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심연 (2)
분명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는데도 머리가 멍했다.
방금까지 꿨던 꿈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깨어나자마자 상태창이 내 눈 앞을 가리고 있던 탓에, 정신을 차리는 게 늦어졌다.
덕분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이유영, 정신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고주연이 보였다.
“여긴….”
입을 열자, 오랫동안 말을 안 한 사람처럼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무언가 이상했다. 시야에서 거슬리는 상태창을 옆으로 밀어두고 주위를 둘러보자,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이라니. 생명의 의지가 있는 내게 가장 안 어울리는 곳이 병원이었다.
“제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그러자 고주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던전에서 몬스터 죽이자마자 쓰러졌던 건 기억해?”
“몬스터를….”
고주연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는 교만을 물리치고 일기장을 얻자마자, 의식이 흐려졌었다. 그리고 나서 의식을 차렸다고 생각했을 땐 꿈을 꾸고 있었다.
고주연은 여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구지상이 구원 길드 협력 병원에 연락해서 데려왔어. 대형 길드가 좋긴 하더라. 비싸 보이는 1인실도 턱턱 내주고.”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네요.”
고주연은 내 갈라진 목소리가 거슬렸던 건지, 물을 한 잔 떠다 줬다.
잠깐 누운 것 같았는데 목이 며칠은 물을 못 마신 것처럼 건조했다.
“네가 쓰러져 있던 일주일 사이에 걔가 뒤처리 다 했어. 협회랑 연락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던데.”
“…잠깐, 일주일이요?”
“그래, 너 일주일이나 쓰러져 있었어. 병원에선 원인을 모르겠다더라. 몸 상태는 멀쩡한데 의식만 불명이라고. 넌 짐작 가는 이유 있어?”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다.
나는 옆으로 밀어뒀던 상태창을 곁눈질로 확인했다.
[ 당신은 심연의 조각에 닿았습니다. ] [ 서브 스킬, 이 개화합니다. ]– 분류: 서브 스킬
「심연에 닿은 자의 인지 영역은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스킬 사용 시, 천 리 바깥의 일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대상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단, 심연을 들여다볼 시, 일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꿨던 꿈 때문에 이런 스킬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럼 쓰러졌던 이유는 저 부작용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알았지만, 이걸 고주연한테 설명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이럴 때 하기 좋은 전형적인 대답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쓰러진 애가 아는 게 더 이상하지.”
다행히 고주연은 납득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화제를 돌릴 겸,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질문했다.
“던전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살아있던 사람들은 무사히 돌아갔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죽은 사람들은요?”
“협회 쪽에서 맡아서 처리했어. 시신은 전부 유족한테 인도했고. 김상엽 팀장이랑 야생의 몬스터 팀이 고생하는 것 같더라.”
김상엽 팀장이라면 아마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상황을 수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이 들리니 여러모로 안심됐다.
고주연은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무 안심하진 마. 너 퇴원하면 당분간 귀찮을걸. 구지상이 기자회견 하면서 네 이름을 언급했거든.”
“제 이름을요?”
고주연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꺼내 내게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너튜브의 공영방송사 채널에 올라온 뉴스였다.
영상을 틀자, 수많은 기자 앞에 서 있는 구지상과 구원 길드장의 모습이 보였다.
고주연은 앞부분을 빨리 감기로 넘기고, 기자가 질문하는 부분을 재생시켰다.
『구지상 씨, 에덴 길드의 초청에 응하지 않고 한국에 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자의 질문에 마이크를 잡은 건 구원 길드장, 박이원이었다.
그는 구지상의 대변인인 것처럼 대신해서 질문을 받았다.
『출국 전날, 구지상 헌터에게 야생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에덴 길드에게 초청받은 것은 명예로운 일이긴 하지만, 국민의 안전까지 경시하면서 갈 만큼의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가기 싫어서 땡땡이친 걸 저렇게 포장할 줄이야.
역시 구지상을 한국의 영웅으로 포장시킨 사람다웠다.
이어지는 질문은 대부분 야생의 몬스터와 희생자들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다른 질문을 했다.
『이번에 나타난 야생의 몬스터는 구지상 씨 혼자 공략하신 겁니까?』
『그건….』
이번에도 박이원이 대신 대답하려 하는데, 구지상이 박이원의 마이크를 받아 갔다.
그러자,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며 화면은 구지상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사태에서 저와 함께 야생의 몬스터를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해낸 헌터가 한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이유 길드의 길드장인 이유영 헌터입니다. 이번 사태는 이유영 씨가 없었다면 해결하지 못했을 겁니다.』
구지상의 말에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구지상 씨가 말씀하신 이유영 헌터가 영상으로 화제가 된 헌터를 말하는 게 맞습니까?』
『구원 길드 헌터가 아닌 이유영 씨와 함께 공략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구지상은 이후의 질문들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이원이 적당히 사태를 진정시키며, 의미 없는 대답을 이어갈 뿐이었다.
고주연은 핸드폰 화면을 끄며 말했다.
“저 기자회견 덕분에 난리가 났어. 준성이가 그러던데, 예전에 네가 찍힌 영상도 조회수 많이 올랐다더라.”
“고주연 씨를 언급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걔가 그렇게 생각 없는 애는 아니야.”
고주연은 아직 신입 헌터 교육의 이수가 끝나지 않아서, 사실상 던전에 들어가면 위법으로 걸린다.
그걸 고려해서 내 길드와 나를 언급한 걸 보면, 구지상은 생각 없이 발언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헌터 협회로 향할 과도한 비난과 던전에 있던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면, 대중의 관심을 돌릴 다른 이슈 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미 야생의 몬스터와 싸우며 얼굴이 알려진 내 이름은 대중들이 관심을 돌리기 딱 좋은 수단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내 이름값이 오르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내 길드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고, 헌터들 사이에서 발언권이 좀 생길 테니까.
구지상은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구지상 씨 덕분에 길드 홍보 하나는 제대로 했네요.”
“그러게. 근데 길드 사무소 위치가 알려져서 사무장님이 기자들 상대하느라 애 좀 먹었어.”
고주연은 이후로도 내가 쓰러진 일주일간 있던 일에 대해 하나씩 얘기해줬다.
진준성과 고주연도 나를 따라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거나, 피해자 중 몇몇 분이 길드로 선물을 보내주셨다거나. 잠든 사이에 꽤 다양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 얘기하던 고주연은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저녁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너 일어나는 것도 봤고. 난 슬슬 가봐야겠다.”
“집으로 가시는 겁니까?”
“아니, 길드로. 비어있는 길드에 알만 둘 수는 없잖아.”
내가 쓰러진 동안 고주연이 길드에 남아서 알을 돌봐줬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없는 자리를 채우느라 고주연이 고생 좀 했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알면 됐어. 쉬어, 나 간다.”
고주연은 쿨하게 인사하며 병실을 나갔다.
고주연이 나가자, 병실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제야 침대 옆에 놓인 화병에 채워진 꽃이나, 음료수 상자, 과일 바구니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낸 선물이었다.
“…….”
그런데 그때, 감상에 빠지는 걸 방해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 털 뭉치 하나가 쭈뼛거리며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유영, 시스템은 던전을 만드는 데 사람들이 휘말린 줄 몰랐어요…. 이번 일은 시스템의 불찰이에요.』
“딱히 네 잘못은 아니잖아. 사람을 죽인 건 몬스터니까.”
시스템은 부탁대로 던전을 만든 것뿐이다. 이 녀석이 던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산 사람도 분명 있었다.
분노할 상대를 착각해서는 안 됐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그것보다, 7대죄 놈들이 말하던 그분이 누군지 알아낸 것 같아.”
『참, 이유영한테 새로운 스킬이 생겼었죠!』
“그 스킬이 나한테 7대죄의 과거 같은 걸 보여줬어.”
심연의 천리안 덕분에 나는 분명 7대죄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새로 얻은 스킬의 설명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대상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회귀 전에도 천리안 스킬은 있었지만, 그때는 수식어 없이 그냥 천리안이었다.
능력도 멀리 내다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 얻은 천리안은 그때와 달랐다.
심연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상식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건 분명했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네요! 시스템도 몬스터의 과거를 들여다보진 못했는데 말이에요.』
“이 스킬 네가 준 거 아니었어?”
『시스템은 인간이 품고 있는 힘을 스킬로 개화시켜주는 것뿐이에요. 시스템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면 직접 오류를 막았을 거라고요! 』
나는 잠시 이 녀석이 김제니의 스킬은 다시 뺏어갔던 걸 떠올렸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심연의 천리안은 내게 마왕의 탄생을 알리고 있었다.
그 녀석이 바로 7대죄의 ‘그분’이자, 7대죄에게 ‘변이’를 나눠준 놈이었다.
나는 꿈에서 본 것에 대해 화신에게 자세히 설명해줬다.
화신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명하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녀석도 야생의 몬스터처럼 튀어나오려나?”
『으음… 지난번 김제니한테서 얻은 잉여 에너지는 백수의 왕의 던전을 만드는 데 전부 사용했어요. 이번에는 이유영의 일기장의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럼 일기장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겠네. SS급 몬스터는 교만보다 힘이 더 들 거 아냐.”
화신은 서글픈 눈빛으로 고갤 끄덕였다.
이 녀석이 이러지 않아도 힘을 더 키우기 위해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회귀 전에도 마왕은 버거운 상대였고, 내 일기장으로 새로운 힘까지 얻은 녀석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회귀 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지금 이상으로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시스템은 마왕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 모드에 들어가야겠어요.』
“그래, 나도 좀 자야겠다.”
화신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는 자각몽으로 근래에 열리는 던전이 뭐가 있는지 보려다가, 문득 심연의 천리안으로 본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분명 초록색 잎사귀가 내 시야를 가렸었지.’
그리고 마왕 녀석의 뒤로는 무언가 거대한 형상이 보였다.
몬스터. 잎사귀.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유추해낼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세계수와 관련이 있는 건가…?”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나무, 세계수.
생각해보면 오류 녀석과 전투를 벌인 곳도 세계수 앞이었고, 인류 멸망 후 오류가 동상처럼 굳어있던 곳도 세계수 앞이었다.
‘왜 여태 세계수에 가볼 생각을 못 했지?’
지금은 세계수에 가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일주일이나 누워있던 사람이 갑자기 밤에 뛰쳐나가면, 다들 놀랄 것이다.
나는 우선 자각몽으로 하려던 일을 하며,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