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대홍수 (5)
서울, 재앙 대책으로 만들어진 임시 헌터 사령부.
구지상은 본부의 실내에서 창밖으로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구지상은 현재 편안한 실내에서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한심해서 자꾸만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때, 사무용 책상에 앉아 보고서들을 읽고 있던 진준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형이 가봤자 뭐 안 달라지는 거 아시잖아요. 얌전히 대한민국 국토나 지키세요.”
“응….”
자기보다도 어린 동생한테 혼나버린 구지상은 고분고분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구지상을 신기해하며 형이라 부르고 따르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사리 분별이 뛰어난 전략가 헌터가 되어버렸다.
반년 만에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렸다.
물론 멋진 성장이었지만, 반년 만에 순수함을 잃고 어른이 되어버리는 건 좋지 못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른이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구지상은 진준성을 바라봤다.
이곳에는 구지상과 진준성 둘 뿐이었고, 진준성은 구지상의 시선을 못 알아차릴 수 없었다.
결재란에 사인을 해나가던 진준성은 결국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이 내륙에 있으니까 국민들이 안심하고 대피소에 들어간 거예요. 지금은 에덴에서 귀환한 영웅 행세할 때예요. ‘영웅’이 뭔지 형이 제일 잘 알잖아요. 심볼의 역할에 집중하세요.”
“응….”
구지상의 힘없는 대답에 진준성은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육지에서는 단연 최강의 헌터지만, 바다에서 구지상은 팥 없는 팥빵이다. 차라리 내륙에 남아서 만약을 대비하는 게 나았다. 그게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혼란을 방지하는 방법이며, 최후의 한 수는 언제나 남겨두는 게 전략의 기본이다.
이론적으로 그랬다. 이게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에 구지상의 의견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진준성과 협회장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었다.
진준성은 침울한 구지상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 불편한 감정은 이제 막 20살이 되었을 뿐인 진준성을 울컥하게 했다.
“힘 좀 내세요! 옆에 있는 저까지 기운 빠지잖아요…!”
진준성은 말하고 난 뒤에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위로하려던 게 투덜거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밖에 말이 안 튀어나오는지, 자신한테 답답해진 진준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한숨 쉬던 구지상에게 잔소리했는데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구지상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답했다.
“응, 힘낼게!”
여전히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다정한 진준성을 보며 구지상은 안심했다.
그러나 구지상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진준성은, 왜 그가 갑자기 해사하게 웃는지 이해할 수 없어 갸우뚱할 뿐이었다.
두 사람이 미묘한 동상이몽을 꾸며 서로를 걱정하던 때.
진준성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웅
이 시기에 핸드폰으로 전화할 사람은 윤지석이나 부모님 정도여서, 진준성은 급히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화면에 뜬 사람은 그들이 아닌 김신욱이었다.
뜬금없는 연락에 당황스러웠으나, 김신욱은 현재 고주연과 함께 서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러 간 상태다. 위급한 연락일 게 분명했다.
진준성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슨 일 생겼어요? 지원 필요해요?”
서해에 생겨난 거대한 소용돌이에 함대가 접근할 수 없었던 탓에 급히 고주연과 김신욱을 보냈던 만큼, 진준성은 그들의 안위를 심히 걱정하던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이런 연락이 왔으니, 질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 김신욱의 목소리는 태평했다.
『야, 이 용 우리 편이야. 몬스터들 싹 다 뒤졌어 이제.』
“뭔 헛소리를…, 알아듣게 좀 설명해 보세요.”
『헛소리 아니고, 너 빨리 아무 데나 연락해서 던전브레이크로 튀어나온 몬스터들 한데 모이게 해봐. 인어공주가 우리 편이란다.』
불친절한 설명에,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라고 하고 있다.
누구나 화라도 낼 법한 상황이었으나 진준성은 침착하게 그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여덟 머리의 용이 우리 편이라는 것, 몬스터를 한데 모아달라는 것, 그리고 인어공주.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이유영과 같이 실종되었던 헌터 ‘미즈히메’ 아오노 린이 길들인 용과 함께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진준성의 머리는 곧바로 다음 전략을 떠올려 냈다.
“아오노 씨한테 태평양으로 이동하라고 하세요. 김신욱 헌터님은 동해로, 고주연 헌터님은 남해로 가주시고, 천혜에 연락해서 비행형 마수 한 마리 더 보낼 테니까 김신욱 헌터님은 그거 타고 가세요.”
『뭐? 야, 내가….』
진준성은 김신욱의 뒷말을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하며, 바로 협회장의 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른 진준성은 신호가 가는 동안 눈앞의 구지상에게 말했다.
“형, 에덴에 연락해서 ‘아오노 린’이 돌아왔다고 얘기해주세요!”
“어…? 어! 알았어!”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지만, 구지상 역시 머리 회전이 빠른 타입이었다.
아오노 린은 물 타입의 몬스터를 복종시킬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스사노오 길드장이 ‘미즈히메’의 힘에 대해 진술하며 알려진 사실이다.
즉, 헌터들이 해전을 벌이고 있는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다.
에덴이 움직여서 몬스터들을 태평양으로 유인한다면, 이 해전은 단숨에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진준성의 한마디에 빠르게 이해를 끝낸 구지상은 당장 사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시각, 에덴 길드.
카린은 요한과 함께 에덴 정원의 낡은 창고에 있었다.
요한은 스킬을 사용해 에덴 길드 내부로 대피한 사람들을 지키는 중이었고, 카린은 그런 요한의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에덴 길드는 바다와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실시간 현장 중계라도 챙겨보지 않는 이상, 바다에서 얼마나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카린은 일부러 방송을 보지 않았다.
그저 낡은 창고에서 고양이 마엘을 품에 안은 채 요한의 곁을 지켰다.
“냐아.”
마엘은 작게 울음소리를 내며 카린의 옷 주머니를 할퀴듯이 긁었다. 주머니에 숨겨둔 간식을 꺼내려는 듯했다.
카린은 마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주머니에 넣어뒀던 봉지를 꺼냈다.
나쟈가 주고 간, 겉면이 다 타버린 버터 쿠키가 담긴 봉지였다.
“이건 마엘이 먹을 수 없어요.”
카린은 쿠키를 달라고 조르는 마엘을 진정시키며, 봉지 속의 쿠키를 쳐다봤다.
나쟈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아껴두고 있었던 쿠키다.
지금 먹어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카린은 생각했다.
이것이 그녀의 유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멍하니 쿠키를 바라보던 카린은 무심코 생각했다.
‘만약 예언을 쓸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카린은 답을 알고 있었다.
예언을 봤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영은 똑같이 반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미래에서 온 이유영이 없는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어린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진실을 쉽게 발견해 낸다.
카린은 지금 들이닥친 재앙이 순리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에덴에서 나타난 ‘태풍’, 만성에서 나타난 ‘분화’, 창랑교를 만든 ‘해일’.
태풍은 헌터계의 정점에 선 에덴도 바람 한 번에 흔들리는 것을 증명했고.
분화는 권력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인간들을 융해하며 인간의 본성을 까발렸다.
해일은 순환하는 물의 원천을 믿게 하여 우리가 바다의 자손임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분노했다.
그들이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있나?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인가?
생각해야 했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제대로 듣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몬스터가 인간만을 죽이는 건, 그만큼 인간이 밉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의 정체는 인간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카린은 세계수를 떠올렸다.
세상의 모든 자연을 대변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기껏해야 한 그루의 나무인 ‘세계수’.
이 모든 것은 세계수가 자라나게 한 인류가 감내해야 할 순리였다.
카린은 창고에 난 작은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봤다.
요한이 스킬을 쓴 탓에 벽이 솟아 있어서, 길드 바깥은 보이지 않았다.
카린은 벽 너머 어딘가에 있을 지평선을, 그 너머의 수평선을 상상했다. 넓은 바다를 지나,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자라나고 있는 세계수를 상상했다.
그러다 보면, 카린은 이유영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진실을 깨달았을 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요?”
***
붉은 게이트.
류진의 스킬로 만들어진 이곳은 훌륭한 물자 보급소이자, 부상병들을 급히 치료할 수 있는 응급 치료 구역이었다.
류진은 등에 세 명의 부상자를 업고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부상자들을 힐러에게 맡기며 급히 통신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에덴 측에서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에덴에서 연락이 올 이유는 없을 텐데.”
“아, 대장님 오셨습니까!”
“대장은 내가 아니라 길버트라니까 그러네. 그보다, 무슨 일이야?”
대기하고 있던 통신병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류진이 아무리 신참 헌터로 이방인 길드에 들어갔다고 해도, 붉은 두건을 쓴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대장일 뿐이었다.
통신병은 웃으면서 빠릿빠릿하게 답했다.
“한국 헌터 협회에서 몬스터들을 태평양으로 모아달라고 에덴에 요청했답니다. 에덴은 승낙했고, 저희 연합도 합세해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에덴이 협회의 요청을 승낙한 이유는 들었나?”
“예, 황해에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몬스터가 출몰했는데, 실종됐던 헌터 ‘아오노 린’이 그 몬스터를 다루고 있었답니다. 에덴 길드장님은 그녀의 힘을 통해 진짜 재앙을 막을 거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다.
실종됐던 ‘아오노 린’, 그녀는 바다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는 헌터다.
헌터 협회에서 그녀를 발견해 에덴에 무리한 요청을 했고, 에덴은 아오노 린과 함께 이번 해전을 끝내고자 요청을 받아들인 듯했다.
‘진짜 재앙’이라는 말이 다소 걸렸지만, 해전을 끝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셈인데 요청을 승낙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대장 길버트에게도 전해두지. 당장 에덴에 연락해서 요청을 승낙한다고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이런 건 길버트가 해야 하는 일인데, 길버트는 지금 최전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그 역시 류진과 같은 생각일 테니 류진은 대리 승낙을 하고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전선으로 합류하는 그의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실종됐던 그녀가 돌아왔다면, 곧 그도 돌아올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영.”
류진은 미소를 지었다.
***
린은 화신과 함께 야마타노오로치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화신을 조심스럽게 내려주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화신님…!”
『걱정 말고 어서 가요, 린!』
“네…!”
린은 야마타노오로치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화신은 떠나는 린을 바라봤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태평양, 미카엘이 전 세계의 헌터 연합군을 총동원하여 몬스터들을 불러 모은 곳이다.
린은 그곳에서 재앙을 상대할 몬스터 군단을 길들이게 될 것이다.
그 사이, 화신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복수’였다.
화신은 발아래에서 요동치던 거대한 소용돌이를 내려다봤다.
소용돌이가 서서히 회전을 멈춰가고 있었다.
『때가 됐군요.』
화신의 말대로 바다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납게 들썩이던 파도가 잠잠해지더니, 바다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기적이라도 일어나듯이 갈라지는 바다를 보며 화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비록 침이 나오지 않는 화신이었지만, 인간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화신은 해일의 정신세계가 무너졌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영이 화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써줬기 때문이다.
그 덕에 화신은 시스템의 화신이자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도 하는 요정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떤 원리로 이렇게 됐는지는 시스템이 아직 분석 중이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화신에게 시스템의 힘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해일에게 붙잡히고, 학대당하고, 모멸당했던 순간들을 복수할 시간이었다.
화신은 시스템의 힘으로 상공에 웜홀을 만들기 시작했다.
웜홀의 반대편이 향하는 곳은 미즈히메가 이끄는 몬스터 군단이 있는 태평양 한가운데였다.
해일이 등장하는 순간, 그곳으로 날려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