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핏빛 계곡 (2)
회귀자. 타임슬립을 한 사람.
소설이나 영화, 만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
보통 사람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의심하거나, 믿지 않을 만한 얘기다.
하지만 아오노 린은 조금 달랐다.
‘다른 시간선에서 날아왔다는 거겠지…? 신기하다….’
린의 인간관계는 굉장히 협소했다.
친구라고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헌터인 야마다 미츠하 뿐이고.
아버지는 인간이길 포기한 교주이며, 본인은 얼마 전까지 바다의 왕국의 유일무이한 공주였다.
심지어 그 바다의 왕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는 햄스터처럼 조그마한 화신이다.
이미 말하는 요정 같은 걸 친구로 둔 시점에서, 린의 인간관계는 정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런 린에게 ‘회귀자’라는 존재는 그저 신기한 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에 린은 눈을 반짝이며 이유영에게 물었다.
“저랑 이유영 씨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요…? 그때도 저는 미즈히메였나요?”
이유영이 회귀자라는 것보다 더 신기한 건, 이유영이 살던 시간선에서 그녀가 이유영의 ‘친구’였다는 것이다.
린은 낯을 가리고 말주변도 없는 탓에 항상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타고난 불운도 한몫해서 린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꼬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엔 어정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라는 그의 한마디에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린의 시선에 이유영은 당황한 듯 눈을 끔뻑거렸다.
설마 거짓말이었던 걸까? 혹시 한국에서 유행하는 개그였는데 모르고 진지하게 받아버린 걸까?
친구가 없어서 사회성이 바닥을 치는 린은, 혼자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삽질’의 전문가였다.
“죄, 죄송해요…. 저한테도 친구가 있었다는 게 신기해서 그만….”
린은 일단 사과하기로 했다. 뭐든 잘못했다면 사과부터 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런데 이유영은 린의 사과를 듣고 픽 웃어버렸다.
이번에도 말실수를 해버린 걸까?
린은 눈앞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귀 끝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유영은 말했다.
“거짓말 아닙니다. 제가 물에 빠졌을 때 당신이 구해줬습니다. 그 이후로 친구가 됐고요.”
“정말요…? 제가 미즈히메는 아니었던 건가요…?”
“당신을 미즈히메로 만든 건 ‘3재해’라는 몬스터입니다. 현재 두 재해를 물리쳤고,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어요. 아마도 그 녀석이 당신의 신인 ‘창랑신’일 겁니다.”
린은 이유영의 말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린을 ‘미즈히메’로 만든 창랑신이 몬스터라는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유영은 린에게 악수를 청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린이 내민 손을 바라보자, 이유영은 말했다.
“이전에도 물에 빠진 걸 구해주셔서 친구가 됐는데, 이번에도 도와주셨으니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린이 눈치가 없어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이건 친구가 되자는 뜻이었다.
무척 기뻤지만, 린은 조금 망설여졌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 야마다 미츠하 덕에 상태이상 ‘숭배’에서 풀려난 린은 급하게 이유영을 찾아 웜홀을 타고 비무 대회장으로 향했다.
이유영을 억지로 던전에 끌고 들어가려는 교주의 계획을 알고 있었고,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였다.
도착한 대회장은 이미 대홍수가 일어난 것처럼 물에 잠겨 있었다.
그 속에서 린은 교주에게 끌려 들어가는 이유영을 발견했다.
급하게 헤엄쳐 간 린은, 교주에게서 이유영을 힘껏 빼앗았다.
그러나 린이 붙잡는 순간 교주가 이유영을 놔버렸고, 그대로 교주는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린이 이유영을 구했다기보단 교주가 린에게 이유영을 맡기고 간 것이었다.
이유영의 생각과 달리 린은 이유영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니 다시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린은 이유영이 내민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금부터 그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제가 이유영 씨께 어울리는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린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유영은 조금 웃었다.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이유영은 개그 코드가 특이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잠깐의 평화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땅속에서 뱀 타입의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유영은 곧장 그것들을 응시하며 린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처리하겠습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린은 잠시 이유영의 등을 쳐다봤다.
이유영은 등을 보이는 게 익숙한 사람인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키면서 살아온 걸까?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친구가 정말로 될 수 있을까.
린은 이유영의 등 너머, 저 멀리서 흐르는 핏빛 계곡을 바라봤다.
이유영은 뱀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저곳에서도 몬스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건 린도 처치할 수 있다.
린은 조용히 계곡을 향해 걸어가, 서브 스킬 ‘경외’를 발동했다.
지이잉!
그녀는 수면 아래 모든 것을 그녀의 발아래 두는 것이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이다.
‘미즈히메’라는 원치 않은 경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
린과 나는 기분 나쁜 핏빛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계곡 근처에 있었다.
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간 보스를 만날 수 있는 황폐해진 논밭이 나타난다.
계곡을 오르려면 절벽을 타고 올라야 했다.
하지만 린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마지막 남은 뱀 형태의 잡몹을 떨어진 샛별로 절단하며, 린을 바라봤다.
린은 핏빛 계곡에서 나타나는 잡몹들을 향해 스킬을 발동하고 있었다.
푸른 눈이 선명하게 빛났고, 그녀의 주위로 파도 같은 푸른 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물속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린의 주위에 엎드려서 복종했다.
흡혈 개구리, 사람을 보자마자 빠르게 혀를 휘둘러 피를 빨아먹는 몬스터. 그리고 핏빛 가재, 집게에 잡히면 A급 방어력을 가진 헌터의 신체도 절단하는 위협적인 몬스터.
이 몬스터들이 죄다 린의 발아래 엎드리고 있었다.
회귀 전의 린은 ‘경외’ 스킬을 쓰는 걸 버거워했다.
자존감이 낮은 탓에 몬스터가 우러러보는 것도 견디지 못하던 녀석이었다.
물속의 절대강자가 될 때까지 꽤 많은 던전을 다니며 훈련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 린은 그 당시보다 더 능숙하게 스킬을 다루고 있었다.
린은 납작 엎드려 있는 흡혈 개구리 위에 올라타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걸 타고 계곡 위로 올라가면 될 것 같아요…!”
린이 가볍게 흡혈 개구리의 등을 토닥이자, 개구리가 폴짝거리며 내게로 뛰어왔다.
개구리는 내가 올라타기 편하도록 다시 납작 엎드려 대기했고, 린은 해맑게 웃으며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이 모든 게 녀석에겐 익숙해 보였다.
나는 흡혈 개구리를 등짝을 밟고 오르며 말했다.
“저 몬스터들을 전부 조종할 수 있습니까?”
지금 린과 내가 타고 있는 흡혈 개구리를 포함해 납작 엎드린 채 대기하고 있는 몬스터들이 서른 마리 가까이 된다.
이 몬스터들을 전부 조종할 수 있다면, 30마리의 B급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린은 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네…! 이 정도로 약한 몬스터들은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많아도 조종할 수 있어요.”
거의 100마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건가? 이 정도면 거의 물속의 폭군이나 다름없다.
스킬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면 이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했다.
이런 능력을 사람에게 쓰고 있었다니.
만약 신윤현이 포션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린의 한마디에 창랑교 신자들이 전부 스스로 바다에 빠지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신윤현한테 고마워졌다.
린은 우리가 타고 있는 흡혈 개구리의 등을 툭툭 쳐서 절벽을 오르게 했다.
흡혈 개구리는 명령을 따르는 로봇처럼 우리를 태우고서 폴짝폴짝 뛰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린이 ‘경외’로 복종시킨 몬스터들이 우리의 뒤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거나 절벽 위를 올라왔다.
서른 마리의 몬스터들이 나랑 린의 뒤를 따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린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던전에서 싸워본 경험이 얼마나 됩니까?”
“던전은 아직 두 번밖에 못 가봤어요….”
그럼 지금이 세 번째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거의 안 가본 거나 다름없었다.
‘미즈히메’로 살아온 것 때문에 스킬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 같은데, 정작 몬스터한테는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기회에 녀석이 몬스터와 싸우는 경험을 쌓아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린에게 말했다.
“다음으로 나타날 몬스터는 물 타입 몬스터는 아닙니다만, 린 씨가 싸워봤으면 합니다. 제가 뒤를 봐 드리겠습니다.”
“전투인가요…! 알겠습니다.”
린은 들고 있던 창을 꾹 쥐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길래, 나는 다시 말했다.
“몸싸움 말고, 경외 스킬로 몬스터들을 조종해 싸워보셨으면 합니다. 회귀 전에 당신은 그렇게 싸웠습니다.”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저는 그, 그렇게 똑똑하지 않은데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린 씨는 실전에 강한 타입입니다. 일단 부딪혀 보세요. 힐러인 제가 있는 한 안 죽습니다.”
“그렇다면, 해보겠습니다…! 유영 씨는 정말 멋있는 분이네요!”
난 아직 린 앞에서 힐을 넣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이 녀석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참 사기당하기 좋을 타입이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개구리가 절벽을 다 오르기를 기다렸다.
폴짝!
절벽을 전부 오르자, 황폐해진 논밭이 펼쳐졌다.
흡혈 개구리는 우리를 한 곳에 내려주며 다시 린 앞에 엎드려 대기했다.
우리를 따라 올라온 나머지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린은 그게 자연스러운 듯 개의치 않고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스산하네요….”
린의 말대로 이곳은 공기부터 무거웠다.
검게 부식된 것 같은 토지와 메말라 비틀어진 작물, 나무 같은 것들이 바닥에 불규칙적으로 널려 있었고. 근원을 알 수 없는 탄내와 썩은 내가 진동했다.
당장이라도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길한 곳이었다.
나는 위기감 없이 앞으로 걸어가려는 린을 붙잡으며 말했다.
“한 발이라도 내디디면 몬스터가 낌새를 눈치채고 나타날 겁니다.”
“정말요?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여기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 발 내디디면 됩니다.”
“아… 그렇네요!”
린은 가슴 위에 두 손을 올리며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의 이름은 ‘일곱 개의 머리’. 가면을 쓴 일곱 개의 면상이 달린 괴인의 형태를 한 몬스터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린이 처치하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S급 던전의 중간 보스인 만큼 구지상이나 길버트 정도는 되어야 혼자서도 무리 없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린이 싸우는 걸 도와주며, 내가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린은 내 기억 속의 린과는 상당히 달라진 듯했다.
심호흡을 끝낸 린은 망설임 없이 한 발 내디디며 내게 말했다.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