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분화 (19)
거센 바람이 만성 길드장실의 창문을 탕 소리 나게 쳤다.
까무룩 하던 정신을 부여잡게 만드는 소리였다.
류진은 멀미처럼 밀려오는 더위에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간신히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는 도망치려다가 몬스터에게 붙잡혀, 다시 몬스터가 되어버린 만성 길드장이 있었다.
그는 이지를 잃고 맹목적으로 몬스터를 따랐다.
그 누구도 그를 더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류진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에게 계속해서 대항했던 류진은 결국 변이에 당하고 말았다.
그의 몸은 어느새 반 이상이 몬스터처럼 변해 있었다.
만약 이 ‘변이’를 견디지 못하면 만성 길드장과 똑같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류진은 이를 아득 물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그때, 여태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붉은 머리의 몬스터가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무섭게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끈질기구나, 최후의 인류….』
그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의 주위로 폐를 익힐 것만 같은 열기가 폭발했다.
류진은 가능한 그 열기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다.
그런데도 변이는 점차 심화되었고, 그의 숨통을 옥죄어 왔다.
아득!
류진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팔을 깨물었다.
아릿한 고통이 류진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 덕인지, 밑에 층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류차오일까?
동생은 몬스터와 마주치자마자 복종했고, 몬스터에게 협조를 약속했다.
스스로 몬스터가 되어 이유영을 잡아 오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다.
만약 류차오가 다시 위로 올라오고 있는 거라면… 어쩌면, 이유영이 이곳에 왔을지도 모른다.
류진은 이유영이 이곳에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모순되게도 그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젠장….’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걸 책임질 것처럼 떠안았으면서, 실제로는 이유영에게 모든 걸 떠맡겨 버린 셈이다.
붉은 두건의 수장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한심한 꼴이라니.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이유영이 이곳까지 왔다면 더더욱 정신을 차려야 했다.
몸이 몬스터한테 점령당하지 않도록 발악해야만 했다.
류진은 고개를 들어 붉은 머리의 몬스터를 쳐다봤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상당히 분노한 것 같았다.
이를 으득 갈며 그녀를 떠받들고 있던 잡몹들을 향해 손짓했는데, 그 손짓 한 번에 몬스터들이 일제히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굶주린 맹수 떼가 먹이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처럼 몬스터 군단이 움직였다.
그 군단 속에는 이미 몸과 정신이 모두 몬스터로 변해버린 만성 길드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
“아악! 이 몬스터들 다 어디서 기어 나온 거야?!”
정하나는 소리를 지르며 ‘암흑’ 스킬을 발동해, 우리 앞에 방어벽을 펼쳤다.
위층으로 올라가던 우리는 난데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몬스터 군단과 조우했고, 우리는 꼼짝없이 녀석들을 상대해야 했다.
“야, 이유영! 우리가 류차오 잡은 거 이미 들킨 거 아냐?”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번 보스몬스터는 지능이 상당히 높아서요. 어쩌면 인간보다 더 높을지도 몰라요.”
“뭐? 그런데 그 작전 그대로 가도 돼?”
나는 덤벼드는 몬스터의 몸통을 썰어내며 답했다.
“중요한 건 보스 몬스터가 한 번만이라도 방심하게 만드는 겁니다. 류진 씨를 탈출시킬 1초만 생겨도 이 작전은 성공입니다.”
“에잇, 알겠어!”
정하나는 서브 스킬 ‘도발’을 사용해 몬스터의 주의를 끌었다.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공격해 오던 몬스터들이, 밝은 빛에 모이는 벌레처럼 정하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데 모인 몬스터 군단을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위압감, 몬스터가 움직일 수 없도록 행동을 억제하는 스킬.
잡몹들한테는 이 능력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떨어진 샛별로 굳어있는 몬스터들을 썰어나가며, 빠르게 군단을 잿가루로 만들었다.
“언제 봐도 잘 싸운단 말이지.”
“그쵸? 제 길드장님이에요.”
뒤에서 류차오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오던 길버트와 구지상이 날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실상부 최강자인 두 사람이 날 치켜세우고 있으니,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황당했다.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고주연은 위압감에서 풀려난 몬스터들을 향해 거침없이 화살을 쐈다.
고주연이 쏜 화살은 전부 몬스터의 급소를 꿰뚫었고, 몬스터는 단숨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공략대가 50명이어도 애먹었을 몬스터 군단이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전멸했다.
이게 우리 공략대의 실력이었다.
이런 잡몹들로 우릴 묶어두는 건 불가능하다.
“슬슬 대가리 큰 놈 하나 나올 때가 됐는데.”
정하나의 말대로 슬슬 주작만큼 강한 녀석이 나올 때가 됐다.
나는 대가리 큰 녀석이 있는지 살펴볼 겸 서브 스킬, 천리안을 발동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최상층까지 두 층이 남아있는 상황.
만성 길드장실 안은 여전히 천리안의 시야가 닿지 않았지만, 다른 곳은 확인이 가능했다.
나는 공략대를 잠시 멈춰 세우며 바로 위층을 살폈다.
부길드장실이 있는 위층의 상태가 범상치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층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원인을 찾아 좀 더 살펴보니, 부길드장실에 이상한 게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붉은 덩어리의 슬라임형 몬스터였다.
녀석은 입에서 마그마를 계속 뿜어내고 있었는데,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만성 길드장….”
만성 길드장이다.
변이에 당한 만성 길드장의 모습이었다.
바로 뒤에 있던 정하나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만성 길드장이 있어?”
“위층에 슬라임 몬스터가 하나 있는데, 변이에 당한 만성 길드장의 모습과 똑같네요.”
“그럼 그 녀석이겠네! 얼른 가자!”
“잠시만요. 류차오처럼 자발적으로 변이를 받아들인 게 아니어서, …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밖으로 데리고 나갈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게이트석으로 저런 슬라임 몬스터를 데리고 탈출했다간 바깥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적어도 분화를 물리쳐 ‘변이’가 풀릴 때까지, 녀석을 가둬놓을 방법은 생각해 둬야 했다.
그때 길버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만성 길드장이 변이에 당한 사람을 가둬놓기 딱 좋은 감옥을 칭다오에 만들어 놓았잖아. 거기에 가두면 되지 않나?”
“좋은 생각이네요.”
자업자득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그 감옥에 본인이 갇힐 거라고 생각도 안 해봤겠지.
녀석을 가둘 곳이 있다면 나머진 간단하다. 기절시켜서 끌고 나가면 된다.
위층에 올라가려면 용암의 강을 밟아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선 정하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정하나 길드장, 훈련 때 만들었던 갑옷을 시험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군…. 내 명성을 드높일 때가!”
정하나는 호기롭게 팔을 붕붕 휘둘렀다.
훈련할 때 만들어 본 암흑으로 만든 갑옷이 실전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지 확인해 볼 좋을 기회였다.
나는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위층은 구지상 씨와 정하나 길드장, 그리고 제가 올라갑니다. 고주연 씨와 길버트 씨는 그 녀석 감시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여기서부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다들 체력 분배에 유의하시고, 각오 단단히 하세요.”
던전에서 공략대가 제일 많이 당하는 순간은,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를 코앞에 두고 방심했을 때다.
특히 더위라는 악조건이 있는 이곳에선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을 놓을 위험이 있었다.
구지상과 정하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왔다.
나는 곧장 계단을 올랐다.
고작 한 계단 올랐을 뿐인데 한층 더 후덥지근한 열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바닥에는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거뭇한 돌이 붙어 있었고, 끊임없이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하나는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훈련 때도 봐서 알겠지만, 내가 갑옷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건 10분이야. 물론 더 유지하려고 노력할 거야 할 건데, 웬만하면 그 안에 끝내자고.”
“10분이면 충분하죠! 그쵸, 이유영 씨?”
“주작과 싸울 때도 그쯤 걸렸던 것 같네요. 이번엔 더 빠르고 공격적인 작전으로 가죠.”
정하나의 서포트를 받고 구지상과 내가 힘을 합친다면, 10분 안에 너끈히 처리할 수 있었다.
정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지상과 날 향해 곧장 ‘암흑’ 스킬을 발동했다.
바닥에서 잉크처럼 퍼져가던 암흑은 구지상과 내 몸을 감싸며 체형에 딱 맞는 슈트를 만들어 냈다.
배트X이 입을 것 같은 흑색의 맞춤형 고급 슈트가 정하나의 손에서 간단하게 탄생했다.
용암 위를 풀밭처럼 상쾌하게 걸을 수 있는 강력한 방어구였다.
정하나는 땀을 슥 닦으며 말했다.
“난 스킬 유지하는 데 전념한다. 너희 둘이 해치우고 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지상에게 손짓했다.
구지상은 곧바로 나를 따라 달렸다.
변이에 당한 만성 길드장이 있는 곳은 부길드장실, 류차오의 방이 있는 곳이다.
나는 구지상에게 말했다.
“먼저 만성 길드장을 방에서 끌어내겠습니다. 구지상 씨는 녀석이 나타나는 순간 총력을 가해 공격을 퍼부어 주세요. 죽지 않을 정도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공격이 한순간도 끊기지 않게 가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턴 각자 찢어져서 행동하는 게 효율적이다. 나는 부길드장실로, 구지상은 복도 끝으로 흩어져야 했다.
그런데 부길드장실로 향하려던 나를 구지상이 갑자기 불러세웠다.
“이유영 씨, 좀 더 제대로 얘기하고 사과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이것만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뭡니까?”
“저도 정하나 길드장님도 이유영 씨를 의심하지 않아요. 이유영 씨에 대해 더 알고 싶었어요. 정말… 그것뿐이에요.”
구지상은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날 불러세우면서까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압니다. 동료잖아요.”
나는 녀석을 툭툭 치고서 곧장 부길드장실로 향했다.
구지상 역시 멋쩍게 웃다가 바로 복도 끝으로 뛰어갔다.
바닥에는 용암이 흘러 다니며 통행을 방해했지만, 정하나의 암흑 갑옷을 입은 우리에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부길드장실 앞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마그마를 뭉쳐놓은 듯한 슬라임 몬스터가 입에서 용암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말했다.
“우리 구면이지?”
『크륽….』
구면이긴 하지만, 나는 만성 길드장이 사람일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분화가 보여준 만성 길드장의 기억을 통해서나 봤을 뿐이다.
내게 800억의 현상금을 건 녀석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니.
억울해서라도 빨리 변이를 풀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나를 향해 기묘한 소리를 내는 만성 길드장을 향해 와보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쉽게 도발에 넘어가, 몸을 꿀렁거리며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곧바로 스킬을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