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자업자득 (3)
수집가 크로우와 싸우면서, 나는 부족한 점을 두 가지 느꼈다.
첫 번째는 비행형 몬스터 대처 능력.
실을 사용해 몬스터를 포박하던 안수연이 아니었다면, 비행형 몬스터가 되어가던 사람들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무기.
회귀하고 난 후, 나는 지금까지 해치의 비늘검만을 쓰고 있었다. 강철이와 싸우면서 날이 휘어지기까지 한 이 검은 슬슬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향하고 있는 이 A급 던전, ‘꽃의 나라’를 공략하면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번에 공략할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덩굴을 사용한다.
만약 일기장을 통해 이 스킬을 얻게 된다면, 안수연처럼 몬스터를 포박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던전 보상템으로 A급 단검이 나온다. A급인 만큼 해치의 비늘검보다 단단하고 꽤 쓸만한 부가 효과까지 달린 단검이라 쓸만할 것이다.
A급 단검과 SSS급 보상템인 내 일기장을 얻으려면, 이번에도 최대 공헌자로 공략해야 했다.
공략법을 알고 있는 내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돌발 상황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청양에서 열린 던전은 40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공략대 최소 인원이 모였다.
하지만 이번 던전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다.
서울에는 길드가 모여 있는 만큼, 지방과 다르게 공략대가 순식간에 채워지는 편이다. 선착순에 늦으면 공략대 자리를 뺏길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더러운 꼴을 보게 될 만큼 지방과 격차가 있었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1시간 일찍 강남역에 도착해, 게이트가 열리는 곳 앞에서 대기했다.
영상으로 얼굴이 팔린 지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캡모자를 눌러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이한 외형도 아니라서 별로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무탈히 1시간을 보낸 뒤, 던전 경보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헌터 협회] 3월 26일 14시 19분.서울 강남역 4번 출구 근처에서 A급 던전 게이트 발생.
위험지역에 계신 분들은 해당 지역에서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대피 바랍니다.
근처에 있는 헌터들은 공략 지원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위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웜홀을 타고 나타난 협회 직원들은 게이트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봉쇄했고, 던전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협회원들이 거리 통제를 끝내갈 때쯤, 공략대 참가에 신청했다.
“던전 공략 신청하려 합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오신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헌터증부터 보여주시겠습니까?”
협회원은 헌터증을 받고서 긴가민가하게 보더니, 모자 아래의 내 얼굴을 슬쩍 들여다봤다.
“어… 혹시, 그 영상…?”
어차피 밝혀진 거 당당하게 구는 게 낫다.
나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으시구나. 영상만 봐선 공격계이실 줄 알았는데… 방어계시네요?”
이런 질문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방어계에서 특수계로 갱신한 경험이 있어서 이 질문에 반드시 먹히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스킬 숙련도가 오르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하, 그러셨군요.”
스킬 숙련도가 오르면 극적인 변화를 겪는 스킬도 가끔 있으니, 그럴듯하게 들렸을 것이다.
내 생명의 의지 역시 숙련도가 100%가 되면서, 내 몸만 치유하던 스킬이 남한테 힐을 걸어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 공략대 명단에 올려두었습니다. 잠시 대기해주세요.”
나는 협회원들이 수군거리는 걸 무시하며 게이트 앞에 섰다. 어차피 기다릴 것도 없이 곧 길드들이 와서 공략대가 금방 찰 것이다.
마침 봉고차 한 대가 도착해,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방어구와 무기를 갖추고서 들고 게이트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봐도 던전을 공략하러 온 헌터들이었다.
“던전 공략 신청하러 왔습니다.”
“자루 길드 맞으시죠? 요새 자주 뵙네요.”
내가 모르는 이름의 길드였다. 이 시기에는 워낙 많은 길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다 보니 제대로 기억나는 길드 이름이 몇 없긴 했다.
“A급 던전은 처음이시죠? 경험이 없으면 지금 자루 길드 분들 등급으로는 꽤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겠습니까. 도전을 해야 성장도 있죠. 걱정 말고 이름 등록해 주세요.”
협회원과 자루 길드 헌터는 친숙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협회원과 친하다는 건, 던전 공략에 성실히 임하는 길드라는 의미기도 하다.
위험한 던전에도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걸 보면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길드로 보였다.
나는 이렇게 야망 있는 인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던전에 들어가서도 한몫 해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번 던전에는 인원 제한이 걸려 있어서 총 11명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자루 길드 분들이랑 먼저 오신 헌터님이 같이 들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인사 나누시죠.”
협회원의 안내에 따라 자루 길드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캡모자를 눌러 쓰고 자루 길드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루 길드입니다. 헌터님은 소속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직 길드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밝힐만한 건 없고, 이름은 이유영이라고 합니다.”
“어? 실례지만, 이유영… 이라고 하셨습니까?”
내 이름을 들은 길드장은 길드 사람들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그 이유영’이 맞는지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그 이유영 맞습니다.”
내가 나서서 대답해주자, 길드장과 뒤에 있던 길드원들이 당황하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이유영이면 그 영상 헌터?”
“진짜야? 그 영상 헌터 뭐 거의 구지상급이라며. 여기도 A급 던전이라 온 건가?”
“맞는 것 같은데…? 일단 영상이랑 얼굴이 닮았잖아.”
나는 녀석들이 떠드는 걸 배경음악처럼 들었다. 이젠 매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런데 길드장이 돌연 길드원들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적당히 떠들어라, 적당히! 너네 때문에 헌터님 곤란해하시는 거 안 보이냐.”
“아! 솔직히 길드장님도 놀랐으면서 왜 그래요?”
“놀라긴 뭘 놀라? 유명인 처음 봐서 그런 거지. 다들 긴장 안 해? A급 던전이야, 인마.”
“알겠어요, 알겠어.”
서로 티격대격댔지만, 다들 허물없는 사이라는 게 티가 났다.
길드원을 진정시킨 그는 대표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실례했습니다. 애들이 유명한 헌터 만났다고 잠시 긴장이 풀렸나 봅니다.”
“아닙니다.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저희 길드의 몇 안 되는 장점이죠. 그나저나 영상으로 봤을 때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익숙해 보이셨는데, 혹시 A급 던전도 공략한 경험 있으신가요?”
“던전 공략은 아니지만, A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은 적은 있습니다.”
회귀 전에는 S급 던전도 공략한 적 있고 몬스터들의 왕이랑도 싸워본 적 있지만, 지금의 나는 누구나 알아줄 만큼 강한 녀석과 싸운 경험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내 말을 들은 자루 길드장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럼 혹시 공략대 리더를 맡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끼리는 조금 불안했는데 이유영 헌터님이 리더를 맡아주신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공략대를 꾸려온 길드는 외부인을 배척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환대받는 건 또 신선한 경험이었다.
청양에서 쌍철 길드원의 환대를 받던 구지상도 이런 심정이었으려나.
보아하니 서로 사이가 좋아서 단합도 잘 될 것 같은 길드다.
길드 사람들이 나한테 의지한다면 최고 공헌자 자리를 차지하기 수월할 것이다.
나로선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었다.
그러나 보통 서울에서 높은 등급의 던전이 열리면, 이런 중소형 길드가 공략대 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루 길드가 타고 온 봉고차 뒤로 세 대의 밴이 멈춰 서며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밴에서 나온 사람들은 총 10명. 이들 역시 모두 무장을 한 모습을 보아하니 헌터임이 틀림없었다.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 온 남자는 우리를 보고서도 당당하게 협회원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원분들. 강남 길드에서 공략 신청하러 왔습니다.”
강남 길드.
한국 5대 길드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길드다.
자루 길드 헌터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한 무장이 대형 길드의 위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헌터 협회원은 강남 길드와 자루 길드를 번갈아 보다가, 협회다운 반응을 했다.
“저쪽에 계신 헌터분들이 먼저 신청하셨습니다. 원만히 합의를 봐주세요.”
던전 공략 신청은 선착순으로 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때론, 거대한 힘 앞에서 당연함이 무너져 내릴 때도 있었다.
“그래요? 그럼 저쪽에서 신청 취소해야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난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하는데.”
강남 길드 헌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루 길드에게 양보를 강요했다.
그러나 자루 길드장은 용케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 A급 던전은 저희 자루 길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무리 강남 길드라고 해도 양보할 순 없습니다.”
“도약할 수 있는 기회? 그 기회에 집착하다가 길드 망하게 하려고요? 괜히 자존심 부리다가 안에서 죽지 마시고, 저희 강남한테 맡기시죠.”
강남 길드 헌터의 말투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자루 길드장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저희도 길드 사활을 걸었습니다. 양보할 순 없습니다.”
“이렇게 멍청하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양보 안 할 거예요?”
“예, 안 합니다.”
강남 길드 분대원들은 뒤에서 자루 길드장의 말을 따라 하며 놀려댔다.
강남 길드 헌터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나 3분대 분대장 유태오인데, 앞으로 자루 길드라는 이름으로 파는 던전 부산물은 강남에선 전부 안 사들인다고 전해. 장비나 소모품 거래도 전부 막아버려.”
강남 길드 놈들은 다른 5대 길드에 비하면 특출나게 강한 헌터가 없었다.
그런데도 5대 길드의 한 축에 끼어있는 이유는 던전 부산물 유통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말을 들은 자루 길드 사람들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루 길드원들은 던전 공략을 포기하자며 길드장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자루 길드장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힘으로 기회를 빼앗다니, 이건 부당하지 않습니까!”
자루 길드장은 제발 동의해달라는 듯 방관하고 있던 협회원을 바라봤지만, 협회원은 모른 척했다.
이런 갑질에 헌터 협회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어설픈 중소 길드보다는 대형 길드의 던전 공략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설령 개입해서 막아준다고 하더라도 협회에서 대형 길드의 보복까지 책임지진 않았다.
그러니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태오 씨, 혹시 머리가 좀 모자랍니까?”
순간, 자루 길드는 물론 강남 길드까지 모두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봤다.
유태오 역시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자기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내게 되물었다.
“당신…. 지금 나한테 말한 거야?”
“여기 유태오가 그쪽 말고 또 있겠습니까. 분대장님이라면서 던전 관리법도 모르시나 봅니다. 당신처럼 굴다가 벌금 내고 노동형까지 선고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나는 주머니에서 녹음하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강남 길드 분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고, 그사이 나를 알아본 강남 길드원이 유태오에게 속삭였다.
유태오 역시 나를 알고 있었던 건지, 곧장 내 이름을 들먹이며 말했다.
“이봐요, 이유영 헌터. 그건 새치기할 때 얘기고, 우리는 정당하게 권리를 양도받았습니다.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데?”
“진짜 모자란가 보네. 그것보단 이거 하나 때문에 반짝 스타가 되는 거나 걱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나처럼 유명해질지, SNS에 한 번 올려보려고 하거든요.”
강남 길드 녀석들이 나타날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녹음하고 있었다.
저놈이 강남 길드 3분대 분대장 유태오라는 것까지 확실하게 녹음됐으니, 대중들한테 던져 주면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유영 씨. 그쪽도 우리랑 척 져서 좋을 게 없을 텐데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좋은 일 없을걸.”
“이 새끼가 진짜…!”
분대장은 나를 한 대 칠 기세로 달려들었으나, 지금까지 방관하고만 있던 협회원이 녀석을 제지했다.
“게이트 앞에서 헌터 간의 싸움은 금지입니다.”
분대장은 혀를 차고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다가, 자기 분대원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자루 길드원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저희 때문에 나서주신 거죠? 감사해요, 이유영 헌터님. 괜찮으니까 저희가 공략 포기할게요.”
나는 여전히 분해 보이는 자루 길드장을 바라봤다.
그는 결국 길드원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쉽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번엔 무리해서 A급 던전에 도전해보려던 거라서요.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고요. 다음에 기회가 또 오겠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길드원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자루 길드장은 협회원에게 가서 공략 신청을 취소했고, 협회원은 공식적으로 공략대 인원을 다시 발표했다.
“그럼, 공략 인원은 강남 길드 10인과 이유영 헌터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이렇게 될 거라고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예상은 했다.
강남에 열리는 게이트에 강남 길드가 가지 않을 리 없으니 말이다.
나한테 화를 내던 것도 잊었는지, 분대장은 축 처진 자루 길드장에게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진작 포기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아까 거래 막으라고 했던 건 나중에 물릴 테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우리가 또 그렇게 상도덕 없는 사람들은 아니거든.”
자루 길드장은 대꾸할 기력도 없었는지, 분대장을 흘끗 보고는 그대로 길드원들을 이끌고 타고 왔던 봉고차에 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남 길드 놈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작당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분대장 녀석이 나를 보며 대놓고 비열한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날 엿 먹일 방법이라도 구상하는 듯했다.
하여간 옹졸한 녀석들이다.
얼마나 웃기는 짓을 하든, 내가 이 던전에 들어가는 이상 저 녀석들이 바라는 것은 조금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최후의 인류인 나는 당연히 말싸움보다 몸싸움을 훨씬 잘하고, 던전은 몸싸움을 하러 가는 곳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