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헌책방과 최첨단 기계 (1)
다음 날.
나는 진준성, 호두와 함께 길드 1층 로비에 있는 청소 로봇을 찾아갔다.
내가 이 둘을 데리고 로봇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천혜 길드장한테 지금 가겠다고 전해.”
천혜 길드장이 만나고 싶어 했던 마수 호두와, 호두를 부화시킨 진준성을 데리고 천혜 길드에 가기 위해서다.
천혜 길드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쪽에서 정식으로 초대해 줘야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로봇이 정식으로 초대받는 법을 잘 알고 있을 듯했다.
『시스템 대기 중… 천혜 길드장님께 메시지를 보냅니다.』
내 말에 로봇은 청소하다 말고 순순히 시스템 모드를 바꾸더니,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날을 위해 이 로봇을 우리 길드에 보낸 게 틀림없었다.
진준성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로봇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청소 로봇 아니었어요…?”
“천혜 길드장이 보낸 건데 청소만 할 리 없지.”
“그것도 그래요.”
진준성도 천혜 길드장을 몇 번 봐서 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호두는 진준성의 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아져 있었다. 진준성의 옷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던 호두는 우리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캬옹’하고 울며 잔망스럽게 굴었다.
진준성과 내가 호두의 북실거리는 털을 긁어주던 사이, 로봇이 음성을 내보냈다.
『10분 뒤 이유 길드원 셋을 모셔갈 마수가 도착합니다. 옥상으로 향해 주시길 바랍니다.』
천혜 길드는 인천에 있다. 그리고 내 길드는 서울에 있다.
10분 안에 온다는 게 말이 되나?
마수가 빠르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하지만 천혜 길드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닐 테니, 나는 진준성, 호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진준성은 나를 얌전히 따라오면서 물었다.
“근데 천혜 길드는 왜 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왜 천혜에 가는지 여태 설명을 안 해줬다.
어제 기민쓰 영상을 보자마자 진준성을 찾았고, 내일 천혜 길드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진준성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윤지석과 창랑교에 대해 설명하면 이 녀석 성격상 잠도 못 자고 창랑교에 대해 알아볼 것 같아서 일단 말을 안 해줬는데, 오늘은 말해줘야 할 것이다.
“기민재 헌터 좀 만나야 할 것 같아서. 겸사겸사 호두 건강 상태도 보고, 너도 천혜 견학 한번 해보라고.”
“저야 소풍 가는 것 같고 좋지만, 기민재 헌터는 왜 만나려는 거예요?”
“칭다오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창랑교’ 기억해? 기민재 헌터가 그 종교에 대해 좀 알고 있는 것 같아.”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하여, 우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진준성은 나를 따라오면서 마저 물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창랑교에 대해 알아보시다니…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나 보네요. 몬스터랑 관련되어 있어요?”
머리가 비상한 녀석답게 앞뒤 관계를 빠르게 맞추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 뭣보다 윤지석 씨가 그 종교에 빠진 것 같다.”
“지석이 형이요? 윤지석이 형이요?”
“그래. 이제 왜 한국 오자마자 기민재 헌터 만나러 가는지 알겠지?”
“네….”
진준성은 경악하고 있었다. 이 녀석도 윤지석이 창랑교에 당했다는 건 몰랐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국에 가 있는 사이에 윤지석이 당했다고 봐야 한다.
하필 그 시기에 내 길드의 사무장이 당한 걸 보면,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진준성에게 말했다.
“신윤현 씨가 지금 거기에 대항할 포션을 만들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신윤현 헌터님 덕분에 그나마 살았네요. 어우 진짜, 돌아오면 한 소리 해야겠어요. 뭐 하는 거야 태권도 관장이라는 사람이?”
진준성은 투덜거리면서도 어딘가 찜찜해 보였다.
그래도 예전의 유약한 진준성과는 다르게, 불안해 보이진 않았다.
중국에서의 경험이 진준성을 성장시킨 모양이다.
그때, 저 멀리서 우릴 향해 날아오는 검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날아오더니, 곧 굉장한 풍압을 일으키며 옥상에 안착했다.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은 검은 점의 정체는 천혜 길드장의 마수였다.
검은 드레이크가 금색 눈을 번뜩이며 우리를 쳐다보더니, 콧김을 내뿜으며 순순히 바닥에 엎드렸다.
무거운 파충류의 꼬리가 우리에게 얼른 올라타라는 듯 살랑거렸다.
이 난폭한 몬스터를 이렇게 순진한 마수로 만들다니.
확실히 천혜 길드장의 능력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먼저 진준성과 호두를 드레이크의 등에 태우며 말했다.
“천혜 길드장은 너랑 호두한테 관심이 많아. 널 길드로 들이고 싶어 해. 그러니까 그 사람 말에 너무 넘어가진 마.”
“저도 더이상 애가 아니라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준성은 의기양양하게 답하는 것과 달리 드레이크의 비늘을 꽉 잡으며 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 진준성을 따라 품속에 매달려 있던 호두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러면서 용케 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녀석들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아라. 잘못하면 즉사다.”
“아 겁주지 마세요…! 안 그래도 무서운데!”
뭐, 내가 있으니 즉사는 안 할 것이다.
우리가 전부 올라타자, 드레이크는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녀석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르며, 피부가 풍압에 짓눌릴 정도로 빠르게 상공을 가르고 천혜로 향했다.
차마 아래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우, 우아아아아악!!”
진준성의 비명이 저 멀리 흩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레이크는 총알처럼 날아 서울을 벗어났다.
이 마수가 향한 곳은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개항로’였다.
개항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인천의 유명 관광지.
이 개항로 곳곳에 천혜 길드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
***
쿠웅
드레이크는 목적지에 도착하며 천천히 바닥에 앉았다.
도착한 곳은 개항로에서도 유명한 책방 골목이었다.
우리는 어느 헌책방 앞에 내려섰다.
드레이크는 우리를 내려주고 콧김을 한 번 내뿜더니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사라졌다.
아마 천혜 길드장의 마수들이 있는 사육장으로 갔을 것이다.
진준성은 드레이크가 날아가는 걸 구경하며 말했다.
“왜 여기에 내려준 거죠? 여기에 있으면 천혜 길드장님이 만나러 오신대요?”
“아니, 이 책방이 천혜 길드로 향하는 통로 중 하나야.”
나는 눈앞에 있는 헌책방을 가리켰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곳은 겉보기엔 오래된 책방처럼 보이지만, 천혜 길드장이 몬스터에 관한 연구 일지를 보관해 두는 곳이다.
협회에선 아직 몬스터와 헌터에 대한 연구를 제약하고 있다.
빡빡하게 단속하는 건 아니지만, 5대 길드 중 하나인 천혜 길드가 협회의 눈 밖에 난 짓을 했다는 걸 숨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천혜 길드장은 이 거리 곳곳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어, 협회 몰래 연구 일지 등을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반드시 천혜 길드로 향하는 숨은 통로가 하나씩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진준성을 데리고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고서적에서 풍기는 종이 냄새와 관리가 잘된 나무 책장의 목재 향, 약간의 먼지 냄새가 향수를 자극했다.
눈이 편한 은은한 조명과 책을 보관하기 위해 조절된 적절한 습도가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편해지게 만드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평화를 깨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왔네요. 기다리다가 지칠 뻔했어요.”
책방 주인이 앉아 있어야 할 곳에 있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수상하게 생긴 녀석이 있었다.
성별과 나이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목소리. 얼굴의 반은 후드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는 거라곤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꼬리밖에 없다.
그 때문에 풍기는 신비한 분위기는 정말이지, 여전했다.
“기다리면서 체력 단련이라도 하시지 그랬습니까.”
여기에 허구한 날 상주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어차피 드레이크가 도착할 타이밍에 맞춰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하자 녀석은 웃으며 답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놓고 쌀쌀맞네요, 이유영 길드장.”
“원하시는 대로 제 길드원과 마수도 데려왔는데, 이 정도면 다정하죠.”
“어쩜 말 한마디를 안 질까.”
진준성은 낯가림은 여전한 듯 내 뒤에 숨어서 천혜 길드장을 힐끔대고 있었다.
그런 진준성을 따라 호두도 진준성의 옷 속에 숨어서 천혜 길드장을 힐끔거렸다.
천혜 길드장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내 뒤에 숨어있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반가워요, 진준성 헌터. 만나고 싶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진준성은 어색하게 대꾸하며 내 옷자락을 잡았다.
천혜 길드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준성에게 고정되어 있어서 무서운 것 같았다.
나는 진준성을 가리며 말했다.
“제가 온 이유는 알고 계실 것 같은데.”
“내 초대에 응해준 게 아니었나요?”
“다른 이유도 있죠. 아시잖아요.”
“그럼… 창랑교 때문인가. 후후.”
역시나 알고 있었다.
천혜 길드장은 천천히 일어나 벽 쪽에 세워진 책장으로 걸어갔다.
진준성은 천혜 길드장의 뒷모습을 보며, 내 옷깃을 끌어당기고 속닥거렸다.
“천혜 길드장님은 저희가 창랑교 때문에 온 건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원래 아는 게 많은 사람입니다. 준성 학생이랑은 다른 방향으로 머리가 비상하죠.”
그래서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진준성은 내 말에 호기심이 생긴 건지, 책장에서 책을 하나 뽑고 있는 천혜 길드장을 흘긋거렸다.
천혜 길드장은 눈에 띄게 낡은 책 하나를 뽑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살짝 누르자,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며 책장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곧 책장 뒤에 숨겨진 통로가 나타났고, 천혜 길드장은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따라와요. 천혜 길드로 가죠.”
진준성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을 빛냈다.
천혜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선 상당히 삼엄한 경비를 거쳐야 해서 이 비밀 통로로 가는 게 훨씬 빠르다.
나도 인류가 멸망한 뒤에는 이 책장 뒤의 통로로 천혜 길드를 찾아갔었다.
이곳을 천혜 길드장이랑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주인이 직접 열어준 비밀 통로에 들어가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
안쪽 통로는 조금 전의 헌책방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이동되는 컨베이어 벨트가 바닥에 깔려 있었고, 벽과 천장은 모두 은빛 메탈로 만들어져 기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천혜 길드장은 자연스럽게 컨베이어 벨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고 우리는 녀석을 따라 이동했다.
지잉 지잉하는 기계 소리만 통로에 울려 퍼지던 중, 천혜 길드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에덴과 만성에 나타난 몬스터, 어떤 몬스터였죠? 스몰 토크 겸 듣고 싶은데.”
“전혀 스몰 토크가 아니잖습니까.”
뭐, 어차피 이 사람에게 말해줄 생각이 있었다.
눈앞에 뛰어난 몬스터 연구가가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게 더 손해였다.
게다가 천혜 길드장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나는 아이템창에서 ‘뿌리 조각’이라는 아이템을 소환하며 말했다.
“3재해라는 몬스터입니다. 야생의 몬스터처럼 던전 밖에서 나타난 몬스터고,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자연재해의 능력을 다루기 때문에 상당히 강합니다.”
“3재해라… 에덴과 만성에서 한 마리씩 해치웠을 테니 이제 남은 재해는 하나뿐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거, 둘을 해치우며 나온 보상템입니다.”
나는 ‘뿌리 조각’을 천혜 길드장에게 보여줬다.
진준성은 자기도 처음 본다면서 내가 소환한 뿌리 조각을 같이 구경했다.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긴 나뭇가지라 던전 보상템으로 보기도 어려웠다.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온 것처럼 생겼으니까.
하지만 천혜 길드장은 그 평범함에 주목하는 듯했다.
“이런 게 보상템이라면, ‘보상템’이라는 것 자체의 의미를 흐릴 만큼 중요한 물건일 수도 있겠네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게 되는 관점이었다.
어떤 기능도 없는 평범한 물건이 보상템이라면, ‘보상템’의 의미가 흔들린다.
시스템이 그런 실수를 할 수 없을 테니 이건 시스템의 영역 밖에 있는 물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반드시 내게 전해줘야 했던 물건인 것이다.
역시 이 아이템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천혜 길드장뿐일 것 같았다.
나는 녀석에게 뿌리 조각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아이템이 무슨 성분인지 감정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문이잖습니까.”
“전문이죠. 하지만 공짜로 해주긴 싫네.”
“…얼마면 됩니까.”
내 말에 천혜 길드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컨베이어 벨트가 우리를 도착지까지 모셔다 줬고, 도착지에는 굉장히 사이버틱하고 과학 혁명적인 두꺼운 철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천혜 길드장은 그 위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돈은 필요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이유 길드장이 협회 말고 내 편을 들어주는 거예요.”
협회 말고 자기편을 들어달라니, 그게 무슨 의미지?
회귀 전의 천혜 길드의 말로를 떠올려 보면 도저히 좋게 해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뿌리 조각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건 분명 천혜 길드장 뿐이라 선뜻 못한다고 답하기도 어렵다.
내가 갈등하던 순간, 천혜 길드로 가는 두꺼운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