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분화 (17)
여태껏 외면해 온 어떤 가능성이 점차 의문을 키워갔다.
나는 정말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생명의 의지’ 하나로 살아남은 것일까?
인류가 멸망했는데 나 혼자만 살아남는 게 가능한 일인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만 살린 게 아닐까?
의심이 부피를 늘려갔다. 잊고 있던 불안감에 숨이 막혀 왔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뇌가 반사적으로 되새기는 기억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 당신은 ‘최후의 인류’입니다. ]분명 시스템이 보낸 그 메시지가 나를 ‘최후의 인류’로 정의했다.
인류가 멸망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그 메시지 때문이었다.
나는 어쩌다… 최후의 인류가 된 거지?
***
세상이 점멸하며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다.
온통 푸르른 세상, 수많은 신호가 오가며 알 수 없는 프로그램 언어를 띄우고 있는 공간.
나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
이곳은 시스템의 공간이다.
『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곳에 진실이 있어.』
어디선가 분화가 속삭였다.
이 푸르른 공간 속에서도 나를 유혹하듯이 일렁이는 푸른 게이트.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종용했다.
바다를 계속 들여다보면 미쳐서 뛰어들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저 푸른 게이트를 볼 때마다 비슷한 충동에 휩싸였다.
『인류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왜 네가 혼자 남은 건지. 저들이 말해줄 거야….』
유혹적인 목소리가 내 충동을 자극했다.
저 게이트 안에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충동과 유혹, 호기심이 나를 게이트 안으로 이끌었다.
끝내 상자를 열어버린 판도라처럼 나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고 말았다.
스스슷
영혼이 어떤 경계를 넘어갔다.
육체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가벼웠다.
죽어서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겪어서는 안 될 자유를 경험한 것 같았다.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펼쳐졌다.
88개의 별자리가 조용히 깜빡이며 별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별자리 속 하나의 별이 되어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구에선 ‘최후의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헌터들은 던전 안에서 EX급 몬스터로 규정한 ‘오류’와 싸우고 있었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회귀 전 오류와 싸우던 그 순간이었다.
끝내 공략대는 오류에게 패배했고, 미카엘과 나만이 살아남았다.
나는 던전 속에서 오류의 공격을 피해 미카엘과 함께 있는 힘껏 도망쳐다녔다.
던전 안에 들어온 헌터들이 모두 사망할 경우 던전브레이크가 발생한다.
미카엘과 나는 오류를 던전 안에 가둬놓기 위해, 평생을 던전 속에서 살 각오로 도망쳤다.
그것만이 헌터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지구를 바라보던 성좌들이 대화를 시작했다.
어떤 원리로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비현실적인 감각을 표현할 문장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멸망해 버릴 것이다.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시스템에 남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던전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던전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을 영원히 던전 안에 가둬두어야 한단 말인가?』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새로운 대책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미카엘과 나를 바라보며,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시스템은 무엇을 해야 할지 논의했다.
인공지능이 해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이 성좌들이 시스템인 걸까?
그래서 화신은 내게 푸른 게이트를 넘어선 안 된다고 했던 걸까?
한낱 인간이 시스템의 정체를 알아선 안 되니까?
답을 낼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던 때, 분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게 네가 믿고 따르는 ‘시스템’의 정체야. 우리는 저것을 ‘인류의 의지’라고 부른단다.』
“인류의 의지라고…?”
『죽은 인간은 하늘의 별이 된다고 하지? 저 별들은 인간의 영혼의 집합체야. 죽은 인간의 영혼들이 모여, 인류를 존속하려는 의지만으로 합쳐진 게 바로 ‘시스템’이지.』
여태 학계에서 내세운 가설을 전면 부정하는 얘기였다.
분화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시스템 역시 인간이라는 말이다.
죽은 인간들의 집합체라면, 인류의 역사 그 자체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시스템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초현상쯤으로 여겼고 솔직히 이해하길 포기했다.
어떤 논리 속에서 헌터가 되었는지보다, 헌터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했으니까.
그때 한 성좌가 얘기했다.
『차라리 새로 시작하는 게 어떻겠나? 인간은 실패를 통해 더 강해지는 법이지.』
당연하게도 그 말속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낱 인간이 이해하기엔 너무 아득해서 결국은 무감정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시간을 되돌리자는 것이군.』
『시간을 되돌리기엔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해. 어디선가 충당해야만 한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최후의 인류로서, 최후의 전투가 끝난 뒤 벌어지는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
결국엔 시간을 되돌린 한 명의 회귀자가 세상을 리셋하려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에너지를 축적할 아이템을 만들면 어떻겠나?』
『‘정신에너지’는 창작이나 예술을 통해 극화되지. 아이템으로 창작을 지속하게 만들면 되겠군.』
리리의 비밀 일기장.
B급 아이템이지만, 조건을 충족해 SSS급 아이템이 되어 내 염원을 이뤄준 사기적인 아이템.
인류가 멸망한 뒤 생존자를 찾아다니던 나는 우연히 그 아이템을 주웠고, 그 아이템을 마지막 희망처럼 여기며 10만 장의 일기를 썼다.
리리의 비밀 일기장은 이들이 말하는 ‘에너지를 축적할 아이템’에 부합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소원을 이뤄주는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나?』
『소원이라면 인류를 되살리고 싶다는 소원이어야 해. 가능한 ‘희망’을 남기도록 하지. 그는 그 희망을 택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 방식이라면 자연스럽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겠군.』
시스템은 내가 인류를 되살리고 싶다는 소원을 빌 것을 예측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들의 계획대로 그러한 소원을 빈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체스 말이 되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새로 축적한 에너지를 통해 ‘오류’에게 대항할 스킬을 만드는 것도 좋겠군.』
그렇게 만들어진 스킬이 ‘가능성’ 스킬인 듯했다.
앞뒤 상황이 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분화가 만들어 낸 환각이라거나, 나를 교란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거짓말 덩어리라고 우길 수 없을 만큼 내 삶과 일치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백지가 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믿었던 시스템한테 배신당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지.
배신? 시스템은 나를 배신한 게 아니다.
시스템은 처음부터 날 이용했다.
내 멋대로 시스템을 믿었을 뿐, 시스템은 원래 내게 아득히 객관적인 존재였다.
‘화신이 아니었다면… 시스템을 가깝게 생각하지도 않았겠지.’
며칠간 보이지 않던 화신 역시 이들과 같은 존재일까.
그렇다기엔 녀석은 좀 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적합한 인간은 한 명밖에 없군.』
『그래, ‘생명의 의지’라면 쉽게 자살할 수 없고, 몇 년이든 혼자 살아나갈 수 있겠어.』
『괜찮은 생각이야. ‘이유영’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겠다.』
『판단 종료.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던전 생성에 쓰인 에너지는 회수한다.』
녀석들은 여전히 미카엘과 내가 던전에서 버티고 있는데도, 꾸역꾸역 도망치며 던전브레이크를 막고 있었는데도, 던전을 없앴다.
그저 에너지를 회수하기 위해.
이후 던전에서 빠져나온 오류는 온갖 재해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켰다.
미카엘은 그 과정에서 사망했고 나 역시 그래야 했다.
그러나 ‘생명의 의지’가 나를 되살렸고, 나는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 눈을 떴다.
나는 그렇게 최후의 인류가 된 것이다.
『인류는 ‘최후의 인류’를 통해 구원받을 것이다.』
시스템은 멋대로 나를 구원자로 만들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빛들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미련하게 살아가며, 일기장을 발견하고 희망을 얻었다.
미친 듯이 일기를 쓰며 세상에 구원이 찾아오길 바랐다.
허탈했다.
나는 다 짜인 판 속에서 광대처럼 춤이나 추고 있었던 걸까.
멸망한 세상 속에서 빌어먹을 능력 때문에 혼자 살아남고, 사람들을 찾아 헤맸던 것도.
사람들을 찾아 헤매다가 ‘리리의 비밀 일기장’이라는 아이템을 주웠던 것도.
이거라면 인류를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바보같이 10만 장의 일기를 적었던 것도.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찾아 헤매며 공략법을 만들어 일기를 채워나갔던 것도.
모두 바보같이 느껴졌다.
분화는 내게 속삭였다.
『이유영, 기억나? ‘시스템은 어째서 내게 ‘최후의 인류’라는 메시지를 띄워 보낸 것일까…. 차라리 몰랐다면, 조금은 덜 절망적이었을 텐데.’ 이 구절 말이야. 네가 쓴 일기의 한 구절이잖아. 사실은 오래전부터 시스템이 널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녀석이 말한 구절은 내가 적은 일기의 내용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오래전부터 시스템을 의심했다.
나 혼자 지구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미치지 않으려면, 누구라도 탓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얘기다.
내 목표는 오류를 물리치는 것이고, 시스템은 그것을 실현하려는 존재다. 녀석들이 날 이용한다면 나도 녀석들을 이용해 오류를 물리치면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속 어딘가에서 통증 같은 게 느껴졌다.
어떤 공격에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 스킬이 있는데, 내 몸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겪는 고통은 지나치게 아팠다.
괴로웠다.
『너는 시스템이 만들어 낸 노예야. 네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지? 이건 잘못됐어.』
“….”
『우리는 널 도구처럼 사용하지 않아.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서 함께하는 거야.』
“….”
『너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이유영, 내가 널 고독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
분화는 내 심장 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타고 넘어와 고통을 진정시켰다.
아마도 ‘이유영’이라는 사람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몬스터밖에 없을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비극적이게도 나뿐이며, 이들은 내 일기장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니까.
나는 분화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손 밑으로 심장 박동 소리가 느껴졌다.
갈비뼈 아래로 박동하는 근육의 움직임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여기서 무너질 것인가.
나는 고작 안식을 찾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인 건가.
그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몬스터와 손을 잡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있나.
결국, 또다시 정답은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난… 누군가한테 이해받으려고 여태 살아온 게 아니야.”
나는 녀석의 손을 쥐어 잡은 채로 내 가슴을 꿰뚫었다.
있는 힘껏 몸을 부수고 뼈에 가려져 있던 나의 심장을 붙잡아, 뜯어냈다.
펄떡이는 심장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난잡하게 뜯어진 혈관들이 피를 흘렸다.
나는 그것을 쥐어서 풍선처럼 터트렸다.
그러자, 그 속에 박혀있던 작은 불씨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난 언제나 스스로, 내가 바라는 것을 해왔어.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고, 이해받기 위해서도 아니야.”
『아냐, 그럴 리 없어. 너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나는 불씨를 붙잡아 손안에서 꺼트렸다.
사람의 정신을 현혹하던 작은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나는….”
나는.
내가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한 동료들이 있기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기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들이 날 믿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뿐이다.
“…나는 날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난 철학자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너도 날 이해할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나한테서 분화한 존재라고 해도, 너랑 난 달라.”
불씨가 내 손 안에서 완전히 꺼졌다.
그와 함께 분화도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비록 내 손으로 심장을 꺼내 가슴을 비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생명의 의지는 다시 내 가슴을 채워줄 것이고 그렇게 되살아난 나는 다시 한번 동료들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든 자신을 비워낼 수 있었다.
***
[ 당신은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였습니다. ] [ 새로운 스킬이 개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