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5
25화. 걸어서 악몽 속으로 (3)
해초가 일렁이고 색색의 산호들이 암벽에 붙어 환상적인 바닷속.
뿌연 햇빛이 들어와 검푸른 물속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소리마저 가라앉을 것 같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나는 보스 몬스터, ‘꿈달팽이’와 마주 보고 있었다.
『왔구나….』
심해처럼 웅장해서 어딘가 나른해지는 목소리다. 마치 거대한 물 덩어리가 말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귀찮다는 듯, 몬스터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와야지, 그럼. 몬스터는 사람 기억 들춰서 꿈으로 보여주면 재밌나 봐?”
『이유영….』
“왜 이 새끼야.”
『……너는 왜 저항하지? 받아들이면 편한데….』
이건 또 뭔 개소리일까.
“내가 편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죽었겠지. 대답해, 너희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거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생각을 포기해, 이유영… 그럼 편해질 거야…….』
눈앞의 거대한 민달팽이는 그 말대로 생각을 포기한 것처럼 물결을 따라 저항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저 거대한 몸체가 아니었다면 해류에 휩쓸렸을 것이다.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하체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서있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다.
“너희 대장이 누구야? 7대죄 중 하나인가?”
『……….』
“오류일 것 같진 않거든. 몬스터들의 왕이신 분이 이런 말단 새끼들을 관리하진 않겠지.”
『……생각을 포기하라니까…….』
순간, 거대한 민달팽이가 몸에서 희뿌연 점액을 방출했다.
물속에서 순식간에 퍼져가던 입자는 내가 있는 곳까지 점점 밀려오고 있었다.
느리지만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포기하게 해줄게….』
그래, 늘 생각하는 거지만 몬스터랑 대화해봤자 의미가 없다.
몬스터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결론이 ‘인간을 죽이겠다’이다.
그런데도 대화해서 뭐라도 알아내보려는 내 자신이 그야말로 인간 같아서 우스웠다.
나는 곧장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바다에서 물을 사용하는 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저 점액이 내 근처로 오지 않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솨아아
뻗어나간 심판의 물이 희뿌연 점액을 밀어냈다.
저 점액은 산성 물질이다. 피부는 물론 호흡기까지 침투해 몸을 녹일 것이다.
생명의 의지가 치유해주겠지만, 굳이 지치는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저걸 어떻게 죽일까.’
공간이 바다라서 심판의 물로는 한계가 있다. 물 속이니까 괴력도 크게 의미 없을 것이다. 대단한 무기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내게 아무런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좀 망설여질 뿐.
이건 최후로 미뤄두는 게 낫다.
『포기해…….』
녀석은 내게 점액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몸에서 촉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징그럽게 솟아나던 여러 개의 촉수가 느리고 무겁게 나를 향해 날아왔다.
부우웅
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저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꽤 아플 것 같았다.
생명의 의지가 있다고 해서 처맞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오랜만에 아이템 창을 열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강철이의 비늘이 촘촘히 박힌 방패. 내 키와 비슷할 만큼 크지만, 막상 들면 무겁지 않았다.
꿈달팽이는 원래 D급 몬스터다. 지금은 B급으로 올랐겠지만, 내겐 B급의 공격은 반드시 막아낼 수 있는 이 방패가 있었다.
촉수도 저 녀석 몸의 일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깨지듯이, 주먹으로 철을 때리면 좀 아플 것이다.
텅!
어김없이 치고 들어온 촉수가 방패를 때렸다.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A급 아이템이 충격을 알아서 흡수했다. 들고 있는 내 팔이 아플 일은 없다. 하지만 쟤는 아프겠지.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날아다니는 촉수들을 하나씩 방패로 쳐냈다.
텅! 텅!
원래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나는 방패로 최선의 방어를 하며, 꿈달팽이가 집중력을 잃고 공격 패턴이 망가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휘익!
바로 지금.
나는 날아오는 촉수 하나를 방패로 쳐내는 척하며, 그 위에 올라탔다.
[ [C] ‘해치의 비늘 검’을 소환합니다. ]강철이랑 싸우다가 망가진 단도지만, 아직 이것만큼 잘 드는 칼을 얻지 못했다.
나는 촉수를 칼로 찍어가며 녀석의 급소, 더듬이가 있는 방향으로 기어 올라갔다.
『떠, 떨어져……!』
이 아둔한 녀석도 내가 자신의 급소를 노린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내가 매달린 촉수를 이리저리 흔들며, 다른 촉수들을 전부 내가 있는 곳으로 집중해 공격했다.
부우웅!
나는 칼을 촉수에 깊게 박아넣은 채로 안 떨어지고 버텼다. 등에는 방패를 메고 몸을 보호하면서, 굴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터엉!
방패가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나를 보호했다.
방패가 나를 덮을 만큼 크지 않았다면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
“이, 뭐. 이유영? 내가 이유영이기는 해.”
녀석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몸에서 다시 점액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내가 올라타고 있던 촉수에서도 미끈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거 잘못하면 미끄러지겠는데.’
나는 촉수에 칼을 깊숙이 꽂은 채로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나.
나는 손과 발을 촉수에 찔러 넣어 뚫어버리고, 짚고 디딜 곳을 만들었다.
몬스터한테 데미지도 주고 일석이조인 방법이다.
다만 그 산성 점액이 손과 발을 축축할 만큼 적셨다.
거기다 호흡기를 통해서 침투한 건지, 식도부터 위장까지 전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컥…!”
쿨럭거리며 무언가를 뱉어냈더니 핏덩어리가 나왔다.
마치 성질 사나운 고양이가 뱃속에서 난동을 피우는 기분이다.
속이 벗겨지고 피가 거꾸로 샘솟는 것같이 더럽게 아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은 징그럽게 녹아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할 이유는 없다. 내겐 생명의 의지가 있으니까.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생명의 의지가 벗겨진 살갗 위로 새 살을 새로 만들어냈다.
녹아내린 내장이 복구되며 타들어 가던 고통이 점차 줄어들었다.
내가 괜히 최후의 인류가 아니다.
『우으으윽……!』
촉수의 뿌리까지 오른 나는 곧장 민달팽이의 더듬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넘쳐흐르는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들고 있던 단도로 크게 베었다.
스각!
이제 나머지 한쪽만 베면 끝이다.
그런데 그때, 꿈달팽이가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방대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대한 동굴 속에 갇혀,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처럼 머리가 울렸다.
“이런….”
서둘러 남은 더듬이 하나를 잘라내야 한다.
더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남은 더듬이를 향해 팔을 뻗어, 붙잡으려던 순간.
콰르륵!
꿈달팽이의 몸이 부글거리며 물거품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내가 잡고 있던 더듬이도 거품이 되어서 흩어졌다.
그 파동으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강력한 해류가 덮쳤다.
‘뭐야? 안 돼, 거의 다 됐는데…!’
나는 그대로 물거품에 떠밀려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뜨면 흰색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이 익숙한 흰색 세상의 중앙에는 내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마치 내 스킬, 자각몽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
이 빌어먹을 데자뷰 속에서 나는 이성을 놓지 않아야 했다.
꿈에 들어온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존재와 정신력 싸움을 시작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누운 채로 자문자답을 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나?
―그야 꿈이지. 뭔 헛소리야?
단계를 다시 밟아서 꿈달팽이한테 가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다. 귀찮아서 포기한 놈이 같은 절차를 다시 시도하려 들진 않을 테니까.
왜 자각몽 단계로 돌아왔지?
―돌아온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이것도 그 빌어먹을 달팽이 새끼가 만든 함정일 게 뻔하다.
그럼 지금 할 일은?
―이건 정해져 있다. 당장 꿈에서 깨기 위해 몬스터를 잡아 죽여야 한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명의 의지 덕분에 몸도 무사하고, 정신도 제정신이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싸워야 한다.
‘결국 그 방법을 써야 하나.’
처음부터 썼다면 금방 꿈달팽이를 죽이고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방법.
하지만 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스킬창을 열어 그 ‘방법’을 확인했다.
….
– 목록
(new!)
강철이에게서 얻은 ‘열풍’ 스킬.
아직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스킬이지만, A급 몬스터의 능력인 만큼 강력할 것이다.
‘게다가 이놈한테 직빵인 능력이기도 하고. 말려 죽이는 광역 스킬이니까.’
그런데도 안 쓴 이유가 있다.
처음 쓰는 스킬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능력이 강하고 단순하지 않을수록, 스킬에 먹히는 기분까지 든다.
이 ‘열풍’은 A급 몬스터의 능력인 만큼 몬스터한테 집어삼켜지는 느낌이 들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아주 가끔 헌터의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스킬은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만약 이 녀석들이 7대죄라면 앞으로도 다섯 마리나 남았다는 말인데, 나한테 일 나면 큰일이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순간, 몸속에 끓는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열이 차올랐다.
몸 바깥으로 김이 나는 것처럼 붉은 아지랑이가 터져 나왔으며, 열감기라도 걸린 불쾌한 기분에, 피가 팔팔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적응하듯이 집중하면, 본능적으로 이 아지랑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진 오케이.’
나는 열을 계속 응축하며 생각했다.
만약 이 공간이 진짜 내 자각몽이고, 저 일기장이 내 일기장이 맞다면. 언제든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불태워도 다시 꿀 수 있는 꿈이란 말이다.
내가 직접 쓴 일기장이니 당연하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이 꿈은 깰 수 없어.’
처음 병원에 들어갔을 때, 마치 병원 자체가 몬스터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흰색 입자가 바로 몬스터의 정체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내가 해치웠던 꿈달팽이는 물거품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흰색 입자처럼 잘게 부서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보다도 더 잘게 부서져 공기 그 자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즉, 이 공간과 공기 자체가 몬스터다.
그러기 위해선 모조리 태워야 한다.
피가 끓어 넘치는 듯한 느낌에 모든 걸 맡기며 에너지를 응축했다.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좀 더, 좀 더 끓어야 한다. 더 많이. 더 잔뜩.
“달팽이 새끼, 죽을 준비해. 유언은 없어? 없겠지. 몬스터니까.”
체온계를 갖다 대면 열을 재기도 전에 녹아버릴 것처럼, 몸에서 미친 듯이 열이 올랐다.
이젠 그 열기가 이성마저 태울 것 같을 때쯤.
나는 모든 걸 내려놓듯이 그 에너지를 방출했다.
화아아악!
터져 나온 붉은 아지랑이가 순식간에 공간을 뒤덮었다.
중앙에 놓인 책은 열풍에 휩쓸리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새하얀 바닥, 벽, 천장이 모두 붉은 아지랑이에 뒤덮인다.
화르륵!
나는 혈관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더 뜨거운 열풍을 방출했다.
아예 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것처럼.
이젠 내 자신조차 불타는 것 같던 때, 어디선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아…!! 아아아악!!! 내 마지막 분신이!!!!』
그 물웅덩이 같은 몬스터의 소리가 불에 휩쓸리듯 사라져갔다.
이 공간은 화마에 휩싸인 것처럼 모든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하지 않을 거야!!!』
거 봐, 몬스터는 유언 같은 거 안 남긴다니까.
어차피 사람 죽인다는 결론만 낼 뿐이다.
내 승리다.
놈이 사라지자 ‘꿈달팽이’ 공략법이 적힌 일기장이 팔랑거리며 내 손 안으로 떨어졌다.
익숙한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