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부탁 (1)
나는 천혜 길드장이 내게 맡긴 서류 봉투와 ‘공주의 물’을 챙겨서 협회로 향했다.
협회 앞에는 김상엽 팀장과 박종훈이 있었다.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 올백 머리와 위압감 있는 체형.
두 사람은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오셨습니까, 이유영 길드장님.”
“오오, 얼굴 완전 폈는데. 국제 스타 다 됐네, 다 됐어!”
박종훈이 내게 친근하게 인사해 오자, 김상엽은 그의 뒷덜미를 잡아끌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죠.”
김상엽은 한숨을 쉬며 박종훈을 질질 끌고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이전보다 더 친해진 듯했다.
이렇게 일상적인 풍경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나는 편한 기분으로 협회 문을 넘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상엽의 말에 나의 편안한 기분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이유영 길드장님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어떻게 아신 건지 조금 전 협회장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협회장실로 이유영 길드장님을 모셔 오라고 하십니다. 우선은 사적으로 뵙는 거라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김상엽이 이렇게 체념하듯이 말하는 건 처음 봤다.
도나리한테는 안 만난다고 우겨봤자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도나리를 만나면 붉은 게이트 공략 공적에 관해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협회장에게 이 탄원서도 줘야 하고, 할 말도 있으니 만나긴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살짝 한숨이 나오긴 했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만나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김상엽은 나를 상당히 염려하고 있었다.
그만큼 협회장이 화난 모양인데. 조금 두려워졌다.
나 혼자 갔다간 도나리의 말에 뼈와 살이 분리되어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김상엽을 흘긋 보며 물었다.
“김상엽 팀장님, 혹시 저한테 은혜 갚아주실 생각 없습니까?”
솔직히 김상엽이 내게 해준 게 더 많지만, 지금은 뻔뻔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다.
김상엽이랑 같이 도나리를 만나러 간다면 적어도 김상엽은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김상엽도 내가 변이를 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으니까, 은혜를 갚아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박종훈이 끼어들며 말했다.
“뭔 은혜? 은혜는 형이 팀장님한테 갚아야 하는 거 아냐?”
양심을 찌르고 들어오는 팩트라 저절로 말문이 막혔다.
김상엽이 변이에 당했다는 건 일급 기밀이었으니, 박종훈 눈에는 내가 대뜸 은혜 갚으라고 하는 이상한 놈으로 보였을 거고. 솔직히 사실이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김상엽은 박종훈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짓하며 얘기했다.
“이 녀석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늘도 은혜를 갚고 싶어서 길드장님을 부른 거니까요. 안 그래도 드릴 게 있었습니다만….”
김상엽은 눈앞에서 아이템창을 열더니, A급 아이템 ‘스킬 결정’이라는 아이템을 소환해 내게 건네줬다.
스킬을 주입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1회에 한하여 주입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희귀템이다.
거기다가 김상엽의 스킬을 주입했다면 이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건가?
박종훈 말대로 평소에 은혜를 더 많이 입은 건 나인데.
“저의 서브 스킬인 ‘흑백 논리’ 스킬을 주입했습니다. 이유영 길드장님이라면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부족하지만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것이니, 편히 받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준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상엽의 흑백 논리 스킬은 거짓말을 분간할 수 있는 대단한 스킬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완벽한 거짓말 탐지기 아이템이 있다면, 어디서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김상엽은 내가 조금도 사양하지 않는 걸 보면서 만족한 듯이 말했다.
“따로 부탁하실 게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답례까지 받아놓고 염치가 없어지네요. 그래도 팀장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그냥 말하겠습니다.”
정말로 고마웠지만 도나리에게 혼자 가기 싫다는 마음이 이겨버렸다.
나는 김상엽에게 천혜 길드장에게서 받은 탄원서와 헬스장에서 가져온 생수, ‘공주의 물’을 보여주며 말했다.
“심각한 일이 생겼습니다.”
***
창랑교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달하자, 김상엽은 박종훈에게 즉시 창랑교와 ‘공주의 물’의 생산처와 유통 경로를 확인해 보라고 대응팀에 보냈다.
대응팀이 나서게 될 거라고 신뢰하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김상엽이 빠르게 주도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이후 김상엽과 나는 곧장 협회장실로 향했다.
협회장실에 들어가자, 도나리와 부협회장 서정현이 함께 있었다.
도나리는 웬만하면 서정현과 같이 안 있는데,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왜 서정현까지 부른 건지 알 것 같아서 솔직히 긴장됐다.
서정현을 이용해서 내게 수준 높은 인신공격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은 한바탕 잔소리라도 쏟아부을 것 같은 분위기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김상엽 뒤로 몸을 숨기며, 먼저 말했다.
“부르셨다고 들었는데, 이 분위기는… 뭡니까?”
“쓸데없는 인사는 생략하죠. 할 말이 많습니다.”
“이왕이면 생략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됐고, 이유영 길드장. 붉은 게이트 공략을 우리나라 헌터들이 다 해 먹었다는 사실을 숨긴 이유가 뭡니까? 하는 수 없이 뒤처리를 도와드렸습니다만, 여태 이해가 안 가서요. 질문이나 해봅시다.”
쏟아지는 비난에 나는 김상엽 뒤에 몸을 완전히 숨겼다.
이럴 땐 침묵하는 게 낫다. 뭘 말하든 서정현은 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상엽이 나를 대신해 한마디 해줬다.
“이유영 길드장님이 업적을 포기하신 덕분에 붉은 두건을 좋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국가 입장에선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분명 좋은 일을 하셨다 생각합니다.”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잖나, 곰탱이.”
이번엔 도나리가 김상엽을 매도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김상엽만 혼날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김상엽의 뒤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협회에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짓을 번복할 수는 없으니, 웬만하면 본론으로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절 부른 이유가 혼내는 것 말고도 따로 있으실 것 아닙니까.”
“곰탱이 뒤에 숨었던 주제에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는군.”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안 미안하니까 어쩔 수 없다. 난 연기를 못하니까.
난 두 녀석의 매도를 견뎌내며 일단 자리에 앉았다. 김상엽도 내 눈치를 보면서 옆에 앉았다.
어쨌든 협회장 쪽도 나를 비난하는 것보단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
서정현은 보란 듯이 한숨을 늘어지게 쉬더니, 말했다.
“이쪽은 얘기가 좀 기니까, 이유영 길드장이 들고 있는 서류 얘기부터 하죠.”
스킬을 쓴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머리가 좋은 건지….
단번에 내 의도를 파악한 서정현은 탄원서가 든 서류를 내놓으라는 듯이 손을 까딱였다.
재수가 없어서 나는 탄원서를 도나리에게 넘겼다.
“천혜 길드장님이 보낸 탄원서입니다. 슬슬 받을 때가 됐다는 걸 두 분도 알고 계셨을 거고요.”
“이걸 네가 전해준다는 건 그 작자의 뜻에 동의한다는 건가?”
“비슷합니다. 천혜 길드와 동맹 관계를 맺었거든요.”
내 말에 김상엽과 서정현은 꽤 놀란 것 같았다. 도나리는 어디 한 번 더 떠들어 보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도나리의 눈치를 좀 보다가 적당히 답했다.
“협회에서 천혜를 걱정할 일 없도록 제가 관리할 겁니다.”
“네가?”
“예. 제가요.”
마치 네가 뭔데? 라는 듯한 물음에도 나는 꿋꿋하고 답했다.
천혜 길드장이 바란 것도 이런 태도였을 것이다.
도나리는 계속해서 나를 쳐다봤다.
좀 무서워서 나는 녀석의 시선을 피했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내 옆에 있던 김상엽이 보다못해 한마디 거들어줬다.
“…협회장님. 저도 이유영 길드장님과 천혜 길드장님의 목소리를 협회가 무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넌 또 왜?”
“탐구심이라는 게, 법으로 막는다고 막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차라리 요구를 들어주는 방식으로 제약을 푸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협회가 우위에 있음을 알리는 방식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이유영 길드장님이 그분이 폭주하지 않도록 막아주신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사항이지 않습니까.”
도나리의 살벌한 시선이 내게서 김상엽에게로 옮겨 갔다. 서정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상엽은 두 녀석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온몸으로 견디며 손에 땀이 나는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까지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는데, 김상엽 덕에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협회장은 결국 탄원서가 적힌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한마디 중얼거렸다.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죄다 변해서는. 시끄러워. 다음 안건이나 말해.”
이건 도나리의 언어로 긍정적으로 봐준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흔쾌히 들어줄 줄 몰라서 떨떠름했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도나리도 변한 걸까?
역시 변화는 한쪽이 먼저 변해야 시작되는 걸까.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공주의 물’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창랑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먼저 서정현이 운을 뗐다.
“안 그래도 당신을 부른 게 그 사이비 종교 때문입니다. 창랑교.”
“그럼 이미 협회에서 대응하고 있었던 겁니까?”
“민간인을 상대로 퍼지고 있어서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한만 있었으면 이미 전부 체포했을 텐데….”
협회장과 부협회장이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스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권한만 있었다면 전부 체포했을 거라는 말은 좀 매를 부르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나리가 길게 한숨을 쉬며 서정현에게 딱밤을 한 대 놓았다.
탕!
딱밤을 놨는데 총성 같은 소리가 났다.
서정현은 앉아 있던 소파 위에서 고꾸라졌고, 김상엽과 나는 알아서 몸을 사리기 위해 못 본 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나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얘기했다.
“창랑교의 교주는 헌터다. 이 건은 협회가 나서야 하는 일이 맞아. 하지만 공식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이유영 네가 나서야 한다는 거다.”
아직 창랑교의 교주가 헌터라는 게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니, 협회는 나서기 어렵다. 다만 협회원이 아닌 내가 창랑교 교주는 헌터라는 사실을 밝히면, 협회는 공식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된다.
나는 도나리에게 확답을 듣기 위해 물었다.
“창랑교의 교주는 스사노오 길드의 길드장입니까?”
“용케 거기까지 눈치챘군. 난 너한테 일본에 가서 스사노오 길드를 무너트리고 오라는 부탁을 하려고 한다.”
“부탁이요?”
“그래, 부탁.”
스사노오는 카타나 길드 다음으로 거대한 일본의 길드다.
게다가 그곳엔 내 친구였던 헌터도 있다.
그런 곳을 무너트리라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도나리가 내게 명령도 아닌 ‘부탁’을 하고 있다.
그만큼 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대표 헌터이자, 세계적으로 이름값이 알려진 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강남 길드와 구원 길드, 에덴이랑 만성도 다 뒤집어 엎어놨잖아. 하나만 더 뒤집어.”
“길드가 무슨 화투패도 아니고 쉽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해낼 거잖아, 너는.”
정말로 도나리답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탁을 거절할 만큼, 내가 속 좁은 놈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