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이유 길드
“윤지석 씨, 정신 차리세요.”
“지석이 형, 좀 일어나봐!”
술에 취한 윤지석은 천혜 길드장이 돌아가고도 여전히 눈을 못 뜨고 있었다. 진준성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윤지석은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진준성이 윤지석의 뺨을 때리며 윤지석을 깨웠지만, 윤지석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영, 네 힐로 저 숙취는 낫게 할 수 없어?”
고주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뺨을 때리던 것을 그만두었다.
확실히 힐러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었다.
나는 빨갛게 뺨이 부어오른 윤지석에게 힐을 넣으며 설명해줬다.
“이런 상처나 상태 이상은 치유되지만, 숙취 같은 건 안 먹힙니다.”
다른 힐러들 사정까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내 힐은 부상 치유와 상태이상 해제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런 숙취 같은 걸 해결해줄 만큼의 마법을 부릴 수는 없었다. 숙취를 치유하기엔 ‘생명의 의지’라는 스킬명도 어울리지 않고 말이다.
그때 한참 윤지석을 깨우던 진준성은 결국 포기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그냥 여기서 자게 냅두는 게 낫겠어요.”
“…여기서 저 상태로?”
고주연은 몸이 반쯤 구겨진 상태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윤지석을 바라봤다. 소파가 작은 건지 아니면 누워있는 사람이 긴 건지, 윤지석은 불쌍해 보일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진준성도 그런 윤지석을 보며 말했다.
“…4층에 형이 숙직실을 만들어 놨어요. 침대도 있으니까 거기에 재우면 될 것 같아요.”
“그런 것도 만들어 뒀습니까?”
내가 감탄하자 옆에 있던 고주연이 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오늘 몇 번이나 저 눈빛을 받다 보니, 슬슬 익숙하기도 했다.
너무 대놓고 시선을 피한 건지 고주연이 날카롭게 말했다.
“넌 대체 네 길드 사무소에 대해 아는 게 뭐야?”
이번에도 할 말이 없었던 나는 대답하는 대신 몸을 쓰기로 했다.
대답을 피하며 장신의 태권도 관장을 업었다. 가뜩이나 덩치가 있는 사람이 술에 취하기까지 해서 상당히 묵직했다.
고주연은 한숨을 쉬며 나를 따라왔고 진준성은 앞장서서 4층으로 안내해줬다.
진준성도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고 생각한 건지 친절하게 길드 사무소의 구조를 설명했다.
“1층에는 아까 보셨다시피 응접실이랑 탕비실, 회의실이랑 사무 공간이 있어요. 2, 3층은 형이 훈련장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헌터용 훈련장은 어떻게 꾸며야 할지 몰라서 일단 바닥만 깔아뒀어요. 그리고 방금 말했다시피 4층은 숙직실이에요.”
숙직실을 층 하나를 전부 써서 만든 건가?
솔직히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4층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이 단숨에 지워졌다.
“이건 숙직실이라기보단, 거의 숙소네요.”
숙직실이라길래 간이침대 정도만 있을 줄 알았건만, 이곳은 거의 단체 숙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대형 TV가 놓인 공용 공간이었다. 트렌디한 컬러감의 소파와 테이블, 따뜻한 색의 조명이 놓여 있었고, 우드 스피커와 베이지 톤의 커튼이 한층 분위기를 살렸다.
취사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다소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형 가구들이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주방에 마련된 커피머신과 커피 캡슐을 구경하며 생각했다.
‘돈을 얼마나 쓴 거지?’
놓여 있는 가구들이 전부 번쩍번쩍한 게 한두 푼이 들어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고주연도 만족해서 기분이 풀린 것 같고, 진준성도 뿌듯한 얼굴이다. 윤지석이 얼마를 썼든, 그건 길드에 관심도 안 가진 내 업보인 듯했다.
안쪽에는 방이 총 세 개가 있었는데, 방마다 새 이불이 깔린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윤지석을 침대에 던져놓을 생각이었지만, 공들인 티가 나는 공간을 보고 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윤지석을 정성스럽게 눕힌 후, 이불을 잘 덮어 주고 나왔다.
방 밖엔 고주연과 진준성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나도 앉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어서, 나는 군말 없이 맞은 편에 앉았다.
“또 누가 찾아올 일 없지?”
“네, 없습니다.”
“그럼 얘기해 봐. 길드 도착하면 네 사정 얘기해준다며.”
시간도 늦어서 다음에 하자고 할 줄 알았건만. 보아하니 고주연도 진준성도 딱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확실히 더는 두 사람과의 대화를 미룰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생각해보니 두 사람에게 알려준 정보가 거의 없어서 상당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첫 야생의 몬스터인 식욕의 금돼지부터 영상에 찍혀 날 유명해지게 만든 탐욕의 수집가 크로우, 이번에 만난 질투의 이시미까지.
난데없이 나타난 야생의 몬스터와, 내가 그것들과 필사적으로 싸운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같이 싸워나갈 동료라면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내가 여태까지의 일들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꼬르륵
어디선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귀가 새빨갛게 물든 진준성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진준성은 개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중요한 얘기 하시려는데….”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9시 30분인데 우리 모두 저녁을 먹지 못했다.
생명의 의지 덕분에 며칠 굶어도 별문제 없이 활동할 수 있다 보니, 건장한 청소년의 위장 사정을 차마 고려하지 못했다. 아마 말은 안 하고 있지만 고주연도 배고플 것이다.
이런 시간에 가장 좋은 메뉴는 정해져 있다. 나는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켜며 말했다.
“다들 치킨 어떻습니까?”
“저 때문에 시키시는 거 아니죠…?!”
“시켜, 한 세 마리는 시켜도 되겠네.”
헌터는 소비하는 칼로리가 많아 잘 먹는 편이다. 게다가 청소년인 진준성과 운동선수였던 고주연은 더 잘 먹을 게 분명했다.
음식은 먹다가 모자라면 서러운 법이니, 나는 넉넉하게 양념치킨 3마리와 후라이드치킨 3마리를 주문했다.
주문량이 꽤 많기 때문에 치킨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여섯 마리 시켰습니다. 치킨 튀기는 데 시간 좀 걸릴 테니까, 올 때까지 이야기 먼저 하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처음 진준성과 야생의 몬스터 ‘금돼지’를 만났을 때부터, 이번에 이시미를 발견한 일까지. 밝힐 수 없는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얘기를 끝내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사람에겐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어떤 질문이 오든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진준성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저, 그 그럼 스킬 시연 날 저한테 조언을 주셨던 것도 길드장님이었나요…?”
진준성의 낯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탓에 진준성은 나인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바람에 시연을 끝까지 못 봤는데, 잘 보여줬습니까?”
진준성은 어째서인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끄러워하느라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고주연은 진준성을 흘긋 보다가 대신 대답했다.
“잘 끝냈지. 다음 날 조별 수업도 그렇고, 몬스터처럼 변한 김제니랑 싸울 때도 그렇고. 대단하던데.”
“역시, 준성 학생이면 잘해낼 줄 알았습니다.”
진준성은 아직도 부끄러운 건지 얼굴을 들질 못했다.
고주연은 진준성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주연이 저 정도의 표현을 해주는 걸 보면 진준성이 정말 잘해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준성을 칭찬하던 고주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근데 우리한테 연락은 왜 안 했어?”
“연락이요?”
“나랑 진준성이 신입 헌터 합동 교육에 참여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길드원인 우리한테 연락 안 한 거야? 길드 가입 권유할 때 같이 싸워달라고 했잖아.”
“…….”
고주연의 질문에 진준성도 고개를 살짝 들어서 나를 올려다봤다.
솔직히, 두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대답은 많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든가. 야생의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말해도 안 믿을 거라고 생각했다든가. 아직 길드 계약서도 안 쓴 사람들한테 무리한 부탁을 시킬 순 없었다든가.
그러나 전부 변명일 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이것 하나였다.
“아직 두 사람에겐 위험한 전투라고 생각했습니다.”
야생의 몬스터는 던전 안의 몬스터보다 훨씬 위험한 녀석들이다. 환경을 이용해 변칙적으로 움직이며, 전보다 강화된 스킬을 영리하게 사용한다. 매직 캐슬에서 싸웠던 녀석들만 해도, 나와 야생의 몬스터 대응팀도 몇 번이나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러니 이제 막 헌터가 된 두 사람을 차마 끌어들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제가 잘못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두 분은 침착하게 잘 싸우시더군요.”
두 사람은 신입 헌터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다. 다음에 싸우게 될 때는 함께 싸워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새 고개를 든 기분이 좋아진 건지 진준성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고주연도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알면 잘해. 우리 같은 길드원을 또 어디서 구하겠어.”
“마, 맞아요…! 길드원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론… 길드에 관심 좀 기울여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타이밍 좋게 치킨이 도착했다.
고소한 튀김 냄새에 자각하지 못했던 허기가 밀려왔다.
바삭하게 튀긴 치킨은 황금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앞에 두 마리씩 펼쳐놓고 잠깐 말없이 그 황홀한 자태를 바라봤다.
“먹읍시다.”
원래 배고플 땐 말없이 음식에만 집중하게 되는 법이다. 조금 전의 대화는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우리 셋은 조용하게 치킨에 집중했다.
바사삭 씹히는 껍질과 닭의 육즙에는 감칠맛이 있었다. 나는 닭가슴살을 먼저 집어 먹었고, 두 사람은 닭 다리를 뜯고 있었다.
이어서 나무젓가락으로 양념치킨을 집던 나는 문득 두 사람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런데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꽤 믿기 힘든 이야기를 해드린 것 같은데 질문이 없네요.”
다른 건 몰라도 야생의 몬스터들을 어떻게 찾은 거냐는 질문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나온 질문은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두 사람은 치킨 조각을 손에 든 채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명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무슨.”
“또 이상한 소리 하면서 어물쩍 넘어가실 거잖아요.”
설명할 수 없는 걸 물어본다면 그랬겠지만, 이번엔 나도 최대한 성실하게 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나를 포기해버린 것처럼 덧붙여 말했다.
“그런 거 일일이 따질 거였으면 길드 들어오라는 제안도 안 받아들였어.”
“맞아요, 솔직히 이유영 길드장님은 처음부터 수상했어요. 그걸 전부 따질 생각이었으면… 길드에 들어가진 않았을 거예요.”
두 사람의 말에는 나를 신뢰한다는 사실이 깔려 있었다.
회귀니, 화신이니, 내 일기장이니 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내게 그 신뢰는 귀중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닭다리를 하나씩 더 얹어주며 말했다.
“때가 되면, 그게 뭐든,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고주연과 진준성을 만났고, 두 사람과 함께 싸우려 하는지 언젠가 반드시 설명할 날이 올 것이다.
적어도 그때가 오면,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두 사람에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준성이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아, 하고 감탄 섞인 소리를 냈다.
“그걸로 하는 건 어때요?”
“뭘 말입니까?”
진준성은 들고 있던 치킨 날개를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꽤 격양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길드 이름이요. ‘이유 길드’로 하는 건 어때요? 길드장님의 이름도 들어가 있고, 길드장님이 수상하게 구는 이유에 대해 듣겠다는 길드의 목표로 볼 수도 있고. 괜찮지 않나요?”
젓가락으로 양념치킨을 먹고 있던 고주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유영 길드보다는 훨씬 낫네.”
이유 길드라. 길드원 둘 다 이유영 길드는 싫었던 것 같으니, 이번에는 내가 양보하는 게 좋을 듯했다.
솔직히, 이유영 길드보다는 이유 길드가 입에 더 잘 붙는 것 같았다.
“그럼 이유 길드로 갑시다.”
내 말에 진준성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주연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에게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주며, 콜라를 따라줬다. 마지막으로 내 잔에도 콜라를 가득 채우고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길드 이름 정한 기념으로 건배나 할까요?”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나는 두 사람과 잔을 부딪치며 건배사를 말했다.
“그럼, 이유 길드의 번영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