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잊혀진 왕국 (1)
『쿠오오오오오오!』
야마타노오로치가 매섭게 포효하는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건물이 파괴되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난데없이 벌어진 테러에 도망치기 바빴고, 테러범이 그들이 믿고 따르던 미즈히메라는 사실에 경악한 것 같았다.
하지만 린은 이 왕국이 멸망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을 뿐,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경외 스킬로 안전하게 왕국에서 내쫓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틀란티스에 입성하자마자 린과 헤어져 따로 행동했다.
린이 왕국을 뒤집어엎는 동안 화신과 교주를 찾기 위해서였다.
천리안을 발동해 성 내를 둘러보니, 왕궁에 녀석이 있었다. 발밑에는 화신이 죽은 쥐처럼 엎어져 있었고, 놈은 내가 그곳으로 찾아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바라던 바였다.
나는 성에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을 지나쳐, 가장 안쪽에 있는 왕궁으로 들어갔다.
심연의 천리안으로 마주쳤던 조리장이나 성에서 일하던 이들이, 나를 지나쳐 허겁지겁 이곳을 빠져나갔다.
정갈하게 흰 의복을 입고 있던 그들은 어느새 엉망진창이 되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가 날뛰면서 성을 부수고 있는 탓에, 이곳은 더 이상 환상 속의 아름다운 성이 아니었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던 정원은 용이 내뿜는 불에 타버렸고, 산호와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성벽은 용의 콧김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환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왕궁의 문을 힘껏 열어젖혀, 안으로 들어갔다.
이 넓은 공간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었다.
교주의 육신을 껍데기처럼 두른 ‘창랑신’. 녀석은 나를 보며 말했다.
『아틀란티스를 부수면 아깝지 않겠어? 네 왕국인데.』
“누구 마음대로 내 왕국이래? 시끄럽고, 그 몸에서 나와.”
나는 아이템창에서 떨어진 샛별을 소환해, 마지막 3재해를 향해 치켜들었다.
교주의 몸에 들어가 있는 이상 녀석과 제대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먼저 녀석을 교주의 몸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 3재해는 그 사실을 이용하려는 듯했다.
『날 만나고 싶다면 왕이 되어라. 그게 이 세계의 룰이니까.』
녀석은 발치에 있던 화신을 발로 차서 내가 있는 곳으로 날려버렸다.
화신은 맥없이 발에 차여 내 발 앞에 떨어졌다.
노골적으로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혹시 룰을 헐뜯고 싶다면 네 애완동물을 욕하면 돼. 끈질기게 나를 던전 안에 가두려 하길래 역지사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거니까.』
나는 화신을 주워 올렸다.
화신은 건전지가 다 된 로봇처럼 눈빛이 죽어 있었다.
그 사이 마지막 3재해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여긴 내가 만들어 낸 SSS급 몬스터 ‘최후의 인류’의 던전이야. 보스 몬스터는 이유영이고, 중간 보스는 ‘미즈히메’와 ‘교주’. 공략 보상템은 ‘화신’으로 하면 되겠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를 도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분노가 치밀었다.
참아야 한다.
지금 녀석은 교주의 몸을 통해 말하고 있다. 상태이상 ‘숭배’에 당한 인간을 공격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일부러 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화신을 구하고, 교주의 몸에서 마지막 3재해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내가 한마디 대꾸 없이 녀석을 쳐다보자, 놈은 더 이상 도발이 소용없다고 생각한 듯 태도를 바꿨다.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너도 마음에 들 거야. 우린 형제잖아?』
“개소리 집어치우고 그 몸에서 나오기나 해.”
『왕이 되면 날 만날 수 있다니까? 다른 방법은 없어.』
녀석은 뒤에 있는 왕좌를 가리켰다.
앉아보라는 듯이 비켜서기까지 했다.
『나는 너의 치밀함과 교묘함을 닮아서 누구보다 널 잘 알고 있어. 이유영, 너는 왕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너는 나를 죽여야 하지만, 나는 네가 왕이 되기 전까지 만나줄 생각이 없거든. 교주의 몸을 이용해서 구경하기만 할 거야.』
“그딴 얄팍한 수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내가 옳아. 두고 보면 알 거야.』
그때, 돌연 교주의 몸이 힘없이 무너지더니 풀썩 쓰러졌다.
화신도 몸을 움찔거리며 깨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우선 화신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교주를 향해 검을 겨눴다.
쓰러진 교주가 무섭게 눈을 번뜩이며, 천천히 엎어진 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랑신이시여… 당신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아무래도 교주의 몸에서 마지막 3재해가 빠져나간 듯했다.
아까까지 왕궁을 장악하고 있던 범상치 않은 기운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서둘러 녀석에 대한 단서를 얻어야 하는데, 교주는 날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녀석은 아이템창에서 총을 소환하더니, 다짜고짜 날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탕! 탕탕!
나는 떨어진 샛별로 총알을 튕겨내며 교주와 거리를 벌렸다.
교주는 계속해서 내게 총을 쐈고, 나는 왕궁의 기둥 사이를 오가며 녀석을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콰광!
금빛 낙뢰가 번쩍이며 교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감전당한 교주는 몸을 벌벌 떨었고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나는 녀석을 향해 말했다.
“저랑 싸우기엔 카츠라 료와의 승부에서도 패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이, 입 다물어…,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교주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자존심을 세우며 답하고 있었다.
비무 대회의 승자가 나랑 싸우기로 되어 있었는데, 교주는 카츠라 료에게 비무 상대도 되지 않았고, 카타나의 비무마저 조롱했다.
내가 교주와 상냥하게 싸워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을 향해 낙뢰를 내려쳤다.
콰과광!
이대로 정신을 잃게 만들어서 현실 세계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주는 끈질기게 낙뢰를 견디며, 나와 싸우려 들었다.
스킬을 발동해 하반신을 문어처럼 변형시킨 교주는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내게 문어 다리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얌전히 창랑신의 계시를 받들어라…!”
나는 문어 다리를 떨어진 샛별로 베어내며, 다시 한번 낙뢰 스킬을 발동했다.
금빛의 벼락이 녀석의 머리 위에서 번쩍였고 교주는 속절없이 전기에 감전되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당신의 딸은 이미 정신 차렸습니다. 아버지라는 작자가 언제까지 몬스터한테 놀아날 겁니까?”
“그, 그분은… 몬스터, 같은 게… 아, 니다….”
벼락을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놈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멱살을 틀어쥐었다. 교주는 아직도 감전의 영향으로 몸을 떨면서 내게 무력하게 붙잡혔다.
“와, 왕이 되어라… 이유, 영….”
교주의 빛을 잃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사람의 눈빛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이 자식이 쓰레기 같은 놈이어서 딸을 장난감처럼 이용하고, 사람들에게 집단 자살을 종용한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녀석은 단순히 마지막 3재해의 장기말에 불과했다.
그저 이용당할 뿐인 어리석은 놈이었다.
나는 녀석이 머리에 쓴 수의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반드시 살려서 감옥에 보낼 겁니다. 쇠창살 안에서 평생 자식한테 미안해하며 사세요.”
교주가 아무리 몬스터한테 이용당했다고 한들, 저지른 죄가 너무 컸다.
살아서 그 죄를 곱씹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교주는 내 말이 전혀 와닿지 않는 듯, 밀랍 인형 같은 얼굴로 나를 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유영 씨…! 아, 아버지도 계셨군요…!”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교주가 문어 다리를 꿈틀거리며 총을 주워 들었고, 린의 몸통을 다리로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린은 교주에게 붙잡혀 관자놀이에 총구가 겨눠진 채 교주의 인질이 되고 말았다.
교주는 내가 붙잡고 있던 멱살을 뿌리치며 중얼거렸다.
“왕이시여, 미즈히메가 없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갈 테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녀석은 광기에 차 있었다.
“미즈히메만 없다면, 이 공주가 사라진다면 이유영은 왕국의 사람들을 쫓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아아, 창랑신이시여… 당신은 이 공주의 죄를 예감하고 배교자를 제 손으로 처리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까!”
“미친 새끼야, 정신 안 차려?!”
“이 왕국에서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릅니다, 이유영…. 이곳의 주민이 다 빠져나가는 동안 당신이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일 것 같습니까? 미즈히메가 없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정신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미즈히메라고 씨불이고 있는 여자애가 본인의 딸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낙뢰 스킬을 발동하려 했다.
그러나 린이 담담하게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기에, 나는 손을 거두었다.
린은 말했다.
“아버지. 유영 씨는 그런 말로 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조용히 하세요, 미즈히메! 당신은 감히 창랑신을 배반한 배교자입니다. 당신을 처단해 창랑신께 바치고, 이 왕국을 다시 살리는 게 교주인 나의 숙명이란 말입니다!”
교주는 처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린이 끌고 온 야마타노오로치는 지금도 이 왕국을 부수고 있었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왕국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왕국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
이 왕국을 다시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아버지. 저는 살면서 당신께 반항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야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버지, 이제는… 반항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린의 반항 선언과 함께, 주위에서 푸른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녀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린은 교주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서브 스킬 ‘경외’를 발동하고 있었다.
‘창랑교 교주’는 아마도 린의 경외가 가장 잘 통할 인간일 것이다.
그가 그녀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포기한 이상, 그 서브 스킬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린은 교주를 향해 말했다.
“이만 꿈에서 깨어나세요, 아버지.”
그 말에 교주는 총을 떨어뜨렸다.
녀석의 꿈틀거리는 문어 다리가 형체 없이 사라져 갔고, 교주는 이 세계에서 추방당하듯이 흩어졌다.
경외심에 빠져 숭배를 잊고 현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주는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이곳에서 사라졌다.
교주의 속박에서 풀려난 린은 걱정스러운 낯으로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아버지는 꿈에서 깨어나셨을 거예요. 하지만… ‘경외’는 제가 근처에 있을 때만 효과가 있어요.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상태 이상 ‘숭배’에 빠질 거고, 아버지는 언제든 다시 이곳에 오실 수 있을 거예요.”
“현실에서도 창랑교를 근절해야 이 왕국의 주민도 완전히 내쫓을 수 있겠네요. 린 씨가 힘을 내주셔야겠습니다.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내쫓아 주세요.”
“물론이죠.”
린은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은연중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왕국의 주민들이 이곳을 잊어버릴 때까지, 사람들을 내쫓아야 한다.
막연해 보이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다.
내 동료들은 현실에서 창랑교를 근절하고 있고, 숭배에서 깨어나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었다.
모든 건 시간문제였다.
마지막 3재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왕이 되는 것밖에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왕국이 진정한 아틀란티스, ‘잊혀진 왕국’이 되어야 했다.
“우선은 창랑신이 한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창랑신이 한 말이요?”
“그놈을 만날 방법이 제가 왕이 되는 것밖에 없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인지 이 녀석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작고 하얀 털 덩어리를 꺼냈다.
건전지가 다 된 로봇처럼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녀석을 잡고 위아래로 탈탈 흔들었다.
분명 교주와 싸울 때부터 깨어나 있는 걸 내 두 눈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