기며 류차오의 팔 한 짝이 소멸되어 갔다. 이빨에 씹어 먹힌 부위에 남은 것은 먼지밖에 없었다.
류차오가 몸을 연기와 동화시킨다고 해도, 소멸 스킬을 쓰는 길버트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류차오는 길버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내 주위에 자욱하게 퍼져있던 연기가 점차 류차오에게 모이고 있었다.
류차오는 이상할 만큼 반항하지 않았고, 그저 사냥감처럼 물어뜯길 뿐이었다.
종이로 만든 인형처럼 늑대의 이빨에 갈가리 찢겨 다리 한쪽까지 잃었는데도, 신음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급히 길버트를 향해 소리쳤다.
“길버트 씨, 류차오의 낌새가 이상합니다!”
길버트는 행동을 멈추고 즉시 류차오와 거리를 벌렸다.
녀석은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연기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류차오를 쳐다봤다.
팔다리가 한 쪽씩 소멸되어버린 류차오는 분명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역시… 촉이 좋구나?』
마치 몬스터의 음성처럼 껄끄러운 목소리가 류차오에게서 흘러나왔다.
주위의 연기를 흡수하며 공중에 떠오른 녀석은 몸을 희뿌연 연기로 감싸며, 누에처럼 고치를 만들어갔다.
길버트는 녀석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마지막에 류차오의 피부가 변질됐어. 이것도 몬스터 ‘변이’인가?”
“스스로 변이를 원한다면 자아를 잃지 않고도 몬스터화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류차오도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분화가 녀석에게 상태 이상을 건 게 아니라 저 녀석 스스로 ‘변이’를 받아들였다면, 류차오는 몬스터의 능력을 받아 강해졌을 것이다.
신입 헌터 교육에서 김제니 헌터가 몬스터 이시미의 능력을 받고 한층 강해졌듯이.
저 고치 안에서 깨어나는 건 더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어쩌면 몬스터 보다 더 악랄한 녀석이 깨어날 것이다.
‘이럴 때 화신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애꿎은 화신을 탓하며 떨어진 샛별을 소환했다.
류차오가 고치를 깨고 부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