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이상한 종교 (1)
이틀 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붉은 두건들과 류진은 우리를 배웅해 주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길버트와 이방인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빈과 나쟈는 에덴으로 향했고,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밤하늘을 덮은 보랏빛 구름 사이를 천천히 횡단했다.
동료들은 드디어 한국에 돌아간다며 들떠 있었고, 나는 그 소란 속에서 편히 잠들었다.
멋대로 심연의 천리안이 발동되지도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다.
언제나 긴장된 상태로 살아서 수면이 이렇게 편한 일인 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이제서야 의지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토록 안락한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최후의 인류가 아니었다.
***
공항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정하나와 구지상이 있다. 플래시는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나는 까치집이 생긴 머리를 정돈하지도 않고 생각 없이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무수히 많은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유영 길드장님, 붉은 게이트 공략에 참여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붉은 두건의 수장과 이유영 길드장님의 체격이 똑같다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붉은 게이트 공략에 이유 길드원들이 참여한 거 아닙니까?”
나를 잡아먹을 듯이 몰아세우는 기자들의 질문과 눈부신 플래시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잠이 덜 깨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뭐, 어떻게 안 거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건가?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는 나를 대신해서 기자들의 앞에 선 것은 정하나였다.
“네에, 수호 길드장의 입국을 반겨주셔서 다들 감사하고요! 나머지는 노코멘트입니다.”
정하나는 이 틈에 얼른 가라면서 내 등을 떠밀었다.
저 멀리 우리를 마중 나온 윤지석과 신윤현이 있었다.
“더 강해져서 만나자고. 가라.”
“…감사합니다.”
곧 정하나가 있는 곳으로 안수연을 포함한 수호 길드원들이 합류했다.
수호 길드 사람들은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그 덕에 우리는 무사히 기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윤지석과 신윤현이 처음 보는 차 한 대와 함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연예인이나 탈 법한 풀사이즈 밴을 끌고 온 듯했다.
차 키를 들고 있던 윤지석은 진준성을 시작으로 우리의 상태를 한 번씩 살펴보더니, 멀쩡하다는 걸 파악하고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타시죠! 재회의 기쁨은 차 안에서 나누자고요.”
“아니, 잠깐. 이거 누구 차야? 우리 차야?”
진준성의 질문에 신윤현이 대신 대답했다.
“제가 샀습니다…. 이유 길드에도 이동 수단이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마음에 드시려나요…?”
신윤현은 내심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신윤현이야 뭐, 돈이 넘칠 만큼 벌고 있을 테니 차 한 대 새로 사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짐이라고는 침낭 하나밖에 없던 사람이 길드를 위해 새 차까지 뽑아준 건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는 길드장인 제가 사야 하는 건데, 고맙습니다 신윤현 씨.”
“아닙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이네요….”
신윤현은 순수하게 웃으며 차 문을 열어줬다.
우리는 널찍한 차에 올라탔다. 길드원들 모두를 태우고도 공간이 널널했다. 게다가 내부도 고급스러웠다.
다들 감탄하며 좌석에 앉는 사이, 윤지석은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차 끝내주죠? 제가 같이 가서 고른 거예요.”
“형 차도 아닌데 왜 자꾸 형 차처럼 말해. 부끄럽다, 부끄러워.”
“준성아 인성은 중국에 두고 왔니? 좋은 날에 조용히 가자.”
윤지석은 진준성과 투덕거리며 엑셀을 밟았다.
태권도 관장 빼고는 다 잘하는 윤지석답게, 큰 차를 운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윤지석의 안정적인 운전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속에서 길드로 향했다.
.
.
.
가던 중, 핸드폰을 하고 있던 김신욱과 구지상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녀석이 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먼저 구지상이 김신욱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김신욱 씨, 저한테 문자 보낸 거 뭐였어요?”
“내가 너한테 문자를 보냈다고? 꿈꿨냐?”
“보내셨잖아요. 「곧 간니ㅣ다ㅏㅏㅏㅏㅏㅏㅏ.」 라고.”
구지상은 친절하게 모음 하나하나를 제대로 발음하며 문자 내용을 읽어줬다.
그 덕에 녀석이 말하는 문자가, 내가 김신욱의 핸드폰으로 보낸 문자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술 취한 김신욱을 업고 오느라 힘들어서 그냥 눌리는 대로 썼더니 그 모양으로 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대로 잊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내가 보낸 거라고 말해야 하나?
그런데 김신욱이 먼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한 거야.”
“고양이 키우세요?”
“아니.”
“….”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구지상이 김신욱을 이해하길 포기한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했다고 밝혀봤자 뭔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진준성이 나를 툭툭 치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길드장님은 김신욱 헌터님이랑 어떻게 친해진 거예요?”
저런 이상한 놈이랑 어떻게 친해질 수 있었냐고 묻는 듯했다.
김신욱은 회귀 전부터 내게 가까운 사람이었다.
반면 진준성은 내가 주먹으로 패기까지 했을 만큼 사이가 나빴다.
나로선 지금 진준성과 내가 이렇게 말을 섞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안 친해. 그냥 내가 놀아주는 거야.”
“뭐 이 자식아?”
내 말을 엿들은 건지 김신욱이 대놓고 성냈다.
나는 녀석을 무시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진준성은 키득거리면서도 아직도 궁금한 게 있는지 또 질문했다.
“그럼 고주연 헌터님은요?”
이번에도 안 친하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대충 고주연 어머니한테 했던 변명을 한 번 더 써먹기로 했다.
“원래 팬이었어.”
“대한민국에 고주연 선수님 팬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 지석이 형이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다가.”
나는 대답하면서 구지상 옆에 앉아있는 고주연을 힐끔 쳐다봤다.
고주연은 다행히 우리 대화에 관심도 없는 듯 졸고 있었다.
한편 앞에서 운전하고 있던 윤지석은 자연스럽게 우리 대화에 끼어들어 한마디 얹었다.
“아 진짜 추억이네요. 전 그때 이유영 씨가 거지인 줄 알았잖아요. 완전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서 나한테 삼각김밥 하나 내밀었는데. 지금은….”
때마침 차가 길드 앞에 도착했다.
윤지석은 번듯하게 세워진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이 건물의 길드장님이시네요.”
다들 새삼스럽게 길드 건물을 올려다봤다.
제대로 된 사무소도 없고, 길드 이름도 없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든든한 길드원들과 번쩍거리는 길드까지 있었다.
뭔가 멋진 말이라도 해줘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아 입을 떼려는데, 멀리서 두두두두 소리와 함께 무언가 우릴 향해 달려들었다.
“크앙!”
백호 마수, 호두였다.
며칠 사이에 더 덩치가 커진 건지, 호두는 신윤현의 밴을 찌그러트릴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호두가 반갑게 달려든 건 안타깝게도 내가 아니라 진준성이었다.
진준성은 그대로 넘어가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크와앙!”
호두는 진준성을 잡아먹을 듯이 핥아대며 격하게 애정을 표현했다.
진준성이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운 건 처음이었을 테니,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보기만 하지 말고 살려달라고요!”
우리는 호두와 진준성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도록 두고 길드로 들어갔다.
보다 못한 구지상이 호두를 번쩍 들어서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아마 진준성 혼자 뒀어도 어떻게든 빠져나왔을 것이다.
길드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무원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전에 윤지석이 사무직을 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 같긴 한데, 벌써 알아서 고용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천혜 길드에서 보낸 최첨단 로봇이 코앞까지 마중 나와 우리를 반겼다.
『이유영 길드장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이거 청소 로봇 아니었나? 로봇은 대뜸 나를 선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길드원들은 의리 없게 피곤하다면서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혼자서 로봇을 따라갔다.
로봇은 그중에서 천혜 길드의 로고가 그려져 있는 상자 하나를 끄집어내, 내게 건네줬다.
『천혜 길드장님께서 언제 천혜 길드에 올 거냐고 물으십니다. 진준성 헌터와 마수를 데려오는 걸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알겠어. 이번엔 찾아갈 거라고 전해. 그보다 이 선물은 뭐야?”
『열어보면 안다, 고 하셨습니다.』
로봇은 그 말을 남기고서 청소하러 가버렸다.
나는 짐도 내려놓지 못하고 천혜 길드장이 준 선물부터 뜯어봤다.
저런 로봇도 보내는 사람이니, 꽤 좋은 물건이 들어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선물을 풀어보자, 그 안에는 붉은 두건이 있었다.
“….”
날 놀리는 게 틀림없다.
옆에 쪽지도 있길래 한 번 펼쳐봤더니, 짤막하게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곧 만날 일이 있겠네요.」
카린도 아니고, 무슨 예언자 같은 쪽지나 남기고 있다.
다만 녀석의 말은 실제로 이뤄진 적이 더 많아서 기분이 묘했다. 안 그래도 이번엔 정말 만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천혜 길드장의 쪽지를 넣어두고, 다른 선물들도 구경해 봤다.
핀란드 길드, 러시아 길드, 일본의 카타나 길드 등 타국에서 온 선물이 많았다.
뜯어서 살펴보니, S급 방어구 장갑과 S급 공격력 상승 반지, 카타나 길드에선 전통 검을 보내왔다.
전부 귀한 선물들이었다.
동봉된 편지를 읽어 보니, 각국의 대표 헌터들은 붉은 게이트를 공략한 게 나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래서야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 게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를 듣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답신이라도 써서 보내야겠네.’
선물과 동봉된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챙기던 중.
푸른색 포장지로 감싸진 묘한 선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새파란 포장지로 감싼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흔들어 보니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물건이 든 것 같은데, 운송장이 붙어 있질 않아서 안에 든 게 뭔지,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뜯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
포장지를 뜯어서 안에 들어있는 걸 꺼내 보니, 작은 유리병이 하나 있었다.
유리병 안에는 진주알이 들어있었고 태그가 하나 달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일본어로 알 수 없는 말이 적혀 있었다.
「水玉姫の涙」
난 일본어를 못한다.
하다못해 핸드폰이 있으면 찍어서 번역기라도 돌려보겠는데, 핸드폰도 없었다.
그런데 그 일본어가 적힌 태그 뒷면에 한국어로 눈에 띄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창랑교단.’
창랑교단이라는 곳에서 보낸 선물인 건가?
다른 쪽지도 없고 고작 이 진주 하나를 보내온 게 수상했다.
게다가 ‘창랑교’라면, 중국에서 들었던 수상한 사이비 종교 단체의 이름과도 동일했다.
그런 곳에서 왜 내게 선물을 보내온 거지?
그런데 그때, 윤지석이 내가 든 유리병을 보며 눈을 빛내고 다가왔다.
“어, 그거 완전 귀한 건데! 선물 온 거예요?”
“이게 뭔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요즘 MZ 사이에서 완전 핫하잖아요. 없어서 못 가지는 건데?”
“이게 뭔데요?”
윤지석은 유리병 속 진주를 한참 쳐다보며 답했다.
“한국에선 ‘인어의 눈물’이라고 부르던데요? 부럽다, 나도 갖고 싶었는데.”
진주를 쳐다보는 윤지석의 표정이 어딘가 묘했다.
조금 전까지 우릴 태우고 온 사무장의 맑은 눈빛은 사라지고, 탁하게 일렁거리는 눈동자가 진주를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