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부탁 (2)
협회에서 돌아온 뒤.
나는 신윤현에게 서정현과 도나리가 스킬을 써서 분석을 마친 ‘공주의 물’을 전해줬다.
신윤현은 벌써 ‘인어 공주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진주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었다.
상태이상의 종류를 파악하는 연구로, ‘공주의 물’은 신윤현의 연구에 박차를 가해줄 듯했다.
신윤현에게 무언가 발견하면 보고하겠다는 말을 들은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먼저 카타나 길드의 초대장.
길드로 돌아오는 길에 내 앞으로 도착해 있던 초대장을 발견했다.
다다음 주에 카타나 길드에서 여는 작은 비무대회에 참가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주 주말에는 일본으로 가야 한다.
야마다 미츠하와 목숨을 건 스파링을 해서 그런가, 비무대회가 좀 고깝게 보였다.
하지만 카츠라 료와 검을 부딪쳐 보는 건 내게 이득이다.
녀석은 내가 아는 녀석들 중에서 가장 우직하고 화려하게 검을 다루는 헌터다.
그런 녀석과 비무를 겨뤄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다.
아마 카츠라 료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해서 초대를 핑계로 부랴부랴 비무대회를 연 거겠지.
일본으로 출국하기까지 남는 시간은 일주일.
나는 결국 도나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고, 스사노오를 내 손으로 무너트리라는 임무를 떠안았다.
내가 아무리 강남 길드, 만성 길드를 무너트린 유사 길드 폭파범이라고 해도, 또 새 길드를 무너뜨리는 건 심적으로 부담감이 컸다.
그래도 윤지석을 구하려면 창랑교는 해결해야 한다.
윤지석뿐만 아니라, 헌터가 종교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신도로 만드는 일은 멈추게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스사노오 길드가 무너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괜히 심란하네.’
스사노오는 내 친구의 아버지가 만든 길드다.
그 녀석이 왜 ‘미즈히메’ 흉내를 내며 인어 공주 놀이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내겐 그 녀석과 친구였던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 길드를 내가 주동적으로 움직여서 부수는 게 달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는 법이다.
일단 인어공주 놀이를 하고 있는 그 녀석을 만나, 정신 차리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또… 길드를 비워야겠군.’
이번에는 내 길드원들을 데려갈 수 없었다.
길드원들은 한국에 남아서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내 길드원들은 강하지만 아직 약해서 오류와 싸우기엔 한참 부족하다.
한계를 넘어 강해져야 이전 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다.
헌터가 한계를 넘어 강해지는 방법은 결국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다.
창랑교와 싸우는 것보다, 몬스터와 싸울 수 있도록 길드장으로서 도와줘야 했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회귀자라는 것을 이용할 순간이다.
***
다음 날, 나는 길드원들을 한 자리에 소집했다.
신윤현은 이미 스킬을 강화하는 중이니 제외하고, 천혜 길드에 파견을 나간 진준성도 제외하고, 이 사태의 원인인 윤지석도 제외하고.
구지상과 고주연, 김신욱이 모였다.
나는 세 사람과 길드 근처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서 우리는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콩나물 황태국밥 네 개를 주문한 뒤, 나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곧 일본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세 분이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김신욱은 밑반찬으로 나온 달걀 장조림을 젓가락으로 푹 찍으며 나를 쳐다봤다.
또 혼자 희생하려 하면 나를 달걀 장조림처럼 찍어버릴 것 같은 살벌한 눈빛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물컵에 물을 따르며 답했다.
“명분은 카타나 길드에 초대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세 사람에게 윤지석과 창랑교, 일본의 스사노오 길드에 대해 설명해줬다.
어제 협회장과 나눴던 이야기와 스사노오 길드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구지상이 내게 물었다.
“그 푸른 머리의 남자도 연관이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주범은 그 녀석이 맞을 겁니다.”
“그럼 이번에도 에덴과 만성에서 일어난 일이 벌어지겠네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설마 이유영 씨 혼자 일본에 가려는 건 아니죠?”
구지상은 푸른 머리의 남자와 직접 만나 봤으니,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구지상을 일본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일본에는 저 혼자 갑니다. 그동안 세 분은 다른 걸 해주셔야겠습니다.”
“이유영 씨 혼자서 괜찮을까요? 저희도 같이 가는 게….”
“저는, 아직 세 분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구지상이 그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꽤 도발적인 말이었는데도 세 사람은 조용했다.
그 말 많은 김신욱마저 눈썹을 찌푸리고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고주연 역시 식당 테이블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가 일본에 다녀오는 동안, 세 분이 제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강해졌으면 합니다.”
나는 어제 만든 던전 리스트를 고주연과 김신욱에게 전해줬다.
앞으로 반년 동안 한국에서 열릴 A급 이상의 던전 리스트였다.
두 사람은 서류를 넘겨 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고주연 씨와 김신욱 씨는, 제가 없는 사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A급 이상의 던전 공략에 모두 참여해 주세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유 길드의 명성이라면 참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말이 안 되더라도, 되게 하세요.”
내 단호한 대답에 김신욱은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고주연도 던전 목록을 보며 조금 버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해줘야 한다.
“두 분이 그 던전들을 모두 공략해 낸다면 저보다 강해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두 분께 그걸 원합니다.”
공격계 헌터인 두 사람이 빨리 성장하는 방법은 던전을 공략하는 것뿐이다.
김신욱은 내 의도를 파악한 듯, 목록이 적힌 종이를 팔락거리다가 말했다.
“이게 네가 말한… 그 몬스터들의 왕이라는 놈과 싸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냐?”
“그래.”
두 사람은 던전을 끊임없이 공략하고 반복 훈련을 해야 겨우 나와 비등해질 것이다.
그래야만 함께 싸울 수 있다.
내가 동료들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싸울 수 있었다.
김신욱은 내 간결한 대답에 되레 차분해진 듯했다.
“그럼 다음 질문. 너 설마 일본에 반년이나 있을 거냐?”
“그 전에 올 거야. 리스트는 혹시 모르니까 넉넉하게 준비해 둔 것뿐이고.”
가능하다면 한 달 안에 끝내고 올 것이다.
반년이나 창랑교에 시달려 줄 만큼 한가하진 않았다.
고주연은 김신욱과 나의 질답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곧 리스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할게.”
“뭐, 누님이 한다면 나도 하고.”
김신욱도 고주연의 말에 편승했다.
나는 두 사람이 승낙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해 주며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악마의 미궁에서 그 가능성을 엿봤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뒷일은 믿고 맡기기로 했다.
다음으로 나는 구지상을 쳐다봤다.
구지상은 왜 자기만 리스트를 주지 않는 건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녀석도 은연중에 알고 있을 것이다.
A급 이상의 던전을 공략하고 다니는 건 본인에게 도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구지상 씨에겐 다른 걸 부탁하고 싶습니다.”
“역시 저한테도 부탁해 주실 게 있었던 거죠! 다행이다….”
내가 따돌리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구지상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녀석의 미소가 사라질 만한 얘기를 꺼내야 했다.
“구지상 씨는 에덴에 가주셨으면 합니다.”
“네…?”
구지상은 잘못 들었다고 믿고 싶은 듯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성격 좋은 구지상도 미카엘과 부대끼는 건 싫어했던 걸 기억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알고 계시겠지만, 구지상 씨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에덴에 있습니다.”
미카엘과 사빈.
구지상이 한계까지 강해지기 위해선 그 둘을 넘어서야 한다.
구지상은 그걸 원하지 않겠지만,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구지상과 같은 단계에 있으므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지상과 나는 현재 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더 강해지기 위해선 이 벽을 넘어야 하고, 이 벽을 넘으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내 눈앞의 벽을 넘기 위해 ‘최후의 인류’를 포기했다.
그 덕에 동료의 참뜻을 깨달았고 눈앞에 새로운 길이 펼쳐졌다. 벽을 넘은 것이다.
나는 구지상이 ‘영웅’을 포기해야 벽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려면 녀석은 우선 한국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구지상은 한참 생각해 보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
“제가 없어도 한국이 괜찮을까요? 이유영 씨도 없는데….”
“옆에 계신 두 분을 믿으세요. 그리고 정하나 길드장과 부산 길드장, 박이원 씨도 있습니다. 창랑교에 관한 일은 협회와 천혜 길드, 준성이와 신윤현 씨가 애써줄 거고요.”
결국 구지상의 눈앞에 있는 벽도 동료를 믿어야만 뛰어넘을 수 있는 벽이었다.
나는 구지상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대뜸 우리나라를 떠나라는 부탁을 들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구지상 씨는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갈게요.”
구지상은 상쾌한 아이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몬스터들의 왕이 ‘오류’라고 했죠? 전 이유영 씨와 함께 오류와 싸워서 이기고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유영 씨보다 더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좋은 대답이네요.”
구지상을 키워달라고 하면 미카엘은 아주 환영해 줄 것이다.
이 기회에 에덴에 넣으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랑 동맹까지 맺었는데 그런 머리 나쁜 수를 둘 것 같진 않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모두 한 팀이 되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 점원이 우리 앞에 콩나물 황태국밥을 하나씩 차려줬다.
뚝배기에 담겨 팔팔 끓고 있는 국밥을 보니 자연스레 허기가 도졌다.
나는 공깃밥을 숟가락으로 퍼내, 국 안에 말아 넣으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세 분께 합동 목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목표가 있어야 성장이 쉬워진다.
우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오류지만, 내 동료들은 아직 오류의 힘을 가늠하지 못한다. 지금은 그놈과 가장 비슷한 녀석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 그런 녀석이 있었다.
“세 분이 힘을 합쳐서 저를 한 번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지세요. 저 역시, 세 분이 힘을 합쳐도 저를 죽일 수 없도록 강해져서 돌아올 겁니다.”
내 말에 김신욱은 국에 밥을 말다 말고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넌 왜 말을 꼭 그렇게 하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거든?!”
“이번엔 저도 김신욱 씨 의견에 동감해요….”
하지만 고주연은 숟가락을 움직이며 흔쾌히 답했다.
“일단 알겠어.”
그 말에 두 녀석은 고주연을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고주연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두 놈을 보며 말했다.
“너희 이유영보다 강한 거, 알아?”
“….”
“….”
“모르면 이유영이라도 목표로 삼아야 해. 우리가 무지한 탓에 쟤도 저렇게 말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이해받을 줄은 몰라서 조금 머쓱해졌다.
다행히 고주연의 말에 두 녀석은 내가 왜 그런 끔찍한 목표를 세운 건지 이해한 것 같았다.
조금 시무룩해졌지만 말이다.
나는 분위기라도 풀어볼 겸 말했다.
“일단 먹죠. 국 식겠습니다.”
물론,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런 데 재능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 같이 먹는 국밥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