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비무 (1)
이유영!
그는 정말 멋진 사나이다. 에덴에서부터 그렇게 느꼈다.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이게 아닐까.
‘히어로!’
카츠라 료가 선망하던 바로 그 존재.
구지상도 그렇고, 이유영도 그렇고, 한국에는 히어로들이 많다.
히어로 양성소인 걸까? 아주 멋지다고 생각한다.
일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일본에서 헌터와 길드는 다소 사무적인 분위기를 띤다.
미국은 에덴을 우상으로 여기며 따르고, 한국은 협회와 길드 간의 협력 및 경쟁을 통해 균형 잡힌 헌터 사회를 구축했다. 좋은 예시는 아니지만, 중국의 만성 길드 역시 중국 사회를 꽉 잡고 있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 사람들에게 헌터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식된다. 경찰이나 소방관, 군인처럼, 헌터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직업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론 때문인데,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게 바로 스사노오 길드다.
스사노오는 ‘헌터’가 일본 사회를 변형시키지 않도록 언론 매체를 통제했다.
그만큼 스사노오 길드에는 힘이 있었다.
헌터의 무력보다는, 사회를 유지할 정도의 ‘권력’이 있었다.
권력이란, 카츠라 료처럼 단순 무식한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힘이다.
그래서 카츠라 료는 카타나 길드가 스사노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항할 수 없었다.
어디에 이용되는지 몰랐고, 무엇에 반항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카츠라 료는 스사노오 길드장과 ‘창랑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처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헌터는 헌터의 일만 할 수 없는 걸까.
카츠라 료는 애처럼 징징거리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았다.
어른이니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길드장이니까, 길드원들을 위해서라도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했다.
‘그나저나… 이유영을 데리러 간 미츠하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카츠라 료는 이 일을 이유영에게 상담하고 싶었다.
그는 영리했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력이 뛰어났다.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미국의 에덴과 중국의 만성에서 생긴 일도 해결하던 사람이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을 테니 분명 상담해 줄 거라고 카츠라 료는 생각했다.
그때, 카츠라 료가 있던 길드장실의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길드장실에 놓여있던 전화가 큰 소리를 내며 울렸다.
카츠라 료는 대자로 바닥에 누워있다가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드디어 미츠하랑 이유영이 온 건가!”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 길드원이 반응했다.
『아, 길드장님! 네 맞긴 한데, 이유영 길드장님의 상태가 조금, 그래서요. 샤워실이라도 빌려드리려 합니다. 괜찮겠죠?』
“괜찮다! 근데 왜지! 이유영이 안 씻고 왔나?!”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씀이세요…! 아무튼 이유영 길드장님 조금 도와드리고 올라가겠습니다. 또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지 마시고, 조신하게 기다리고 계세요.』
“알겠다!”
카츠라 료는 전화를 끊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길드장석에 앉아 꼿꼿한 자세로 길드장실 문을 바라봤다.
이것이 손님을 맞이할 때 길드장이 해야 하는 자세라고, 야마다 미츠하가 가르쳐 줬다.
그렇게 조신한 상태로 카츠라 료는 4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이유영을 기다렸다.
이유영은 생각보다 준비가 오래 걸리는 남자인 듯했다. 40분이나 지나도 오질 않는다니.
샤워를 10분이면 해치우는 카츠라 료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유영은 섬세한 남자인 것 같으니 존중하기로 했다.
슬슬 따분해서 몸이 근질거릴 때쯤, 드디어 길드장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츠라 료는 바깥에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즉각 소리쳤다.
“들어와라!”
바깥에서 ‘어우, 우렁차. 놀라셨죠 길드장님. 저희 길드장님이 좀….’, ‘괜찮습니다.’라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했던 길드원과 이유영의 목소리였다.
곧 길드장실의 문이 열리며, 길드원이 이유영과 야마다 미츠하를 데리고 들어왔다.
카츠라 료는 근엄한 얼굴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며, 반가운 마음에 방긋 웃고 말았다.
“이유영! 기다렸다!”
이유영은 막 씻고 나온 사람처럼 멀끔한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야마다 미츠하는 카츠라 료를 보며 입꼬리를 가리켰는데, 카츠라 료가 너무 천진하게 웃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행동이었다. 카츠라 료는 아차 싶어 입꼬리를 쭈욱 내리며 다시 말했다.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오다가 잠깐 사고가 있어서 옷이 심각하게 더러워졌습니다. 그 꼴로 찾아뵐 수는 없어서 닦아내고 왔습니다.”
이유영은 평범하게 대꾸하며 카츠라 료와 악수를 나눴다.
무슨 사고가 있길래 옷이 심각하게 더러워진 걸까. 오다가 개똥을 밟고 미끄러져서 진흙탕에 다이빙이라도 한 걸까?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옆에 있던 야마다 미츠하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이유영이 무슨 사고라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야마다 미츠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 서둘러 이유영과 카츠라 료가 길드장실 손님 접대용 소파에 앉게끔 유도했다.
카츠라 료는 자리에 앉아 큰 눈을 끔뻑이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러자 미츠하가 이유영을 팔꿈치로 툭툭 치며 얘기했다.
“유영 씨가 먼저 말 좀 꺼내 보세요.”
“그러죠, 뭐.”
이유영은 덤덤하게 카타나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츠하와 스사노오 길드에 다녀왔다고 한다.
오늘은 스사노오에서 창랑교의 교리 설명회를 하는 날이다. 그는 설명회에 잠입했고, 스사노오 길드장에게 습격받아 잠입을 들키고 말았다. 그래서 옷이 망가졌다고 한다.
가만히 이유영의 설명을 듣던 야마다 미츠하는 말했다.
“절 감싸 주시느라 생긴 일이에요. 제 잘못이 큽니다. 죄송합니다.”
미츠하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었다.
카츠라 료는 이유영 정도 되는 사내가 기습을 피하지 못했다면 필시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츠하는 이유영을 마중 나갔을 때랑 같은 상태. 이유영 쪽에서 미츠하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다는 것 정도는 카츠라 료도 추측할 수 있었다.
“카타나 길드를 신경 써줬군. 고맙다. 길드장으로서 감사 인사를 표한다.”
카츠라 료는 이유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만약 미츠하가 스사노오 길드에 잠입했다는 걸 들켰다면, 카츠라 료는 스사노오 길드장에게 지금처럼 고개를 숙여 사과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보다 더 그들에게 복속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답답했다.
카츠라 료의 정중한 인사에도 이유영은 담담했다.
그는 한결같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는 받아 두겠습니다. 고개 드셔도 됩니다.”
카츠라 료는 고개를 들었다.
이유영은 무심한 건지 다정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방금 일본 1위 길드의 길드장이 고개 숙여 고맙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는 그 담담한 낯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츠라 씨. 전 카타나 길드가 중요한 갈림길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림길?”
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츠라 료와 야마다 미츠하를 한 번씩 쳐다봤다.
그리고 진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지금이야말로 ‘카타나’가 일본의 유일무이한 검이 될지, 말지. 선택할 때입니다.”
카츠라 료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갑작스러웠고,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에 어째서인지, 자신의 앞길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걸어야 하는 길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
나는 카츠라 료를 쳐다봤다.
스사노오 길드를 무너트려야겠다는 확실한 결심이 선 지금.
나는 이 녀석이 주동자로 움직여주길 바랐다.
회귀 전에는 스사노오가 던전 브레이크에 당해 카타나 길드에 흡수합병 되었다.
카타나 길드는 그렇게 실제로 일본의 유일무이한 검이 되었다.
즉, 카타나가 스사노오를 잡아먹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카츠라 료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이번 비무 대회를 카타나의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로 써야 한다.
스사노오와 카타나가 맞붙는 흐름으로 끌고 간다면, 카타나가 이길 경우 카츠라 료의 위상이 더욱 치솟을 것이다.
그 전에, 카츠라 료에게 의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카츠라 료가 답하길 기다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휩쓸릴 사람이 아니라서 이 이상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잠시 뒤, 한참 고민하던 카츠라 료가 입을 열었다.
“이유영, 너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날 도와줄 수 있나?”
나는 조금 웃었다.
살짝만 자극했을 뿐인데 벌써 의지가 생긴 것 같았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타오를 줄 아는 놈들은 싫어하는 게 더 어렵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물론입니다.”
내 대답에 카츠라 료는 웃었지만, 야마다 미츠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스사노오 길드장의 목을 쓱싹하고 끝내려던 야마다 미츠하의 입장에선 이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먼저 비무 대회의 규모를 키우는 게 좋겠습니다. 카타나에서 카타나와 스사노오의 대결 구도로 분위기를 조성해주세요. 어차피 스사노오는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스사노오에서 뭐라고 하면 저를 핑계로 쓰면 될 겁니다.”
“어떻게 핑계로 쓰라는 거예요?”
“이유영에게서 거하게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규모를 키웠다고 하세요.”
뭐가 됐든 간에 핑계를 대서 녀석을 교단에서 끌어 내리기만 하면 된다.
스사노오 길드장을 비무 대회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비위를 맞춰주는 편이 낫다. 그럼 내 뒷담이라도 까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카츠라 료는 난처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네가 곤란해진다…!”
“괜찮습니다. 제가 싸울 일이 없도록 카츠라 료 씨가 힘을 내시면 되니까요.”
“이, 이해 못 했다! 무슨 뜻이지?”
내가 스사노오 길드장과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뭐,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 비무 대회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어야 한다.
나를 미끼로 관객들을 끌어모은다 해도,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반드시 카츠라 료가 되어야 했다.
카츠라 료는 내 힌트를 이해하지 못한 듯 큰 눈을 끔뻑거렸다.
반면 머리 회전이 빠른 야마다 미츠하는 금방 내 의도를 파악한 듯, 가볍게 웃었다.
“꽤 괜찮은 계획이네요. 료 씨는 분명 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비무 대회 때, 야마다 미츠하 씨께서 해주셔야 할 일도 있습니다.”
비무 대회로 카타나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게 비무 대회는 미끼였다.
진짜로 해야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스사노오 길드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미즈히메’ 린을 구하는 것.
다만 비무 대회에서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카츠라 료 역시 스사노오 길드장을 상대해야 하니, 대회장에 있어야 했다.
나랑 카츠라 료 없이 스사노오 길드에 잠입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인어 공주를 구출할 사람이 따로 있어야 했다.
즉, 린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야마다 미츠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