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4
24화. 걸어서 악몽 속으로 (2)
‘오류’와의 전투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류에게 향하는 길에는 A급 몬스터가 잡몹처럼 널려 있었고, 공략대 리더는 최소한의 인력을 소모해 그것들을 막으려 했다. 사람을 자원처럼 소모한 것이다.
회귀 전의 고주연 역시 그 소모된 ‘자원’ 중 하나였다.
“…….”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그 당시의 일이다.
그날의 기억이 꿈으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차마 발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꿈속의 ‘나’를 바라봤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꽤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주연은 그런 녀석한테 다시 한번 외쳤다.
“어서 가!”
고주연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거대한 잠자리에게 화살을 쏘아 보내며 ‘나’를 재촉했다.
원거리 딜러에, 광역 공격기까지 가진 고주연만큼 비행형 몬스터 군단을 상대하기 좋은 사람은 없었다.
공략대 리더는 고주연에게 뒤를 맡기고 전진했다. 그러나 ‘나’는 멍청하게 고주연을 두고서는 가지 못하고 있었다.
회귀 전, 고주연은 내게 있어 거의 유일한 동료나 다름없었다.
같은 길드에 속해 있던 건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가장 먼저 부르는 사이였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어도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였다.
그래서였다. 이미 몇 번이나 사람들을 버리듯이 남겼으면서, 고주연을 남겨야 할 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하지만 나는 결국 전진했다.
“…부탁합니다, 고주연 씨.”
꿈속의 ‘나’는 고주연을 홀로 남겨둔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내 등을 보며, 홀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고주연에게 걸어갔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고주연의 등 뒤로 날아오는 불새를 향해 심판의 물을 날렸다.
하지만 동굴 천장과 달리, 불새에겐 심판의 물이 통하지 않았다. 물줄기는 그대로 통과해 바닥으로 볼품없이 떨어졌고, 불새는 과거와 동일하게 고주연을 향해 불길을 쏘아냈다.
“크윽!!!”
불길에 휩싸이자 고주연의 입고 있던 방어구가 타올랐다. 고주연의 등은 불에 타서 까맣게 그을렸다.
원거리 공격계 헌터는 다른 헌터들보다 방어력이 낮은 편이다. 고주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내 손에서 뻗어나간 녹색 빛은 눈앞의 고주연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러나 고주연은 이를 악물고 곧바로 활을 들어, 불새의 머리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들이닥치던 비행형 몬스터 5마리를 연달아 추락시켰다.
『끼에에에엑!!』
하지만 등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 탓이었을까, 고주연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 탓에 고주연은 측면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괴조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깨를 내어 주어야 했다.
“윽!!!”
괴조의 부리가 고주연의 어깨를 뚫고 헤집었다.
흉측하게 망가진 어깨는 더 이상 써먹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주연이 버릇처럼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어깨는 절대 다치면 안 돼. 궁수의 생명이나 다름없으니까.’
다리 두 쪽을 내어 주더라도 어깨만큼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고주연은 어깨를 지킬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덜렁거리는 어깨로는 더 이상 활시위를 당길 수 없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주연은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모든 신념의 빛을 응축한 듯한 화살이었다.
슈욱, 탕!!
고주연이 쏜 화살은 하늘을 향해 높이, 높이 올라갔다.
그 사이, 몬스터들이 고주연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고주연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꼭 살아, 너는.”
그 말과 함께 마치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은빛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진 화살은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하늘을 차지하고 있던 비행형 몬스터의 급소를 정확히 꿰뚫었다.
―――!!!!!
몬스터의 괴성이 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공략대원들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볼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었다.
마침내 모든 몬스터가 추락한 후에야, 고주연은 쥐고 있던 활을 놓았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녹색의 빛은 이번에도 허무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알고 있다. 이건 전부 과거이고, 꿈일 뿐이다.
회귀 전의 내가 서브 스킬로 지켜본 고주연의 마지막일 뿐이다.
“이번에는 당신도 꼭 살릴 겁니다, 고주연 씨.”
나는 고주연이 떨어트린 활을 주워들었다.
고주연이 나타날 때부터 이 악몽을 끝내려면 이걸 부숴야 할 거라고 예상했다.
“나와.”
내 말에 활의 손잡이 부분에서 자그마한 민달팽이가 기어 나왔다.
민달팽이를 붙잡아 떼어내자, 녀석이 내게 물었다.
『왜 안 무너져…? 괴로운 기억인데….』
고작 이런 단편적인 기억으로 내가 무너졌다면, 나는 결코 최후의 인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허구한 날 괴로운 기억을 꿈으로 꿔. 한 번 더 꿔봤자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렇구나…. 그러면…』
꿈달팽이는 타격을 주면 데미지를 입지 않고 분열하는 성가신 몬스터다.
하지만 딱 한 군데. 분열시키지 않고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
나는 놈의 중얼거림을 더 듣지 않고 ‘더듬이’를 뽑아 버렸다.
동시에 이 악몽이 끝난 걸 알리듯이,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
눈을 뜨면, 다시 또 검은 천장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와 똑같은 동굴의 전경이 보였다.
아무래도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된 듯했다.
나는 천장을 부수고 나가는 건 체력 낭비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순순히 동굴의 출구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도 날 맞이해주는 건 넓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공기가 아니었다.
온통 시커멓게 칠해진 돌벽. 어둠을 간신히 밝히는 보랏빛 촛불, 그리고 마치 미로처럼 얽힌 복도까지.
“이번엔 좀 참신한 악몽이네.”
이곳은 한국의 다섯 번째 SS급 던전인 ‘악마의 미궁’이었다.
공략대 규모만 자그마치 100명. 대한민국 5대 대형 길드부터 협회까지 참여한 대규모 공략.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성공을 확신했던 공략이었다.
특히나 협회 쪽에서는 반드시 공략에 성공할 거라 호언장담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녀석이 이 공략대 지휘관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참여한 던전 공략 성공률 100%. 헌터 협회가 자랑하는 전략의 귀재.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우리 길드에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녀석.
마침 꺾어진 복도에서 그 녀석이 공략대와 함께 나타났다.
“진준성 헌터!!”
지금보다 성숙한 얼굴을 한 진준성이 자신을 부른 사람을 서늘한 얼굴로 바라봤다.
꿈속이라 그런가, 아까까지 어린 진준성을 봐서 그런가. 묘하게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큰 진준성은 귀찮다는 듯, 쓰고 있던 안경을 매만지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디 한번 말이나 해보라는 고갯짓이었다.
“왜 그 사람들을 낙오시키고 온 겁니까?!”
“낙오?”
냉혈한.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전략만 짤 줄 아는 AI.
이건 모두 당시 진준성의 별명이었다.
그 냉혈한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먼저 제 지휘를 따르지 않고 다른 길로 들어섰을 텐데요. 그러다 함정에 빠진 거고요.”
“그건…! 진준성 헌터가 먼저 거기에 함정이 있다는 말을 안 해줬잖습니까! 한마디만 해줬어도 안 갔을 거라고요! 그렇다고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버리고 가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휘관의 말은 절대적입니다. 어차피 공략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다섯입니다. 그들을 구하러 가는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진준성의 말대로 지휘관의 말을 따르지 않은 그들의 잘못은 컸다.
공략대가 함정에 빠진 그들을 구해주려면 새로운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진준성의 말에 반항하는 놈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비는데도 놔둘 겁니까?”
“……이유영 헌터.”
바로 ‘나’였다.
회귀 전에 나는 ‘천리안’이라는 서브 스킬을 갖고 있었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스킬로, 특히 이때처럼 낙오된 사람들을 확인하기에 좋은 스킬이었다.
이 당시의 나는 진준성과 던전을 공략한 게 처음이 아니었다. 진준성은 내게 천리안 스킬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진준성은 처음엔 내 천리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략대를 여러 분대로 나누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함께 던전 공략을 마친 후, 진준성은 내게 천리안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런 말을 했었다.
‘이유영 헌터는 이번 던전에서 천리안을 사용하지 마세요. 좋은 스킬은 맞지만, 당신이 써서 비효율적인 스킬이 됐습니다. 이유영 헌터는 공략 성공보다 사람 생사에 더 신경을 많이 쓰니까요.’
뭐, 저 당시엔 누가 위험해지면 다른 건 제치고 그쪽으로 먼저 달려갔으니 진준성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저 때의 나는 힐러만큼은 사람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준성은 내게 조언했을 때와 똑같은 얼굴로 꿈속의 ‘나’를 쳐다봤다.
“제 조언은 잊으셨나 봐요?”
“예. 도움 안 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리는 편이라서요.”
‘나’는 꽤 재수없는 얼굴로 진준성을 쳐다봤다.
진준성은 안경 탓에 한층 더 서늘해 보이는 두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의 대치를 깬 건 아까 진준성에게 따지고 들던 헌터였다. 아마 낙오된 헌터들과 같은 길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 다들 살아있는 겁니까?”
“살아서 살려달라고 울고 있네요. 함정에 빠져서 제단처럼 생긴 곳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살아있으면 구하러 가야 하지 않냐는 사람, 간신히 미로를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다는 사람, 자긴 남을 테니 원하는 사람끼리 다녀오라는 사람. 다들 각자 의견을 내뱉느라 어수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때였다.
쾅!
진준성이 요란하게 벽을 쳐서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큰 소리에 사람들은 저절로 입을 다물었다. 진준성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녀석은 ‘나’에게 물었다.
“이유영 헌터, 낙오된 사람들은 무사히 있다고 했나요?”
“그랬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우린 이대로 보스룸에 진입해야겠습니다.”
진준성의 선언에 다시 헌터들이 술렁였다.
그러나 진준성이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장악하며 말을 이었다.
“부상 없이 무사히 살아있다고, 이유영 헌터가 말했습니다. 서둘러 구출할 이유가 없네요? 오히려 던전을 공략하고 나서 구하는 게 그쪽들도 더 안전할 텐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낙오된 사람들은 진준성과 대립하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합류하면 짐이 되리라 생각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게다가 SS급 던전에서 함정에 사람들을 방치해둔다는 건, 죽게 내버려 둔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같은 길드원이었던 놈은 당장이라도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꿈속의 ‘나’는 대열에서 이탈하며 말했다.
“구출조를 꾸릴 생각이 없다면, 저 혼자서라도 다녀오죠.”
“이유영 헌터가 이탈하는 것만으로 공략 성공률이 절반은 떨어집니다. 당신이 미련하게 구는 대가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도 상관없나요? 정신 좀 차리세요, 이유영 헌터.”
지금 같았으면, 저 말에 열받아서라도 보란 듯이 사람들을 구하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저 때의 ‘나’는 지금보다 착한 편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인도적인 방법으로 진준성과 타협했다.
퍽!
고작 한 대 때리는 걸로 고집 접어주고 진준성의 말을 순순히 들어줬으니, 얼마나 인도적이야.
‘나’는 진준성을 한 대 패고 난 뒤, 서브 스킬 천리안을 종료했다.
진준성은 나한테 맞고 날아간 안경을 주우며,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더 논의 사항 없으면 보스 몬스터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전에 말씀드린 포메이션 A로 진입합니다.”
저 말을 마지막으로 공략대는 보스 몬스터 방에 진입했다.
진준성을 팬 것부터 꿈으로 보여주는 걸 보면, 이번에도 이 달팽이가 어디에 숨어있을지 예상이 갔다.
나는 가만히 꿈속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지켜봤다.
진준성의 지시에 따라 보스 몬스터를 공격하는 공략대의 모습.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급소에 결정타를 맞고 쓰러진 보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 아래에서 빛나는 마법진.
마법진이 생겨나며 보스 몬스터는 각성했다.
각성한 보스 몬스터는 정말이지, 압도적으로 강했다.
내가 힐을 넣을 틈도 없이 공략대원들이 하나씩 쓰러져갔다. 보스 몬스터를 공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죽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진준성은 확실히 난 놈이었다.
녀석은 던전 공략률 100%의 기록을 이번에도 지켜냈다.
비록, 나를 제외한 모든 공략대가 전멸했지만 말이다.
미궁이 무너질 만큼의 큰 폭발을 남긴 보스 몬스터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폭발의 잔해에서 눈을 떴다.
생명의 의지는 그 폭발 속에서 나를 다시 살려냈고, 나는 홀로 살아남아 생존자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나는 꿈속의 ‘나’의 미련한 뒷모습을 뒤로한 채, 널린 핏자국과 육편 사이에서 금이 간 안경을 주워들었다.
진준성이 쓰고 있던 안경이었다.
나는 여전히 진준성의 유언을 기억한다.
‘전부 다 구하지 못할 거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구하고 싶었어요.’
그 당시 진준성의 방식은 여전히 찬성할 수 없다.
그렇지만, 녀석에게도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본 고등학생 진준성은 ‘전부’를 구하려고 한 녀석이었으니까.
“이번엔 제대로 전부 다 지켜라, 헛똑똑이로 살지 말고.”
나는 주워 든 진준성의 안경을 바라봐다. 알이 전부 깨지고 테는 찌그러져,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달팽이가 숨어있는 건 이 안경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진준성의 안경을 반으로 부러트렸고, 부러진 안경은 손바닥만한 민달팽이로 바뀌었다.
『이번엔… 참신한 꿈인데… 왜 괴로워하지 않지…?』
“애초에 접근 방식이 틀렸어. 꿈 같은 거에 무너졌으면, 내가 최후의 인류가 됐겠어?”
꿈속에서 ‘꿈달팽이’ 본체를 찾아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이 달팽이가 이상한 꿈을 보여주는 걸 포기하게 만들면 된다. 그럼 본체가 숨어있는 의식의 심해로 날 불러낼 것이다.
『꿈이… 소용…없어…?』
나는 대답해주는 대신 더듬이를 뽑아 녀석을 없앴다.
그와 동시에,
풍덩!
바닷속으로 빠지는 감각과 함께, 몸이 점차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