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분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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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에 소리가 먹혀 희미했다.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해 보니, 간신히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이유영… 도와… 구해….』
이 목소리는… 화신의 목소리다.
도와달라는 말 같은데, 방금까지 시스템의 진실을 목도하고 온 사람한테 이렇게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
괘씸했지만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녀석이 있는 어딘가를 향해 소리쳤다.
“너 화신이지! 어디야? 여기선 아무것도 안 보여!”
하지만 내 목소리만 울릴 뿐,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 뿐이다.
대체 이 녀석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몬스터랑 싸우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또 새로운 사고를 친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째서인지 녀석의 목소리를 반갑게 여기고 있었다.
***
[ 메인 스킬, 에 목록이 추가됩니다. ]– 분류: 메인 스킬
– 숙련도: 45%
「시전자의 염원을 이룰 가능성이 발견되면 발동합니다.」
–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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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곳은 분화와 싸우던 붉은 게이트 안, 만성 본부 건물 3층의 어느 빈방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다는 메시지가 적힌 푸른 창이 들이닥쳤다.
0. 정신세계.
정신세계가 왜 스킬로 등록되었는지는 둘째치고, 앞에 붙은 0번은 뭐지?
제대로 된 설명창도 달려 있지 않아서, 무슨 스킬인지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 주위 상황부터 살폈다.
내 몸은 등짝이 전부 젖을 정도로 흥건한 핏물 위에 누워 있었다.
이 피의 출처는 내가 스스로 가슴팍에 낸 구멍인 듯했다.
다만 그 구멍도 생명의 의지로 말끔하게 치유되어 있었다.
변이도 풀려 있었고, 다른 곳도 멀쩡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정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불어! 이유영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모, 모른다고…. 그만 때려!”
정하나가 류차오를 구타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구지상은 정하나가 잘 때릴 수 있도록 류차오의 사지를 포박하고 있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이제 막 회복이 끝나서인지 피곤하기도 하고, 류차오가 조금 더 맞길 바랐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뜬 걸 이미 들킨 건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영, 방금 눈 뜨지 않았어?”
고주연이 기막히게 눈치챈 듯했다.
그 말에 담배를 태우고 있던 길버트가 내게 다가왔다. 정하나, 구지상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들… 모여 계셨네요.”
이럴 땐 어떤 말을 하면서 일어나야 할까.
피 웅덩이 속에서 몸을 일으키려니 여기저기가 끈적거렸다.
내가 어색하게 일어나자, 정하나와 구지상은 류차오를 내팽개치고 나한테 와다다 달려왔다.
두 녀석은 나를 붙들고 훌쩍이면서 이유 모를 사과와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류차오가 수작 부린 것 때문에 두 사람 다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럴 때 보면 대한민국의 영웅이라든가, 완전방어 같은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25살 어린 애들이었다.
나는 딱히 화나지도 않았지만, 두 사람을 용서했다.
그렇게 훈훈한 시간이 잠깐 지나가고.
고주연이 얘기를 꺼냈다.
“조금 전까지 게이트석으로 탈출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어. 네가…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아서.”
“그런데 네가 갑자기! 스스로! 가슴에 구멍을 냈다고…! 대체 뭔 일이야? 어? 죽는 줄 알았잖아…!”
정하나는 돌연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다.
방금까지 나한테 사과하지 않았나?
정하나는 그런 적 없었던 것처럼 나를 짤짤 흔들고 있었다.
다만 구지상도 울상이었고, 고주연과 길버트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심장을 뚫는 광경을 모두 봐버린 듯했다.
솔직히 그걸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멀쩡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숨어있던 몬스터의 흔적을 잡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다시피 전부 회복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을 안 하게 생겼냐!”
정하나는 걱정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내 등짝을 찰지게 때렸다.
정하나의 강력한 공격에 내 몸도 위협을 느낀 듯, 멋대로 스킬을 발동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정하나는 문득 손을 내리고 날 쳐다봤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한참을 쳐다보던 녀석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너 왜 아프다는 말을 안 해?”
“….”
정하나의 말에 다들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건지 내게 한마디씩 던졌다.
제일 먼저 정하나의 말을 받은 건 구지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유영 씨, 에덴 던전에 다녀온 이후부터 몸을 너무 일회용품처럼 쓰시는 것 같았어요.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주작이랑 싸울 때도 아무렇지 않게 불 속에 뛰어들더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구지상과 길버트가 연달아 한마디씩 하자, 고주연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약간 무서울 정도였다.
한참 나를 쳐다보던 고주연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 더는 고통을 못 느끼는구나.”
무서운 통찰력이었다.
가능하면 무감각 스킬은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더는 숨기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숨기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날 의심하게 된 계기는 내가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 진심으로 신뢰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다른, 모두가 살아남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나부터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번 붉은 게이트 공략이 끝나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여태 숨겨온 것들. 최후의 인류였으며,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회귀했다는 사실.
‘오류’라는 EX급 몬스터를 물리치지 않으면 인류는 다시 한번 멸망할 거라는 사실.
이제는 모두가 알아야 한다.
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를 신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사망 플래그 세우는 것 같거든? 그냥 지금 말하면 안 돼?”
“가능하면 제 길드원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집중해야 하는 문제가 따로 있잖습니까.”
지금은 ‘분화’를 물리치는 게 우선이다.
녀석은 어째서인지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동료들을 급습하지 않았고, 내가 위층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위층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다.
류진도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비밀 폭로회 나도 끼워줄 거지? 나름 동맹 비슷한 거 맺었잖아. 그치?”
길버트는 내게 어깨동무를 해오며 능글맞게 말했다.
만성의 남은 패거리들을 길버트가 이끌게 된다면, 어차피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닥쳐올 최후의 전투에서 우리는 한 팀이 될 테니까.
“생각해 보고요.”
쌀쌀맞다며 내 볼을 찔러대는 길버트를 뒤로 하고, 나는 한 녀석을 바라봤다.
저 위로 가려면 처리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있었다.
류차오.
녀석은 만신창이가 된 꼴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공략대원 모두 류차오를 쳐다봤다.
류차오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녀석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나도 데려가려고? 난 가면 몬스터한테 죽을 텐데…. 너희는 그걸 바라지 않지? 그, 그러니까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하는데….”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꿋꿋하게 얘기했다.
“꼭대기 층에 형이랑 아버지가 같이 있어. 어차피 우리가 인질로 잡혀도 너희만 곤란하잖아? 내가 먼저 올라가서 몬스터의 시선을 끌게. 그리고 너희가 기습을 해. 그사이에 난… 아버지랑 형을 데리고 게이트석으로 탈출하는 거지.”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미쳤어? 이 상황에서도 도망칠 생각이 드냐?!”
정하나는 류차오의 뒤통수를 퍽 소리 나게 쳤다.
류차오는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은 없어 보였다.
녀석은 눈을 치켜뜨며, 공략대의 지휘관인 내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나는 잠시 길버트를 쳐다봤다.
길버트는 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사실 류차오의 의견이 그렇게 나쁜 의견은 아니다.
녀석이 게이트석으로 탈출하면 도착하는 장소는 후발대와 의료팀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류차오나 만성 길드장이 도망치려 해도,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에덴 길드라는 뜻이다.
미카엘의 오른팔인 사빈이 있는 곳에선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게다가 류차오의 말대로, 만성 길드장이나 류차오가 인질이 되어버리면 우리로선 곤란해진다.
그 녀석들이 그 상황을 이용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우린 저놈을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공략대는 현재 심신이 지쳐 있다. 그런 피로한 일은 사전에 방지하는 게 낫다.
나는 잠시 류차오를 쳐다봤다.
녀석은 여전히 속셈이 있는 불경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녀석에게 똑똑히 말했다.
“좋아. 그런데, 하나만 말해두지.”
“얌마 이유영!”
“밖에서 널 기다리는 건, 네가 저지른 죄를 뒤집어씌운 에덴 길드와, 네가 여기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붉은 두건들이다.”
바깥엔 류차오가 허튼짓을 해도 제압할 병력이 갖춰져 있다.
도망치거나 허튼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교란할 경우,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
더는 녀석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그런데도 류차오는 이것만이 희망이라고 여겼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류차오를 사용할 수 있다면 분화에게서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략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인질 구출조와 기습조로 나뉘어서 행동합니다. 구출조에는 길버트 씨와 구지상 씨, 기습조에는 정하나 씨와 고주연 씨, 제가 들어갑니다.”
길버트에겐 ‘은신’ 스킬을 사용해 류차오와 동행하는 역할을 맡길 것이다. 류차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류차오가 분화에게 입을 털며 시간을 끄는 사이, 구지상은 류진과 만성 길드장을 구해야 한다.
다만 몬스터는 류차오의 얕은수를 금방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그때 기습조가 나서서 구지상에게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만약 류진이 무사하다면, 만성 길드장과 류차오를 데리고 게이트석으로 탈출하도록 부탁하면 된다.
하지만 무사하지 않다면 길버트가 따라 나가기로 결정했다.
길버트 없이 몬스터와 전투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길버트의 임무는 류진을 구하는 것이다.
류진과 함께 이곳에서 나가는 건 길버트가 해야 하는 임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류차오에게 말했다.
“사람답게 살 기회가 있을 때 잡아.”
“….”
녀석은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봤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작전대로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찌는 듯한 더위와 갑갑한 습기가 우리를 괴롭혔지만, 우리는 계단을 올랐다.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