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사람답게 사는 것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종이에는 어김없이 내 일기가 적혀 있었다.
천천히 적힌 내용을 읽어 보니, 내가 예상했던 분화의 핵을 이루는 페이지였다.
「헌터란 무엇인가?
‘웹소설’에 등장하는 헌터들처럼 게임이 현실이 되어 만들어진 존재인가?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런 흥미로운 판타지가 개입되지 않은 것 같다.
헌터는 인간이 진화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형태의 생물은 진화의 결과이고, 종 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극단적 환경 조건 내에선 종 분화의 속도도 빨라진다고 한다.
우리도 첫 번째 던전브레이크를 겪으며 헌터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
그럼 또 의문이 생긴다.
몬스터란 무엇인가? 난데없이 나타난 돌연변이?
돌연변이라면, 돌연변이가 되기 전에는 무슨 종이었을까?
지구에서 사는 모든 생물에겐 공통의 조상이 있다. 그 조상의 자손들이 번식하며 유전자에 여러 변이가 생겼다.
그렇게 지금의 지구,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푸른 행성이 된 것이다.
그러니 몬스터도, 몬스터가 되기 전엔 우리와 함께 살아가던 어떤 종이었을 것이다.
다만 수많은 학자들은 몬스터를 ‘생물’로 정의하지 않는다.
차라리 ‘현상’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자연 현상도 분명한 목적을 갖고 발생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만을 멸종시키겠다는 목적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 몬스터는… 」
이어지는 내용은 더 읽어 볼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능성 스킬 중 ‘열풍’을 발동해 종잇장을 태워버렸다.
그러자 눈앞에 푸른 창이 하나 떠올랐다.
[ 당신은 3재해, ‘분화’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 [ 보상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
.
.
[?] 뿌리 조각태풍을 물리쳤을 때는 내가 기절해 버리는 바람에 이런 창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3재해라는 말은 뭐고, ‘뿌리 조각’이라는 수상한 보상템은 왜 또 나온 거지?
무슨 아이템인지 몰라서 여태 방치하고 있었는데, 또 얻어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치직
치지직
[ 시스템이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 [ 시스템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
.
.
푸른 창에 시스템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난데없이 나타난 도움 요청에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금방 표정을 굳혔다.
이런 뻔뻔한 자식들.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들켜놓고도 이렇게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심지어 무슨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
무슨 위기에 빠진 건지,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알려줘야 나도 움직일 수 있다.
이 녀석들과 나는 우주와 지구만큼 먼 거리에 있다.
갑자기 도와달라고 해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새로운 정보는 없는지 창을 뒤적이던 때, 마치 내 생각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푸른 창이 떠올랐다.
[ 해당 위치를 확인하세요. ]지도였다.
세계지도를 띄운 푸른 창은 스스로 한 구역을 확대하더니, 붉은 점을 띄우고 깜빡이기 시작했다.
점이 가리키는 곳은 일본의 어느 섬이었다.
***
분화가 완전히 소멸하고.
탈출용 게이트가 열렸다.
내가 구지상을 업고, 고주연과 길버트가 정하나를 부축하며, 공략대는 게이트를 통해 이곳에서 탈출했다.
불가능할 것 같던 분화 공략이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없이 성공했다.
나 역시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뜻깊은 성공이었다.
“길, 길드장님…!”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진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준성의 옆에는 김신욱과 나쟈가 있었고, 그 뒤로 붉은 두건들과 후발대 에덴 길드가 있었다.
모두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던전을 공략하고 나면 지휘관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간 내가 정신을 잃어서 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무사한 만큼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나는 붉은 게이트 공략 선발대 지휘관으로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선발대 다섯 명 모두 무사 귀환했음을 알립니다. 붉은 게이트를 장악하고 있던 몬스터의 공략을 완료했으며, 사망자는 없습니다. 또한 부상자 두 명의 치유는 끝마쳤음을 알립니다.”
내 말에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몇몇은 서로를 껴안으며 기뻐했고, 붉은 두건을 벗어 던지며 축복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귀환을 기뻐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모든 헌터가 이 순간만큼은 동일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 고생과 피로감이 모두 증발할 만큼 보람이 느껴졌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 일에 자부심이 생겼다.
“길드장님! 살아서 돌아오실 줄 몰랐어요!”
진준성은 누구보다 빠르게 내게 달려오며 외쳤다.
그런데 살아서 돌아올 줄 몰랐다니.
아무리 내가 그동안 거의 죽어서 게이트를 나왔다고 해도 그렇지, 말이 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준성은 몸통 박치기를 하듯이 뛰어와 내게 매달렸다.
나는 넘어지지 않게 버티고 서서 말했다.
“무겁다, 내려와라.”
“어? 지상이 형… 부상자가 지상이 형이었어요?!”
진준성은 내 등 뒤에 업혀있는 구지상을 보며 말했다.
부상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지상이라는 게 한국인으로서 충격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미 치유를 해둬서 부상은 없다. 지쳐 잠들어 있을 뿐이다.
나는 진준성에게 구지상을 맡기며 말했다.
“구지상 씨랑 정하나 길드장 둘 다 쉬어야 하니까, 네가 치료 구역으로 데려다줘.”
“정하나 길드장님도요? 이, 일단 알겠어요…!”
진준성은 부랴부랴 정하나와 구지상을 데리고 치료 구역으로 이동했다.
수액 맞고 더위를 식히면서 푹 자고 나면 둘 다 금방 나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이, 어느새 다가온 김신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야, 나도 저쪽 비실이들 따라간다.”
“그래 부탁한다.”
김신욱은 두 사람을 끌고 가던 진준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정하나를 짐짝처럼 들어 올리더니, 진준성과 함께 치료 구역으로 향했다.
의외로 진준성과 김신욱의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닌지, 같이 걷고 있는데 둘 사이에 10m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뭐, 기대도 안 했다. 싸우지 않는 게 다행인 녀석들이다.
두 사람이 가고, 기둥 뒤에 숨어있던 나쟈가 우물쭈물하며 내게 다가왔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이제 류차오도 만성 길드장도 없습니다.”
“알아…. 류진이 데리고 나온 거 봤어….”
다행히 류진이 두 사람을 데리고 무사히 게이트를 빠져나왔던 모양이다.
빠져나온 곳에 사빈이 있었으니, 순조롭게 처리했겠지.
나는 나쟈에게 말했다.
“자유네요.”
“….”
나쟈가 무슨 이유로 류차오의 심복이 되어 스파이로 일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오늘로써 그녀의 이야기는 변환점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제 자유였다.
그렇게 되길 바라서 나는 만성과 싸운 것이다.
한참 대답이 없던 나쟈는 눈 밑이 붉어지더니, 나를 퍽 치고 뒤돌아 가버렸다.
웬만하면 귀엽게 보고 싶었는데 너무 세게 때려서 조금도 귀엽지 않았다.
나쟈에게 맞고 휘청이던 나를 붙잡은 건 길버트였다.
“남자가 여자를 울리면 쓰나.”
“남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십쇼.”
“아, 어쩔 수 없네. 내가 대신 달래주러 가야겠다.”
길버트는 곧 나쟈를 따라갔다.
그냥 나쟈랑 할 얘기가 있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능글맞은 아저씨가 괜히 내 핑계를 대고 있다.
그런 길버트를 지나쳐, 사빈이 날 향해 걸어왔다.
사빈은 여전히 에덴의 트레이드 마크인 흰 정장을 차려입고, 껌을 씹고 있었다.
녀석은 고개를 삐딱하게 두며 말했다.
“적당히 하고 나오라니까 왜 해결을 하고 나오지?”
나는 황당한 마음에 대충 대꾸해 줬다.
“무사 귀환을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언제 축하했어? 어이가 없네.”
“예, 저도요.”
황당하고 의미 없는 대화였다.
에덴이 설 자리가 없어져서 까탈스럽게 구는 것도 있겠지만, 이 녀석은 원래부터 말을 곱게 하는 법을 모르는 놈이다.
우리가 나오자마자 다들 무사한지 확인하던 사빈을 나는 분명히 봤었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사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뒤처리 정도는 해줄 테니까 가서 쉬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저를 위해주시네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가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치료 구역으로 향했다.
사빈을 놀려먹는 것도 좋지만, 내 옆에 있던 고주연이 피곤해 보여서 같이 쉬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치료 구역으로 가는 도중, 마주치는 사람마다 우리에게 축하와 감사를 표했다.
얼굴을 아는 붉은 두건들은 류진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나를 부둥켜안았다.
그중에는 임시작전본부에서 마주쳤던 붉은 두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 대장을 걱정하던 그들은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광경이었다.
치료 구역에 도달해서야 우리는 조용한 곳에 앉을 수 있었다.
구지상과 정하나는 간이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고, 진준성과 김신욱은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털썩 앉았다.
고주연은 치료 구역에 구비되어 있던 생수 두 통을 들고 와, 내게도 전해줬다.
생수병의 뚜껑을 따고 천천히 물을 들이켜던 고주연은 물을 삼킨 뒤, 어떤 전조도 없이 내게 말했다.
“언제부터였어.”
물음표 없는 단조로운 물음이었다.
나는 생수 뚜껑을 돌려 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생수가 식도를 따라 넘어갔다.
뱃속에 들어찬 열기까지 식는 듯했다.
고주연은 내게 ‘무감각’ 스킬에 대해 묻고 있었다.
언제부터 고통을 느낄 수 없었냐는 질문일 것이다.
분화 공략을 마쳤으니 이제 약속한 대로 동료들에게 내 비밀을 얘기해야 한다.
더는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덴에서 몬스터와 싸울 때, ‘무감각’이라는 서브 스킬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던 고주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주연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착잡한 표정을 갈무리했다.
이전에도 무감각 스킬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고주연은 이런 표정을 했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고주연은 느리게 고개를 올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네가 뭘 하든 개의치 않아. 그래서 묵묵히 네 뒤를 따라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나도 고주연을 쳐다봤다.
고주연이 한 말은, 기묘하게도 내가 회귀 전에 고주연을 보며 했던 생각과 동일했다.
강원도의 수호자였던 고주연의 뒤를 따라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고, 고주연과 던전을 공략하며 만족하던 때가 있었다.
운명이 뒤바뀌기라도 한 걸까.
고주연의 말에 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난 네가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고주연이 회귀 전에도 내게 했던 말이다.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고주연은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회귀 전의 기억들과 겹쳐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이 유치한 맹세가 다시 반복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손가락을 걸었다.
현세의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왔고.
모든 인류의 죽음을 경험하고도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남들과 똑같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해낼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가, 다시 한번 곁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