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신입 헌터 합동 교육 (1)
서울역에 나와 있는 진준성은 지금 무척이나 긴장한 상태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플랫폼 입구를 바라본 지 벌써 20분째. 그때, 기차가 도착했는지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인파 속에서 기다리던 사람을 발견한 진준성은 손을 흔들었다.
“고주연 선수님…!”
자신의 이름이 불린 한 여성이 인파 속에서 진준성에게로 다가왔다. 진준성을 쓱 살펴본 여자가 물었다.
“네가 진준성이야?”
“아, 네! 마,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고주연 선수님…!”
고주연이 서늘한 표정으로 진준성을 바라보자, 진준성은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예비) 길드장에게 속으로 원망의 말을 퍼부었다.
‘이게 다 이유영 헌터님 때문에…!’
진준성이 이렇게 고주연과 단둘이 만나게 된 건 이틀 전, 이유영에게서 온 전화 때문이었다.
***
헌터로 각성한 뒤로도 진준성의 일과는 거의 똑같았다. 학교에 갔다가, 남들보다 일찍 학원에 도착해서 자습하고 학원 수업을 들은 뒤, 집으로 와서 마무리 공부 후 취침. 전교 1등다운 루틴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진준성의 하루에는 한 가지 일정이 더 추가됐다.
“지석이 형, 나 왔어.”
“준성! 어서 와라. 참고로 너희 길드장님은 오늘도 안 왔다.”
“응… 기대도 안 했어. 이유영 헌터님은 바쁘시잖아.”
바로 (예비) 이유영 길드 사무실에 들르는 것이었다.
처음 길드 사무실이 계약되고 이유영 길드장이 길드 이름을 짓는 과정을 지켜볼 때는 솔직히 걱정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길드 사무실이 차근차근 구색을 갖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뿌듯함이 들며 걱정도 사라졌다.
‘이유영 헌터님도 와주시면 좋을 텐데.’
이유영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길드 사무실 리모델링과 관련된 일은 모두 윤지석에게 떠넘기고 한 번도 와보질 않고 있었다.
진준성은 길드 사무실이 완성되기 전에 이유영이 한 번쯤은 오지 않을까 싶어 학교가 끝나는 대로 잠깐씩 들르곤 했다.
사람이 없는 만큼 조용하고 자습하기에도 딱 좋아서, 독서실 대신 사무소를 쓰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예비) 이유영 길드 사무실에 들른 진준성은 회의실에 자리 잡고 공부하던 중이었다. 다음 주부터는 신입 헌터 합동 교육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진도를 빼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진준성이 문제집을 풀던 중,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진준성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진준성이 잽싸게 전화를 받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영 헌터님!”
『준성 학생,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냈습니까?』
“아, 네! 어쩐 일이세요?”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조금 갑작스럽지만, 이번 주 일요일 아침에 잠깐 시간 괜찮습니까?』
이번 주 일요일이면, 신입 헌터 합동 교육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걸까? 진준성은 순간 섭섭함이 몰려올 뻔했다.
“저, 그날은 신입 헌터 합동 교육 시작 날인데….”
진준성은 말하면서 진짜로 섭섭함을 느꼈지만, 이어지는 이유영의 말에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알고 있습니다. 집합 시간 이전에 준성 학생이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요…?”
『길드장인 제가 가야 하는데 그날 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생겼습니다. 준성 학생이 우리 길드원으로서 저 대신 마중 나가줄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사람인가요…?”
『네. 우리 길드의 첫 번째 헌터입니다.』
이유영에게 길드에 소속된 헌터가 한 명 있다고 듣긴 했었다.
바빠 보여서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가 그대로 잊어버린 존재였다.
이유영은 그 사람이 이번 신입 헌터 교육에 같이 참여한다며 진준성에게 미리 만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멀리서 서울로 온 사람을 마중 나갈 사람도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진준성은 이유영의 부탁을 들어주고 말았다.
***
그런데 그 사람이 국가 대표 금메달리스트 양궁 선수인 고주연이었다면, 이유영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결국 들어줬겠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나왔을 것이다.
이유영은 왜 그 사람이 고주연 선수라는 사실을 만나기 30분 전에 알려준 걸까. 깜빡했다는 말로 넘어가도 되는 정보가 아니지 않나?
타고나길 소심한 성격이었던 진준성은 유명인 고주연을 만나자 식은땀이 났다.
그런 진준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주연은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진준성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래서, 이유영은 왜 안 온 건데?”
“그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분명 열흘 전에 오늘 온다고 말해뒀는데 이렇게 나오네.”
고주연이 자신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진준성은 자꾸만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식으로 이유영 길드에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이렇게 계속 주눅 들기만 할 순 없었다.
진준성은 어제 열심히 준비해 달달 외웠던 ‘첫 만남에 쓰기 좋은 스무 가지 대화 스킬’을 써먹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서 상대와의 공통된 점을 찾아 질문하라고 했었지.’
진준성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주연에게 최대한 침착한 어투로 물었다.
“저, 고주연 선수님, 선수님은 어쩌다가 헌터가 되셨어요?”
그리고 진준성은 말을 한 뒤에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가 헌터가 되긴, 각성했으니까 헌터가 된 거 아닌가. 차라리 어쩌다가 선수가 됐냐든가, 어쩌다가 이유영 길드에 들어왔냐고 물어볼걸.
만약 큰일을 겪고 각성하기라도 했다면 처음 만난 진준성한테 얘기해주기도 꺼릴 것이다.
말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고주연의 시선에 진준성은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졌다.
그러나 고주연은 진준성에게 솔직한 대답을 들려줬다.
“고향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서 그걸 막다가 각성했어. 한국에서 각성자는 무조건 헌터로 활동해야 하니까 헌터가 됐고.”
“그, 그러셨군요…!”
진준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라면 두 번째 질문도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질문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한 후 내뱉으려던 순간, 고주연이 먼저 말했다.
“너 밥은 먹었어?”
“밥, 밥이요? 어제저녁에는 먹었는데 오늘 아침은 아직이요….”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이동하는 고주연을 뒤따라가며 진준성은 울상을 지었다.
방금 자기가 한 헛소리도 그렇고, 밥을 먹으러 가는 상황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에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던 진준성은 남이랑 같이 밥을 먹은 것도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진준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고주연은 곧장 역 근처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들어갔다.
고주연은 편하게 앉아 돼지국밥 두 개를 주문했다. 진준성의 의사는 없었지만, 진준성은 오히려 메뉴를 고르지 않아도 돼서 안심했다.
‘보통 첫 만남에서 돼지국밥을 먹는 게 일반적인가…? 고주연 선수님이 어른이라서 나랑 기준이 다른 걸까?’
진준성이 복잡한 고민을 하며 수저와 물을 세팅하던 중, 물 한 컵을 비운 고주연이 물었다.
“새 길드원을 받았다는 건 사무실이랑 길드 이름 같은 건 제대로 만들어 뒀나 보지?”
“콜록!”
고주연을 따라 물을 마시던 진준성은 그 말에 사레가 들렸다.
길드 사무실도 아직 미완성. 그리고 길드 이름은 어디 가서 내뱉기도 부끄러운 이름.
가뜩이나 이유영에게 화난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분위기가 더 처참해질 것이다.
진준성은 기침하던 입을 닦은 뒤, 적당히 핑계를 대기로 했다.
“길드 사무실은… 건물은 구하셨는데, 리모델링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겨서 지연됐다고 들었어요.”
문제? 그런 건 없다. 오히려 리모델링 과정을 총괄하고 있는 윤지석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덕분에 예정일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이유영이 작업 착수를 지나치게 늦게 했을 뿐이다.
다행히 고주연은 그 부분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마침 사장님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국밥 두 그릇을 진준성과 고주연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고주연은 국밥에 부추와 다대기를 살벌하게 말아 넣으며 말했다.
“그럼 길드 이름은 정했고?”
“길드 이름은….”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주연에게, ‘이유영 길드’라고 내뱉는 순간을 상상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돌려봐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유영 헌터님이 좀 더 생각해보시겠다고….”
그 말과 동시에 진준성은 고주연의 표정이 싸늘해지다 못해 일그러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분명 사무실이든 길드명이든 제대로 된 걸 만들어 두라고 했을 텐데.”
콰직.
쇠로 된 숟가락이 휘어지는 모습을 본 진준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주연도 무의식적으로 행한 일이었는지, 휘어진 숟가락과 국밥집 사장의 눈치를 번갈아 보고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틈을 타 숟가락을 원상복구 시켜놨다.
그리고는 다시 숟가락으로 국밥을 퍼먹으며 진준성에게 물었다.
“너도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가?”
“네, 맞아요…!”
“그럼 이거 먹고 교육받으러 같이 가면 되겠네.”
진준성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입 헌터 합동 교육. 한국에서 정식으로 헌터 활동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수료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협회에서는 달에 한 번, 그달에 각성한 헌터들을 데리고 교육을 진행한다. 지리산에 위치한 연수원에서 일주일간 진행되며, 헌터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가르치곤 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합동 교육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묵묵히 국밥을 먹었다.
고주연이 먼저 다 먹고, 진준성도 숟가락을 내려놓자 고주연은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진준성은 재빨리 일어나 자신이 갖고 있던 카드를 내밀었다.
“자, 잠깐! 이 카드로 계산해 주세요…!”
그러자 고주연은 단박에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학생한테 얻어먹을 정도로 돈을 못 벌진 않아.”
“이, 이건 이유영 헌터님이 주신 카드예요. 합동 교육 가기 전에 돈 쓸 일 있으면 이걸로 쓰라고 하셨어요….”
“그래?”
고주연은 진준성이 준 카드를 받더니, 가게에 있던 다른 테이블을 한 번 훑어봤다. 그리고 이유영의 카드로 다른 세 테이블 몫까지 계산해달라고 했다.
한 번에 10만 원어치를 긁은 고주연은 가게를 나오며 말했다.
“협회 집합까진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커피나 마시자.”
“네…!”
사람은 음식을 같이 먹고 나면 친해진다고 했던가.
고주연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카페에서 제일 비싼 것까지 이유영의 카드로 얻어먹었더니 꽤 친해진 것 같았다.
이유영이 미리 만나보라고 한 것도 사실 이런 이유 때문인 걸까?
진준성은 긍정 회로를 돌리며 고주연과 협회로 향했다.
***
“저 사람, 고주연 아니야? 그 왜 양궁 금메달 있잖아.”
고주연은 첫인상과 달리 엄청 무던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대놓고 고주연을 알아보고 수군댔지만, 고주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협회에 도착했을 때도 신입 헌터들이 어김없이 수군거렸지만, 고주연은 개의치 않았다.
“와, 고주연이다….”
“포스 쩐다. 각성 등급도 엄청 높겠지?”
그러나 꼭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인 헌터들 중,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인 한 헌터가 고주연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고주연 선수. 아니, 이젠 고주연 헌터라고 해야 하나?”
진준성은 고주연의 옆에서 그 헌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노란 머리에 당장 콘서트 무대에 오를 것만 같은 화려한 복장,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한 여자는 고주연이 손을 잡아줄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떠들었다.
“듣기로는 각성 등급이 꽤 높다고 들었는데, 혹시 종합 능력치가 어떻게 되시나요?”
“B등급인데.”
“와, 정말요? 그 정도면 대형 길드에서 컨택 받으셨겠어요. 아, 혹시 강남 길드에서도 받으셨나요? 그럼 앞으로 한 식구가 되겠네요. 저도 이번 합동 교육이 끝나면 앞으로 강남 길드에서 활동하게 될 예정이거든요.”
그녀는 고주연을 띄워주는 척하면서, 자신이 강남 길드 소속이 예정되었다는 사실을 은근히 어필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고주연에게서 노란 머리의 헌터에게로 관심이 옮겨갔다.
“대박… 합동 교육 이수하기도 전에 강남 길드에 스카우트 된 건가? 저쪽도 대박이네.”
“강남 길드는 C급 미만인 헌터들은 쳐 주지도 않는다면서. 이번 기수 장난 아니다….”
각성 초기 등급이 B급이었던 진준성은 C급이 그리 대단한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남 길드 소속이라는 건 확실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반면 고주연은 반응이랄 게 없었다. 노란 머리 헌터가 내민 손 역시 아직 잡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헌터도 꽤 끈질긴 편이었다.
“그래서, 고주연 헌터님도 받으셨나요? 강남 길드 스카우트?”
“아니, 안 받았는데.”
“그러셨군요. 합동 교육 때 좋은 결과를 내면 길드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니까, 좋은 성적을 내보세요. 그럼 강남 길드도 스카우트해줄 거예요.”
진준성은 그 안에서 묘한 비꼼을 느낄 수 있었다. ‘난 강남 길드 소속이지만, 넌 아직 길드 스카우트도 못 받았구나. 저런.’ 이런 의도가 담긴 것 같았다.
상당히 거슬리는 말투였지만, 고주연은 덤덤한 어투로 대꾸했다.
“길드는 이미 들어갔어.”
“정말요…? 어느 길드인가요? 설마 구원 길드나 수호 길드?”
“아니, 알려줄 이름 같은 건 없어.”
고주연은 진준성에게 길드 이름을 듣지 못해서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지만, 노란 머리 헌터는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고주연이 설명을 더 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건 미리 오해를 풀어두고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진준성이 말했다.
“저기, 고주연 선수님은 정말로 알려줄 이름이 없어서 그러신 거예요. 길드 이름이… 아직 안 정해졌거든요.”
있기는 하지만 진준성은 그게 진짜 이름이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뭐야, 얼마나 대단한 길드였나 했더니. 이름도 없는 신생 길드였어? 그래요, 알았어요.”
이유영의 길드를 묘하게 까 내리는 듯한 말투에 진준성은 기분이 상했지만, 싸움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쩐지 저 노란 머리 헌터와는 신입 헌터 합동 교육 내내 부딪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