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분화 (16)
내가 눈을 뜬 곳은 서브 스킬 ‘자각몽’을 발동할 때 나타나는 공간이었다.
백지로 만들어진 것처럼 온통 흰 벽으로 구성된 세상. 거대한 일기장만이 놓인 나의 정신세계.
그런데 이곳에 류차오가 침입해 있었다.
녀석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순수한 얼굴로 웃었다.
“흐음, 여기가 이유영 씨의 정신세계구나. 저건 뭐예요, 책?”
녀석은 내 일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녀석에게 대꾸하지 않으며 우선 상황을 파악했다.
어째서 녀석이 내 정신세계에 들어온 걸까.
김신욱의 서브 스킬 ‘합주’나, 미카엘의 서브 스킬 ‘정신의 방’처럼, 내 ‘자각몽’ 스킬 역시 정신세계의 공간이다.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곳.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지 과학으로 밝혀낼 수 없는, 시스템의 영역.
정신세계는 쉽게 침입할 수 없는 곳이고, 그렇기에 특별한 공간이다.
가끔 나쟈처럼 타인의 정신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헌터도 있지만, 그건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다.
타인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건 그가 초대하지 않는 이상 대체로 불가능하다.
뭐, 7대죄 중 나태였던 ‘꿈달팽이’도 내 자각몽 속에 침입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녀석이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가 정신세계로 들어오는 방법이 꿈을 꾸는 거라서, ‘꿈’을 조종하는 녀석이 이용한 거니까.
그만큼 정신세계는 쉽게 간섭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런데 왜 류차오가 여기에 있는 걸까.
저 녀석에게도 나쟈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나?
“하하, 이유영 씨의 생각이 훤히 보이네요. ‘왜 류차오가 여기에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죠?”
“잘 아네. 지금 대답하면 한 대 덜 때려줄게.”
“희한한 협박이네요? 하지만 대답해드릴게요.”
류차오는 내게 처맞는 게 무서웠는지 의외로 순순히 대답했다.
“이유영 씨가 손해 보는 일을 한 건 아니에요. 이유영 씨한테 제 정신에너지를 나눠드린 거니까요.”
“뭐?”
“제가 변이에 당해서 몬스터 힘이 같이 들어가 버렸지만, 뭐… 어쨌든 에너지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녀석은 악마처럼 웃었다.
요컨대 나한테 몬스터의 힘을 집어넣기 위해 본인의 힘까지 나눠줬다는 소리다.
그래서 내 몸이 ‘변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정신에너지는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강화하는 힘이니까.
“이유영 씨가 변이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요. 아마 절 죽여야 탈출할 수 있을걸요?”
“너 어디 아프냐? 왜 이렇게 죽고 싶어 해?”
“그럴 리가요. 전 지금부터 이유영 씨를 소멸시키고 당신의 몸을 차지해버릴 생각인데.”
옛말에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새끼는 바로 그 똥이었다.
어떻게 내 정신세계에서 나를 죽이고 몸을 차지한다는 건지는 몰라도, 내게 기어코 덤비겠다면 상대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손목을 털며 말했다.
“류차오, 넌 왜 이렇게 세상을 만만하게 보냐?”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로선 도저히 이 녀석을 이해할 수 없다.
구지상과 정하나랑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은데 무엇이 이 녀석을 이렇게까지 망가트린 건지 알 수 없었다.
“할 말 없으면 들어와.”
나는 녀석에게 손짓했고, 녀석은 회색 가루를 뿜어내며 그 속에서 단단한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장 내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검 끝에는 정제되지 않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곡선을 그리는 검날을 피하며 녀석의 명치를 발로 차서 날렸다. 녀석의 신체는 연기로 변하며 내 공격을 무효화했고, 나는 굴하지 않고 몸을 뒤틀어 녀석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허리에 힘을 실은 타격을 맞으며 녀석은 바닥에 처박혔다.
“크헉…!”
이전 싸움에서 어렴풋이 느낀 건데, 류차오는 연속으로 신체를 연기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낙뢰처럼 불규칙적인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가고, 길버트와의 연계가 반드시 먹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나는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류차오를 향해 다시 한번 손짓했다.
“다시 들어와.”
“하… 뭐 하자는 거지?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시끄럽고 빨리 덤벼.”
“이 새끼가 진짜…!”
류차오는 분노하며 나를 향해 검을 던졌다.
검은 내 머리를 꿰뚫을 것처럼 전진하다가 돌연 방향을 꺾어 내 목을 노렸다.
직선으로 날아오던 검의 손잡이 끝에 연기가 붙어 있었고, 녀석은 화나서 검을 던진 척 교묘하게 검의 궤적을 뒤틀었다.
방심하면 당하기 쉬운 공격이지만, 녀석이 조종하는 연기의 흐름을 읽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녀석의 검을 붙잡으며 내 뒤쪽을 향해 검날을 휘둘렀다.
어느샌가 내 뒤를 찾아와 급습하려던 류차오는 그 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끄윽….”
류차오는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내게 공격을 읽힌 게 분한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녀석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나는 녀석의 검을 두 동강 내며 말했다.
“일어나. 다시 들어와.”
“이 XX… 으윽….”
“날 죽이고 몸을 차지하려면 네가 날 이겨야지.”
내가 또다시 손짓하자, 녀석은 헛웃음을 짓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감싸 쥐며 류차오는 말했다.
“하… 나보다 더한 또라이는 처음 보네.”
“내가 왜 또라이야? 정정당당이 뭔지 알려주는 거잖아, 네 형의 친구로서.”
“이 개새끼가….”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류차오는 연기를 방출하며 그 속에 모습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내겐 소용없었다. 녀석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스스슷
나는 천천히 흘러가는 연기를 조용히 눈으로 따라가다가, 정확히 한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류차오의 본체가 드러났고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나는 그대로 녀석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쿵!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는 녀석의 뺨을 철썩 때렸다.
녀석은 자기 뺨을 감싸 쥐며 다시 엎어졌다.
나는 녀석의 반대쪽 뺨도 치며 생명의 의지를 발동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에게 살아가는 것의 힘이 스며듭니다. ] [ 생명의 의지가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아까 내가 휘두른 검에 맞아서 이대로라면 과다출혈로 쇼코가 올 위험이 있었다.
류차오는 피가 흘러내리는 복부를 감싸 쥐다가,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노려봤다.
치유해줬다고 감사해하지는 못할망정 녀석은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이 XX놈이! 날 진짜 상등신으로 만드네?!”
“시끄럽고. 다시 들어와.”
“개 같은 새끼 죽여버리겠어!”
류차오는 발악하며 나를 향해 다량의 잿빛 연기를 방출했다. 퍼져나온 연기는 나를 휘어 감싸기 시작했다.
점점 숨 쉬는 게 힘들어지는 걸 보니, 날 질식시키려는 작전인 듯했다.
나는 숨을 참으며 조용히 연기의 흐름을 관찰했다.
연기 속에서 류차오는 보이지 않았고, 잿빛 연기는 올가미처럼 내 목을 죄여왔다.
나는 조용히 주먹을 쥐며 날 향해 다가오는 기척에 집중했다.
목이 졸렸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이 기척은 내 코앞까지 다가왔고, 나는 그 기척을 향해 꿀밤을 먹였다.
쿵…!
류차오가 내게 정신에너지를 넘긴 탓에, 나는 녀석이 스킬을 쓸 때마다 본체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자식은 그걸 모르고 계속해서 날 기습하는 작전을 짜고 있던 것이다.
녀석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한 것처럼 누워 있었다.
나는 녀석을 발끝으로 차며 손으로 연기를 없애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내 신호를 모르는 척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녀석에게 정의의 싸대기를 날렸다.
“커흑….”
하지만 녀석은 꿋꿋하게 모른 척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녀석의 귀 한쪽을 잡고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건 꽤 아팠는지, 녀석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아악! 알았다고, 미안해, 미안하다고!”
“연기 없애.”
“없앴어, 없앴어…!”
녀석은 다행히 귀가 뜯어지기 전에 잿빛 연기를 없앴다.
미세먼지처럼 불쾌한 잿빛 가루가 전부 사라졌을 때, 나는 녀석의 귀를 놔줬다.
류차오는 더는 내게 덤빌 힘도 없는지 주저앉아 있다가 돌연 훌쩍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나 말해. 네가 끌고 들어왔잖아.”
“나도 모르는데….”
나는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류차오는 잔뜩 쫄아서 다급하게 대답했다.
“지, 진짜 몰라. 이유영을 정신세계로 끌고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그랬단 말야….”
“뭔….”
정황상 녀석에게 변이의 힘을 준 몬스터가 시켰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이 자각몽 속 공간에 끌려들어 온 순간부터, 이미 몬스터가 파놓은 함정에 걸렸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 당장 여기서 꺼져.”
“내가 왜….”
“꺼지라고.”
“흐윽….”
류차오는 훌쩍이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녀석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걸 보면, 확실히 나간 듯했다.
류차오가 인질이라도 되면 곤란해진다. 내게 그렇게 처맞았으니 밖에 나가서 또 나대진 않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내 육체는 여전히 변이가 진행되며 불타는 괴물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심장에는 불씨를 붙인 듯한 불쾌감이 남아있었다.
이건 류차오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몬스터, ‘분화’를 죽여야 한다.
류차오에게 나를 정신세계로 끌고 오라고 시켰다면, 녀석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가슴 부근을 움켜쥐며 말했다.
“나와.”
그 말에 심장 박동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이곳에서 녀석이 숨을 수 있는 장소는 하나다.
내 정신세계는 흰 종이 같은 벽으로 막혔고 일기장 한 권만 놓여 있다. 숨어있는 게 불가능한 곳이다.
그렇다면 녀석이 숨을 수 있는 곳은 ‘나’밖에 없다.
“나와…!”
내 몸속, 아마도 이전 전투에서 녀석이 내 심장에 심어놨던 그 ‘불티’.
녀석은 그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내가 가슴을 뜯어낼 듯이 움켜쥐자 심장이 거세게 펌프질했다. 박혀 있던 대못이 뽑혀 나가는 것처럼 무언가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르륵!
변이된 신체가 정신세계 속 내 모습에도 영향을 끼쳐,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내게서 타오른 불꽃은 흰 바닥과 벽으로 퍼지며 정신세계까지 태워버렸다.
모든 것을 태워 가는 불꽃 속에서 돌연 여성의 인영이 나타났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떨어진 샛별을 소환했다.
분명 저 녀석이 ‘분화’일 것이다.
내가 떨리는 손으로 검을 치켜세우자, 그 붉은 인영이 말을 걸어왔다.
『그 상태로 나랑 싸울 거니?』
“시끄러워.”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나랑 대화를 해보는 게 어때?』
녀석은 불꽃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핏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완전한 인간의 육신을 얻은 녀석은 고결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내겐 역겹게 느껴졌다.
녀석은 이 화재 속에서도 불씨에 휘말리지 않은 내 일기장을 향해 다가갔다.
거대한 일기장 앞에선 그녀도 작은 존재처럼 보였다.
녀석은 일기장의 표지를 천천히 넘기며 말했다.
『예를 들면 이 일기를 쓸 때 어땠는지… 이런 대화는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잖아.』
“우리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사이였나?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아까 그 쓰레기 같은 인간보다 나를 더 혐오하는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뭔 개소리야?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녀석은 어처구니없게도 이해가 안 된다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본인이 객관적으로 류차오보다 나은 존재이기에, 당연히 내가 녀석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몬스터가 이렇게 자의식과잉일 수 있는 건가?
『이유영, 네가 ‘최후의 인류’가 되어버린 순간을 기억하니?』
“시끄러워….”
『기억 안 나지? 눈을 떠보니 세상이 멸망해 있었잖아.』
내 일기장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니, 당연히 내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떨어진 샛별의 검날로 손에 상처를 내며, 검에 피를 먹였다. 떨어진 샛별은 내 피를 흡수하며 진화하기 시작했다.
「’떨어진 샛별’이 특정 조건을 감지합니다.」
눈앞에 있는 강력한 마의 기운을 느낀 떨어진 샛별은 진동하며 톱날을 갈았다.
분화는 내 검을 보면서도 의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진실을 말해줄게. 그날 시스템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네가 왜 ‘최후의 인류’가 되어야 했는지.』
녀석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최후의 인류’가 된 것은 시스템 때문이 아니다. 지구에 홀로 남게 된 건 몬스터가 인류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불사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기에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야가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눈앞에 진실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