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68
68화. 교만 (1)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도 잠시, 눈을 뜨자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강렬한 태양이 우릴 반겼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지평선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듬성듬성 흙과 풀이 바닥에 깔린 바닥의 느낌이 생경했다.
자연 다큐에서 나올 것 같은 이 초원은 마지막 7대죄인 ‘백수의 왕’이 있던 B급 던전, ‘자연의 섭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나와 함께 던전에 들어온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놀란 것 같았다.
고주연은 갑자기 펼쳐진 다른 풍경에, 구지상은 다른 부분에서 놀란 듯했다.
“저희 어떻게 던전에 들어온 거예요? 갑자기 슉, 팟 하고 들어온 것 같은데요?”
“던전은 게이트가 있어야 들어오는 거 아니야?”
“게이트가 없는 던전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상하네, 던전 안내창도 안 뜨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해답을 요구하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적당히 능청을 떨며 말했다.
“던전에 있던 몬스터도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마당에, 게이트나 안내창이 없는 던전이 있을 수도 있죠.”
“…… 설마 이것도 이유영 씨가 서브 스킬로 만들어낸 건 아니죠?”
“그게 말이 됩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같은 일개 헌터가 던전을 만들어내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내가 황당하다는 듯이 대꾸하자, 뒤에 있던 고주연이 말했다.
“냅둬, 저 녀석 어차피 대답할 생각 없어.”
“정말 안 알려주실 거예요? 이렇게 이상한 곳에 데려와 놓고?”
나는 구지상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든 S급 몬스터를 상대할 거라 말했는데도 두 사람이 그다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구지상이야 던전 공략 경험이 많고, 자기 실력에 대한 믿음도 있을 테니 오히려 긴장하는 모습이 더 상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주연은 이번이 첫 던전인데 조금도 떠는 기색이 없었다.
“침착해 보이시네요. 긴장은 별로 안 되십니까?”
“선수 때 늘 듣던 말이 쓸데없는 긴장은 경기를 망친다는 거였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 그러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어제부터 심란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이건 내가 아는 고주연다운 반응이었다.
내가 무시한다고 투덜대던 구지상 역시 가볍게 반응했다.
“좋네요! 그럼 기합 넣고 가볼까요?”
“뭘 기합까지 넣습니까. 가볍게 해치우고 야식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래, 네가 끌고 온 거니까 네가 사.”
우리는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나아갔다.
***
마지막 7대죄가 있는 던전 ‘자연의 섭리’는 잡몹이 상당히 많은 던전이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잡몹 처리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 녀석을 보니 고민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쿠쿠쿵!
구지상의 스킬에 땅이 쩌적쩌적 갈라졌다.
굉음과 함께 생겨난 거대한 균열 사이로 잡몹들이 맥을 못 추리고 떨어졌다. 간신히 도망간 녀석들도 얼마 가지 못해 지진에 휩쓸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잡몹들이 균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손길 한 번에 지진을 만들어낸 구지상은 그저 상쾌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 만났던 구원 길드 분대장이 구지상한테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회귀 전에 전 세계의 강한 헌터들을 전부 만나봤던 나도 놀라울 지경인데, 저런 걸 매번 옆에서 보고 있으면 자신감은 떨어지고 그저 충성할 만도 하다.
“쟤 덕분에 할 게 없네.”
잡몹 무리와 조우한 후 고주연은 내가 준 깃털활을 비장하게 꺼내 들었으나, 활시위에 화살 한 번 걸어보지 않은 상태다. 나도 꺼내든 화왕검을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있었다.
“저러면 공헌도는 쟤가 제일 높게 나오려나.”
고주연은 어제 구원 길드 훈련장에서 했던 전투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잡몹 때문에 점수 차가 벌어져 고주연이 졌으니, 신경 쓰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이 던전에서는 공헌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던전은 야생의 몬스터 때문에 생긴 던전이라, 공헌도나 보상템 같은 건 안 나올 겁니다.”
안 그래도 화신에게 물어봤다. 만약 공헌도에 따라 보상템이 지급되는 형식이라면 내가 일기장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보상템까지 챙겨줄 정도로 남아도는 힘이 없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공헌도를 신경 쓸 필요 없이, 구지상의 폭주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잡몹을 처리했으면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마침 구지상이 잡몹을 모두 쓸어버리며, 무언가 땅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
우리는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거대한 공 같은 게 엄청난 속도로 굴러오고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진짜 공이 아닌, 몸을 공처럼 웅크린 동물이다.
전방에 나서있던 구지상은 고주연과 내가 있는 쪽으로 돌아오며 물었다.
“저게 첫 번째 중간 보스 맞죠?”
“맞습니다. 작전대로 부탁합니다.”
“네, 맡겨두세요.”
녀석은 땅이 진동할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바로 눈앞까지 굴러왔다. 저 거대한 바위 같은 놈한테 그대로 맞부딪힌다면 즉사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구지상은 여유롭게 웃으며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궁
대지가 울리며 우리 앞에 땅이 솟아올랐다. 팔당댐처럼 두껍고 거대한 벽이 순식간에 솟아오르자, 굴러오던 놈은 굉음을 내며 그 속도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콰앙!
살짝 경사진 벽은 녀석의 무게를 효과적으로 받아내 부서지지 않았다. 구지상이 얼마나 스킬을 노련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는 대처였다.
『키이이이익!』
구지상이 벽을 걷어내자, 부딪힌 놈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세게 부딪혔지만 흠집 하나 없는 단단한 금빛의 등껍질, 쥐처럼 긴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붉게 빛나는 눈까지.
이 녀석은 아르마딜로라는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일반적인 아르마딜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했고 꼬리에는 흉악하게 생긴 철퇴를 달고 있었다.
놈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 던전의 주인인 백수의 왕처럼 S급 수준으로 강해진 것 같았다.
놈은 분노한 것처럼 괴성을 한 번 지르더니, 다시 시동 걸린 오토바이처럼 돌진했다.
구지상이 벽을 세웠으나, 녀석은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구지상의 방어를 교묘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우리의 앞이 뚫린 틈을 타, 거대한 철퇴가 달린 꼬리를 휘둘렀다.
휘이익!
최소 1톤은 되어 보이는 저 꼬리에 맞으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옆으로 은빛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화살은 정확하게 등껍질을 피해 여린 살에 박히더니,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키이이이이이익!!!!』
구지상은 고주연이 만들어낸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녀석은 곧바로 대지에서 거대한 손을 만들어내, 몬스터를 파리 잡듯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몇 번의 일방적인 폭격이 이어진 뒤, 몬스터는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구지상은 바람에 흩날리는 잿더미를 보다가 우릴 향해 싱긋 웃었다.
“고주연 씨! 완전 나이스 어시스트!”
“네가 다 해놓고 뭔 소리야?”
“에이, 고주연 씨가 한 방 날려주신 덕이죠!”
아무래도 구지상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어시스트를 받아 본 기억이 드문 모양이었다.
작전대로긴 했지만, 고주연의 대처도 적절했던 건 사실이라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다들 이 기세로 다음 몬스터도 잡읍시다.”
“좋아요! 파이팅!”
계속해서 북쪽으로 전진하다 보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선명한 햇빛이 사라지고 하늘이 어둑해졌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초원의 풀과 나무들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독수리 한 마리가 유유히 상공을 활주하고 있었다.
『퓌요오오오!』
맹금류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귀에 칼처럼 꽂혔다. 이 소리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걸 수 있는 상태이상, ‘위압’을 발동할 때 내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데려온 두 사람은 고작 중간 보스 따위의 위압에 당하지 않는다.
고주연은 잠시 당황했던 것 같지만, 곧바로 화살을 활시위에 걸며 흉흉한 눈으로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지상은 태평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몬스터를 눈으로 좇고 있었고, 나 역시 위압쯤은 생명의 의지가 없어도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 중 쓰러진 사람이 아무도 없자 놈은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높은 상공에서도 녀석의 두 날개가 붉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외쳤다.
“구지상 씨!”
“네!”
방벽을 세워 막으라고 말하려 했으나, 구지상은 알아서 반구체의 방벽을 만들어 우리를 보호했다.
저 몬스터는 날개에 축적한 힘을 날려 보내며 공격한다. 그 힘이 상당히 강력해, B급 던전에 있을 때도 제법 강한 공격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아마 S급으로 올라 훨씬 강력해진 공격이 떨어질 것이다.
그때, 구지상이 만든 반구체의 장벽 위로 녀석의 공격이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콰앙!
아르마딜로가 온몸으로 박았을 때도 멀쩡했던 방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놈의 공격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와, 이거 상당히 강한데요?”
“이대로 30초는 버텨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그 정도야 여유롭죠!”
바로 충전해 둔 힘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구지상은 스킬을 발동해 금이 간 부분을 수복해나갔다. 여유로워 보이길래 믿었는데, 녀석의 태도와는 다르게 방벽을 수복시키는 것보다 금이 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 모습에 고주연이 활을 들었다. 폭격을 향해 망설임 없이 화살을 쏘며, 충격파를 발동해 위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고주연 씨, 나이스!”
“집중해.”
고주연의 어시스트 덕분에 구지상이 세운 벽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30초가 지나가고, 바깥이 잠잠해졌다.
구지상이 조심스럽게 방벽을 걷어내자, 몬스터의 붉게 달아올라 있던 날개가 원래대로 되돌아가 있었다.
지금이 공격할 타이밍이다.
나는 비행형 몬스터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해둔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채찍처럼 유연한 줄기가 손끝에서 빠르게 뻗어나가 상공을 비행하는 녀석에게 닿았다. 나는 녀석의 발목을 휘감아, 곧장 아래로 끌어당겼다.
놈은 줄기를 끊어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질긴 줄기는 쉽게 끊기지 않았다.
“고주연 씨, 부탁합니다.”
“알았어.”
고주연은 이미 녀석의 머리를 향해 활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못해도 상공 300m쯤에 떠 있는 녀석이다. 평지에서 날리는 화살과 다르게 위를 향해 날리는 화살은 제약이 많을 텐데도 고주연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슈욱, 탕!
고주연이 쏘아 올린 화살은 중력을 거슬러 은빛 궤적을 그렸다. 내 걱정과 달리, 화살은 독수리의 머리를 날카롭게 꿰뚫었다.
『퓌에엑!!』
단번에 약점이 파괴된 녀석은 그 비명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스킬을 해제했고, 구지상은 그 모습을 구경하며 가볍게 떠들었다.
“두 번째도 무사히 끝났네요!”
“너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 같은데. 원래 이래?”
“글쎄요, 저희 셋이 합이 엄청 잘 맞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구지상은 아까부터 어딘가 신난 것 같았다.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며 마지막 남은 중간 보스에게 향하던 때, 신나 보이던 구지상이 말했다.
“역시 두 분 구원 길드로 오면 안 돼요? 제가 진짜 잘해드릴게요!”
“그러지 말고 구지상 씨가 저희 길드로 오시죠. 물론 제가 잘해드리진 못합니다.”
이번에도 반쯤 농담처럼 한 말이었는데 구지상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음! 그러게요, 던전에서 같이 싸워주는 동료가 있는 건 좋네요!”
그러고선 상쾌하고 웃고 혼자 척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같이 구지상의 말을 들은 고주연이 내게 되물었다.
“저거 우리 길드 오겠다는 소리야?”
“글쎄요….”
확실한 건, 녀석이 동료와 싸우는 게 어떤 건지 배운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