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대홍수 (2)
백호 마수 호두는 김신욱과 고주연을 태우고 서해로 향했다.
몬스터 백호의 능력 중 하나인 ‘신속한 바람’을 발동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이 미친 속도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복슬복슬한 털이라도 움켜쥘 수밖에 없다.
김신욱과 고주연은 호두의 등짝에 있는 힘껏 매달려 서쪽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 한복판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재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크기다.
저렇게 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으면 함대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김신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님, 그 대가리 여덟 개 달린 용 보여요?”
고주연은 김신욱과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전직 양궁 국가 대표 선수였던 그녀는 종합 능력치가 S로 오르면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시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시야에는 소용돌이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용 한 마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응. 소용돌이 위에서 날고 있어. 누가 올라타고 있는 것 같은데, 헌터인가?”
어떤 여자가 용 위에 앉아 있었는데, 고주연이 보기에 그 여자가 용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소용돌이를 지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쏟아지는 경고 사격에도 여자는 용이 반격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며, 자리를 지켰다.
김신욱은 인상을 구겨가며 소용돌이 위를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는 여덟 머리의 용은커녕,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을 볼 수 있을 리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주연의 괴물 같은 시력에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누님 시력이면 이유영 천리안도 필요가 없겠는데요.”
그런데 그때였다.
김신욱의 시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색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새어 나오던 금색의 빛은 어느 순간 작은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금빛의 전격으로 바뀌고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난데없이 터져 나온 금색 전격은 소용돌이를 한층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이상 현상에 서해의 함대는 서둘러 퇴각했다. 지금도 소용돌이에 가까이 가 있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지금보다 더 거리를 벌리지 않으면 전격 피해를 볼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제 여덟 머리의 용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은 공중에서 소용돌이로 향하고 있는 김신욱과 고주연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저 금빛의 전격이 너무나 익숙했다.
이유영에게 있는 ‘낙뢰’라는 스킬과 지나치게 똑같았다.
“야, 이유영!! 여기 있냐?!”
김신욱은 다짜고짜 소용돌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잠잠한 바다를 보며 답답해진 김신욱은 호두의 털을 쥐고 흔들며 말했다.
“더 빨리 가봐, 더 빨리…!”
호두는 답이라도 하듯이 크르릉거리더니, 백호의 가장 특징적인 스킬인 ‘금강불괴’를 사용했다.
S급 무기도 맨몸으로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는 능력으로, 호두의 머리에서 꼬리까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갑옷이 돋아났다.
동시에 크게 부풀어 오른 다리 근육으로 공중을 찢어 가르듯이 달려갔다.
금강불괴의 몸이 풍압을 무시하고 달려 나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만약 김신욱이 급하게 빛의 장막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몸도 성치 않았을 것이다.
탄환처럼 달려가는 호두 덕분에 두 사람은 순식간에 남해 한복판에서 서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마침내 소용돌이에 근접했을 때, 고주연은 호두의 위에 올라서며 말했다.
“나 좀 붙잡고 있어.”
“예?”
“떨어지지 않게 잡고 있어 줘. 화살 쏠 거야.”
이 미친 스피드 속에서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서 있는 고주연은, 벌써 활을 소환해 화살을 걸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붙잡아주지 않으면 떨어질 것이다.
김신욱은 당황할 틈도 없이 서둘러 고주연의 두 다리를 붙잡았다.
고주연은 이동하는 마수 위에서 정신을 집중하며, 소용돌이의 중앙을 바라봤다.
이 풍압을 뚫고, 저 물속으로 화살을 날려야 한다. 미사일처럼 나아가는 힘이 있어야만 했다.
고작 화살로 미사일과 같은 힘을 낼 수 있을까.
고주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안되면, 되게 해야 했다.
두 개의 화살을 연결한 형태의 기묘한 투사체를 만들어 낸 고주연은, 활시위에 그것을 걸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단단하고 질긴 시위를 있는 힘껏 당겨,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힘주어 늘렸다.
김신욱이 지지대가 되어 자세를 고정해 주고 있는 상황.
역경 속에서 뚫어낼 길을 찾아낸 그녀는 마지막으로 신념을 실어서 넣은 뒤, 화살 깃을 놓았다.
탕!
신념의 화살은 풍압을 뚫고 소용돌이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나 소용돌이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바람의 영향으로, 화살이 올곧게 나아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설상가상 바다에서 튀어 오르는 물줄기들이 화살의 경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결국 화살이 추락할 것만 같던 그 순간, 고주연은 서브 스킬 ‘충격파’를 발동했다.
퍼엉!
두 개의 화살을 연결한 형태의 투사체를 만든 것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뒤에 달려있던 화살이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앞에 있던 화살에 추진력을 더했다.
그간 다양한 전투를 치르며 스킬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습득한 고주연은, 화살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화살이 소용돌이의 중앙으로 처박히던 순간.
고주연은 여덟 머리의 용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여자는 고주연의 화살이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용의 날갯짓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었다.
그녀는 고주연을 향해 무어라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물거품처럼 흩어지는 바람에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고주연의 화살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그 순간.
소용돌이의 중앙에서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크읏!”
섬광탄처럼 터져 나오는 빛에 고주연과 김신욱은 눈을 뜰 수 없었다.
고주연의 화살에 반응해서 빛이 터져 나오는 걸까?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김신욱과 고주연은 동시에 그 빛 속을 향해 외쳤다.
“이유영!”
빛 속에서 두 세계가 충돌하고 있었다.
***
.
.
.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
바다의 왕국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왕국에 유일하게 없던 것이 태양이다.
인공적인 빛으로만 유지되던 심해의 왕국의 왕좌가 채워지며, 비로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신성한 빛을 내며 떠오르는 태양은 따사롭게 멸망한 왕국을 비췄다.
이곳에 주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 빛에 감복하여 창랑신을 연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서서히 중천까지 떠오른 태양은 내가 앉아있는 왕좌를 향해 강렬한 빛을 내렸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강제로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수족관에 갔던 기억.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어머니와 행복했던 기억이다.
.
.
.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유리 벽 너머의 작은 바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푸른 조명과 색색의 산호들, 유리 벽 너머에서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물고기 떼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는 것들의 빛나는 비늘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심코 눈이 마주친 가오리는 금방 내게 흥미를 잃고 유리 벽 너머의 작은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바위 저편으로 멀어지는 가오리를 바라봤다.
손에는 츄로스인지 아이스크림인지 모를 것이 들려 있다.
내 옆에는 물고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먹다가 입가에 죄다 묻힌 음식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엄마는 이 물고기들이 안타까워.’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나는 왜 어머니가 물고기들 따위에 공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 벽 속에 갇혀서 정해진 곳만 떠돌아야 하는 생명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는 어머니한테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어머니는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살기에는 다정했고, 나만 키우겠다는 목표로 견디기에는 가녀렸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럴 것 같았다고 납득했다.
이후 양육권을 아버지에게 넘기고 혼자서 살아가던 어머니는,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사실을 아버지와 내게 알리지 않아서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야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 이후로 더욱 무뚝뚝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를 위해 ‘착한 아이’가 되고자 노력했다.
기억 저편에 처박아 둔 기억이 강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세 명의 가족이 단란했던 나날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때 느꼈던 행복, 편안함, 따뜻함이 사무쳤다.
‘정상 가족’에 대한 선망이 문득 고개를 불쑥 내밀며, 유년기의 결핍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거봐, 너도 결국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잖아.』
불쾌한 목소리와 함께, 돌연 내 앞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형상이 나타났다.
나는 어려진 채로 왕좌에 앉아 있었고, 손에는 ‘리리’의 인형이 들려 있었다.
왕국은 언제 무너졌냐는 듯이 다시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
『소중한 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이유영, 여기서 넌 행복할 거야. 내가 널 위한 세계를 만들어 줄 거니까.』
나는 무심코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래, 나에겐 이런 어머니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지만, 떠올리는 게 괴로워서 지워버린 채 살아갔지만, 내겐 다정한 어머니가 있었다.
막상 마주하니 잊고 살았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머니….”
그녀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아버지는 두껍고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위로와 격려가 담겨 있는 그 손길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아버지의 손길이었다.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산다면, 아버지는 살아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도, 아버지의 희생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넘실대다 못해 추락하는 눈물이 내 솔직한 감정을 증명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숭배’에 저항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사람은 결국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망상 속에 갇혀버리면 현실에 존재하는 인연과 멀어진다.
현실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붕 뜨게 되는 것이다.
척박하고 삭막해도 나를 나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척박한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발견할 희망이라도 있으나,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주를 유영해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차라리 사막을 횡단하며 말라비틀어진 선인장 뿌리라도 캐 먹는 것이 ‘삶’에 가깝다.
그리웠던 세상에서 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만 흐르는데 어떻게 과거의 한때에 살 수 있을까.
추억을 추억으로 남기고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이란 그렇게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퍼석한 모래를 밟고 사구를 넘어 오아시스를 찾아, 희망을 찾아 나설 것이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숭배’에 저항합니다.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나를 태워 먹을 듯이 내리쬐는 햇빛이 눈뜨는 것을 방해했으나, 내 눈앞에 떠오른 작은 생명체가 그림자를 만들어 준 덕에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그 생명체는 내게 말했다.
『이유영, 얼른 스킬을 발동해요!』
더는 ‘생명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화신이, 날 위해 미약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는 이 환상 속의 왕국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곧 세계입니다.」
「페이지를 검색하세요.」
나는 떠오른 푸른 창을 향해 말했다.
“멸망한 왕국의 기록으로 이 세계를 부수겠어.”
눈앞에 일기장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여러 장의 페이지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빛을 뿜어냈다.
저 태양에 필적할 만한 강렬한 빛이었다.
키이이이잉!
해일이 발동한 정신세계 스킬과 내 정신세계 스킬이 부딪히며, 고막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빛이 충돌했다.
화신은 린과 함께 야마타노오로치를 타고 이 세계의 균열을 향해 날아올랐다.
바깥에 들이닥친 ‘재앙’은 저 둘이 해결해 줄 것이다.
키이잉!
페이지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마침내 태양 빛이 사그라들며, 드디어 마지막 3재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질적인 푸른 머리카락과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곱상한 외모. 바다의 왕국 주민들이 입고 있던 흰옷을 입은 녀석은 마치 신처럼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녀석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인정하지, 최후의 인류. 넌 강인한 녀석이야.』
그와 함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