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45
45화. 함께라면 (6)
“길드장님, 저희만 두고 먼저 가시면 어떡합니까?”
정하나가 나온 웜홀에서 수호 길드의 헌터들이 차례차례 빠져나왔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수호 길드의 등장만으로도 불리했던 전세가 역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정하나에 의해 정리된 상황을 보고는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것 봐라, 또 우리 길드장님이 혼자서 다 해 먹고. 우린 뭐 나설 게 없네!”
“내 말이, 하여튼 우리 길드장님이라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은근히 추켜올리는 말들에 정하나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시끄러, 짜식들아! 얼른 김 팀장님이 스킬 건 인간들이나 어떻게 좀 해봐라.”
“네, 길드장님!”
현장을 보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이들은 데스스토커의 페로몬에 당한 사람들과 변이를 일으킨 이들을 구체의 실드 안에 가둬 격리했다.
정하나는 알아서 할 일을 찾아 해내는 길드원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후, 본인은 몬스터가 숨어버린 땅 밑을 확인했다.
발로 땅을 툭툭 두드려본 정하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최고의 해결법이지.”
정하나는 덩치가 우람한 수호 길드의 공격계 헌터를 불러서 말했다.
“너 여기 땅 밑에다가 스킬 써봐.”
“땅에다가요? 왜요?”
“하라면 해, 짜샤.”
불려온 헌터는 자신의 어깨높이도 안 되는 정하나의 장난스러운 발길질을 순순히 맞으며 명령을 따랐다.
맨땅에다 스킬을 쓰라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길드장이 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키만 한 망치를 아이템창에서 꺼내 들고는 튼튼한 이두박근을 부풀리며 바닥을 향해 강하게 망치를 내려쳤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땅이 거세게 진동하며 갈라지자, 얍삽하게 지하로 숨어다니던 몬스터가 화들짝 놀라며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케에엑! 어떤 멍청한 인간이 이딴!!』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집게발 한쪽과 머리를 잃었음에도 멀쩡히 서 있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형태로 살아있는 그 모습은 기괴했으나, 한편으로는 몬스터의 강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정하나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몬스터가 등장하자마자 외쳤다.
“가둬!”
그 말과 동시에 수호 길드의 헌터들이 실드를 펼쳤다.
토벽, 반구체의 실드, 정육면체의 실드 등 수호 길드가 자랑하는 방어계 헌터들의 스킬들이 일제히 시전 되었다.
그러나 몬스터는 김상엽 팀장을 몇 번이나 농락했던 민첩성을 살려, 실드가 완성되기 직전의 틈을 발견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새롭게 나타난 헌터들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알아챈 데스스토커는 곧장 정하나에게도 향했다. 운 좋게도 우두머리에게 향하는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케케켁!!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정하나의 코앞까지 다가온 몬스터는 보라색 가스를 뿜어내며 정하나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페로몬 가스에 당하든, 꼬리에 찔려 변이에 당하든 둘 중 하나만으로도 데스스토커에게 승산을 열어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정하나에게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짱도 좋아. 감히 날 노리고 말이야.”
땅에 붙어있던 정하나의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길게 펼쳐져 암흑의 벽이 세워졌다. 몬스터가 휘두른 꼬리는 벽에 맞고 튕겨 나갔고, 보라색 가스는 벽 속으로 서서히 삼켜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수호 길드장 정하나의 스킬, ‘암흑’. 그림자를 이용해 모든 공격을 흡수하고 튕겨내는 이 스킬에 사람들은 완전 방어라는 이명을 붙여 주었다.
정하나는 몬스터의 공격이 막힌 틈을 놓치지 않고 외쳤다.
“지금이에요!”
몬스터는 그 외침에 도망가려 했지만, 어째선지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상엽 팀장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몬스터에게 ‘제압’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탕!
김상엽 팀장이 발사한 총알이 몬스터의 단단한 껍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자 꼿꼿하게 서 있던 몬스터의 몸이 ‘마비’에 당한 것처럼 경련하기 시작했다.
『켁, 케엑.』
몬스터는 점차 굳어가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마구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호 길드 헌터 한 명이 몬스터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 땅을 망치로 내려쳤던 헌터였다.
굳어버린 전갈 몬스터를 본 헌터는 망치를 빙빙 돌리며 정하나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랍스타 어때요, 길드장님?”
“랍스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먹성도 좋은 것들이 말이야. 새우구이로 만족해라.”
“새우도 좋죠. 거기에 소주 한 잔?”
“좋지.”
“회식하려면 빨리 끝내야겠네!”
그 말과 함께 망치를 휘두르자, 놀이공원을 울릴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이야, 이거 엄청 단단하네요.”
몬스터에게 있는 힘껏 망치를 내려친 헌터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정하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부서질 때까지 쳐.”
“하여간에, 우리 길드장님은 맞는 말만 한다니까.”
쾅, 쾅, 쾅, 연달아 망치를 내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갈의 온몸을 두드리던 망치가 꼬리를 있는 힘껏 내려치자 몬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에에엑!!』
“여기가 약점인가 보네.”
그는 약점인 꼬리를 집중적으로 부술 듯이 내려쳤고, 전갈의 단단함 껍질은 꼬리서부터 서서히 금이 가더니 이윽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않겠다, 용서하지 않겠다!!!』
몬스터는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지만, 수호 길드 헌터는 시끄럽다며 한 번 더 크게 망치를 휘둘렀다.
쾅!!
그 굉음과 함께 마침내 몬스터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후 몬스터로 변해가던 사람들은 서서히 사람으로 되돌아갔고, 페로몬 가스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상엽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상황까지 갔었으나 끝내 모두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자, 몬스터의 집게에 물렸던 발목이 그제야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김상엽 팀장이 발목의 고통을 참으며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정하나가 다가왔다.
“다치셨나 보네요. 마무리는 저희가 지을 테니 김 팀장님은 쉬고 계세요.”
그러나 김상엽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직 몬스터 한 마리가 더 남았습니다.”
“몬스터가 하나 더 있어요?”
“네, 저쪽에서 이유영 헌터님과 공격계 협회원 둘이서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둘러 지원하러 가야 합니다.”
김상엽 팀장이 가리킨 곳을 확인한 정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제가 가 볼게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엄호 정도는 가능합니다.”
한쪽 발이 반쯤 돌아간 상태로 함께 가겠다는 김상엽 팀장을 보고 정하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김 팀장님, 제가 부상자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약해 보여요?”
“정하나 헌터님을 못 믿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아, 됐어요, 거기까지. 정 뭐라도 하고 싶으시면 저희 길드원들 하고 현장 정리나 도와주세요.”
정하나의 말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식이었지만, 김상엽 팀장은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정하나는 강하고, 부상자인 자신은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 주먹을 쥐며, 마지막으로 정하나에게 당부의 말이라도 전하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남은 몬스터는 방금 처리한 몬스터보다 훨씬 더 강할 겁니다.”
“별걸 다 걱정하시네. 나 정하나거든요?”
정하나는 김상엽 팀상엽 팀장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곧장 남아있는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
『그렇게 재가 되어 사라진 몬스터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유영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부리나케 전갈 몬스터를 쫓아온 화신은 자체 내레이션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의 모습은 이유영이 아니면 아무도 볼 수 없다 보니, 화신의 행동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신’은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종이 한 장’을 챙길 수 있었다….』
화신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람들이 분주한 틈을 타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종이 한 장을 챙겼다. 그 과정이 마치 첩보원처럼 멋있었다며 화신은 자화자찬했다.
화신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바람에 날아가는 종이 낱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유영은 화신에게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후후후….』
화신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일기장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예상치 않게 몬스터가 두 마리나 튀어나온 상황인 만큼 이유영에게 잔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화신은 한 건 해냈다! 이 일기장이 없어졌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면 이유영이 얼마나 곤란했겠는가. 이유영은 화신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뛰어난 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는 정하나의 도움이 있다면, 지금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영도 금방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딱 멋지게 일기장을 전해줄 예정이었다.
혼자서 그려본 미래에 만족스러워하며, 화신은 이유영에게로 향하는 정하나의 주머니 속으로 숨어들었다.
화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정하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유영이 있는 곳으로 향할 뿐이었다.
***
“지금이야!”
내 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박종훈이 곧바로 뛰어올랐다.
내가 보랏빛 화염을 화왕검으로 베어내자, 박종훈은 몸을 날리며 스킬을 발동했다.
녀석의 ‘검술’이 화염 불곰의 배에 일격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몬스터는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다는 듯, 목에 두르고 있던 화염을 온몸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어!!!』
몬스터는 이성을 잃고 분노에 지배된 것처럼 미친 듯이 불꽃을 뿜어냈다.
나는 곧장 심판의 물을 사용해 박종훈에게로 향하는 불꽃을 막았다.
그러나 C급 몬스터였던 해치의 스킬로는 이 불꽃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고, 나는 곧바로 박종훈과 불곰 사이로 뛰어들었다.
불곰이 박종훈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그 괴력에 갈비뼈가 단번에 으깨졌고 곧장 생명의 의지가 발동됐다.
그래도 박종훈이 맞는 것보다야 즉각적으로 자힐이 되는 내가 맞는 게 나았다.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지만, 최후의 인류로 살아남으면서 이 정도 공격은 몇 번이나 겪어봤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화왕검에 심판의 물을 담아 놈을 향해 휘둘렀다.
스강!
아까보다 좀 더 매끄럽게 뻗어나간 푸른 검기가 놈의 화염을 일순간 잠재웠다.
다행히 박종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을 향해 ‘검술’을 발동했다.
화염 불곰은 데스스토커에 비해 스피드가 빠르지 않았고, 박종훈의 검술은 예리했다. 녀석은 박종훈의 검술을 피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팔 한쪽을 잃어야 했다.
텅!
그러나 우리는 이어지는 광경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떨어져 나간 팔에서 보랏빛 화염이 솟구치며, 데스스토커가 두르고 있던 것과 똑같은 껍데기가 갑옷처럼 자라났기 때문이다.
“저 새끼, 또 팔이 자라났어…!”
이 광경을 본 것도 벌써 세 번째였다. 화염 불곰은 회귀 전 C급일 때도 생명력이 질긴 녀석이었는데, 데스스토커에 의해 변이를 겪으며 그 특성이 더 강화된 모양이었다.
“팔다리를 자르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어. 아무래도 약점을 노려야 할 것 같다.”
“저거, 약점 노리기 시작하면 더 지랄할 텐데…!”
박종훈의 말 대로였다. 저 녀석이 순순히 약점을 내어줄 리도 없고, 이 녀석은 까다롭게도 약점이 한 군데가 아니다.
“목덜미랑 복부 쪽이 약점 같다고 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염 불곰을 완전히 쓰러트리기 위해선 녀석의 화염의 근원지와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곳을 모두 파괴해야 한다.
화염의 근원지는 녀석이 장식처럼 화염을 두르고 있는 목 부분이다.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부분은 조금 까다로운 곳에 있었는데, 복부에서도 정확히는 간 옆에 붙어있는 쓸개로 ‘웅담’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둘 중 하나만 파괴할 경우, 녀석은 미친 것처럼 분노에 휩싸이기 때문에 반드시 두 곳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다. 그러려면 나도 함께 공격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처럼 내가 화염 불곰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선 쉽지 않았다.
‘하필 화염을 쓰는 놈이라서 다른 스킬을 쓸 수가 없어.’
놈은 변이에 당한 후, 거의 S급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C급 몬스터인 해치에게 얻은 심판의 물로만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A급 몬스터에게서 얻은 열풍이나 목단의 줄기를 써야 하는데, 하필 둘 다 화염과는 상성이 좋지 않은 스킬이었다.
꽤 많은 스킬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녀석들을 상대하기엔 아직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박종훈의 검술을 흉내 냈더니, 화왕검의 검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염 불곰의 화염을 딱 한 번만 틀어막을 수 있다면, 박종훈이 목을 노리는 동안 내가 웅담을 찔러서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회를 만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지금으로서는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곰이 잘린 팔을 새로 복구하는 사이, 나는 박종훈에게 생명의 의지를 발동시켰다. 자힐이 안 되는 이 녀석은 열기에 군데군데 화상을 입은 상태라, 당장 치유가 필요했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에게 살아가는 것의 힘이 스며듭니다. ] [ 생명의 의지가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박종훈도 몇 번 치유를 받자 이제는 익숙하게 굴고 있었다.
그사이 화염 불곰도 팔의 복구를 끝냈다. 녀석은 한층 더 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어!!!!!!』
그 포효에 귀청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다.
놈은 네 발로 선 채, 잔뜩 성이 난 것처럼 우리를 보며 씩씩거렸다.
어쩐지 큰 공격이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박종훈을 뒤로 물리고는 다시 한번 화왕검에 스킬을 담았다.
그런데 그때,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어라, 뭐지?”
서서히 주위의 온도가 낮아지며 눈부시게 밝았던 빛이 점차 사라져갔다.
주변을 마구 태우고 있던 보랏빛 화염이 무언가에 먹히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암흑’에 먹히듯이 말이다.
나는 이 현상이 내가 아는 스킬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발밑을 살폈다.
그러자 내 예상대로, 발밑에 있어야 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내 것뿐만이 아니라 박종훈과 화염 불곰의 그림자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몬스터는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듯 괴성을 내질렀고, 결국 거대한 화염이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모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앞에 블랙홀처럼 휘몰아치는 ‘암흑’이 생겨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때맞춰 등장한 암흑이 몬스터가 내뿜은 불을 천천히 흡수하며 나와 박종훈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사라진 그림자와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암흑.
나는 이 스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네가 이유영이야?”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잔해물 위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연한 갈색으로 물든 단발펌의 머리에 내 어깨쯤이나 올 법한 작은 체구, 그리고 둥근 느낌의 인상. 전체적으로 어리고 순해 보이는 모습의 여자가 몬스터가 난동을 부리는 현장에 서 있자, 묘한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여자는 가뿐하게 뛰어내려 내 앞에 섰다. 마주한 두 눈에서는 작은 체구로도 가릴 수 없는 박력이 전해져 왔다.
기억 속의 얼굴보다는 앳된 모습이었지만,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하나 길드장.”
“수호 길드장님이라고?”
“그래, 너도 인사해.”
5대 길드 중 하나인 수호 길드의 수장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방어계 헌터인 ‘완전 방어’의 정하나.
정하나는 특유의 예민한 표정을 지으며, 가는 눈을 뜨고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흠, 뭔가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게 생겼네.”
다짜고짜 내 얼굴 평가를 내린 정하나는 박종훈의 어리바리한 인사는 건성으로 받아주고, 다시 암흑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황당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하나가 만들어낸 암흑은 화염을 삼키고는 있었으나, 암흑이 화염을 흡수하는 속도보다 불곰이 방출하는 화염의 양이 훨씬 더 많았다.
곧 있으면 방어를 뚫고 화염이 터져 나올 기세인지라, 나는 서둘러 정하나에게 말했다.
“인사 끝났으면 공략 시작하죠. 박종훈 협회원은 몬스터의 목을 노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복부를 노릴 거고요. 정하나 길드장은 저희한테 화염이 덮치지 않도록 막아 주시면 됩니다.”
“뭐야,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그야, 현장에 막 도착한 사람보다는 지금까지 몬스터를 상대하던 사람의 판단이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시절의 정하나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정하나와 안면을 트게 된 것은 오류를 막기 위해 헌터들이 결집했던 때라서, 내 기억 속에는 그때의 정하나만이 남아 있다.
“그러냐? 내 판단이 더 정확하기만 해봐. 그 순간 넌 우리 길드로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내 감상으로 지금의 정하나는 내 생각보다 좀, 막무가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