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이유 길드 제1회 친목회 (1)
아침 7시. 고주연은 오늘도 평소와 같은 시간에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이유영이 외출복을 입은 채로 앉아 알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고주연 씨.”
이른 시간은 맞다. 보통은 간신히 눈 뜨고 일어나는 시간이니까.
그러나 매일 같은 말을 하며 고주연을 반겨주는 이유영 역시, 막 일어난 사람의 차림새는 아니었다.
“넌 또 던전 가려고?”
“네.”
이유영이 퇴원한 지 오늘로 3일째.
이유영은 퇴원한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일주일이나 쓰러져 있던 사람이 저래도 되나 싶어서 고주연과 진준성, 윤지석까지 열심히 말려봤지만, 이유영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국 이유영은 오늘도 저렇게 던전을 가려고 고주연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제가 올 때까지 길드랑 알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고주연은 이유영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이유영이 말을 너무 현란하게 해서 듣다 보면 어느샌가 납득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이유영을 배웅한 후, 고주연은 알을 들고 2층의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이유영이 쓰러져 있던 일주일간, 훈련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2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격투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비워둔 공간이 보였다.
왼쪽에는 체력 단련을 할 수 있도록 각종 헬스 기구가 놓여 있었다.
안쪽에는 좁고 긴 빈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은 과녁을 놓아 양궁 훈련장처럼 만들 예정이었다.
지난번 구원 길드 훈련장을 다녀온 이후, 길드원들이 회의한 내용을 토대로 윤지석이 꾸민 결과였다.
윤지석은 인테리어 업자를 했으면 크게 성공했을 것이다.
원생 하나 없이 파리만 날리는 태권도장을 떠올리면, 아무리 생각해도 윤지석은 직업을 잘못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주연은 적당히 몸을 푼 후 전투 훈련을 시작했다.
가상의 적을 상상하며 그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상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효율이 높았겠지만, 머릿속에 있는 몬스터들 역시 고주연에겐 좋은 상대였다.
만약 그 사자와 싸울 때 고주연이 좀 더 화력을 보일 수 있었더라면, 이유영에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고주연은 그 사자와 1:1로 싸운다고 상상하며, 전투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끼어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펀치를 할 땐 어깨보단 허리에 힘을 주는 게 좋아요.”
고개를 돌려보니, 윤지석이 헬스 기구에 앉아 고주연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주연이 말없이 쳐다보자 윤지석은 황급하게 변명을 내뱉었다.
“아! 고주연 씨 계속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구경하다가 무심코 훈수를 뒀네요. 하하, 제가 또 태권도 관장이잖아요? 애들 가르치면서 동작 보고 조언해주던 게 습관이다 보니.”
그 말을 들은 고주연은 윤지석에게 물었다.
“사무장님, 싸움 잘해요?”
“저, 태권도장 관장입니다.”
한껏 자신감을 내비치는 윤지석을 보며 고주연은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상대가 없어서 아쉽던 참이었다.
“그럼 저 훈련 좀 도와주세요.”
“네?”
“싸우는 법 잘 아실 거 아녜요.”
양궁장 리모델링 견적을 내러 왔던 윤지석은 얼떨결에 고주연의 훈련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유 길드 사무장의 업무에 ‘길드원 훈련’이라는 잡무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헉, 헉… 아니, 내가 체력으로 어디 가서 꿇리는 사람이 아닌데. 헌터들은 원래 다 이래요? 아님 고주연 씨가 체력이 좋은 건가?”
전투 훈련을 시작한 지 2시간 후.
윤지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지칠 대로 지친 윤지석과 달리, 고주연은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제가 본 헌터들은 이 정도는 다 하던데요.”
“준성이도요?”
“준성이는 모르겠고, 이유영이랑 구지상 걔네 둘은 13시간을 훈련해도 멀쩡했어요.”
“에이, 그 둘이랑 비교하면 안 되죠! 이유영 씨는 뭐냐, 이유영 씨고, 구지상 씨는 우리나라 넘버 원이잖아요. 아무튼, 좀 쉬었다가 합시다.”
윤지석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고주연은 수분 보충을 위해 물을 떠 왔다. 윤지석한테도 한 컵 가득 담은 물을 전해주며 말했다.
“잘 싸우시네요. 가르치는 것도 이유영보다 훨씬 낫고.”
“저 태권도장 관장이라니까요? 그리고 사실 제가 특수부대 출신이거든요. 싸움 좀 합니다, 제가.”
윤지석은 멋진 척을 했지만, 너무 지쳐 보여서 그렇게 멋있진 않았다.
그래도 고주연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분명 인테리어 업자를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왜 태권도 관장이 되셨어요?”
“군대에선 안 쉬고 일만 했거든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싶어서 제대했죠. 그러다 할 게 없어서 태권도 쪽으로 전향했고요.”
“번아웃 왔었나 보네요. 양궁 선배들 중에도 종종 무리하다가 번아웃 오고 그만두는 사람들 있었거든요.”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네요. 그래서 뭐든 적당히 쉬면서 해야 한다니까요.”
고주연은 윤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유영을 떠올렸다.
퇴원한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이유영이 한 번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러다 이유영한테도 번아웃이 오는 건 아닐까?
“걔도 좀 쉬어야 할 텐데.”
고주연이 중얼거리자, 윤지석이 고주연을 쳐다봤다.
주어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금방 알아들은 듯했다.
“이유영 씨요?”
“걔 자려고 길드 들어오는 거 말고는 쉬질 않잖아요.”
“확실히 그렇네요. 어휴, 그러다 진짜 큰일 나는데. 쉬면서 하라고 하면 안 들을 것 같고, 어쩐다….”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이유영이 듣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중, 2층 문이 열리면서 진준성이 들어왔다.
“다들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계셨네요…!”
“오늘 주말이었나?”
“준성이 왔으면 주말 맞죠. 우리 길드의 주말 알람 시계.”
진준성은 자기가 왜 알람 시계냐고 투덜거리며 두 사람의 옆에 앉았다.
“근데 뭐 하고 계셨어요?”
“훈련하다가 쉬는 중.”
“그리고 이유영 씨를 어떻게 하면 쉬게 할지 고민 중이었지.”
진준성은 윤지석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준성의 표정을 힐긋 본 윤지석이 말했다.
“뭐냐, 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은?”
“그게 회의까지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에휴, 이 공부 벌레가 뭘 알겠냐. 따지고 보면 너도 이유영 씨랑 같은 과였지?”
고주연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입 헌터 훈련 때도 진준성이 틈만 나면 공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진준성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고3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안 쉬고 노력해야 성장하는 거잖아.”
사실 양궁 국가 대표였던 고주연과 매일 지옥 같은 훈련을 해왔던 윤지석도 진준성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에겐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준성아, 너 제일 최근에 공부 안 하고 논 게 언제냐?”
“지난번에 고주연 헌터님이랑 길드장님이랑 치킨 먹었던 날? 집에 가서 모의고사만 풀고 잤거든.”
모의고사를 푼 게 왜 논 거지? 고주연은 어이가 없었다.
그날 진준성은 꽤 늦게 집에 들어갔었다.
아무리 고3이라지만, 하루도 안 쉬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고주연과 윤지석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고 있었다.
“내일은 다 같이 하루 쉬자. 진준성 너도 빠지지 마.”
“아예 이유 길드 다 같이 노는 날로 정해버립시다.”
“아니, 고주연 헌터님? 형? 나 고3이라니까?”
고3이라고 해도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그리고 진준성까지 쉬자고 해야 이유영이 말을 좀 들을 것이다.
며칠 진준성이랑 같이 지내본 고주연은 진준성을 설득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유영 퇴원하고 계속 무리만 하고 있어. 네가 나서서 설득 좀 해줘.”
진준성의 두 눈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준성은 이유영이 쓰러진 이후로 매일 알을 끌어안고 침울해할 정도로 이유영을 걱정했었다.
원래 이유영을 잘 따르던 애였던 만큼, 이 말에 진준성은 넘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성이 너 보고 싶은 영화 있다며. 4층에 있는 TV랑 스피커, 네 추천대로 골라서 빵빵한 거 알지? 내일 거기서 다 같이 영화나 보자. 형이 팝콘도 사 올게.”
가뜩이나 흔들리고 있던 진준성의 마음에 쐐기를 박는 발언이었다.
결국 진준성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갔다.
“난 팝콘보다 나쵸가 좋아….”
“그래, 나쵸로 사 올게.”
윤지석은 진준성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진준성은 하지 말라고 투덜대면서 머리를 다시 정리하다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벌써 이유영을 설득할 방법을 떠올려 보는 것 같았다.
곧 진준성이 말했다.
“저번에도 봤지만, 길드장님은 자기한텐 생명의 의지가 있다면서 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
저녁 10시쯤 되자 이유영이 길드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고주연을 발견한 이유영이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주연 씨, 죄송합니다. 마지막 던전 공략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다 이유영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고주연 옆에는 진준성과 윤지석이 있었는데, 이유영은 당연히 고주연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준성 학생이랑 사무장님도 아직 있었습니까?”
“회의할 게 있어서.”
“이 시간에 회의요?”
세 사람은 자뭇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유영을 끌고서 회의실로 향했다.
윤지석과 진준성은 노트북을 조작하고 빔프로젝터를 키더니, 회의실의 스크린에 PPT를 띄웠다.
제목은 ‘제1회 이유 길드 친목회 기획안’이었다.
진준성은 스크린 앞에 서서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1회 이유 길드 친목회 기획안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유영은 이 광경이 많이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솔직히 고주연이 보기에도 웃기긴 했다.
진준성은 긴장한 채로 발표를 시작했고, 윤지석은 진준성의 발표에 맞춰 PPT를 넘겼다.
“우선, 친목회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PPT에는 조직원들이 친밀한 관계가 조직의 존속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자료가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다.
고주연은 이걸 PPT까지 만들어가면서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진준성은 바로 그래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생각해보세요. 이런 정성까지 들여서 하루만 생각 없이 놀자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길드장님 성격상, 들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알겠다고 할걸요?’
그렇게 진준성은 자료 조사를 진행하고, 윤지석은 PPT를 꾸몄다.
고주연은, 그냥 그런 둘을 응원해줬다.
“위 근거들을 바탕으로, 내일 오전 9시부터 친목회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알 때문에 외부로 나갈 순 없으니 장소는 길드 내부로 한정하고, 스케쥴은 다음과 같습니다.”
윤지석은 미리 인쇄해 둔 스케쥴표를 이유영과 고주연에게 건넸다.
고주연은 아까 대충 얘기를 들어서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것보다 눈에 띄는 건, 윤지석의 스케쥴표의 디자인이 범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영은 심각하게 그 스케쥴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유영 씨! 우리 준성이의 기획안, 통과시켜 줄 겁니까?”
윤지석은 한껏 들떠서 이유영의 대답을 재촉했다.
가장 열심히 기획안을 만들었던 진준성은 여전히 긴장한 모습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이유영은 한참 보고 있던 스케쥴표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우선, 잘 들었습니다. 발표 수고하셨습니다.”
보니까 진준성의 발표 놀이에 맞춰주려고 일부러 저런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안 가서 피식 웃던 이유영이 대답했다.
“진행해 봅시다. 이유 길드 친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