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반짝이는 것 (1)
찰싹, 찰싹
『이유영! 빨리 일어나요, 이유영!!』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내 뺨을 치는 게 느껴졌다.
찰싹, 찰싹
『이러다 큰일 나요! 빨리 일어나요!』
시끄럽게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하얀 털 뭉치가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앗, 드디어 일어났군요!』
화신이다. 왜 여기 있는 거지? 분명 이 녀석이랑 헤어지고 학교에 갔다가 병원을….
거기까지 떠올린 내가 있는 곳이 화장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온몸이 뻣뻣했다.
‘제대로 해결한 건가?’
꿈달팽이 놈을 쓰러트리고 곧장 의식을 잃은 탓에, 그 후의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정신이 드니 가장 먼저 손에 일기장이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꿈달팽이에 대한 공략이 적힌 페이지였다.
아직도 비몽사몽 했지만, 손에 만져지는 일기장이 내게 현실감을 전해줬다.
나는 쥐어진 일기 조각을 읽었다.
「202x. xx. xx. 날씨: 빌어먹게 화창한 날이 지속된다.
오늘은 D급 던전, ‘환상의 세계’ 던전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보스 몬스터는 ‘꿈달팽이’로 상태 이상, 수면을 거는 놈이다. 사람을 재워서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영영 꿈에서 깨기 싫도록 말이다.
이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은 아주 3일 동안 꿀잠을 주무시고 오셨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다. 몬스터 역시 헌터들이랑 잠을 자서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는데, 뭐 이렇게 대충 사는 몬스터가 있는지 황당할 지경이다. 7대 죄에 ‘나태’에는 이 녀석이 딱이겠지.
어쨌든, 이 녀석의 공략법은….
.
.
.
.」
전부 읽고 난 후, 일기장은 평소처럼 빛나면서 사라졌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응급실에 걸맞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5번 환자 확인 부탁드립니다!
– 선생님, 저희 남편 좀 빨리 봐주세요!
환자도, 간호사도, 의사도 모두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끔찍한 민달팽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즉, 제대로 해결했다는 뜻이다.
병원 밖으로 나서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오전 10시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분명 저녁 8시였는데, 14시간이나 잤다는 건가.
시간을 이 정도로 낭비했을 줄이야. 앞으로 제대로 스킬을 견딜 때까진 열풍은 무조건 봉인이다.
나는 어느새 내 머리 위에 안착한 화신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어?”
『산책 나가듯이 가놓고 밤새 안 돌아온 사람은 누구죠? 그래도 진짜 하루 만에 두 마리를 다 처리했네요! 역시 최후의 인류!』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몬스터 놈들이 활개 치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 하루 만에 처리하는 게 맞다.
화신은 내 머리에서 포르르 내려와, 두 앞발을 옆구리에 올리며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이유영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동안 저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구요?』
“뭐라도 알아냈어?”
『물론이죠! 우선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던전 없는 몬스터’를 만들어낸 건 오류의 ‘능력’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류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회귀 전에도 야생의 몬스터로 온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서 이런 능력이 생긴 거야.”
『음, 아무래도 오류가 이유영의 일기장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유영의 일기장, ‘최후 인류의 기록’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거든요. 오류가 간섭하면서 그 힘이 일부 새어나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갑자기 이런 능력이 생길 리 없다.
어쨌든 이번 사태와 내 일기장이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건 나도 예상한 부분이다. ‘금돼지’와 ‘꿈달팽이’ 모두 내가 7대죄로 분류한 몬스터였으니까.
최근 사태의 주범들인 몬스터가 내가 특별한 카테고리에 넣어준 놈들인데, 내 일기장을 안 쓰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해지는 상황이다.
『잠깐, 아직 끝이 아니에요! 말해줄 게 하나 더 있어요.』
“나야말로 잠깐.”
나는 허공에 주절대는 미친놈으로 보이지 않도록 블루투스 이어폰부터 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이런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도 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말해.”
『좋아요! 시스템이 겨우 숨어있던 야생의 몬스터 한 마리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화신은 어제처럼 상태창 위에 팝업을 띄우고 한 군데를 앞발로 건드렸다.
그러자 서울 북쪽 전체가 붉게 칠해졌다.
“이건 뭐야? 한강 위에는 다 칠해져 있는데?”
『그 한 마리의 위치예요!』
“뭐?”
나는 화신이 표시한 지도를 다시 살폈다.
한강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이 전부 칠해진 서울 지도. 다시 말해 서울의 절반 가까이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유영이 해치운 몬스터랑은 다르게 이 몬스터는 자꾸 돌아다니네요.』
몬스터가 서울 절반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가? 나는 그걸 찾아야 하고?
차라리 한양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게 빠를 것이다.
***
그 넓은 지역을 단서도 없이 돌아다닐 순 없다.
자각몽으로 7대죄에 어떤 몬스터가 있었는지 살펴보면서, 서울 절반을 돌아다녀도 세간에 안 들킬만한 놈을 찾아야 했다.
화신은 몬스터 위치를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며, 내 옷 주머니에 틀어박힌 채로 쥐 죽은 듯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팀장한테도 전화를 해야겠군.’
야생의 몬스터를 잡으려고 기껏 신설 팀까지 만들었는데 일거리를 줘야겠지.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나서 정비는 덜 됐겠지만, 꿈달팽이 얘기와 이 싸돌아다니는 몬스터를 잡는 법에 대해 의논하고 싶었다.
전화번호부에서 팀장의 번호를 찾는 사이, 갑자기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번호를 하도 뿌리고 다녀서 누구인지 짐작도 가지 않아서 우선 받았다.
“여보세요?”
『오, 바로 받았네. 유영아, 나다. 박종훈.』
“박종훈?”
『어. 팀장님한테 네 번호 좀 물어봤어. 잡설은 됐고. 너 오늘 시간 있냐?』
박종훈. 강릉에서 만난 어리숙한 협회 녀석이다.
내가 헌터 협회장한테 야생의 몬스터 팀에 꽂아달라고 했던 놈이기도 하다.
“갑자기 시간은 왜?”
『다른 건 아니고, 너 안수연 헌터라고 아냐?』
안수연 헌터.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대한민국 헌터 중에는 단 두 명의 힐러가 있는데, 한 명이 신윤현이고 다른 한 명의 이름이 안수연이다. 한마디로 모르면 안 되는 유명인이란 뜻이다.
그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거지?
“모르면 간첩이지. 안수연 헌터는 왜?”
『그 안수연 헌터가 이번에 내 의수 달아줬거든? 근데 그 헌터가 이번 협회 신설팀과 관련된 얘기를 해서 말이다. 팀장님이 이건 너한테 물어보라던데?』
안수연 헌터가 속해 있는 수호 길드는 마침 서울 북부 지역에 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그 헌터에 관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만나서 얘기하긴 해야겠네. 지금 어디야?”
***
잠시 후, 나는 협회 근처의 고깃집에서 종훈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야, 이유영! 여기!”
덩치 큰 사내 녀석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종훈이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대꾸했다.
“내가 형이라고 말했을 텐데.”
“에이, 자꾸 쩨쩨하게 그러지 말자. 일단 메뉴부터 골라봐.”
결국 쩨쩨한 새끼가 되는군.
메뉴판을 건네받던 도중, 메뉴판을 내민 박종훈의 팔이 오른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매가 비어있던 곳에 새 팔이 달린 것이다.
녀석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능청맞게 말했다.
“장난 아니지? 움직이는 것도 엄청 자연스러워. 가짜 팔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라니까?”
박종훈은 굳이 오른쪽 팔을 굽혔다 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호 길드 힐러의 능력을 듣고 힐러보단 장인이 맞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완벽하게 복구해낸다면 충분히 힐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새 팔 단 기념으로 내가 쏜다. 부담 갖지 말고 팍팍 골라!”
“그래.”
내가 메뉴판을 소고기 쪽으로 넘기자, 박종훈이 다급하게 돼지고기 페이지로 고정했다.
“너 인마, 우리 친구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쩨쩨하게 그러지 말자. 아니면 형이라고 할래? 그럼 돼지고기에서 봐줄게.”
“너 왜 안 그렇게 생겨서 이상한 데 집착하냐?”
“그래, 그럼. 꽃등심 18인분부터 시키든가.”
솔직히 나였으면 그냥 형이라고 부르고 돼지고기를 샀을 것이다.
그런데 박종훈은 돈보다 가오가 중요한 놈인 모양이다.
“에휴 그래, 시키고 싶은 거 다 시켜라.”
그리고는 손수 벨까지 눌러 점원을 불러 주었다.
협회원 중에 정상은 없다지만, 이 자식도 참 특이한 놈이다.
혼자서 심각한 얼굴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박종훈을 외면하며 나는 점원에게 주문했다.
“삼겹살이랑 목살 2인분씩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 내용을 들은 박종훈은 감동 어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협회원도 공무원인데, 신입 협회원 월급이야 안 봐도 뻔했다.
종훈이의 얇은 지갑을 털어먹을 정도로 내가 양심이 없진 않았다.
“형…!”
“이제 형이라고 부를 생각이 드냐?”
녀석은 나를 보며 형을 연호하더니, 고기가 오고 나선 이런 건 아우가 하는 거라며 집게를 가져갔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팔 단 녀석한테 맡길 수는 없었지만, 잘 굽길래 그냥 내버려 뒀다.
치이이익-
선홍빛의 두툼한 목살이 숯불 판에서 황갈빛으로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나는 고기를 쳐다보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안수연 헌터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맞다, 그 얘기부터 해야지. 같이 지내던 헌터 몇 명이 갑자기 실종됐다고 그러더라고. 경찰 쪽에 실종 신고도 해 봤는데, 알잖아. 경찰은 헌터 관련 사건은 잘 안 받아주는 거. 그쪽에선 헌터 관련 일이니까 헌터 협회에 문의해보라고 했나 봐. 근데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실종자 수색은 헌터 협회 일은 아니긴 하거든.”
헌터 관련 일은 대부분 헌터 협회에서 맡아서 처리하는 건 맞다.
하지만 실종된 헌터를 수색하는 일까지 맡기에는 헌터 협회에 남는 인력이 없을 것이다.
“협회에 신고 전화도 여러 번 했었나 봐. 그런데 우리 일이 아니니까 다들 안 받아줬던 모양이야. 내 의수 달아주러 오기로 한 날짜가 원래 오늘이 아닌데, 협회 사람 누구라도 잡고 얘기해보려고 일부러 날짜를 당겼다더라.”
“팀장님한테는 이 얘기 했고?”
“당연히 팀장님한테 먼저 했지. 팀장님이 형한테 얘기하라고 해서 번호 받은 거야.”
박종훈은 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자르며 말했다.
나는 마늘과 김치를 옆에 올려 구우며 이번 서울 북부 지역을 싸돌아다니는 놈과 관련 있는지 물었다.
“안수연 헌터가 말한 실종된 사람들, 혹시 강북에 있는 사람들이야?”
“뭐야, 어떻게 알았냐? 맞아. 다들 강북 쪽에 살고, 실종되기 전에 만나기로 했던 장소도 강북 쪽 지역이었대.”
강북 쪽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헌터 실종 사건. 야생의 몬스터 사태와 연관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나는 다 구워진 고기들을 종훈이의 접시에 덜어주며 말했다.
“그 수호 길드 힐러 연락처 좀 줘봐. 직접 가서 얘기를 들어봐야겠네.”
“연락처?”
“그래, 연락처.”
“어… 연락처는 따로 안 받았는데.”
어느새 한 쌈 입에 넣고 우적거리던 종훈이가 멍청하게 말했다.
수월하게 가나 했더니….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어리버리한 놈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