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대홍수 (4)
신발 밑창이 녹아버릴 만큼 달궈진 지반.
열기에 녹은 암석이 흐르는 마그마의 강.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호흡기에 화상을 입는 열기가 만연한 이곳, 지저의 세계.
나는 이 지옥과 같은 곳을 다시 소환해 냈다.
해일의 본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선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을 필요가 있다.
나는 봐줄 것 없어 곧장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부우웅!
떨어진 샛별이 톱날을 가는 소리가 귓바퀴를 때리고 들려 왔다.
날뛰는 떨어진 샛별은 시동이 걸린 전기톱과 다를 게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절단내고 찢어발기려 했다.
뜯어 부수는 감각을 원하고 있었다.
해일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심장의 펌프질이 빨라졌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근육과 혈관이 확장되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녀석의 사지를 뜯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머리를 지배했다.
이게 검의 욕망인지, 내 욕망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스각!
톱날이 녀석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아슬아슬하게 목가를 스쳐 지나갔다.
해일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내 검을 피하고 있었다.
동시에 괴력 스킬을 사용해, 오우거 부족장처럼 비대해진 팔로 가뿐히 검을 쳐냈다.
퉁!
검을 쳐내면서 녀석은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가격했다.
비대하게 증강한 주먹은 한 대만 맞아도 내장이 파열될 만큼의 괴력이 담겨 있었다.
나는 검이 부서지지 않도록 낙뢰 스킬을 주입하며 녀석의 반격을 막아냈다.
퍽!
이 녀석, 확실히 나보다 더 스킬을 잘 쓴다.
이전에 내가 미카엘에게 ‘지배’ 스킬이 걸렸던 때만큼 잘 사용하고 있었다.
스킬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해서 상황에 적절하게 쓰고 있다.
전투 지능이 상당히 높은 놈이었다.
내 스킬인데, 내가 저놈보다 더 못 쓰고 있다.
자존심이 상했다.
떨어진 샛별에 감화되어 감정이 격해진 건지, 좀 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낙뢰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파지지지지직!
나는 본능에 몸을 맡기며, 떨어진 샛별을 야구 배트처럼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노렸다.
해일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뒤로 물렸고, 나는 발산하는 낙뢰의 힘을 체내로 집중시켰다.
몸의 반응 속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이 녀석을 이기려면 상식에서 벗어난 공격을 펼쳐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해야 했다.
나는 억지로 팔을 비틀어 꺾어 검의 경로를 뒤집었다. 비상식적으로 꺾인 팔이 반원을 그렸고, 떨어진 샛별의 톱날은 해일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카가각!
팔뼈가 뒤틀려 탈구되었으나, 상관없었다.
공격이 제대로 먹히며 떨어진 샛별의 톱날은 해일의 갈비뼈 밑을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상처에선 빛의 조각 같은 일기장이 흩날렸다.
한 페이지도 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흡수하는 떨어진 샛별을 보며, 나는 웃었다.
“하하…!”
『미쳤군…! 이딴 재주는 한 번밖에 통하지 않아.』
녀석은 괴력을 사용해 증강된 각력으로 내 복부를 걷어차는 킥을 날렸다.
아무리 내가 검의 광기에 휩싸였다고 해도, 뻔히 보이는 발차기에 당할 만큼 정신이 나가진 않았다.
나는 검으로 녀석의 공격을 받아내며 말했다.
“운 좋으면 두 번은 통할지도 모르지.”
떨어진 샛별은 녀석의 발등마저 물어뜯으려는 듯 사납게 톱날을 갈았다.
해일은 즉각 내게서 거리를 벌리며 벌어진 상처를 움켜쥐었다.
녀석의 상처는 금방 회복되고 있었다.
떨어진 샛별은 아쉬운 듯 톱날을 갈아댔다.
운 좋게 들어간 공격이긴 했지만, 해일이 진심으로 싸우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공격인 것 같았다.
해일은 눈을 시퍼렇게 뜨며 재해의 스킬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녀석의 발밑에서 파도가 쏟아져나오더니, 순식간에 주위에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바다의 짠 내가 코끝을 스쳤다.
녀석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처럼 파도 위에 올라섰다.
넘실대는 파도는 점차 크기를 부풀려 갔고, 단번에 해일을 창조해 낸 녀석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한낱 인간이 바다를 이길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 너와 나의 결투는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었어.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어.』
자문자답하던 녀석의 등 뒤로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암석마저 녹이는 고온의 지열이 빠르게 물을 증발시켰으나, 바다 그 자체인 녀석이 생성할 수 있는 물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저 자식…!’
바닷물이 증발하는 것을 보며, 나는 곧장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물은 급격히 온도를 올리면 폭발적으로 팽창한다.
지금처럼 초고온의 환경에서 가열된 물은 ‘수증기 폭발’을 일으킨다.
펑!!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주위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일은 증발하는 수증기마저 조종하여 지속적인 폭발을 일으켰고, 나를 마그마의 강으로 내몰았다.
퍼버벙!!
나는 간신히 몸을 굴려 폭발을 피하며, 마그마의 강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심판의 물이나 목단의 줄기를 써서 방어할 수 없다.
물 스킬을 쓰면 해일을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고, 목단의 줄기는 지저의 환경에서 쓸만한 스킬이 아니다.
그렇다면, 방어를 포기한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린 뒤 폭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읏…!”
전신에 끓는 물을 부은 듯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다. 이 폭발에 대응하는 방법은 방어도 회피도 아니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화상을 입은 피부가 순식간에 회복되어 나를 나아가게 했다.
여전히 폭발하는 수증기 속에서 간신히 눈을 뜨며,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화아악!
마그마가 들끓는 지저의 세계. 피까지 끓어 넘칠 듯한 온도에 더 강한 열기를 더했다.
당장이라도 더 큰 폭발이 일어날 것 같은 고온의 환경.
이곳만큼 해일을 밀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 없는 건 사실이다.
녀석이 불리함마저 이용한다고 해도,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나는 나를 사지로 내몰았던 녀석의 싸움 방식을 떠올리며, 열풍의 ‘바람’의 힘에 집중했다.
해일의 말대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낱 인간이 바다를 상대로 ‘승리’라는 개념을 얻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녀석은 몬스터다. 재해의 힘을 이용하는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승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이미 두 번의 재해와 맞서 싸워 승리했다.
‘태풍’의 소용돌이라면 해일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열풍을 발동해 이곳을 집어삼킬 폭풍을 일으켰다.
콰가가가각!
마그마와 불길을 삼키며 열풍이 휘몰아쳤다. 뼈도 남기지 못하고 타버릴 듯한 재해였다.
폭풍이 향한 곳은 마지막 3재해가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파도, ‘해일’.
폭발하는 수증기는 거대한 폭풍의 불길에 먹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해일은 밀려드는 폭풍을 보며 어디 한번 덤벼 보라는 듯이 더 큰 파도를 일으켰다.
곧, 꺼지지 않는 불과 마르지 않는 물이 격돌했다.
쿠구구구구구
파도와 열기가 지속해서 충돌했다.
희뿌연 수증기가 숨 막히게 퍼져나갔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해일을 향해 달려갔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나를 뒤덮으려 했지만, 강렬한 열풍으로 밀어내며 쉬지 않고 나아갔다.
마침내 녀석에게 도달했을 때.
나는 떨어진 샛별로 파도를 가르며 녀석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열풍을 발동하면서부터 변화하던 떨어진 샛별은 불의 검처럼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스킬을 재흡수하면서 그에 맞게 모습을 바꾼 것이다.
열기의 검은 파도를 두부처럼 썰었고, 그 위에 올라서 있던 해일은 공격을 피하며 바닥을 딛고 섰다.
육지에 선 바다의 신은, 더는 신이 아니었다.
나는 녀석이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해일은 혀를 차며 물의 벽을 세워 방어했고, 나는 떨어진 샛별의 아지랑이를 더 크게 불태우며 녀석의 흉곽을 노렸다.
스가각!
검 끝이 녀석의 상체를 크게 가로지르며 베어냈다.
녀석의 벌어진 상처에서 혈액처럼 일기장이 터져 나왔다.
『크읏…!』
해일은 상처를 움켜쥐었으나 일기장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떨어진 샛별은 탐욕스럽게 떨어지는 일기장을 받아 삼켰다.
나는 녀석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운 좋으면 두 번은 통한다고 했지?”
녀석은 내 검을 피하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숨을 헐떡이던 녀석은 눈을 새파랗게 빛냈다.
더는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하… 그래, 나도 더는 봐줄 수 없겠구나….』
순간, 바닥을 채운 바닷물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물의 분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딴 분신 따위로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당장 분신의 머리통을 베어내려는데, 분신이 나와 눈을 마주쳐 왔다.
너무도 선명한 이목구비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것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분신들은 내 부모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 표정…! 그래, 이유영…. 너는 나를 따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녀석은 광기에 찬 목소리로 웃어대며 즐거워했다.
분신들은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것들을 베어나갔다.
분신은 검격 한 번에 사라질 만큼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질 때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죽어갔고, 저 악랄한 새끼의 수작에 분노가 치밀었다.
『얌전히 숭배에 당했다면 지금쯤 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넌 어떻지? 스스로 부모님의 형상을 죽여나가는 기분이 어때!』
“입 닥쳐!”
『지옥을 경험하고 나면 너도 생각이 바뀌겠지. 네게 더 큰 지옥을 안겨 주마!』
당장이라도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끈질기게 분신들이 생겨나는 탓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 사이, 녀석은 야비하게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구구구…!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정신세계가 흔들린다는 건, 해일이 ‘0. 정신세계’ 스킬을 발동해 스킬 간에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세계에 균열을 일으켜 탈출하려는 의도였다.
“이 자식이…!”
내 평정심조차 금인 간 것인지, 하늘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신세계를 발동한다면 열풍의 힘이 약해지고 만다. 그 순간 녀석이 일으킨 파도에 내가 떠밀리고 말 것이다.
나는 나를 붙잡으려는 분신들을 떨쳐내며, 녀석을 향해 열기의 폭풍을 부딪쳤다.
그러나 녀석은 악독하게 웃으며 높이 솟아오르는 파도를 일으켰다.
콰가가가가각!
해일은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서며, 균열을 부수고 이곳에서 탈출했다.
녀석의 재해의 힘을 끌어내는 건 정신세계 안에서여야 한다.
바깥으로 탈출하는 순간, 녀석은 진짜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
이유영이 소용돌이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사이.
린은 고주연과 김신욱, 호두와 함께 야마타노오로치 위에 올라서 있었다.
이유영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기 위해, 진짜 ‘재앙’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