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핏빛 계곡 (4)
마법 스타 리리에서 ‘아틀란티스’는 정령들의 왕국이었다.
행복한 세상이지만, 정령들이 인간과의 교류를 차단한 폐쇄적인 세상이기도 했다.
그 왕국의 사람들은 점차 인간들을 잊어갔다. 그러던 중, 왕국의 공주 요정 ‘리리’가 태어난다.
리리는 고서적을 보관해 두는 왕국의 서고에서 놀다가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
호기심이 많았던 리리는 인간을 만나러 아틀란티스에서 탈출해 심해 바깥으로 나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왕국에서 추방되고 만다.
추방당한 리리는 인간 세계에서 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소녀 ‘리리’를 만난다.
요정 리리가 소녀 리리에의 꿈을 이뤄주기로 약속하면서, 마법 스타 리리는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그 리리의 모습을 한 화신이 아틀란티스에 갇혀 있다.
마지막 3재해가 정령 왕국 ‘아틀란티스’를 배경으로 창랑교를 만든 건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겉보기엔 그 만화를 이용해 시스템과 나를 농락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딘가 찜찜했다.
왠지 ‘마법 스타 리리’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오류에게는 세계를 창조해 내는 힘은 없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인류를 멸망시켰을 것이다.
던전을 만들고 게이트를 여는 것은 시스템이 하는 일이었고, 오류와 몬스터들은 언제나 던전을 탈출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오류도 못 하는 일을 녀석의 부하가 해내는 상황이다.
무언가 이상했다.
마지막 3재해는 어떻게 바다의 왕국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낸 걸까?
어쩌면 녀석이 마법 스타 리리의 아틀란티스 설정을 훔친 것에, 세계를 창조해 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화신은 잘 있는 건가?’
차라리 이전처럼 살려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오면 좋겠는데, 아무 소식도 없었다.
시스템도 내가 이 던전에 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 뿐이었다.
한참 화신과 아틀란티스, 마지막 3재해를 물리칠 힌트를 궁리하던 중.
멀리서 린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린은 낙엽을 한 아름 안고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유영 씨, 낙엽 모아왔어요…!”
나는 현재, 머리로는 화신을 구할 방법을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베이스캠프를 만들던 중이었다.
가능성 스킬 ‘목단의 줄기’를 발동해 바람을 막을 나무 벽을 세우고 있었다.
린은 내가 만든 베이스캠프를 보고 감탄하며, 들고 온 낙엽을 한곳에 모아뒀다.
나는 낙엽에 열풍을 발동해 불을 지피며 말했다.
“보초는 제가 설 테니 잠시 눈 붙이세요. 린 씨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니, 지금 체력 보충을 해둬야 합니다.”
린이 일곱 개의 가면을 해치운 후.
우리는 다음 중간 보스인 핏빛 뱀 여왕을 물리치고, 보스 몬스터가 있는 산꼭대기로 올랐다.
중간에 거미 형태의 잡몹이 튀어나왔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린의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벌써 던전에 들어온 지 6시간이 흘렀다.
가능하면 빨리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니라 린이었다.
린은 이번이 던전 공략 세 번째인 신입 헌터고, S급 던전을 고작 두 명이서 공략하고 있는 극악무도한 상황이다.
보스 공략 전에 쉬는 시간을 주지 않는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가혹했다.
린은 내 말을 듣고 바닥에 누우며 곧장 취침할 준비를 했다.
보스 몬스터에게 ‘경외’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 보였지만, 일단은 내 말대로 체력부터 회복하려는 듯했다.
나는 모닥불 근처에 앉아서 던전 하늘에 뜬 달을 쳐다봤다.
지금쯤 야마다 미츠하와 카츠라 료는 비무 대회장에서 벌어진 난장판을 수습하고 있을 거고.
스사노오 길드의 테러 행각을 생방송을 내보낸 기민재는, 그에 관한 뒤처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창랑교의 실체를 알았으니, 미카엘이 창랑교를 묻어버리는 게 더 쉬워지겠지.
교주와 미즈히메가 사라진 창랑교는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스사노오 길드 역시 같이 몰락할 것이다.
결국 협회장이 부탁한 임무를 성공한 셈이다.
다만 나 때문에 린은 이번 생에도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내가 아니라 창랑교 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작게 한숨이 나오던 때, 잠든 줄 알았던 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유영 씨, 그거 아시나요? 바다의 왕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요.”
린은 누운 채로 베이스캠프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상상하는 듯 살며시 눈을 감던 녀석은 마저 이야기했다.
“창랑신의 힘은… 순수하고 근원적인 소망을 충족시켜 줘요.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도 있어요. 누구나 마음속에서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잖아요? 바다의 왕국에서 신자들은 그 시절로 돌아가서 동심을 되찾을 수 있어요.”
“그리워하던 시절이요?”
“부끄럽지만… 저는 어릴 적에 꿈이 인어 공주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미즈히메’가 된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유영 씨, 동심에 취하다 보면 문득…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져요. 저는 그게 창랑신의 계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움.
상태이상 ‘숭배’에 당한 윤지석과 요한이 말했던 것이다.
상당히 추상적인 감정이지만 그리움 끝에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에 도달한다면 더는 추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명백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창랑신이 만들어 낸 바닷속 세계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행복을 되찾는다. 그 행복에 취해 바닷속 세계에 다시 가고자 ‘공주의 물’을 찾는다.
‘숭배’에 마약처럼 중독된다. 그러다 환상적인 바다의 왕국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창랑교는 현실과 바닷속 세계를 연결 짓는 다리고, 미즈히메는 사람들에게 바다의 왕국이 실존한다고 믿게 만드는 장치다.
창랑교를 믿으면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바다의 왕국을 꿈꾸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치밀하고 완전하게 사람들을 신자로 만드는 ‘창랑신’의 계략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에게 사랑받은 인간이 바다의 왕국에 왕이 될 때, 그곳은 ‘현실’이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유영 씨가 왕이 된다면… 그 바다의 왕국은 현실이 되는 거예요. 이상하죠, 환상의 세계가 현실이 된다니….”
린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지만, 나는 린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심해 속의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리움이란 과거를 추억할 때 생기는 것이다. 무슨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과거의 한때가 현실이 될 수 없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즉, 바다의 왕국이 현실이 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창랑신은 바다의 왕국이 현실이 된다는 전설을 남겼을까?
답은 간단하다.
교주와 창랑교단 놈들이 수의를 입고 있고, 미즈히메가 교리 설명회 때 ‘바다로 돌아오세요.’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주는 사람의 육체가 ‘죄’인 것처럼 말했고.
비무 대회 당시 창랑교 신자들은 홍수가 났는데 피하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
창랑교 신자들은 육체를 잃으면 정신적으로 바다의 왕국에 완전히 정착할 수 있다고 믿는 게 틀림없다.
마지막 3재해는 그 점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두 바다 밑에 잠기게 만들려는 것이다.
‘숭배’에 당한 사람들은 바다의 왕국에 가기 위해 바다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거대한 해일이 덮쳐오는 순간 순리처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살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해일 속에서 구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나는 린에게 물었다.
“제가 그 왕국의 왕이 되는 순간 창랑신이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사람들을 바다에 담그지 않았을까 해서요.”
“제가 너무 바보처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창랑신은 유영 씨를 그곳에 묶어두고 싶은 것 같았어요. 정말로 신이 한 인간을 사랑해서… 그 왕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린은 내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뭐, 린이 말한 대로일 수도 있다. 3재해는 항상 나를 몬스터로 만들기 위해 회유해 왔고. 이번에도 나를 바다의 왕국에 가둬서 몬스터로 만들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날 묶어두기 위해서라면, 이 방법은 너무 번거롭다.
나는 린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린 씨는 신을 죽이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린은 당황한 듯 어버버했다.
그러다가 바보 같은 얼굴로 말했다.
“한낱 인간이 신을 없앨 수 있을까요…? 저, 저도 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만, 그것도 좋네요.”
린의 말대로 내가 신이 되어야 비로소 신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서, 헌터로서 녀석을 상대하고 싶었다.
나는 녀석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영 씨는… 어떻게 해야 신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신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교거든요.”
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마저 얘기했다.
“신자가 없으면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리가 없고, 그를 믿는 사람이 없으면 신이 될 수 없어요. 신을 없애는 첫 번째 방법은 신을 나와 동등한 위치로 추락시키는 겁니다.”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는 신이 없었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안다.
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저명한 신들에게 모두 기도를 올려 봤지만, 나를 구원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몸을 움직여서 생존자를 찾고,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잠을 자고, 세상을 저주하더라도 잠에서 깨어났다.
또, 매일 같이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나’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에게 신을 자처하는 몬스터는, 그저 몬스터에 불과하다.
마지막 3재해는 내 앞에서 결코 신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멍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린에게 말했다.
“비무 대회에서 교주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사건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을 겁니다. 창랑교는 곧 막을 내릴 거예요.”
“하, 하지만… 신자를 전부 없애는 게 가능할까요? 창랑교 신자들은 바다의 왕국의 주민이기도 해요. 저는 그 왕국의 주민이 상당히 많았던 거로 기억해요….”
“물론 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당신이라는 변수를 만들어 낸 겁니다.”
린의 말대로 창랑교의 신자를 모조리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신윤현의 포션을 보급해 ‘숭배’를 해제한다고 해도, 여전히 창랑신을 믿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오노 린이 내 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린 씨는 저와 같이 그 바다의 왕국에 가서, 역적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역, 역적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8개의 머리가 달린 용을 타고 내려오는 남자는 바다의 왕국의 왕이 될 것이다. 그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바다의 왕국을 현실로 만들어 줄 위인이다.」
이 전설 덕분에 창랑교 신자들은 왕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본인들을 위해 그 왕국을 현실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8개의 머리가 달린 용을 타고 내려갈 남자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저는 그 왕국을 무너트리는 침입자가 될 겁니다. 린 씨는 저랑 같이 국민들을 왕국에서 모조리 쫓아내는 반역자가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그 환상의 왕국을 무너트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왕국의 사람들을 자신의 발밑에 엎드리게 할 수 있는 공주가 내 편이라면, 무너트릴 수 있다.
나는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신처럼 지켜보고 있을 마지막 3재해와 오류를 떠올렸다.
인간이 인간을 ‘경외’하는 것과, 인간이 신을 ‘숭배’하는 것 중 무엇이 이길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