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대홍수 (3)
‘알은 세계다. 태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이라는 소설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 작자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알을 품고 있다.
해일이 만들어 낸 세상은 ‘알’ 그 자체였다.
알 속에서 살아가면 편안하지만, 우리는 그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나를 가두고 있는 틀에 영원히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껍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주체적인 삶을 쟁취해야 한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나는, 알을 부쉈다.
콰과광…!
해일과 나를 가두고 있던 세상이 무너져 내리며 하얀빛에 삼켜졌다.
적을 앞에 두고 눈을 감고 싶지 않았으나, 도저히 견딜 수 있는 빛이 아니었다.
시야가 점멸했다.
눈을 떴을 때 펼쳐진 곳은 자각몽 속의 세상, 흰 페이지로 이루어진 내 정신세계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던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정신을 강타했다.
“이유영!! 여기 있냐?!”
김신욱의 목소리였다.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지만, 녀석의 부름에 답해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 앞에 마지막 3재해, ‘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떨어진 샛별을 소환하며 녀석을 향해 들어 올렸다.
“얼굴 한 번 보기 참 힘들다.”
해일은 나와 똑같은 검을 소환하며 답했다.
『동료가 부르는데, 무시할 건가?』
“너 족치고 나서 대답하려고.”
『하하, 영원히 대답 못 할지도 모르겠네.』
녀석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나 역시 평정심을 유지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흔들렸다간 한순간에 목이 날아가고 말 것이다.
그만큼 녀석은 강했다.
여태 만난 3재해들보다 더 까다롭게 나타난 만큼 실력이 있는 놈이었다.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을 늦추는 순간 내가 패배할지도 모른다.
『내가 두렵나?』
“말이 많네. 이제 그럴 단계는 지났다는 걸 알 텐데.”
『난 주먹싸움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 가능하면 대화로 풀고 싶어. 그런데 네가 굳이 주먹싸움을 원한다면, 응해줘야겠지.』
사람을 대량 학살하려던 몬스터 따위가 해도 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떨어진 샛별을 굳게 다잡았다.
해일은 그런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더니, 순간, 거리를 좁혔다.
캉!
검과 검이 부딪혔다.
쇳덩이의 강렬한 울림이 팔근육을 타고 어깨까지 진동시켰다. 어느 쪽도 밀리지 않고 비등하게 힘을 겨루고 있는 탓에 갈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녀석이 떨어진 샛별에 스킬을 주입했다.
파지직!
붉은 스파크가 튀기는 것을 보며 녀석이 검에 마왕의 ‘낙뢰’를 둘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스킬을 주입하지 않으면 검이 부서지고 마는 상황.
녀석이 유도하는 대로 끌려가는 느낌이었지만, 스킬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떨어진 샛별’이 마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떨어진 샛별에 피를 먹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한 건 처음이었으나, 다행히 내 검은 주인의 말을 들어줬다.
이전보다 더 강렬해진 스파크를 뿜어내는 떨어진 샛별이 자신의 카피본과 부딪혔다.
파지지직!
힘을 집중할수록 스킬이 끝도 없이 방출되는 게 느껴졌다.
피x츄가 진화해서 라x츄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낙뢰의 힘이 전보다 더 세련되고 강력해져 있었다.
스킬을 발동하는 각성자 힘의 원천, ‘정신에너지’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성 구석에 처박혀서 기록만 했던 보람이 있었다.
나는 스킬의 위력으로 녀석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해일 역시 나와 같은 스킬을 쓰고 있어서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스킬을 쓴다면 자폭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가능성 스킬 중 가장 파괴적인 스킬은 낙뢰였고, 낙뢰를 압도할 수 있는 단일 스킬은 내게 없다.
지금은 내 검이 제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카가가각!
나는 단전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검을 옆으로 비틀어, 녀석의 검날을 쳐올렸다.
해일이 경로를 틀며 녀석의 검이 내 왼팔을 크게 스치고 갔지만, 상관없었다.
마침 피가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 ‘떨어진 샛별’이 특정 조건을 감지합니다. ]떨어진 샛별은 내 팔을 타고 흐르는 피를 모두 흡수하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검날이 피를 먹고 강렬한 붉은 빛을 띠며 큰 진동을 일으켰다.
방금까지 부딪히던 마의 기운을 당장이라도 씹어 삼키려는 듯이 검등에서 맹수의 이빨과 같은 톱날이 자라났다.
키이이이잉!
떨어진 샛별이 톱날을 갈아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무기 싸움에서 이 소드 브레이커가 지는 일은 없다.
그건 떨어진 샛별의 카피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숨에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해일은 진화한 떨어진 샛별을 보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순순히 검을 부딪쳐 왔다.
카가가강!
녀석의 검날과 떨어진 샛별의 톱날이 부딪쳤다.
떨어진 샛별은 전기톱처럼 이빨을 갈며 자신의 카피본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해일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상하지? 루시퍼는 사람들이 많이 아는 이야기잖아. 그런데 왜 ‘마왕’은 너를 이기지 못했을까.』
“내가 더 강하기 때문이지. 불리하면 헛소리를 하는 건 ‘3재해’의 특징인가?”
『불리? 내가 불리해 보여? 나는 마왕의 검 따위, 하등 쓸모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는 거야.』
해일은 새파란 눈을 번뜩이며 검을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검이 톱날에 완전히 먹혀 부서지길 바라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었다.
떨어진 샛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납게 자신의 카피본을 씹어댔고, 마침내 해일의 검이 부서졌다.
챙강!
녀석은 쉽게 부서져 버리는 떨어진 샛별을 보며 만족한 듯 작게 웃었다.
성격 한번 별난 새끼였다.
그런데 카피본을 부수고도 성난 듯이 윙윙대던 떨어진 샛별이,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내게 강한 진동을 보냈다.
검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죽여, 저 자식을 죽여. 찢어 죽이자.’
마왕의 검이 살육을 갈망하게 만드는 악독한 주문을 걸고 있었다.
이 검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이것이다.
‘마의 기운’을 감지하면 강해지지만, 본질적으로 ‘마’의 정점에 있던 마왕의 검이다. 새로운 피 맛을 보길 원해서 소유자의 정신까지 갉아먹는다.
해일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진동하는 톱날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분화’는 그 검을 두려워했지. 그게 우리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어. 심복이었던 마왕의 검 따위를 두려워하다니, 웃기지 않아?』
“그 웃기는 녀석의 부모님이 너랑 같은 거로 아는데.”
3재해는 내 일기장과 오류의 힘으로 만들어졌으니 결국 근본이 같은 놈들이다.
좋게 말하면 형제 같은 놈들이었고, 비인간적으로 말하면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같은 관계였다.
그래서 시스템도 녀석들을 ‘재해’라고 묶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녀석들과 달라. 내가 제일 너를 닮았거든.』
“아니, 넌 걔네보다 더 나를 안 닮았어. 닮았다면 ‘오류’를 더 닮았겠지.”
나는 떨어진 샛별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러나 해일은 내가 떠들던 이유를 금방 알아차린 것처럼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여전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묘하게 오류와 닮아 있어서 불쾌감이 들었다.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분위기.
눈앞에서 스킬을 발동하는데도 그 분위기만큼은 한결같아서, 대응이 늦어졌다.
화아악!
녀석의 주위로 순식간에 붉은 아지랑이가 뻗어 나왔다.
스킬 ‘열풍’을 발동한 듯했다.
붉은 아지랑이에서 검을 한 자루 만들어 낸 녀석은 잔뜩 성이 나 있는 떨어진 샛별을 향해 열풍의 검을 부딪쳐왔다.
떨어진 샛별은 자아를 가진 놈처럼 움직여 스스로 마의 기운에 달려들었고, 차마 검을 놓을 수 없었던 나는 그 무의미한 겨루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퍼엉!
고온의 스파크와 열기의 결정체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낙뢰와 열풍 스킬은 융합하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해일은 그걸 이용해 검과 나에게 동시에 타격을 입히려 하고 있었다.
나는 떨어진 샛별이 폭발에 휩쓸려 부서지지 않도록 더 강력하게 스킬을 주입했다.
스킬을 두르면 검은 부서지지 않는다.
다만, 그럴수록 더 큰 폭발이 일어날 것이고 나는 내 몸까지 보호할 겨를이 없었다.
퍼버벙!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나는 폭발에 나가떨어지며 몇 번을 꼴사납게 뒹굴어야 했다.
말썽꾸러기 검을 바닥에 박아 넣어서 버틴 덕에, 벽에 처박히는 꼴만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팔다리를 비롯한 피부 가죽이 폭발에 뒤덮여 시꺼멓게 타버렸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무감각 스킬로 인해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내 살가죽이 타버리는 일은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열풍을 장막처럼 펼쳐 충격을 최소화한 해일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녀석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며 이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슈욱!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해일의 머리를 노렸다.
해일은 그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반사적으로 물 스킬을 써서 대응했다. ‘심판의 물’이 아니라 녀석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재해의 스킬인 것 같았다.
비록 화살은 바깥으로 튕겨 나갔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화살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격을 개시할 수 있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곧 세계입니다.」
「페이지를 검색하세요.」
나는 해일에 대항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알고 있다.
난데없이 바닷물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만한 곳.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소는 3재해 중 한 명이 나타났던 곳이었다.
지저(地低)의 세계.
아주 뜨거운 열기에 물이 끓어버리고 금세 증발해 버리는 곳.
분화를 가뒀던 류진이 만든 붉은 게이트 속 세상.
그곳만큼 ‘해일’을 상대하기 좋은 곳이 없을 것이다.
“네가 비웃던 분화가 얼마나 뜨거운 녀석이었는지 이번 기회에 깨달아봐라.”
이제야 해일의 여유롭던 얼굴에 드디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세계가 움직이며, 폐부를 덥히는 뜨거운 공기가 휘몰아쳤다.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이곳은 내 정신세계다. 정신세계끼리 맞붙는다면 이번에도 내가 이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반년이라는 시간을 버렸다.
그렇다면 녀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불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싸우거나, 현실 세계로 튀어 나가는 것.
나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역시 나를 닮지 않아서, 이 후덥지근한 세상에서 싸우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을 향해 붉은 전격이 사납게 튀는 떨어진 샛별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 흉내 내면서 시간 끌지 말고, 제대로 덤벼.”
여기서 이 녀석의 본 실력을 봐야 한다.
전력을 다한 해일을 꺾었을 때, 비로소 나는 오류를 향해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해일은 3재해 중에서도 가장 오류와 닮은 녀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