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이유 길드 (5)
고주연은 구원 길드 헌터에게서 받은 명함을 구경하다가 다시 녀석한테 돌려줬다.
“길드 가입은 안 됩니다. 다른 부탁으로 하세요.”
“어라, 이미 길드에 가입하신 건가요?”
고주연이 나를 쳐다봤고, 내가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 있던 진준성도 나를 따라서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실눈 녀석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희 구원 길드인데, 좀 더 생각해보세요. 업계 연봉 1위, 직원 및 헌터 만족도 1위, 심지어 사택 제공까지! 혹시 위약금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당연히 물어 드립니다.”
고주연이 피식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는데?”
“안 돼요…! 고주연 헌터님 나가면 저희 길드 망해요…!”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진준성이 먼저 외쳤다.
고주연 한 명 나간다고 망한다니, 맞는 말이다. 진준성은 미성년자라 예비 길드원이고, 사실상 우리 길드원은 고주연 한 명밖에 없는 셈이다.
유일한 길드원인 고주연이 나가면 길드가 망하는 게 맞다.
진준성이 빨리 뭐라도 말해보라는 듯이 나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나도 입을 열었다.
“구원 길드는 고주연 씨가 싫어하는 홍보 모델을 시킬 겁니다.”
“홍보 모델 같은 건 싫어하시는 타입이구나? 고주연 선수님이 싫으시다면 제가 길드장님한테 잘 얘기해서 최대한 줄여볼게요.”
“그 쪽한테 그 정도의 권한이 있습니까?”
“이런, 제 소개가 짧았군요. 전 구원 길드 감마팀 분대장이라는 직급을 갖고 있습니다.”
감마팀은 구원 길드에서도 상위권 팀이다. 심지어 분대장이라면 조금 전 고주연과의 전투는 봐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자인 셈이다.
실눈 녀석은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고주연에게 물었다.
“어떠신가요? 웬만한 조건은 제가 다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고주연 선수님도 제2의 인생 펼치셔야죠.”
진준성은 불안한 눈으로 고주연을 바라봤지만, 정작 고주연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감마팀 분대장의 제안보다 시뮬레이터에 더 흥미가 있는지, 계속 거기에 눈길을 두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쟤네 말대로 내가 나가면 길드가 망해서요. 안 됩니다.”
“흠…. 구원 길드에 들어오시면 그 시뮬레이터도 무료로 이용 가능하실 텐데요?”
실눈 녀석이 예리하게 고주연이 바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고주연은 다행히 넘어가지 않았지만, 나를 닦달했다.
“이유영. 너도 이런 거 하나 만들어봐.”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내가 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런 시뮬레이터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고주연은 그 대답뿐이어도 만족한 것 같았다.
시뮬레이터로 유혹해도 가지 않는다면, 고주연은 무슨 조건을 내세우든 우리 길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실눈 녀석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호쾌하게 웃었다.
“이거, 길드장님이 되게 좋으신 분인가 봅니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이유 길드 여러분이 모두 구원 길드 소속으로 오시는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수 합병 제의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우리 셋의 반응이 싸늘해지자, 실눈, 아니 이용건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런, 농담이 안 통했군요.”
대체 오늘 낮에 등록한 우리 길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것보다 고주연이 내 길드 사람인 걸 알면서도 뻔히 내 눈앞에서 스카우트를 한 건가?
“저희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계셨나 봅니다.”
녀석은 내 말에 수상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더는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유영 씨랑 고주연 씨 두 분이 저희 길드 훈련장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드디어 구지상 씨에 이은 길드 간판을 영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습니다.”
시커먼 속내를 저렇게 투명하게 내뱉다니.
이전에 어설프게 내가 힐러라는 걸 캐보려던 구지상도 그렇고, 구원 길드 녀석들은 다 이런 건가?
“구원 길드에는 구지상 헌터님이 있는데 길드 간판을 또 영입할 필요가 있나요…?”
가만히 녀석의 말을 듣고 있던 진준성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용건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답했다.
“진준성 씨는 구원 길드 헌터 하면 누가 생각나나요?”
“그야… 당연히 구지상 헌터님 아닌가요?”
“그 외에는요?”
“어, 그게….”
진준성이 대답을 못 하는 걸 본 그는 한숨을 쉬었다.
“바로 이게 문제거든요. 당장 저희 구원 길드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수호 길드만 봐도 정하나 길드장부터 오른팔인 안수연 헌터도 있고, 각 분대장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저희는 구지상 씨 말고는 간판 헌터가 아무도 없어요. 심지어 길드장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녀석은 꽤 진지한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원래 강렬한 태양 앞에선 어지간한 빛은 전부 보잘것없어 보이는 법이다.
당장 나만 해도 구지상한테 구원 길드에는 같이 싸워줄 만한 헌터가 없지 않냐고 지적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구지상 씨가 출국한다고 하니까 뉴스에서는 ‘비어버린 구원 길드!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이런 기사나 내고 있고 말이죠. 그런 말 안 들으려면 저희도 구지상 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간판 헌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주연이나 나 같은 인지도가 있는 헌터들을 영입하려고 한 건가.
분대장 녀석도 실력이 있는 것 같으니 차라리 내부의 힘을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길드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녀석들도 사정이 있겠거니 싶었다.
그보다 걸리는 건 구지상이 출국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구지상이 출국하면 빈 자리가 꽤 클 텐데, 해외로 내보낼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 건가?
“구지상 씨가 외국에 나갑니까?”
“모르셨어요? 최근에 뉴스에서 난리였어요. 이번에 에덴 길드에서 구원 길드를 정식으로 초청했거든요. 비공식 초청은 몇 번 있었는데 정식 초청은 처음이라서요.”
“아, 저도 그 기사 봤어요!”
구지상이 에덴 길드에 간다고?
그 와중에 고주연은 에덴 길드에 대해 처음 들어봤는지 진준성에게 묻고 있었다.
“에덴 길드가 뭔데?”
“네? 에덴 길드를 모르세요?! 미국의 에덴 길드, 세계 1위 길드잖아요!”
“그래?”
에덴 길드. 유치하지만 에덴 길드를 설명하는 데 ‘세계 1위’라는 말 만큼 좋은 설명이 없다.
놈들은 회귀 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도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을 만큼 강한 집단이다.
대중들이 에덴 길드장을 헌터 그 이상의 존재, ‘신’이라고 부를 정도니까.
에덴 길드장은 강한 헌터들은 수집해 자기 밑으로 두는 녀석이다.
회귀 전엔 우리나라 헌터들 중에서도 그놈한테 넘어간 헌터들이 꽤 있었다.
이번에 구지상을 부른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나 싶다.
“뉴스는 그렇게 났지만! 구지상 씨가 구원 길드의 명예를 더 빛내주러 가신 사이, 저희 분대장급이 전부 길드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분대장급이 전부요…? 구지상 헌터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가요?”
“어쩔 수 없죠. 저희가 어설프게 따라가는 것보다 구지상 씨만 가는 편이 에덴 길드에서 활약하시기 좋을 테니까요.”
이용건의 눈에는 구지상에 대한 완전무결한 신뢰가 어려 있었다.
저런 눈빛을 받으니 구지상도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이 길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용건은 늘어진 분위기에 멋쩍게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오늘 즐거운 대결이었습니다! 고주연 씨도, 이유영 씨도, 진준성 씨도, 혹시 생각이 변하신다면 언제든 연락 남겨주시죠!”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영업을 한 이용건은 나랑 진준성에게도 명함을 나눠준 뒤 자리를 떴다.
이용건이 나가자, 고주연은 시뮬레이터 룸의 벽면에 2위라고 적힌 자신의 이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사용하던 연습용 활을 정리하고 나왔다.
“더 구경할 거 있어?”
“시설은 지금까지 본 게 끝입니다.”
“저도 더 볼 건 없어요…!”
“그래, 그럼 가자.”
이용 시간은 아직 더 남았지만, 우리는 구원 길드 훈련장에서 나왔다.
애초에 온 목적이었던 훈련장 탐색은 마쳤고, 두 사람도 질 좋은 훈련장을 본 만큼 사기가 오른 것 같았다. 중간에 이상한 방해꾼이 끼지만 않았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결국 부탁 안 하고 갔네.”
“없던 걸로 치죠. 못 챙긴 사람 잘못입니다.”
“그렇긴 해.”
고주연은 어딘가 심란해 보였다. 아까도 시뮬레이터를 한참 보고 있는 것 같더니, 진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나는 위로에 재능도 없고 고주연은 이런 거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땐 말보다 더 좋은 게 있다.
나는 아이템 창을 열어 아이템 하나를 소환했다.
[ [B] ‘깃털활’을 소환합니다. ]이전에 던전에서 얻었던 보상템인데, 하필 달려 있는 옵션이 명중 보정인 활이다. 백발백중인 고주연한텐 쓸모 없는 옵션이지만, B급인 만큼 내구도는 나쁘지 않았다.
고주연의 전용 무기로는 이미 생각해둔 게 있다. 하지만 그 무기가 나오는 던전은 나중에야 열리니, 지금은 이 활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고주연 씨, 선물입니다. 구원 길드를 포기하고 저희 길드에 남기로 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갑자기?”
고주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활을 받아 들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고주연은 선물이 꽤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가볍고 좋은 활이네. 잘 쓸게, 고마워.”
고주연은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역시, 사람의 기분을 푸는 데 선물만 한 게 없다.
내 옆에 있던 진준성 역시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템창을 닫는 척 얘기했다.
“준성 학생은 마수가 부화하면 그 마수를 드리겠습니다.”
“…제 건 없으신가 보네요.”
진준성은 사춘기 소년처럼 토라졌다. 농담이었지만, 진준성에게 마수를 주겠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직 미성년자인 진준성에게 직접적으로 무기를 쥐여주고 싶지 않았다.
회귀 전 진준성은 협회에서 특수 제작한 총을 사용했다. 총은 던전 보상템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기도 하니, 이 녀석의 무기는 조금 더 큰 뒤에 줄 예정이다.
하지만 한 사람만 주면 다른 사람은 서운한 법이다. 나는 창을 닫기 전, 아이템 하나를 더 소환했다.
[ [A] ‘타락한 여의주’를 소환합니다. ]“농담입니다. 준성 학생한테는 이걸 드리죠.”
“어, 지난번에 빌려주신 구슬이네요.”
“준성 학생은 아직 배워둔 무기가 없으니까요. 나중에 적합한 무기를 다룰 줄 알게 되면 그때 알맞은 걸로 드리겠습니다.”
타락한 여의주는 몬스터에게서 일시적으로 모습을 숨길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내 전투 스타일에는 맞지 않는 아이템이기도 하고, 진준성이라면 이전처럼 영리하게 사용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선물 공세였지만, 두 사람 다 만족스러워 보였다.
솔직히 내 능력으로는 구원 길드처럼 복지를 챙겨주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두 사람을 내 길드로 끌어들인 만큼 나도 길드장으로서 최대한 소임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길드로 돌아가며 훈련장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앞으로 길드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등을 얘기했다.
평범히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회귀 후 미친놈처럼 몬스터만 물리치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정착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길드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걸까.
오랫동안 최후의 인류로서 혼자 이 지구에 살아남았던 내게 이유 길드는 회귀 후 얻은 포상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