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자업자득 (4)
게이트를 넘어서자, 신비하고 몽환적인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곳곳에 화려한 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고, 키가 작은 나무들의 잎은 처음 보는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싱그러운 풀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왔으며, 바닥은 잔디가 깔려 푹신했다. 하늘에는 보기 좋게 구름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는 인간을 죽이는 몬스터가 살고 있다.
“와, 여긴 뭔 게임에 나올 것 같이 생겼네요. 요정의 숲, 이런 거.”
“이 새끼는 던전 안에서도 게임 타령이네. 하긴, 던전에서 몬스터 후드려 패는 게 게임이랑 다를 건 없나.”
강남 길드원들이 시시덕거리며 떠들고 있을 때, 던전 알림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 A급 던전, 꽃의 나라 ]제한 인원: 11명
「아름다운 왕과 충직한 신하들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꽃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유능한 신하들과 아름다운 왕의 절대적인 명령을 따라 움직입니다.
올바른 답을 찾아, 이 던전에서 탈출하시길 바랍니다.」
{ 보상: ??? }
알림창에서 챙겨가야 할 부분은 ‘신하’와 ‘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한 유능하다는 표현이 왕이 아니라 신하에게만 붙어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 던전은 보스 몬스터보다 중간 보스 격인 신하들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던전 공략법을 알고 있는 내 눈에는 당연히 보이는 정보지만, 강남 길드 놈들에게도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저 새끼들 봐라?’
녀석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모여 회의하고 있었다. 대놓고 나를 열외 시키면서 말이다.
공략대고 뭐고 나 혼자 독립적으로 움직일까 싶었지만, 이 던전에서 내가 개별 행동을 하면 나 빼고 전부 전멸할 수 있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녀석들을 기다렸다.
“이유영 헌터?”
쑥덕거리는 걸 끝낸 모양인지, 분대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유영 헌터도 알죠? 원래 역할 분담 다 끝난 공략대에 외부인 끼면 애매해지는 거. 게다가 방어계 헌터라고 하셨나? 근데 저희는 이미 방어계 헌터가 3명이나 있어서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기껏 던전 들어왔는데 그냥 가면 아쉽잖아요? 심지어 A급 던전인데, 잡템이라 얻어 가야지. 아쉬운 대로 후방에서라도 따라오시죠.”
녀석은 선심 쓰듯이 말했지만, 결국은 자기네들끼리 보스 몬스터를 공략해 공헌도와 보상템을 가져가겠다는 소리다.
다만 이 던전은 저 녀석들의 생각처럼 만만한 던전이 아니다. 어차피 후방에 서는 게 내게도 편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넘어가는 척했다.
“그러죠. 그런데 제가 파티플이 미숙해서 말입니다. 혹여나 뒤통수 처맞아도 그러려니 해주시죠. 제가 실수로 당신 대가리를 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유영 씨, 안 그렇게 생겨서 꽤 유머러스하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할 말 다 했으면 출발하죠? 수다 그만 떨고.”
“그러죠. 부디 후방에서 잘, 따라오셨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강남 길드 놈들이 나를 힐긋거리며 비웃기 시작했다.
대열의 뒤쪽에 서자, 원숭이처럼 생긴 녀석이 히죽거리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유영 씨? 후방 지키기! 잘 부탁드립니다?”
꼽을 주는 게 자연스러운 걸 보면, 이런 수법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던전에선 이딴 식으로 굴어도 공략 공헌도를 챙겼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놈들끼리 던전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이 녀석들은 꼽 줄 상대를 잘못 골랐다.
***
이 던전에 있는 몬스터는 전부 식물형이다.
처음 등장하는 잡몹은 머리는 꽃, 몸통은 줄기, 다리는 뿌리인 몬스터였다.
전열을 갖춘 채로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잡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징그럽게 뿌리를 움직이면서 우리에게 서서히 걸어왔다.
잡몹 무리를 확인한 분대장이 말했다.
“잡몹은 후방 헌터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진격한다!”
정해진 수순처럼 녀석은 잡몹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들었다.
나는 저 대책 없는 선택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유영 씨! 잡몹은 우리가 맡아야겠네요? 와, 졸라 기대된다!”
아까 그 원숭이처럼 생긴 녀석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다른 한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잡몹은 저희 셋이 맡읍시다.”
이 두 녀석의 스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A급 던전에서 고작 3명에게 잡몹 처리를 맡기고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팔을 붙잡고 있던 놈은 멀리서 몰려오는 잡몹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 분대장님 이거 확인하고 간 거 맞나? 잡몹 졸라 많은데?”
애초에 A급 던전은 대부분 잡몹이 많이 나오는데, 내 기억으로 이 던전은 평균 A급보다 잡몹이 더 많이 나왔다.
이런 던전에서 셋만 남겨놓은 저 분대장 놈의 선택은 다른 공략대원을 희생시키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 두 녀석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쪽들이 저 잡몹을 다 감당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우리 강남 길드 사람인데? 그리고 이유영 씨가 고생 좀 하면 우린 졸라 무사할 예정이라서.”
“그게 뭔 소립니까?”
두 녀석은 눈빛을 교환하며 키득거렸다. A급 던전인 만큼 잡몹도 상당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다. 대체 이 새끼들의 자신감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아직까지 내 팔을 붙잡고 있던 녀석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고생 좀 해주세요? 너무 금방 뒤지진 마시고.”
그 말과 동시에 녀석의 손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면서 내 몸을 감쌌다.
마치 내 존재 자체가 표적이 된 것처럼 가슴에 붉은 과녁 같은 게 달렸다.
이 상황에서 내게 기습적으로 걸만한 스킬이 어떤 것인지, 저놈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이유영 씨만 졸라게 처맞을 예정! 제 스킬이 남한테 어그로 뒤집어씌우는 거라서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저 수많은 잡몹들의 공격을 모두 나한테 집중시키겠다는 말이다.
몬스터들이 나만 공격하면 이 녀석들은 안전하게 잡몹을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저 녀석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어계 헌터한테 잘 쓰면 유용한 스킬이 맞지만, 도무지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너희 나 말고 다른 헌터들한테도 이랬냐?”
“했으면 뭐 어쩔 건데, 이제 살아남을 생각이나 하시는 게? 어어, 공격 온다, 튀어!”
놈들은 낄낄대더니 급히 내 주위에서 벗어나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두 놈이 다 기관총을 든 걸 보면, 공격을 받는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몬스터랑 함께 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겨우 이런 걸로 죽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내가 아닌 다른 헌터한테도 이런 짓을 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그때, 느릿하게 몰려온 잡몹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투웅!
잡몹들은 줄기에서 뻗어 나온 덩굴 채찍을 휘둘렀다.
2m 족히 넘는 체구의 몬스터들이 빼곡하게 눈앞을 채우고 있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아마, 다른 헌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원숭이 새끼들 때문에 빡쳐서 그런가.
수많은 몬스터를 앞에 두고서도 마음이 그저 고요했다.
나는 머리끝까지 차오른 열을 가라앉힌 채,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을 사용합니다. ]맹금류의 강렬한 시선이 내 두 눈에 깃드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고압감이 들어찼다.
최상위 포식자의 시선은 모든 것을 하잘것없게 만든다.
지잉!
내 시선에 들어온 몬스터들은 전부 위압감에 눌려 굳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그 상태로 나무 위에 올라간 두 놈들에게 외쳤다.
“안 쏘고 뭐 해!”
녀석들은 내가 처맞는 걸 기대했는지, 잡몹들이 위압감에 모두 공격을 멈추자 당황했다.
그 탓에 이 위험한 상황에서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있었다.
이딴 놈들이 진짜 국내 4위 길드 헌터라는 건가?
나는 벙찐 놈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 스킬, 을 사용합니다. ]촤아악!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물을 만들어, 움직이지 못하던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물속에 잠긴 몬스터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엑!』
심판의 물에 휩쓸려 몬스터가 있던 자리는 모두 물바다가 되었다. 물에 잠긴 몬스터들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강남 길드 놈들은 마치 나를 몬스터를 보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이유영 씨? 호, 혹시 A급 헌터세요?”
“X발 뭐냐? 졸라 순식간에 끝났네….”
나는 놈들이 올라타 있는 나무로 향해 다가갔다.
솔직히, 표정 관리가 안 돼서 놈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아 X발, 저 새끼 돌은 거 아니야?”
“어어, 어?!”
나는 심판의 물을 발동해, 놈들이 있는 곳에 솟아나는 물기둥을 만들어냈다.
나무가 쪼개지며 녀석들이 뛰어내리자, 뒤에서 놈들을 삼키려 했던 거대한 식충 식물이 허공을 베어 물었다.
콱!
그제야 뒤에서 자기들을 노리던 몬스터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녀석들은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그 소리를 계기로, 주위에 풍경처럼 숨어있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숭이 놈의 스킬이 뭔지는 모르지만, 저 녀석이 보지 못한 몬스터는 이 표적 스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놈이 몬스터를 확인한 후에야 몬스터들이 전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버버하는 두 녀석에게 소리쳤다.
“당장 내 뒤로 빠져. 앞에 있는 놈들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서로 등 맞대고서 멀리 있는 놈들부터 쏴.”
“아니, 뭔데 명령질을….”
원숭이 놈이 내 말에 태클을 걸었으나, 다른 녀석이 놈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쳤다.
그리고 놈을 질질 끌면서 내 후방으로 빠졌다.
“저희가 엄호할 테니 처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야! 저 새끼 말대로 하자고?”
“넌 제발 현실 파악 좀 해. 방금 저 사람 아니었으면 우리 죽었어.”
“하, X발.”
내 뒤쪽으로 빠진 녀석들은 후방에서 총질을 시작했다.
이 포지션을 유지하면 저 녀석들이 방금처럼 공격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정면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심판의 물로 솟아나는 물기둥을 만들었다.
콰과과과곽!
두두두두두두두두!!
선두에 있던 놈들은 물줄기에 맞아 쓰러지고, 후방에서 나를 공격해오는 몬스터들은 총을 맞고 쓰러졌다.
어그로가 전부 나한테 끌리고 있으니, 나는 공격이 다른 곳으로 튀는 걸 걱정하지 않고서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었다.
이 표적 스킬은 원숭이 놈이 이따위로 쓰지만 않았다면 꽤 괜찮은 스킬이 맞다.
다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공격까지도 전부 내가 받아내야 했다.
바로 지금처럼.
푹!
땅 밑으로 뚫고 나온 예기치 못한 공격이 내 다리를 관통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큭!”
관통된 다리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살이 에는 듯한 고통이 신경을 바짝 긁었지만, 나는 그 공격을 무시했다.
잠시 몸이 휘청거렸어도, 내겐 생명의 의지가 있다.
내 다리를 뚫은 것은 잡몹 중에서도 유별나게 골치 아픈 몬스터의 뿌리였다.
이 몬스터는 뿌리에 공격을 받으면 끈끈이 진액을 터뜨려서 함부로 공격하면 안 되고, 본체를 찾아 공격해야 했다.
나는 뒤에 있는 놈들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이 뿌리는 건들지 마세요. 아무래도 건드리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끈끈이 진액에 당하면 몸이 땅에 붙어버리기 때문에, 던전 공략이 끝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관통당한 다리를 내버려 두며, 다시 눈앞의 몬스터에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탕!
저 원숭이 새끼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총을 쐈다.
녀석은 총에 맞고 끊어져 나간 뿌리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나이스 샷! 근데 왜 건드리면 안 되는데요?”
“…….”
나는 던전에 들어온 헌터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은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X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이 녀석들에게 협력한 건 그런 이유다.
사람 목숨 노리는 괴물들이 널린 곳에서 협력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파아악!
원숭이 놈의 총을 맞고 터져나간 뿌리의 단면에서 순간적으로 진액이 터져 나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려 진액을 피했지만, 나머지 두 놈까지 신경 써줄 여력은 없었다.
분수처럼 터져 나온 진액은 광범위하게 흰색 끈끈이를 퍼뜨렸다.
두 놈은 달아나려 했으나, 두 발이 이미 바닥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끈끈이를 처맞았다.
“아 X발!!!”
“야!! 이거 몸이 안 움직이는데??”
저 끈끈이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생각해보면 저런 놈들은 그냥 묶여 있는 게 던전 공략에 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헌터의 기본 소양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게, 쏘지 말라니까.’
하여튼,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