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1)
업보에 대해 해명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아직 지하에 남아있을 끔찍하게 변이에 당한 피해자들을 떠올리고 고주연에게 말했다.
“고주연 씨, 죄송하지만 아직 구해야 할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 사람들을 구한 뒤에 와서 하겠습니다.”
“뭔 소리야, 구해야 할 사람이라니?”
“이곳 직원들이 조금 전의 그 몬스터한테 당했습니다. 힐을 해드려야 해요.”
“…대체, …… 일단 알겠어. 얼른 다녀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말 때문인지 고주연은 조금 전의 무서운 표정을 뒤로하고 흔쾌히 나를 보내줬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피해자였기 때문에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고, 나는 곧바로 달려갔다. 다행히 변이가 풀린 그들은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에게 살아가는 것의 힘이 스며듭니다. ] [ 생명의 의지가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생명의 의지를 발동하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의 불안정한 호흡이 점차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돌이키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나는 비로소 한시름 덜며, 그 사람들을 들쳐업고 지하에서 빠져나왔다.
***
이후 김상엽 팀장의 빠른 대처로 구급대가 도착해, 피해 상황을 수습하며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다행히 사망자가 생기지 않았지만, 변이에 당한 신입 헌터를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팀장님.”
“이유영 헌터님이야말로 고생하셨습니다.”
팀장은 다리가 다친 상황에서 무리한 것 같았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안심하며 잠깐 숨이라도 돌릴 겸 막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한 구급대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쉬시는 중 죄송한데 저쪽 환자분이 계속 ‘내 상태창이 사라졌다’고 하시는데… 제가 헌터가 아니라서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떤 환자분이 그러십니까?”
“김제니라는 여성분이세요.”
그 이름에 김상엽 팀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김제니 헌터는 이번 신입 헌터 중에 몬스터화 당한 피해자입니다. 상태창이 사라졌다니. 헌터님, 혹시 짚이는 점 있으십니까?”
그 신입 헌터 녀석의 이름이 김제니였나.
헌터의 상태창이 사라졌다는 건 나도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다.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니라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아직까진 짚이는 게 없습니다. 그 헌터가 몬스터화 되기 전에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한 적 있습니까?”
“다른 헌터들보다 야망이 있는 케이스긴 했지만, 그게 이런 문제로 번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본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상엽 팀장과 나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구급대원을 따라갔고, 그곳엔 수액을 맞으며 중얼거리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발견한 녀석이 돌연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내게 달려들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내 상태창이 사라진 거라고!!”
그 발악에 가까운 몸짓에 김상엽 팀장이 김제니를 진정시키며 떼어냈다.
갑자기 내 탓을 하는 건 황당했지만, 그보다 진짜로 상태창이 사라진 사람처럼 분노하고 있는 게 걸렸다.
“상태창이 사라졌다는 게 진짜입니까?”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최강의 헌터가 될 수 있었는데. 왜 나한테만, 왜 나한테만…!!”
“…….”
내가 힐러긴 해도,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이 녀석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는 상황이다.
만약 상태창이 정말로 사라진 거라면,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 내 주머니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자세한 건 화신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 것이다.
내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김제니가 다시 내 멱살을 틀어쥐고서 흔들어댔고, 김상엽 팀장이 그녀를 말리며 내게 말했다.
“이유영 헌터님,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조금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제도 못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팀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헌터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건 아십니까. 지금은 남 생각하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생명의 의지가 있는 나는 며칠 밤을 새워도 멀쩡하다. 다리까지 다친 채로 전투했던 일 중독자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김상엽은 굴하지 않고 김제니를 다른 협회원들과 간호사에게 맡긴 뒤 말했다.
“이번 달 교습은 중지하고, 오늘 저녁에 신입 헌터들을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이유영 헌터님도 그때 같이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도 다른 협회원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같이 갑시다. 다음에 몬스터 나오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신입 헌터 중에 피해자가 있기도 한만큼 이 이상 신입들을 이끌어 가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는 만큼 야생의 몬스터 대응팀 팀장도, 나도 컨디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김상엽 팀장한테 쉬라고 몇 번 더 당부한 뒤에 우리 길드원들에게 갔다.
***
진준성과 고주연은 둘이서 친해진 건지, 신입 헌터들이 모여있는 강당 한쪽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가던 나를 발견한 뒤로 갑자기 이야기를 뚝 멈추길래 물었다.
“무슨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까?”
“네 뒷담 깠어.”
고주연이 냉랭하게 말하면 진짜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왠지 이 상황이면 진짜일 것 같았다.
내가 진준성을 쳐다보자, 진준성은 묘하게 시선을 피했다.
“……두 분 많이 친해지셨나 봅니다.”
“길드장님이 길드원들을 내버려 두고 혼자 다 하는데 길드원들끼리라도 친해져야죠.”
“맞는 말이야.”
이 녀석이 고주연 옆에 있더니 고주연 말투를 배운 모양이다.
뭐, 어쨌든 간에 길드원 둘이 친해졌다면 길드장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나는 두 사람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우선 좀 앉죠. 해드려야 할 얘기가 좀 많은데, 자세한 건 길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긴 듣는 귀가 많은 것 같네요.”
“저번에 만났을 때 언질이라도 주시지. 근데 저희 이거 끝나면 길드로 가요?”
진준성이 순진하게 묻는 탓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5일 더 이어질 훈련이 오늘 끝났으니, 하루 정도 길드에서 얘길 나눠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라고 있는 길드 사무소 아니겠습니까? 저희 ‘이유영 길드’의 길드원들이 겨우 다 모였는데 다 같이 한 번 가봐야죠.”
“잠깐… 이유영 길드?”
나를 따라서 자리에 털썩 앉은 고주연이 처음 듣는 것처럼 물었다.
진준성이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깜빡 잊은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 길드에 대해 설명했다.
“준성 학생의 학교 근처에 사무소를 잡았습니다. 협회와도 가깝고, 사무장님도 계시고…”
“잠깐, 잠깐만요. 진짜 이름을 이유영 길드로 하실 건 아니죠?”
“…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진준성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마치 자기 의견에 동의해달라는 듯 고주연을 바라봤다.
고주연은 나를 힐긋 보며 말했다.
“네가 이름을 그따위로 지어서 얘가 아직 길드 이름이 없다고 한 거였구나.”
“그따위라니….”
“이유영 헌터님… 다시 생각해볼 마음 없으세요? 구원이나, 수호나, 천혜나. 조금 더 멋진 이름으로 지어도 되잖아요.”
내가 알기로 구원 길드 역시 구지상의 ‘구’와 길드장 박이원의 ‘원’을 따와 구원 길드인 것으로 안다.
원래 음식점도 사장님 이름을 간판에 걸고 있으면 사람들이 신뢰하고 들어가지 않나?
하지만 진준성은 이유영 길드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 나이대 청소년이면 이런 부분에 예민할 것이다.
“그럼 준성 학생이 하나 정해보겠습니까? 전 이 이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릅니다.”
“헌터님…, 아니 길드장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진지하게 길드 이름 고민해보신 적 있으신 거예요? 처음에는 지석이 형 체육관 이름을 가져다 쓰려고 하셨잖아요.”
“그냥 진준성 네가 지어. 쟤한테 맡겼다간 너만 스트레스받는다.”
고주연은 이유영 길드든 말든 별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진준성은 그런 고주연의 태도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다. 길드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길드를 이끌어나가는 헌터들이다.
나중에 S급 던전이 우후죽순 열리기 시작하면, 사실상 길드 단위의 모임은 해체되고 강한 헌터들의 연대가 더 중요해진다.
나로선 진준성이 여기에 싫증 나서 협회로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나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김상엽 팀장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걸 보고 오는 길이었으니까.
“준성 학생은 제가 저번에 말했던 것 생각해보셨습니까? 이번 훈련에서 느낀 게 있을 것 같은데.”
진준성의 스킬이 얼마나 특이 케이스인지 아마 톡톡히 느꼈을 것이다.
직접 전투에도 참여한 것 같았고, 본인의 쓸모를 깨달았을 테니 내가 적당히 세운 길드보다 더 큰 곳을 바라볼 만도 했다.
그런데 진준성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설마 제가 길드 이름에 태클 걸었다고 절 내쫓으시려는 건 아니죠…?”
이 녀석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진준성의 말에 고주연이 나를 쓰레기로 보는 것 같아서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두 분 다 본인들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셨을 텐데 제 길드에 남아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려던 겁니다.”
“알면 네가 잘 좀 해.”
“맞아요, 이유영 길드장님이 잘해주시면 되겠네요.”
진준성은 어느샌가 길드장님으로 호칭을 바꿔서 부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뭘 믿고 내 길드에 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들이 그렇다면 나도 더 묻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협회가 아니면 이 두 사람을 다른 길드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이 두 사람도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훈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김제니라는 녀석이 고주연의 이름을 불렀던 걸 보면 내가 싸우는 동안 이 둘도 꽤나 고생을 겪은 모양이다.
길드로 돌아가면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려서 다들 말을 멈췄다.
보니까 윤지석한테 온 전화였다.
“네, 사무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장님이라고 부르시네요.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유영 씨 지금 어디세요?』
“저 지금 좀 멀리 나와 있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길드 사무소에 이유영 씨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제가 상대하고 있습니다. 금방 오실 수 있으세요? 되게… 유명한 분이 오셨는데.』
손님? 아직 정식으로 등록을 마치지도 않은 사무소에 손님이 올 리 없다. 길드 사무소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한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왔다는 건, 내 뒷조사를 한 누군가가 찾아왔다고 봐야 한다.
나한테 미리 연락을 주지도 않고 찾아온 걸 보면 좋은 손님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돌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장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천혜 길드장님이 직접 오셔서요. 이유영 씨 없어서 가셔야 할 것 같다고 그랬는데도 그냥 기다리겠다고 하십니다. 뭔가 무시무시한 몬스터? 드래곤? 같은 것도 같이 있어서 솔직히 무섭습니다. 얼른 못 오세요? 지금 어디신데요?』
천혜 길드라면 강남 길드의 다음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다.
회귀 전에 그 길드장 덕분에 덕을 본 게 좀 있기도 하고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할 녀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를 먼저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가 지금… 지리산에 있어서 금방 못 갈 것 같은데요.”
『네? 지리산이요?!』
“나중에 제가 따로 연락할 테니 돌아가 달라고 말씀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만요….』
윤지석은 통화를 끊지 않고서 말을 전달하러 간 듯했다.
나는 멀뚱히 나를 보고 있는 고주연과 진준성에게 제스처로 길드에 손님이 온 것 같다고 전달했다.
그러던 중, 핸드폰 너머로 안쓰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영 씨….』
“예, 돌려보내셨습니까?”
『우리 길드장님 지리산에 있다고도 말했는데 그냥 기다리시겠답니다…. 잠깐, 핥지 마. 이유영 씨, 드래곤 같은 게 저를 막 핥는데, 자, 잠깐!』
윤지석의 짧은 외침과 동시에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성별을 특정하기 어려운 독특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유영 길드장님? 아, 제 아이가 사무장님을 마음에 들어 한 것뿐이니 걱정하실 것 없어요.』
“……천혜 길드장님께서 저희 사무장님을 왜 괴롭히시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원하는 게 뭡니까?”
『후후, 너무 경계할 것 없어요. 그냥… 옆에 있는 길드원들이랑 같이 이곳, 당신의 길드로 돌아오기만 해요. 그럼 이따 만나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뚝 끊겼다.
이건 윤지석을 인질로 잡고 있고, 내 뒷조사를 철저하게 해뒀으니 도망가지 말고 오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