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잊혀진 왕국 (2)
린과 나는 나란히 앉아서 화신을 쳐다봤다.
화신은 작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말해야겠는데, 너 왜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게 된 거야?”
여기가 환상의 세계라고 해도 그렇지.
화신은 더 이상 시스템이 창조한 홀로그램 같은 존재가 아니라, 로봇이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린을 흘끔흘끔 쳐다보던 화신은 앞발로 입을 가리고서 내게 속닥거렸다.
『이유영, ‘화신’에 대한 걸 린 앞에서 말해도 괜찮겠어요?』
“이미 회귀자라는 것도 밝혔어. 말해도 돼.”
『그걸 밝혔다구요?! 그럼 시스템의 정체에 대해서도 밝혔나요?!』
“그건 안 밝혔어.”
린은 내가 어떻게 회귀했는지, 왜 회귀자가 되었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래서 시스템에 관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린은 가만히 우리를 보고만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두 분은 비밀이 많은 사이인가요?”
“그런 편입니다. 화신은 시스템이 저를 회귀시킬 때 만들어진 존재라서요, 원래 제 눈에만 보이던 안내자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나는 순순히 사실대로 답했다.
그러자, 화신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이어서 설명했다.
『그랬는데! 시스템이 마지막 3재해 ‘해일’을 붙잡다가… 이곳에 갇히고 말았구요.』
이런 설명으로는 화신이 뭐 하는 놈인지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진준성이나 구지상이 들었다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린은 작게 탄성을 내며 헤실헤실 웃을 뿐이었다.
“유영 씨의 회귀를 화신 씨가 도와준 거군요! 특별한 사이네요.”
우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진준성이 있었다면 질문 폭격에 시달려야 했을 텐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고마울 정도였다.
나는 어쨌든 납득한 것 같은 린을 두고, 화신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너는 왜 다른 사람 눈에도 보이게 된 거야?”
『그걸 설명하려면, 하는 수 없군요… 화신과 시스템의 치열한 혈투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죠.』
치열한 혈투라기엔 시스템만 처참하게 당한 것 같지만.
화신은 비장해 보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치켜들며, 영웅 같은 얼굴로 설명했다.
『시스템과 화신은 제일 먼저 태어난 3재해, ‘해일’의 존재를 일찍 눈치채고 있었어요. 이유영이 회수한 일기장의 힘으로 해일을 던전에 가두려고 했죠. 태풍에게 했던 것처럼요.』
“그런데 실패했지?”
『그래요. 이유영의 말대로 실패했어요…. 역으로 당해버리고 말았죠. 해일이 만들어 낸 공간에 시스템이 갇힐 뻔했고, 간신히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지만, 화신은 그러지 못했어요.』
화신은 우울해 보였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화신까지 구해낼 여력이 없어서 그냥 버리고 튄 것 같았다.
녀석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마저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화신은 시스템의 힘을 대체로 잃고 말았어요…. 이곳에서 화신은 마법 스타 리리에 나오는 ‘리리’와 비슷한 존재일 뿐이에요. 이게 이유영이 아닌 사람들이 화신을 볼 수 있는 이유일 거예요.』
“리리와 비슷한 존재가 됐다는 게 무슨 뜻이야?”
『가엾게도 이 왕국에 갇힌 가련한 공주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죠….』
화신은 가련해 보이는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장난으로 넘길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녀석의 말을 요약하자면, 시스템조차 화신을 여기서 꺼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물었다.
“여기는 정확히 뭐 하는 곳이야? 해일이 만들어 낸 던전이라는 게 사실이야?”
『그 답은… 이유영의 가능성 스킬 안에 있어요. 누구보다 이유영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0번 스킬을 말하는 거야?”
화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 0번 스킬, 정신세계.
아직 정확히 무슨 스킬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스킬을 쓰면 나는 내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시스템처럼 간이 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화신은 말했다.
『해일은 다른 3재해와 다르게 ‘오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유영보단 오류를 닮은 몬스터죠. 그래서 교묘하고 치밀해요. 가장 무서운 점은 이유영의 가능성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고요.』
“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
『’오류’가 모든 헌터들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해일은 이유영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이 세상은 0번 스킬, ‘정신세계’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이곳이 내 정신세계 스킬과 닮았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정말 내 스킬을 그대로 사용했을 줄은 몰랐다.
만약 이 세계가 내 스킬로 창조된 곳이라면 여러 수상한 점들을 납득할 수 있었다.
먼저 오류도 해내지 못했던 세계 창조.
내 스킬은 당연히 시스템의 권한으로부터 나온다.
마지막 3재해는 시스템에게서 억지로 권한을 얻어내, 꿈의 왕국을 만들어 낸 듯했다.
그리고 ‘마법 스타 리리’의 아틀란티스를 배경으로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정신세계는 내 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해일은 내 일기장에서 화신을 가둘 만한 내용의 이야기를 찾아, 스킬을 발동한 듯했다.
‘리리’를 가두는 데 아틀란티스만큼 적합한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화신은 말했다.
『이유영은 아직 0번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더 잘 다루게 된다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선 언제나 이야기의 순리에 따라요. 던전도 그렇잖아요?』
화신의 말대로, 당장 왕궁 밖에 있는 야마타노오로치 역시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다.
녀석을 공략하는 방법 역시 신화에 따르는 것이다.
몬스터 강철이나 화왕, 해치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는 대체로 사람이 무서워하는 이야기 속 존재들의 모습을 하고 있고, 던전은 그런 몬스터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배경으로 구성된다.
정신세계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던전 형성과 비슷하다면, 세계를 만들 때 사용된 ‘이야기’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즉, 해일이 만들어 낸 전설은 이곳에서 절대적이었다.
“해일을 불러내는 방법은 내가 이곳의 왕이 되는 것뿐인 것 같네.”
『이유영도 왕이 되기 위해 이곳의 주민들을 전부 내쫓고 있는 거 아니었나요?』
“웬만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어.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잖아.”
미즈히메를 내 편으로 만들고, 여덟 머리의 용을 이용해 왕국을 부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해일의 손바닥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 왕국의 주민들을 전부 내쫓고 왕이 된다고 해도 해일이 순순히 나타날지도 의문이라 찜찜했다.
그때, 우리가 떠드는 걸 구경만 하고 있던 린이 물었다.
“혹시, 이 세상이 없어지면… 화신 씨도 사라지는 건가요…?”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나는 화신을 쳐다봤다.
화신은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보다가,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마도…?』
“뭐?”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보다 표정이 무섭다구요 이유영…!』
화신은 린의 뒤로 가서 숨었다.
내가 화낼 만한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저 배은망덕한 햄스터에게 말했다.
“기껏 구하러 와줬더니 사라진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유영이 빨리 와주질 않을 것 같아서….』
“뭔 말도 안 되는 변명이야? 어떻게 해야 안 사라지는데?”
화가 나는 걸 넘어서 황당했다. 이 자식이 누가 시스템 아니랄까 봐, 사람을 이용하는 데 아주 도가 텄다.
그래도 나름 죄책감이 들긴 하는지 화신은 성실하게 답했다.
『화신은 ‘리리’처럼 이 정신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구요…. 이유영에게 구조 요청부터 보내긴 했지만, 아직 해결 방법은 찾지 못했어요. 해일이 너무 강력하단 말이에요….』
“그럼 너도 사라지긴 싫다는 거지?”
화신은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만 린은 내 의도를 파악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유영 씨는 화신 씨도 살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요. 화신 씨가 살고 싶어 해야 구해줄 수 있으니까요.”
『살고 싶다니, 화신은… 화신이라구요? 린이랑 이유영과는 다르게 생명이 아니에요.』
“그래도요. 화신 씨를 구하고 싶은 유영 씨와 저는 사람인걸요. 화신 씨가 사라지면 생명을 잃은 것처럼 슬퍼질 거예요.”
린의 말대로였다.
저 녀석이 시스템의 화신이든, 홀로그램이든, 로봇이든 뭐든 간에, 살고 싶어 해야 한다.
녀석에게 생명의 의지가 있어야만 나도 구해줄 수 있다.
화신은 린과 나의 태도에 꽤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듯했다.
한참 뒤, 화신은 말했다.
『이유영. 가능성 스킬, ‘0번. 정신세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정신 에너지를 키우는 거예요. 정신 에너지를 키우는 방법은…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것이구요.』
“갑자기 웬 동문서답이야.”
화신은 내 태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시스템은 사람의 정신 에너지를 기준으로 ‘각성자’를 만들어요. 각성자를 만드는 이유는, 시스템에게는 정신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시스템은 그런 존재예요. 이미 끝난 이야기들이고, 삶에 대한 욕구는 생길 수가 없는 존재예요.』
시스템이 인류의 역사, 이야기, 그렇게 탄생한 별자리들이라면, 당연히 생존 욕구 같은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회귀시키면서 줄곧 함께해 온 화신이라는 녀석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서 너는 어떤데? 시스템과는 별개로 생각할 수 있잖아.”
이 녀석한테 내 ‘생명의 의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해일이 만들어 낸 세계에서 이 녀석을 구할 마땅한 방법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이 살고 싶다고 한다면, 린과 나는 화신과 함께 무사히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 헤맬 것이다.
화신은 우물쭈물하며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린과 나는 녀석이 답할 때까지 기다렸고, 마침내 화신이 말했다.
『화신은, 최후의 인류와 인어 공주가… 오류와 싸워서 이기는 걸 보고 싶어요. 이곳에서 사라진다면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녀석은 못 할 말을 한 것처럼 쭈뼛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처음으로 의지를 가진 이 순간은 굉장히 중요했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린은 화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힘내봐야겠네요…! 분명히 이 왕국 어딘가에 화신 씨를 구할 방법이 있을 거예요.”
“동감입니다.”
마지막 3재해가 내 스킬을 이용해 만들어 낸 세계라면, 나 역시 스킬을 통해 이 세계를 덮어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는 내가 쓴 이야기의 순리가 절대적인 법칙이 된다.
화신의 말 한마디는 린과 내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