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7
7화. 영웅 놀이 (4)
던전 공략이 끝나자 출구 게이트가 열렸다.
쌍철 길드원들은 기절한 자기 동료를 업고 출구 쪽으로 걸어왔다.
구지상이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동료를 내가 살려줬다고 생각한 건지 태도가 변해 있었다.
“그, 이유영 씨라고 했나? 이거 참, 신세 한 번 크게 졌구만. 이 철없는 놈, 젊은 게 죽는 줄 ㅌ알고 앞이 캄캄했거든.”
“우리 용길이 형님 여자 한 번 못 사귀고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형님!”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요란을 떨던 쌍철 길드원이 모두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가자, 구지상은 내가 나가지 못하게 출구 게이트 앞을 가로막았다.
어차피 얘길 들어볼 생각이었지만, 이 당돌한 태도가 좀 웃겼다.
“뭡니까?”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야죠. 이유영 씨 정체가 뭐예요?”
“아까도 대답했습니다만, 이유영입니다.”
그런 식으로 떠본다고 해서 ‘이럴 수가, 내가 힐러에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단 말이야?’라고 답해줄 거라 생각했나.
나름 심각한 분위기를 잡은 것치고는 물어보는 방식이 허술했다.
구지상은 답답함을 숨기지 못하고 애꿎은 자기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아니, 이유영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그런가요.”
“진짜… 모범생 같은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
“그럼 이제 비켜 주시겠습니까? 적어도 던전은 나가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구지상은 뒤에 있는 게이트를 힐끔거리더니, 오히려 팔을 뻗어 게이트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이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유치하다고 해야 할지.
“안 돼요, 나가서 할 얘기가 아니에요.”
“굳이 공략 끝낸 던전에서 할 얘기는 또 뭡니까? 안 나가면 협회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텐데요.”
“그치만 이유영 씨도 사람 없는 곳에서 말하는 게 좋을걸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내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니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대한민국의 영웅이 이렇게 쉽게 당황하면 쓰나.
구지상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유영 씨, 방어계 헌터라고 하셨는데, 그거 사실 아니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까? 헌터 협회에서 공증받은 건데.”
구지상은 마치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내게 자신의 헌터증을 보여줬다.
어쩌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봤다. 솔직히 궁금하니까.
[헌터증]헌터 등록 번호: 200505-XXXXXX
이름: 구지상
등급: A+
메인 스킬 계통: 만능계
A+는 현시점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그런데 벌써 A+을 달고 있을 줄이야.
게다가 스킬 계통은 만능계다. 힐러만큼은 아니지만 만능계 헌터는 꽤 드문 편이다. 헌터 협회에서는 메인 스킬 하나로 공격과 방어가 전부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만 만능계를 달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이 동료로 있으면 던전 공략할 때 할 수 있는 게 많다. 기본 스탯이 높으니 웬만한 공격도 상처 없이 받아낼 수 있을 테고, 스킬을 쓰면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힐을 안 해줘도 되니 몬스터를 한 마리 더 죽일 수 있게 된다.
확실히 탐나는 인재다. 구원 길드 소속만 아니었어도 내가 어떻게든 데려가는 건데.
헌터증을 앞뒤로 확인해보고 돌려주니, 구지상이 비장하게 말했다.
“저는 만능계 헌터라고 되어 있는데 만능은 아니에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만능계라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할 수 있었으면 최후의 인류는 내가 아니라 구지상이 됐을 거다.
그러나 이어지는 추측은 제법 날카로웠다.
“이유영 씨도 비슷한 거 아니에요? 방어계 헌터라고 등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힐러죠?”
쌍철 길드원이 되살아난 걸 보고 눈치챈 건가. 논리는 이상하긴 해도 눈치 하나는 빠른 듯했다.
날 바라보는 구지상의 두 눈에는 확신이 깃들어있었다.
내가 헌터증을 갱신할 때 힐러라는 사실을 괜히 숨긴 게 아니다.
현재 국내에는 힐러가 두 명밖에 없다.
나는 손에서 빛만 한 번 쏴주면 컵라면 끓이는 시간에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지만, 다른 힐러들은 그렇지 않았다.
듣기로는 하나는 약을 만드는 스킬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을 하는 스킬이라던데. 그래서인지 그 사람들은 한 명을 치료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그 힐러들은 우리나라에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각각 국내 2위 길드와 3위 길드에 속해서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만약 내가 힐러라는 게 밝혀지고 나면 나를 노리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불필요한 주목을 받으면 움직이는 게 불편해진다.
거기다 그게 공공연한 사실이 되면 더는 사람 있는 곳에서 가능성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이게 제일 곤란한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정작 국내 1위인 구원 길드에는 힐러가 없었다.
어쩐지 집요하게 굴더라니.
“힐러면 구원 길드에 들어오라는 말이라도 하시려고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구원 길드. 명실상부 국내 1위인 초대형 길드. 구지상이라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속한 길드인 만큼 우리나라는 몰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길드다.
하지만 난 그 녀석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희 길드 좋아요! 구원 길드 아시죠? 복지 혜택도 좋고, 돈도 많이 줘요. 원하시면 사택도 제공해주고, 사내 식당도 맛있고, 또….”
“구지상 씨가 먹여 살리고 있죠.”
“어…그런 말도 듣긴 하지만, 저희 길드 헌터들도 엄청 강해요! 이유영 씨가 오시면 저만큼 유명해질걸요? 저희 길드에 아직 힐러가 없거든요.”
뭐가 그리 좋은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들떠서 싱글벙글 웃고 있다.
하지만 구지상이 저렇게 좋아하는 구원 길드는, 까놓고 말해 ‘길드’라는 의미의 정반대 길을 걷는 곳이다.
길드는 동업자 조합이라는 의미의 단어다.
게임에서도 뜻맞는 플레이어들이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같이 싸우듯이, 길드는 소속원들이 동료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회귀하기 전, 구지상은 어떤 동료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죽었다. ‘영웅’처럼.
그리고 영웅을 잃은 구원 길드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이걸 과연 길드라고 할 수 있나.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네! 얼마든지요.”
“구지상 씨랑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료가 구원 길드에 있습니까?”
구지상은 내 질문에 당황한 듯 어물쩍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영웅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자주 당황해서 쓰나.
“답 못하시는 걸 보니 없나 보네요.”
“어…. 그건 제 스킬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 이유영 씨도 아시죠? 원래 영웅은 혼자 싸우잖아요. 그런 느낌이죠!”
본인 입으로 말해놓고도 머쓱한지, 구지상은 멋쩍게 웃고 있었다.
이번 세상에서 구지상은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다. 이런 인재를 하나라도 더 모아야 오류랑 맞서 싸울 수 있으니까.
구지상이 죽은 건 저 녀석 옆에 같이 싸울 만큼 근성 있는 동료가 없었기 때문인데, 정작 본인은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이 녀석이 그 영웅 놀이를 그만두게 할 필요가 있다.
“구지상 씨가 왜 대한민국의 영웅입니까? 혼자 우리나라 지키라는 것도 아니고. 제가 길드장이라면 그런 슬로건으로 홍보 안 합니다.”
“아, 영웅이요. 그건 저나 길드장 형이 생각한 건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셔서… 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저 반응이 영웅이란 프레임에 갇혀 살아왔다는 증거다.
이제 본인을 가두고 있는 틀을 인식했을 테니, 머지않아 그게 얼마나 갑갑한지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가볍게 미끼만 던져둘까.
“전 구지상 씨랑 함께 싸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보셨겠지만 구지상 씨보다 앞서서 보스 몬스터도 잡을 거고요.”
“그거 저희 길드 와준다는 뜻이에요?”
“아뇨. 구지상 씨께서 제 길드에 오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네??”
저렇게 놀랄만한 말인가.
구지상은 눈을 껌뻑이다가 곧 크게 웃어댔다.
“하하! 절 스카우트하시다니, 이유영 씨 진짜 웃기네요! 이런 경험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네, 던전 밖에서 응원해 줄 가족이나 친구 말고, 던전 안에서 함께 싸워줄 동료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8년 전의 나는 명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잡히는 휴지 조각에 핸드폰 번호를 써서 건넸다.
구지상은 휴지 조각을 받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이유영 씨가 힐러라서 그런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전 힐러라고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네? 그치만 방금까지 그런 분위기로 말했잖아요.”
“글쎄요, 정 궁금하시면 구원 길드 나오고 제 길드로 들어오세요.”
나는 게이트를 가로막던 구지상은 옆으로 밀어내고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구지상은 뒤따라 게이트를 나오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건 너무 웃는 거 아닌가?
“오늘 일없으면 밥이라도 같이 먹죠!”
“아뇨, 아버지 성묘 가는 길이라서요.”
“그럼 제가 태워드릴게요!”
“아뇨, 버스 타고 갈 겁니다.”
나는 뭐라고 더 말하던 구지상을 뒤로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 내 길드원도 아닌데 굳이 사적인 자리까지 함께하고 싶진 않았다.
***
버스는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탈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얻어타는 건데.
버스 뒷좌석에 앉은 나는 보상템으로 얻은 내 일기장을 소환해 읽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적었던 대감 도깨비의 공략법이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내용을 전부 읽고 나니, 일기장이 빛나기 시작했다.
[ 메인 스킬, 에 목록이 추가됩니다. ]– 분류: 메인 스킬
– 숙련도: 3%
「시전자의 염원을 이룰 가능성이 발견되면 발동합니다.」
– 목록
(new!)
[ 메인 스킬, 은 현재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대감 도깨비에게서 얻은 은신 스킬은 여러모로 괜찮은 능력이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기습을 할 수 있을 테고, 던전 밖에서도 유용하게 쓸만한 곳이 많았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구지상이나 쌍철 길드도 SSS급 보상템이 된 내 일기장, ‘최후 인류의 기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음 던전에서도 헌터를 만날 테니 알려질 수밖에 없고,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힘을 키우지 못하면 언젠가 일기장을 남한테 뺏기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까부터 여우 녀석이 조용하네.’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화신을 찾았다.
물컹한 게 손에 잡히자마자 화신이 스스로 튀어나왔다.
『큰일 났어요! 이유영! 큰일 났어요!!!』
하도 시끄럽게 외쳐대는 탓에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이 녀석의 목소리가 나한테만 들려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버스에서 여우 인형이랑 대화하는 남자 본 썰 푼다.’ 이런 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돌아다녔을 것이다.
마침 한 정거장밖에 안 남았길래 나는 부저를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뭔 일인데? 어디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졌어?”
무선 이어폰을 꽂고 나서 말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통화하는 줄 알 것이다.
신세대 기술이 이렇게나 굉장하다.
화신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영, 만약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 어떻게 되죠?』
“사람 죽고 다치고 난리 나는 거지. 헌터가 막으면 다행이고 못 막으면 그 지역은 버려지는 거고.”
『그런데 만약 던전 브레이크가 예고도 없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까부터 뭔 소리야. 본론을 말해.”
화신은 작은 앞발로 자기 귀를 눌러서 얼굴을 가렸다.
햄스터가 세수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화신은 심각한 말을 꺼냈다.
『제 권한을 벗어난 몬스터가 생겼어요.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에요.』
“뭐?”
『던전은 몬스터를 막으려고 제가 만들어 낸 공간인데, 몬스터가 멋대로 던전도 없이 생겨난 거예요.』
얘는 무슨 이런 심각한 말을 아버지 성묘 가는 길에 하고 있다.
나는 화신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녀석이 위상 공간이니 초끈 이론이니 하는 물리학 이론을 들어가며 설명하는 탓에 뼈문과인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은 몇 가지밖에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 소리다.
시스템은 몬스터가 나타나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등에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바퀴벌레, 아니, 몬스터가 나타난 걸 감지하면 시스템은 곧바로 무슨 프로세스를 거쳐 몬스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낸 후, 그 자리에 던전을 만들어 몬스터를 가둔다고 한다. 마치 바퀴벌레 위에 종이컵을 씌워서 못 도망치게 하듯이, 잠깐 가둬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몬스터를 감지는 했으나, 그 종이컵 역할을 하는 던전이 만들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럼 바퀴벌레 같은 몬스터는 사방을 활개 치며 날아다니게 될 거란 소리다.
바퀴벌레로 대입해 이해해서 그런가 심각한 문제라는 게 와닿았다.
“그래서, 그 몬스터는 어디 있는데? 위치 알아?”
『아뇨, 지금 최선을 다해 찾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탐색 프로세스도 완전히 ‘오류’가 났어요.』
시스템도 예상 못 한 시스템 내에 발생한 오류.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놈은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