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원초적 혼돈 (1)
오류.
회귀 전, 유일하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몬스터.
녀석은 직립보행을 하고 인간과 유사한 두개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또한 사람의 언어를 이용해 대화하는 법을 알았는데, 모든 국가의 사람이 그가 하는 말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류가 사용하는 초월적인 언어에 대해 인간이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 ‘언어 변환 패치’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나 제시할 뿐이었다.
오류는 모든 헌터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헌터의 스킬을 정지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또한 재해를 일으킬 수 있었으며,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사람들은 오류를 초월적인 존재로 받아들였다.
녀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탓이다.
이것이 최후의 인류인 내가 알고 있는 ‘오류’의 전부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내겐 더 이상 검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일어나던 도중 미끄러져 넘어졌다.
“크윽….”
꼴사납게 자빠지는 나를, 오류는 무감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치욕스러웠지만 나는 발을 구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든 녀석에게 공격을 넣기 위해,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손에서 금빛 전격이 피어나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옅은 스파크만이 튀길 뿐이었다.
스킬의 근원인 정신에너지마저 바닥이 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내겐 비참할 정도로 녀석에게 맞설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서 일어났다. 악을 쓰며 검을 들어,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으아아아!”
당연하게도 검은 오류에게 닿지 않았다.
녀석은 내 검을 피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떨어진 샛별은 허공을 가르다가 볼품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헉… 헉, 크윽….”
나는 내 발에 걸려 미끄러졌고, 바닥에 엎어졌다.
떨어진 샛별은 바닥과 부딪치며 금속음을 울렸다.
챙그랑 소리가 내 귓가에서 처참하게 울려 퍼졌다.
한참 나를 쳐다보던 오류는 평범하게 걸어와, 내 어깨를 발로 밟았다.
녀석은 매끄러운 손짓으로 내 팔을 절단했다.
스각
신속하고 군더더기 없이, 내 오른팔을 잘랐다.
내 어깨 옆이 비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릴 만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공격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반격도, 반항도 하지 못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스킬이 발동되었다.
생명의 의지는 빠르게 내 비어있는 팔을 지혈하며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 오류 발생 ] [ 메인 스킬을 탐색할 수 없습니다. ] [ 스킬 시전을 취소합니다. ]녀석은 보란 듯이 내 눈앞에서 ‘생명의 의지’가 발동될 수 없도록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켰다.
팔이 잘려 나간 어깨에서 쉴 새 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뜨거운 혈액이 내 옷을 적셨고, 나는 피 웅덩이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꿈틀거려야 했다.
“크읏… 끅….”
『이게 너의 답인가?』
오류는 엎어진 나를 보며 말했다.
녀석이 무엇을 보고 ‘답’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나는 치욕스러울 정도로 비참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공포는 낯설었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나?
그간 내가 싸워온 시간은 고작, 이런 결말을 그릴 만큼 보잘것없었나?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생명의 의지는 여전히 발동되지 않았다.
뜨거운 피가 온몸을 적셨다. 그런데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고통을 상상하며 죽음을 예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어진 검을 하나 남은 팔로 쥐어 들었다.
팔 하나가 비어버린 탓에 무게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걸어 나가며,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게 나의 답이다.”
꼴사나워도 덤벼야 했다. 설령 녀석의 손짓 하나에 죽을 만큼 약하더라도, 싸워야 했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나는 언제나 약했고, 그래도 싸웠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오류는 내 검에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피하지 않았던 탓에, 검 끝이 녀석의 뺨을 스치며 상처를 남겼다.
녀석은 뺨에 남은 상처를 흘겨보더니, 여전히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후의 인류, 이유영.』
녀석은 해일이 사라지며 남긴 일기장을 날 향해 던지듯이 놓았다.
종잇장은 팔랑거리며 공중을 떠돌다가 내 발치에 떨어졌다.
『뿌리 조각을 들고 세계수 앞으로 와라.』
나는 그 일기를 읽을 수 없었다.
오류의 손끝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니, 내 시야가 멋대로 옆으로 기울었고 거꾸로 뒤집히며 추락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바닥에 닿았다. 시야가 공처럼 굴러갔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나는 그제야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두 눈은 바닥에 떨어진 채로 내 몸통을 바라봤다.
목 위가 텅 비어있었다.
오류가 내 목을 잘랐고, 나는 방어도,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목이 잘린 것이다.
[ 오류 발생 ] [ 메인 스킬을 탐색할 수 없습니다. ] [ 스킬 시전을 취소합니다. ]눈앞에 뜬 절망적인 상태창을 보며, 눈이 감겼다.
오류를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집념과, 이대로 나는 죽을 거라는 불안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런데도 그 모든 걸 압도하는 피로감이 사고를 중지시켰다.
꽤 여러 번 죽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종결되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 경고! ]『세계수에서 EX급 던전이 나타날 예정입니다.』
세계 해전이 끝난 후.
세계 헌터 연합군에게 2차 전쟁을 암시하는 시스템의 경고창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같은 시각 반복해서 떠오르는 경고창을 보며, 사람들은 ‘진짜 재앙’이 오고 있음을 확신했다.
S급도 아니고, SS급도 아니고, EX급.
규격 외의 등급이라는 말은, 시스템조차 던전의 위험도를 측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던전이 세계수, 대한민국 서울에서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난데없이 세계수가 언급되며 사람들은 세계수와 EX급 던전의 관계를 추측해댔다.
여러 가지 억측과 그럴듯한 가설이 마구잡이로 생겨나던 중, 한국의 천혜 길드에서 한 가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태풍, 분화, 해일. 전 세계에 재해를 일으킨 몬스터, ‘3재해’.
이들을 모두 처치한 남자는 시스템으로부터 ‘뿌리 조각’이라는 보상템을 획득했다.
등급을 알 수 없고 쓰임새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아이템이었다.
남자는 천혜 길드에 그 아이템을 분석해달라고 의뢰했고, 천혜 길드는 그것이 세계수의 뿌리 조각임을 밝혀냈다.
천혜 길드는 그 아이템을 계기로 연구를 지속해 세계수의 성분이 몬스터를 구성하는 성분과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오노 린이 길들인 몬스터와 뿌리 조각의 성분이 같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즉, 세계수는 몬스터들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관광명소로 사용되던 세계수가 만악의 근원이었다는 주장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연구 결과가 퍼지지 않도록 극히 일부 길드에만 정보를 공유했다.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상 세계수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국격이 실추되는 것을 우려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세계수에서 EX급 던전이 발생할 거라는 경고창이 떠오른 시점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한 가지로 모였다.
세계수를 잘라야 한다. 불태워서 없애버려야 한다.
EX급 던전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세계수라는 거목을 쓰러트려야 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세계수를 없애자고 말했다.
에덴과 한국의 헌터 협회는 이를 반대했다.
현재 세계수를 베어낼 수 있는 헌터도 없고, 그럴만한 기술도 없다.
모든 헌터들이 힘을 합세해 세계수를 쓰러트릴 경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소멸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세계수를 없앤다고 해도 EX급 던전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장 세계수부터 쓰러트리려는 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에덴과 협회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세계수를 없애길 바랐다.
결국, 현재 세계수 주위에는 대한민국 군대와 에덴의 헌터들이 주둔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에덴의 개입을 반대했지만, 협회는 에덴이 ‘이유 길드의 동맹 길드’로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표방해 여론을 잠재웠다.
세계수를 공격하는 행위는 에덴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된다.
그 탓에 어떤 길드도 세계수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수 한 번 치려고 필패의 전쟁을 벌이려는 길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에덴의 영향력도 상당했지만, 이방인 길드와 카타나 길드, 핀란드 길드와 러시아 길드, 그 외 몇몇 세계 길드에서도 한국 헌터 협회를 옹호했다.
그 많은 길드들이 한국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번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 모든 3재해를 쓰러트린 남자, 이유영이 한국의 대표 헌터였기 때문이다.
이유영이 마지막 3재해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은 이후.
거짓말처럼 바다가 잠잠해졌고, 던전브레이크로 나타난 몬스터들 역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가 불러온 승리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러나 일본의 헌터 아오노 린이 구출해 낸 이유영은 발견 당시 시체 상태였다.
크게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으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동료들은 이유영이 살아날 거라고 믿고 눈을 뜨지 못하는 그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심장이 뛰지 않은 지 사흘째 되던 날부터, 동료들은 서서히 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결국 그들은 이유영의 얼굴 위로 흰 천을 덮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운명이 얄궂은 장난이라도 치는 것인지 이유영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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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지금.
그로부터 또다시 열흘이 흘렀다.
이유영은 심장이 뛰면서부터 혈색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긴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잠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