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대홍수 (6)
소용돌이가 서서히 잦아들며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갈라지는 바다 사이에서 등장한 것은 마지막 3재해, 해일이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작은 존재, 화신을 보며 말했다.
『날 기다리고 있었나, 이유영의 펫?』
시스템의 화신을 ‘이유영의 펫’이라고 모멸하는 것은 마지막 3재해밖에 없을 것이다.
유독 오류를 닮은 마지막 3재해는, 시스템을 향한 증오심이 강했다.
시스템을 이유영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깔봤다.
화신은 그의 증오를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본때를 보여줘야만 했다.
시스템이야말로 몬스터에게 대항하는 인류의 의지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화신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꼭 살아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싫지 않았다.
『화신도 복수할 줄 안다구요? 본때를 보여주겠어요!』
상공에 커다란 웜홀을 연 화신은 블랙홀처럼 주위를 빨아들여 해일이 그 안에 끌려들어 가도록 유도했다.
마지막 3재해가 딛고 선 바다는 강력한 힘에 흡입되었고, 화신의 복수는 순조롭게 실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해일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도 차분했다.
강력한 인력에 바다가 요동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는 수면 위에 손을 올렸고, 손끝이 닿은 곳에선 푸른색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지이잉!
에덴에서 ‘마왕’과 ‘블랙 드래곤’을 소환했을 때 사용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마법진이었다.
푸른 빛을 내며 수면을 밝히는 마법진 속에서 돌연 게이트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것은 당연하게도 몬스터들이었다.
『쿠오오오오오!』
해일은 두 번째 던전브레이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화신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대규모 던전브레이크 터져 전 세계 헌터들이 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또다시 던전브레이크를 일으킨다니. 시스템의 권한도 없이 두 번이나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심지어 오류도 아닌 그의 수하가 이 정도의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순간, 화신은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대규모 해전을 일으킨 첫 번째 브레이크는, 정말 해일이 벌인 일인가?
지금 오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지?
왜 헌터와의 전쟁이 벌어졌는데도 오류는 나타나질 않는 거지?
『정말 무서운 존재군요, 오류…!』
화신은 급히 타겟을 바꿨다.
한반도 서해에 이런 대규모의 던전브레이크가 발생하면 필시 큰일로 번질 것이다.
웜홀 너머의 린은 당황하겠지만, 그녀의 옆에는 인류 최강의 헌터 미카엘이 있다.
미카엘은 이유영보다 더 머리가 좋은 헌터다. 작전에 변수가 생겼다는 걸 깨닫고 즉각 대응할 것이다.
지금은 마지막 3재해보다, 두 번째 던전브레이크의 몬스터들을 웜홀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쿠구구구구구!
화신이 몬스터들을 빨아들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이, 해일은 몬스터들을 방패막이로 삼으며 쉽게 웜홀의 인력에서 벗어났다.
사뿐히 물 위를 걸어가던 그는 파도를 일으켜 단숨에 공중에 떠 있던 화신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화신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웜홀 안으로 당기다가,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온 해일을 바라봤다.
해일은 화신을 보며 살풋 웃었다.
그 웃음은 화신이 학습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오싹함이 화신을 뒤덮던 순간, 해일은 화신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해일은 그 작은 생명체를 주먹으로 내리찍어 바닷속으로 날려버렸다.
헌터가 아닌 화신은 당연히 공격이나 방어 수단이 없다.
몬스터의 공격에 무참히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바다에 처박히는 와중에도, 화신은 끝까지 몬스터들을 웜홀 안으로 끌어들였다.
푸른 마법진의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화신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비록 복수를 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두 번째 던전브레이크에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풍덩
화신은 눈을 감았다.
두 번째 던전브레이크를 수습하는 데 성공했으니, 조금은 이유영에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거면 화신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고 봐야 한다.
화신은 시스템의 화신으로서 그 사실에 만족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또다시 어두운 바닷속에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화신은 문득 설움이 밀려왔다.
화신은 훌쩍이면서 이유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 작은 목소리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화신은 계속해서 이유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화신이 소용돌이 속으로 처박힌 뒤, 지구의 모든 육지를 뒤덮을 해일이 일어났다.
범람하는 파도는 거대한 물의 벽이 되어 천공을 뒤덮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절망적인 크기.
몬스터와 싸우던 헌터들, 함선에서 부상병을 치유하던 이들, 본부에서 전략을 짜던 이들, 대피소에서 현황을 지켜보던 시민들….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봤다.
바다가 하늘을 뒤덮는 벽을 세우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다.
도저히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저런 것과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 재해를 마주한 이들은 당연하다는 짓이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던 그 순간.
콰가가가가가각!
잦아든 소용돌이 속에서 붉은빛의 허리케인이 나타났다.
허리케인은 바다의 벽을 갈가리 찢어버리며 해일에 비견할 열풍을 발산했다.
열풍과 해일이 부딪치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발생했다.
촤아악!
사람들은 그 희뿌연 공기 속에서 한 남자의 인영을 보았다.
흑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물에 젖은 얼굴은 투명하게 빛을 반사했다. 먼 곳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그는 재해에 맞서면서 사람들에게 등을 보였다.
그 뒷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이유영이 돌아왔다.
*
해일이 만들어 낸 분신을 모두 해치우고, 해일을 뒤쫓던 중.
어디선가 화신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닷속에서 녀석이 울고 있는 소리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들려왔다.
환청도 아니고, 심연의 천리안이 발동된 것도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천리안으로 녀석을 찾아낼 수 있었다.
녀석은 어째서인지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일한테 또 당한 것 같은데, 명색에 시스템의 화신이라는 놈이 허구한 날 당하고만 있다.
나는 구해낸 화신을 대충 소매로 닦은 뒤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울다가 정신을 잃은 듯 녀석은 잠을 자고 있었다.
“잠깐 쉬고 있어.”
지금은 이 녀석보다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야 했다.
내가 일으킨 폭풍과 해일이 부딪치며 발생한 수증기는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시끄러운 빗소리 속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번 묻지. 이유영, 한낱 인간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녀석은 아까도 했던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확실히, 마지막 3재해 해일은 바다 그 자체였다. 던전 밖에서 보니 녀석이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솔직히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
잠시나마 호각을 이루던 열과 바다의 싸움은, 놈의 목소리가 울린 이후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가 일으킨 열풍을 단번에 압도했다.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대륙을 뒤덮을 파도가 눈앞을 가득 메웠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또다시 최후의 인류가 되고 싶나?』
나는 녀석의 말에 침묵하며, 밀려드는 해일을 바라봤다.
열풍에 괴력을 더하여 더 큰 방어막을 세웠으나, 스킬을 발동하면서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신세계 스킬을 발동해 해일을 끌어들여야 하나?’
하지만 방금까지 정신세계 스킬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0. 정신세계’ 스킬은 스킬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육체에 부담이 간다.
해일의 정신세계와 부딪치며 꽤 길게 스킬을 사용한 탓에 내 몸은 지쳐 있었다.
생명의 의지로도 치유되지 않는 피로였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정신세계 스킬을 사용한다면, 정작 해일과 전투할 힘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저 해일을 막을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밀리고 만다.
전 세계가 바닷물에 뒤덮이고 말 것이다.
도저히 나 혼자서는 이겨낼 수가 없는 자연재해였다.
그때였다.
“야! 이유영!!”
익숙한 목소리가 아래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아래를 바라봤다.
범람하는 해일에 도망가지는 못할망정, 이 안개를 뚫고 여기까지 다가온 함선이 하나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너 인마,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알아? 내가 진짜…!”
“수호 길드장,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정하나가 함선을 끌고 이 재해 속을 찾아왔다.
그녀의 투덜거림을 막은 것은 박이원이었다.
둘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방어계 헌터들이 함선 위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걸 누가 몰라? 내가 여기 대장인데!”
정하나는 애꿎은 박이원에게 투덜거리더니, 모두를 대표해 가장 먼저 스킬을 발동했다.
먹물 번지듯이 퍼져나간 ‘암흑’은 순식간에 해역을 전부 삼킬 만큼 확장되었다.
암흑이 해일에 맞서는 검은 장벽을 세웠고, 해일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암흑에 흡수되었다.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성장한 거지?
몇 달 못 본 사이에 그녀는 회귀 전의 정하나만큼이나 강해져 있었다.
감동적일 만큼 성장해 있었다.
“얌마, 방어도 못 하는 주제에 나서지 말고, 가서 공격이나 해!”
정하나는 나를 나무라며 나아가게 만들었다.
그 말대로 방어계 헌터 부대가 지원을 나온 이상, 내가 방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박이원의 지휘를 따라 방어계 헌터들이 스킬을 발동했고, 그들은 암흑이 커버할 수 없는 파도를 잠잠하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으나, 마음 편히 감동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3재해 역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라미 같은 것들이 잘도 뭉치는구나.』
녀석은 혀를 차며 눈을 푸르게 빛냈다.
놈의 주위로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녀석은 함대를 향해 강렬한 빛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숭배’에 저항합니다. ]녀석이 상태이상 ‘숭배’를 일으키고 있었다.
빛을 마주한 헌터들의 스킬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정하나 역시 스킬에 당한 듯 암흑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었다.
암흑이 무너져 내리면서 해일의 위세는 더욱 거세졌다.
신윤현이라도 불러오지 않는 이상 저 상태이상을 해제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해일을 죽이는 것.
나는 ‘태풍’이 바람을 사용했던 방식을 흉내 내며, 열풍 스킬로 공중을 날았다.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바다의 정점에 서 있는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떨어진 샛별은 열풍의 힘을 흡수해 화염처럼 아지랑이를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검으로 쏟아지는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화아악!
익숙한 붉은 빛이 내 몸을 감쌌다.
이건 열풍으로 피어난 아지랑이가 아니었다.
누군가 내게 스킬을 건 것이다.
내가 뒤를 돌아보려던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지 말고 나아가라.”
미카엘의 목소리였다.
이 붉은 빛의 주인.
녀석은 내게 ‘강화’ 스킬을 걸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동시에 등 뒤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작은 목소리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뒤는 제게 맡기세요, 유영 씨…!”
린의 목소리였다.
암흑이 무너지며 범람하는 해일을, 린이 조종하는 몬스터 군단이 몸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다시 나아갔다.
마지막 3재해에게 달려들었다.
열풍과 괴력을 동시에 발동해 그 힘을 모조리 떨어진 샛별에 집중시켰다.
미카엘의 강화가 걸린 만큼, 바다의 신과 맞서 싸울 힘이 차올랐다.
[ ‘떨어진 샛별’이 마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 [ 두 가지 스킬이 융화됩니다. ]떨어진 샛별은 검붉은 불꽃을 피워내며 해일의 심장을 노렸다.
해일은 물의 장벽을 만들어 내 검을 방어했으나, 떨어진 샛별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카가가각!
사납게 톱날을 갈던 떨어진 샛별은 물의 장벽을 태워버리며 막아서는 해일의 팔까지 절단냈다.
녀석의 잘린 부위에선 일기장이 흘러나왔고, 내 검은 그 모든 걸 흡수했다.
나는 그대로 녀석의 심장을 찌르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내 멱살을 붙들어 잡으며 말했다.
『크윽… 여, 역시… 난 싸움이 싫어.』
놈은 그대로 나를 끌고서 저 밑에 바다 아래로 몸을 던져 투신했다.
이대로 녀석에게서 벗어난다면, 도망가게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추락하는 와중에도 떨어진 샛별의 검 끝을 녀석의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