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69
69화. 교만 (2)
구지상의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지만, 그에 대해 물어볼 틈은 없었다.
얼마 안 돼서 잡몹 무리를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잡몹 무리는 하늘이고 땅이고 할 것 없이 새까맣게 무리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 저 까만 게 다 몬스터야?”
“그런 것 같습니다. 다들 긴장하세요.”
점점 새까만 무리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원에 있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눈이 벌겋게 물든 채 폭주 기관차처럼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빠르게 해치우지 못하면 짓밟혀 죽을 것 같은 엄청난 숫자였다.
“이번에는 새 떼도 있네요….”
하늘을 올려다보던 구지상은 살짝 자신이 없어 보였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 작전 브리핑을 할 때, 녀석은 비행형 몬스터한텐 스킬이 잘 안 먹힌다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비행형 몬스터를 잡기에 최적화된 헌터, 고주연이 있다. 구지상한테 자신 없는 분야까지 시킬 이유가 없었다.
“구지상 씨는 땅 위에 있는 잡몹들만 상대해 주세요. 고주연 씨, 하늘에 있는 놈들은 저희가 상대합시다.”
구지상은 웃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최전방으로 나갔다.
녀석이 스킬을 발동하자, 눈이 주홍빛으로 물들며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곧 엄청난 속도로 땅 위의 잡몹들이 구지상의 스킬에 먹혀들어 갔다. 저 정도의 숫자여도 압도적인 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고주연 씨, 저희도 가봅시다.”
“…그래.”
구지상을 지켜보던 고주연은 어딘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하늘에 있는 놈들은 고주연이 나서지 않아도 내 열풍이나 목단의 줄기만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고주연의 전투를 발전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활을 들어 올리던 고주연에게 말했다.
“활에 화살을 하나만 거는 이유는 정확도 때문입니까?”
“여러 개를 한 번에 날리면 원하는 위치에 안 꽂혀. 어설프게 빗맞히느니 제대로 맞히는 게 낫잖아.”
“고주연 씨, 잡몹은 그렇게 정확하게 맞힐 필요 없습니다.”
고주연은 화살을 걸다 말고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솔직히 빗맞혀도 괜찮습니다. 화살이 닿기만 하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서브 스킬이 있지 않습니까? 잡몹들은 정확한 한 방이 아니라, 광범위한 공격으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나는 앞에서 좋은 예시를 보여주고 있는 구지상을 가리켰다. 구지상은 이 넓은 초원이 자기 손바닥 안인 것처럼 스킬을 쓰며, 광범위한 공격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었다.
“구지상 헌터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눈여겨보며 상대하는 게 아닙니다. 효율적으로 다수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응, 이해했어.”
지금까지 고주연이 상대해온 건 모두 A급의 강력한 몬스터였다. 특히나 강철이와 이시미는 정확한 약점을 노려야만 공략이 가능한 놈들이었다.
아마 고주연은 그때처럼 잡몹을 상대할 때도 약점으로 보이는 곳을 정확하게 노려왔을 것이다.
고주연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한 번에 화살 세 개를 만들었다. 그 세 개를 동시에 활시위에 걸더니, 그대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날아간 화살은 각기 다른 새의 날개, 꼬리, 몸통에 박혔다. 그리고 화살은 몬스터한테 박히자마자 크게 폭발했다.
펑!!!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며, 강력한 충격파에 휘말린 새 몇 마리가 뭉텅이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고주연은 씨익 웃으며, 다시 한 번에 세 개의 화살을 걸어 발사했다.
펑! 펑! 펑!
그렇게 폭발음이 몇 번 더 울린 후.
하늘 위의 잡몹은 고주연의 폭주에 의해 빠르게 정리되었다. 나도 스킬을 연습할 겸 목단의 줄기로 몇 마리를 처리하긴 했지만, 솔직히 거의 전부를 고주연이 혼자 해결했다.
“네 말대로 하니까 확실히 다르네. 조언 고마워.”
“고주연 씨라면 제 조언 없이도 언젠가 해내셨을 겁니다.”
방금 내가 알려줬던 것들은 회귀 전에 고주연이 나한테 설명해줬던 팁이다.
아마 내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고주연은 언젠가 혼자 터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우리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던 구지상이 목소리를 냈다.
“우와, 순식간에 끝났네요.”
지평선을 뒤덮을 정도로 그득히 차 있던 잡몹들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구지상은 텅 빈 초원을 등지며 우리를 향해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늘보다 땅 위에 있던 잡몹들이 훨씬 많았는데도 저 녀석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잡몹들을 몰살한 것이다. 새삼스럽게 이 녀석이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피부로 느껴졌다.
“구지상 씨, 우리 이유 길드로 오실 생각 없습니까?”
“이렇게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시는 걸 보면, 이번에 제가 이유영 씨한테 점수 좀 땄나 보네요?”
구지상이 히죽 웃는 탓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이번에도 그렇고, 아까서부터 하는 짓이 우리 길드에 오고 싶은 것 같긴 한데.
녀석의 눈빛을 보면 또 생각이 변한 것 같진 않았다.
“말을 돌리는 거 보니 아직은 마음이 안 돌아섰나 봅니다.”
“…음!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구원 길드에는 제가 필요해요. 이유영 씨라면 이해하시겠죠?”
녀석이 구원 길드를 두고 우리 이유 길드로 온다면, 혼자 다 책임지던 걸 버려두고 도망치는 꼴이 된다. 구원 길드는 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듯했고, 구지상은 그 문제의 중심에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대형 길드들은 왜 사춘기 청소년처럼 문제를 하나씩 떠안고 있는 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잘 좀 처리해 보세요. 구원 길드도 구지상 씨한테서 독립해야 할 거 아닙니까.”
길드 모두가 연합해서 오류와 싸우는 일은 멀게만 느껴져서 한숨이 한 번 더 나왔다.
구지상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자꾸 한숨 쉬면 땅이 꺼진다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고주연은 구지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구지상은 다 들린다면서 우리를 설렁설렁 쫓아왔다.
어쨌든 두 사람의 학살 덕분에 잡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중간 보스와 보스 몬스터인 ‘백수의 왕’ 뿐이었다.
마지막 중간 보스는 중간 보스 삼대장 중에서도 제일 까다로운 놈이다.
나는 다시 긴장감을 되찾으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
북쪽으로 한참 나아가던 우리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와 조우했다.
나는 나무가 보이자마자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나무 그늘에서, 치타 한 마리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구지상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심하고 있네요. 바로 해치워 버릴까요?”
“내가 먼저 공격할게.”
나는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말리지 않고 지켜봤다. 일단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봐야 저 몬스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주연은 화살 한 발을 활시위에 걸어 치타에게 겨눴다. 바로 급소를 노릴 생각인 듯, 화살촉은 치타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고주연이 화살을 발사했다.
슈욱, 탕!
그러나 그 순간, 치타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여 화살을 피해냈다.
녀석은 어느새 나무 꼭대기에 올라, 우리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르르르르』
저 녀석은 방심하고 있던 게 아니다. 모든 공격이든 다 피해낼 수 있을 만큼 빠르기 때문에 방어조차 하지 않았을 뿐이다.
“너무 빠른데. 거의 순간 이동 아니야?”
“괜찮습니다. 작전대로만 가면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다들 작전은 기억하시죠?”
고주연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지상도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작전대로 진영을 바꾸었다. 이번엔 구지상이 후방으로 빠지고, 고주연이 전방으로 나섰다.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치타 녀석은 쏜살같이 나무에서 내려와 어느새 우리 앞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녀석이 땅을 밟은 순간부터 저 송곳니는 우리에게 닿을 수 없었다.
쿠구궁!
구지상은 대지를 파도처럼 움직여 녀석이 서 있는 지반을 흔들었다. 요동치는 땅에서 몬스터는 꼴사납게 구르며 우리에게서 멀어졌고, 녀석은 곧장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신속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주연은 그런 녀석을 위협하며 화살을 발사했다. 펑펑 터지는 화살 때문에 녀석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스킬을 발동했다.
땅에 손을 올린 채 목단의 줄기를 발동해, 땅속으로 조용히 줄기가 뻗어나가게 만들었다.
치타 녀석은 구지상과 고주연의 공격을 피하기 바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크륽?!』
녀석이 이변을 눈치챈 건 고주연과 구지상의 협공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까지 내몰린 순간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땅속에서 옭아 묶어 만들어낸 덫을 잡아당겼다.
파앗!
목단의 줄기로 짜인 덫이 녀석의 다리 한 짝을 나무에 매달았다. 녀석은 발버둥을 치며 덫을 찢으려 들었지만, 고주연이 그 덫이 찢어질 동안 가만히 기다려주진 않았다.
탕!
허공을 가른 은빛 화살은 놈의 심장에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동시에 폭발음이 터지며 몬스터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공략 난이도가 높은 몬스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작전대로 깔끔하게 해치워줬다.
몬스터가 사라지자, 구지상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고주연은 자연스럽게 구지상과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짝! 하고 맞아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지상은 나를 향해서도 손바닥을 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과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이제 진짜 보스만 남았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금방 끝났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두 사람이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한마디 했다.
“보스 몬스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쉽지 않을 겁니다. 야생의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 달리 지능이 상당히 높습니다. 상대하기 훨씬 까다로울 테니 얕보면 안 됩니다.”
그 말에 두 사람도 다시 긴장감을 되찾은 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냥 화목한 분위기로 찾아갈 수는 없을 만큼, 우리가 상대해야 할 녀석이 강적이었다.
이번엔 내가 선두에 서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백수의 왕’은 이 초원의 가장 북쪽에 있는 동굴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걷는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중요한 전투에 딱 좋은 긴장감이었다. 두 사람 다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아직 체력도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음에도 등줄기에 묘한 서늘함이 타고 올라왔다.
인간도 꼴에 동물이라고 육감이나 본능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다. 그 육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차갑게 움켜쥐는 듯했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이 앞에 가고 싶지 않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내 페이스에 맞춰 착실하게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러니 이 불안감이나 공포심 같은 것은 두 사람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대체 왜 불안한 거지? 내가 무언가 빼먹은 게 있었나? 끊임없이 생각하며 불안의 이유를 찾으려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어떤 진실로부터 외면할 핑계를 찾는 중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 잠깐만, 이유영. 아까부터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그러네요. 피비린내 같은….”
나는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코끝에서부터 타고 흘러오는 죽음의 냄새를, 불안감이 차오르면 느끼던 환취일 거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외면했다.
명치에서 알 수 없는 역겨움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제발, 부디 이 역겨운 냄새가 그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불안감이 신체를 버리고 혼자서 허공을 떠도는 듯했다. 버려진 신체는 제멋대로 달리고 있었고, 내 몸은 미친 듯이 뛰어서 불안의 정체에 다가갔다.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 같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얼마나 달려 나갔을까. 멀리서부터 둔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이 몬스터가 있던 곳에 저런 둔덕 같은 지형지물은 없었는데. 저 둔덕은 뭐지?
숨이 가빠왔다. 폐가 터질 것처럼 옥죄어왔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렇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던 순간, 내 신발이 무언가를 밟고 찰박이는 소리를 냈다.
“이, 이게… 무슨….”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과 닿았다.
내 신발은 붉은색으로 물들며 축축하게 젖어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초원이었음에도, 폭우 속을 걷는 것처럼 신발은 전진할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웅덩이가 되어 고인 핏물이 내 발을 완전히 잠수시켰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 핏물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부서진 마네킹처럼 축 늘어진 사람들이 둔덕을 이룰 정도로 겹겹이 쌓여 내 눈앞에 늘어져 있었다.
나는 숨을 참고 시체의 둔덕을 망막에 욱여넣었다. 산 채로 지옥에 끌려 들어온 기분이었다.
마침내 내 눈동자가 둔덕의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
놈과 마주쳤다.
‘백수의 왕’이라는 이름처럼 놈은 시체의 둔덕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