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70
70화. 교만 (3)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앞이 일렁이고 어지러웠다. 폐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다.
두 발에 족쇄가 채워진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내 두 눈은 뜯어먹히는 시체를 낱낱이 살피며 그 끔찍한 고통을 헤아리려 하고 있었다.
“헉…!”
굴러다니는 신체 조각들이, 뜯어 먹히고 있는 사람의 눈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시체 더미가 나를 향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늦은 탓이다. 내가 늦지 않았더라면 저 사람들은 살았을 텐데.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대며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소리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시체들의 원망 어린 비명을 제외하고는.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지끈거리는 머리가 사고를 종결시킨다. 강제로 끊긴 생각을 대신하려는 듯 뇌에서 묻어뒀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윽…!”
대학 졸업식, 내가 헌터로 각성했던 순간.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몬스터한테 쫓기며 비명을 질렸고, 내가 아는 얼굴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나는 몸에 비상식적으로 큰 구멍이 생긴 남자를 끌어안은 채, 마구 외쳤다.
‘아버지, 안 돼요. 아버지!!’
‘제발, 제발 살려줘…. 살려줘, 누구라도 살려줘…!!’
그러나 끝끝내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피비린내는 점차 짙어져만 갔다. 잔인한 학살, 일방적인 살육, 피, 시체, 비명, 공포만이 존재하는 끔찍한 공간 속. 오로지 나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누군가가 구해준 것이 아니다. 끝내 나를 살린 것은 오직 나였다. 내 생명의 의지가 나를 살렸다.
그 많은 이들을 두고서.
나 혼자 살아남았다.
누군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너는 저 많은 이들을 두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구, 구해야…, 지금 당장 구해야…!!”
족쇄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안 하던 몸이 이번엔 멋대로 움직였다.
목덜미가 반은 물어 뜯겨 이미 생명이 꺼진 인간을 구하겠다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움직일 수 없도록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당긴 것이다.
그사이 몬스터와 나 사이로 무언가 빠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궁!
대지의 벽이다. 땅에서 솟구쳐오른 단단한 대지의 벽이 몬스터를 사방으로 포위하며 가두었다.
마지, 내 시야를 차단하는 것 같았다.
“이유영.”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툭, 턱 끝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숨을 쉬는 법도 잊고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숨이 벅차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내 팔을 붙들고 있던 고주연은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은 생각 그만해. 고주연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에서야 주변 상황이 보였다.
구지상은 몬스터에게 스킬을 쓰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넓은 동굴에는 사람들이 갇혀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유영 씨, 준비되면 말해요. 혼자 싸우려 하지 말고요…!”
구지상은 버거운 표정으로 스킬을 썼다. 스킬을 유지하는 게 힘든 것 같았다.
그때, 대지의 벽이 크게 흔들리더니 거대한 파괴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구지상은 이렇게 될 걸 예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백수의 왕은 부서진 벽 너머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먹이들이 제 발로 찾아왔군.』
구지상은 다시 한번 녀석을 붙잡아두기 위해 스킬을 발동했으나, 녀석은 코웃음을 치며 날개를 펼쳤다.
하늘로 날아오른 녀석을 향해 고주연이 화살을 쐈지만, 녀석에겐 닿을 수 없었다.
쿠오오오오오!
포효와 함께 입에서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터져 나왔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토네이도가 되어 점점 크기를 키우고 모든 것을 분쇄했다. 그 토네이도 속에서 고주연의 화살은 목적지를 잃고 바람에 휘말렸다.
“제 뒤로 숨으세요!”
구지상은 대지의 벽을 만들어 간신히 토네이도를 막았고, 고주연은 나를 이끌고 그 뒤로 숨었다.
마지막 7대죄, 백수의 왕. 녀석은 내 마지막 기억보다 한층 더 강한 모습으로 진화해 있었다.
“S급이라더니, 말도 안 되게 강하네. 차원이 달라.”
“앞에 있는 중간 보스들은 장난처럼 느껴져요.”
나는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구지상은 토네이도에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스킬로 두껍게 만들고 있었고, 고주연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녀석을 견제하며 활을 쏘아 올렸다.
두 사람은 나를 배려해서 내가 정신 차리길 기다려주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내가 전투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고주연의 말을 되새겼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부디 우리가 이기기를, 우리가 저 녀석을 물리치고 구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 절박한 표정을 보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
『잔챙이 같은 것들이….』
백수의 왕은 경로를 틀었다.
우리에게 토네이도를 뿜어내던 녀석은 가둬놓은 사람들에게로 날아갔다. 우릴 완전히 해치울 힘을 얻기 위해 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심산인 것 같았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죽일수록 강해진다.
헌터가 감정이 격해지면 평소보다 강한 기량을 보이듯이, 몬스터는 살인을 할수록 능력을 폭발적으로 사용한다.
마지막 7대죄인 교만은 반드시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내가 저 녀석을 반드시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엇…!”
구지상은 몬스터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사람들이 갇힌 동굴 앞에 대지의 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녀석이 만들어낸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벽을 산산조각 냈고, 파편이 마구 튀겨 되레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꺄아악!”
“살려줘! 살려주세요!”
구지상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듯했다.
순간 구지상도, 고주연도 나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메인 스킬을 발동했다.
[ 메인 스킬, 을 발동합니다. ] [ 스킬, 를 사용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사람들이 갇힌 동굴 앞에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굵은 나무줄기가 꽈배기처럼 꼬이며 웅장하게 자라나, 녀석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무는 수많은 모란 꽃을 피워내며, 이 삭막한 초원 속 잔인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백수의 왕은 그 나무를 보며 비웃듯이 말했다.
『고작 이딴 나무로 나를 막아보겠다는 거냐?』
사실 녀석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을 뿐, 스킬이 이런 식으로 발동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거대한 모란 나무가 내 수족이라도 된 것처럼, 나무의 모든 것을 내 의지로 다룰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화왕에게서 얻어낸 스킬, 목단의 줄기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촤아악!
거대한 모란 나무에서 채찍처럼 뻗어 나온 줄기는 백수의 왕을 단숨에 휘감았다. 뻗어 나온 가지들은 녀석이 몸부림칠 틈도 없이 그물처럼 가두고 있었다.
『고작 이따위 장난질로!』
백수의 왕은 줄기를 이빨로 물어뜯고 엄청난 아귀힘으로 찢어댔으나, 목단의 줄기의 생명력은 그가 찢어내는 속도를 앞서갔다.
질긴 가지들이 스스로 밧줄처럼 꼬여 빠르게 그물을 생성했고, 다른 가지들은 녀석을 방해하듯 끈질기게 휘감았다.
“잡았다!”
구지상이 나를 대신해서 외쳤다.
나는 뒤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는 고주연에게 말했다.
“고주연 씨, 뿔을 노려야 합니다.”
“알았어.”
그물이 녀석을 방해하는 동안, 몬스터의 약점인 뿔을 노려야 한다.
고주연은 화살촉을 납작하게 개량한 화살을 만들었다. 뿔을 부술 수 있도록 개량한 사냥용 화살이었다.
달빛처럼 빛나는 화살을 신중하게 겨냥하던 고주연은 완전한 타격점을 잡은 순간, 활시위를 놓았다.
탕!
화살은 정확히 사자의 뿔을 향했다.
그러나 녀석의 금빛 눈동자는 정확히 그 화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건방진 인간들이….』
그르렁대는 한마디와 함께 땅 곳곳에서 진동이 울리며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순식간에 결집되어 소용돌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회오리치는 바람에 고주연의 화살은 궤도에서 흔들렸고, 몬스터는 그 화살을 향해 바람을 내뿜었다.
콰가가가각!
구지상은 그 토네이도의 여파가 사람들에게 퍼지지 않도록 동굴 앞에 거대한 벽을 세웠다.
그러나 곳곳에서 생겨난 토네이도는 초원의 대지를 마구 휘저으며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구지상이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 그 바람에 떠밀려 날아갔을 것이다.
“다들 제 뒤로 숨으세요!”
구지상은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람들을 방어했다.
나 역시 스킬에 집중해 모란 나무의 뿌리를 바닥 끝까지 내렸지만, 토네이도의 힘이 너무 강력했다.
나는 그 거대한 나무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구지상에게 말했다.
“제가 몬스터를 저희가 있는 쪽으로 던질 겁니다. 때를 노려서, 저희와 함께 바로 가두세요!”
“알았어요!”
목단의 줄기로 만든 그물은 살벌한 토네이도와 사자의 이빨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끊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줄기가 힘을 다하기 전, 그 줄기의 그물을 들어 올려 몬스터를 있는 힘껏 날렸다.
쾅!
거대한 나무줄기에 감싸진 몬스터가 우리 세 사람 앞에 떨어졌다.
구지상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우리와 백수의 왕을 가두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대지의 벽이 천장까지 막으며 완전히 봉쇄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드디어 이 몬스터와 광활한 초원의 한복판에서 제한된 공간에 갇힌 것이다.
이렇게 갇힌 곳이라면 저 몬스터도 무차별적인 토네이도를 쓸 수는 없다. 또한 천장에 막혀 날아갈 수도 없을 테니, 녀석도 우리와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한다.
『감히….』
백수의 왕은 목단의 줄기를 거세게 뜯어내며 가지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내 스킬에 당해 내팽개쳐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에겐 위엄이 있었다.
『이런다고 너희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나.』
녀석은 낮게 그르렁거리며 우리를 향해 눈을 빛냈다.
금색 눈동자가 번쩍이며, 내 눈앞엔 익숙한 상태창이 떠올랐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마비’에 저항합니다. ]동시에 고주연과 구지상의 움직임이 멈췄다.
마비에 당해 몸이 굳은 듯했으나, 이 둘의 옆에는 어떤 상태이상이든 풀 수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구지상과 고주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생명의 의지를 발동했다. 내게서 뻗어나간 녹색 빛은 굳어버린 두 사람의 몸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 메인 스킬, 를 발동합니다. ] [ 대상자의 상태이상, ‘마비’를 해제합니다. ]이 마비는 저 녀석이 회귀 전에도 사용했던 상태이상이다.
눈만 마주치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이라면 두 번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마비를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이 녀석은 변이를 쓰지 않는 건가?’
아까서부터 이 녀석의 변이에 당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7대죄가 변이를 사용했던 만큼 이상한 부분이었다.
나는 우선 마비가 풀려가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 상태이상 ‘마비’에 걸립니다. 또 무슨 상태이상을 쓸지 모르니, 수상한 징조가 보이면 무조건 피하세요.”
“드디어 이유영 씨 같아졌네요!”
“그러게. 넌 그렇게 수상쩍을 정도로 뭔가를 많이 아는 모습이 잘 어울려.”
두 사람은 어째서인지,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니 내 정신에 자리 잡은 모종의 불안과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태껏 나서서 두 사람을 지휘해놓고 갑자기 바짝 쫀 생쥐처럼 굴었으니 여간 당황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해줬다. 그 덕에 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두 분이 도와주신 덕입니다.”
“별말씀을요, 그러려고 있는 동료잖아요!”
“그래. 정신 차렸으면 이제 움직이자.”
그 사이, 백수의 왕은 우리가 상태 이상에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태세를 바꾸었다.
녀석의 주위로 낮게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바람으로 만들어진 사자 무리가 만들어졌다.
녀석은 우리를 보고 말했다.
『나약한 것들이 뭉쳐봤자 더 나약해질 뿐이지. 어리석은 인간들… 끝을 내주마.』
우리는 녀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약하기 때문에 뭉치는 것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뭉치는 이유는, 서로를 의지하며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왕검을 소환해 녀석을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저 녀석이 틀렸다는 것을 이제부터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