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불청객…?
오늘은 새벽부터 던전을 공략하고 오느라, 아침 6시는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오전 9시쯤, 밑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리의 원흉인 1층 로비로 가보니, 윤지석의 주도 아래 커다란 짐이 사무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내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나를 발견한 윤지석이 먼저 인사했다.
“어! 오셨어요?”
“…예. 이건 뭡니까?”
내 질문에 윤지석은 어째서인지 말을 아꼈다. 아무래도 내 돈으로 이상한 걸 산 듯했다.
짐을 나르던 사람들은 로비에 그것을 내려놓았는데, 모양새를 제대로 보니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윤지석을 보자, 윤지석은 교묘하게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뭐냐. 요즘 심란해 보이시기도 하고, 취미도 따로 없다고 하시길래 하나 들였어요. 동당동당 해보시라고.”
“동당동당은 무슨 동당동당이에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저건 피아노였다.
사람들이 포장을 벗기자, 흰색의 고급스러운 그랜드 피아노가 아주 반짝이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윤지석은 날 위해서 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목적으로 들인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돈이 많아도 그렇지. 나 같은 소시민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장식으로 갖다 놓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윤지석에게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카드 회수합니다.”
“에이! 야박하게. 이거 진짜 길드장님을 위해서 들인 거라니까요? 음악이 심신 피로 달래는 데 그렇게 좋대요.”
윤지석은 다급하게 피아노 앞으로 가서 건반을 눌러댔다.
듬직한 태권도 관장이 치는 피아노 연주는 심신에 피로를 추가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를 운반해준 분들이 나가시던 중, 누군가 열려있던 사무소로 말도 없이 들어왔다.
또 강남 길드원이나 기자인 줄 알고 인상을 구겼는데, 아니었다.
‘뭐지?’
난데없이 사무소에 들어온 녀석은 말없이 피아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헛것을 본 줄 알고 눈을 비볐지만, 눈앞에는 진짜 녀석이 있었다.
고주연이랑 비슷하게 눈에 띄는 외모라, 헷갈릴 수 없는 얼굴을 가진 녀석이었다.
왜 이곳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최후의 전투에서 오류와 함께 싸웠던 헌터 중 한 명이면서….
‘…뭐라고 해야 하지? 친… 구?’
아무튼, 같이 싸웠던 녀석이었다.
***
세상에는 나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화에서나 볼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라온 음악 천재 같은 사람 말이다.
회귀 전, 나는 그런 녀석과 꽤 잘 지냈었다.
나랑은 전혀 다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녀석이었지만, 성격이 잘 맞아서 나름 잘 지냈다.
그 녀석이 죽은 건 오류와의 전투에서였다.
공격계 헌터의 대표 중 하나였던 녀석이 죽으며, 헌터 진영의 공격력은 크게 떨어졌었다.
그만큼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는 헌터였다.
이번 생에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는 녀석이다.
안 그래도 슬슬 한 번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금, 녀석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누가 피아노를 이따위로 치는 거야?”
김신욱. 부산 길드장의 아들.
녀석은 우리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떴다 떴다 비행기를 치고 있는 윤지석을 갈궜다.
윤지석은 웬 불청객이 갑자기 자신을 갈궈서 당황한 듯했다.
“누구세요?”
하지만 김신욱은 윤지석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당당히 사무소 안에 들어와서 로비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살폈다.
피아니스트인 녀석답게 조금만 보고도 무슨 피아노인지 아는 것 같았다.
“이런 고급 피아노가 왜 이런 곳에 있어?”
“오, 피아노 좀 볼 줄 아시나 봐요? 근데 진짜 누구세요…?”
윤지석은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봤다. 김신욱은 지금 공식적으로 헌터 활동을 하지 않는다.
헌터로 각성했던 것도 기사로 나가지 않도록 부산 길드장이 돈으로 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윤지석에게 녀석을 설명해줬다.
“부산 길드의 헌터입니다. 손님으로 오신 것 같으니 차나 커피 부탁드려요.”
윤지석은 부산 길드라는 말에 잠깐 놀라더니, 알겠다면서 로비를 나갔다.
김신욱은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계속 있었습니다.”
“그럼 있다고 기척을 내야 할 거 아니야.”
헌터 중에는 유독 인성이 더러운 사람들이 많은데, 김신욱은 그중에서도 대단한 인성 파탄자였다.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니라서, 이럴 땐 그냥 무시하면 된다.
나는 한 귀로 흘리고 김신욱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김신욱은 눈을 끔뻑거리며 서 있더니 뒷목을 긁적이며 나를 따라왔다.
응접실 소파에 앉은 뒤, 녀석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뭔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다르네.”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바깥의 피아노는 네가 사라고 한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로는 김신욱 보고 저 피아노를 들고 가라고 하고 싶었다.
피아노 천재라고 불리는 녀석한테 간다면 저 피아노도 훨씬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커피를 들고 오는 윤지석을 보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서, 형식적인 말이나 했다.
“우리 길드에는 무슨 볼일이십니까?”
대답을 얼추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김신욱과 나는 같은 대학 출신이다. 내가 본인과 같은 대학교의 졸업생이라는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그걸 알았다면 한 번쯤 날 보러왔을 수도 있다.
나는 ‘졸업식의 비극’의 유일한 생존자니까.
최초의 던전 브레이크 때 우리 학교에선 ‘졸업식의 비극’이라는 사건이 터졌었다.
졸업식에 참가한 모든 졸업생이 사망했고, 생존자가 나 하나밖에 없었던 큰일이라 기사도 많이 떴었다.
우리 대학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신욱이 내게 물었다.
“너, 나랑 같은 대학 다녔던데. 알아?”
“몰랐습니다.”
“뭐, 그렇겠지. 네가 나랑 같은 대학 출신이라 의리로 말해주는 건데, 강남 길드가 5대 길드 모아놓고 네 뒷담 깠어.”
뒷말은 예상했던 것과 좀 달랐지만, 김신욱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
어딘가 시원시원하고, 의리가 있었다.
내가 이미 졸업생이고 자기보다 나이도 많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오자마자 반말하는 인성 파탄자인 게 문제일 뿐이다.
나는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
“수호 길드와 구원 길드한테서 전해 들었습니다. 부산 길드에서도 일부러 말씀 전하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올까 봐 일부러 깍듯하게 말했더니, 어색함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회귀 전엔 일찍 말을 놨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김신욱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고마우면 밥이나 한 끼 사라. 내가 아침을 안 먹어서 배고프거든. 그리고 너 나보다 나이 많지 않냐? 그냥 말 놓지, 대놓고 어색해 보이는데.”
저 모습을 보니 정말로 옛날의 김신욱을 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도 던전에서 김신욱의 도움을 받고 고맙다고 했더니, 김신욱은 똑같이 저 말을 했었다.
돌이켜 보니, 이 녀석과 친해진 것도 그때 밥을 먹으면서였던 것 같다.
“뭐야, 왜 웃어?”
“안 웃었어. 이 앞에 중국집 있으니까 나가서 짜장면이나 먹자.”
“고마운 거 맞냐? 무슨 중국집이야.”
“돈 없어. 저 피아노 사는 데 다 써서.”
진짜로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가난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김신욱은 뭐가 웃긴지 낄낄대고 웃으며 응접실을 나갔다.
나는 로비에서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던 윤지석에게 말했다.
“사무장님도 같이 밥 먹으러 가시죠.”
“좋죠, 아침도 안 먹었는데. 근데 오늘도 국밥이에요?”
“오늘은 다른 거 먹을 겁니다.”
나는 어쨌든 국밥집은 아닌 중국집으로 갔다.
짜장면 두 개에 울면 하나, 탕수육까지 시킨 우리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단무지를 집어 먹었다.
문득 윤지석이 김신욱에게 물었다.
“근데 피아노 고급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음악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인가?”
“맨날 피아노 치는데 그걸 모르겠냐?”
“혹시, 직업이 피아노 학원 선생님?”
안타깝게도 우리 태권도 관장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까 우리가 같은 대학인 걸 모르는 척했기 때문에, 반응을 해줄 수 없었다.
김신욱은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
“정곡을 찔렀나 보네! 맞죠? 이 동네 학원 해요?”
윤지석이 2절을 하는 동안, 다행히 주문한 음식들이 나와서 대화를 종결시켰다.
김신욱은 험악해진 표정으로 짜장면을 비볐고, 윤지석은 울면을 뒤적였다.
마지막으로 탕수육이 테이블에 놓였는데, 윤지석이 그걸 보며 말했다.
“다들 부먹이세요, 찍먹이세요?”
나는 주는 대로 먹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뭐라고 중얼거리던 김신욱이 갑자기 탕수육 소스 그릇을 들더니, 그대로 탕수육 위에 소스를 부어버렸다.
“야! 무슨 짓이야아!!!”
“…야? 지금 야라고 했냐?”
윤지석은 다급하게 아직 소스가 묻지 않은 탕수육을 다른 그릇에 덜었다.
김신욱은 그런 윤지석을 보며 인성 파탄자다운 말을 했다.
“그걸 또 고상하게 덜고 있다. 주방장이 고생해서 만든 소스도 음식인데 왜 병균 취급을 해?”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왜 자꾸 반말이지?”
“할 말이 없으면 다른 말 하는 게 찍먹들 특징이냐?”
그 말에 윤지석이 김신욱의 멱살을 잡았다. 윤지석처럼 성격 좋은 사람도 멱살을 쥐게 하다니, 역시 김신욱이었다.
나는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점원한테 탕수육 하나 더 달라고 주문했다.
한참을 투닥거리며 싸우던 두 사람은 탕수육 하나가 더 나오고 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두 사람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보는 나는 좀 재밌었다.
회귀 전이라면 평생 만나지 않았을 둘이 탕수육 하나로 이러고 있으니 그냥, 웃겼다.
***
이후 김신욱은 우리와 같이 길드로 돌아왔다.
오늘 한가해서 시간을 때워야겠다며 로비에 눌러앉은 상태였다.
윤지석은 화를 가라앉혀야겠다며 브라질산 원두로 커피를 내리러 4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우리 길드에 브라질산 원두가 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다.
김신욱은 윤지석이 가자,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처음 왔을 때부터 피아노 얘기만 했으니, 한번 쳐보고 싶은 것 같길래 내버려 뒀다.
“야, 이유영. 너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라고 아냐?”
“몰라. 그게 뭔데?”
김신욱은 건반을 동당동당거려 보더니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에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저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김신욱은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연주할 곡.”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신욱은 미소를 지은 채로 눈을 감았다.
몰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이것도 나로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나도 바로 앉아야 할 것 같아서 정갈하게 앉은 채 녀석이 연주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마침 창밖에서 들어온 햇볕이 사기적으로 김신욱만을 비췄고, 녀석은 무슨 만화에나 나올 것처럼 빛 아래서 연주를 시작했다.
“…!”
굉장히 빠르고 어려운 곡이 녀석의 손안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고 있었다.
이런 압도적인 연주를 처음 들어본 탓에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커피를 끓이고 있던 윤지석도 어느새 홀린 듯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랑 윤지석은 입도 다물지 못한 채 눈앞에서 미친 연주를 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담백한 연주 속에서 난해하고 과격한 감정이 음률로 터져 나왔다. 손가락이 건반을 누비는 모습조차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찍먹이랑 싸우던 과격파 부먹은 어디 가고, 눈앞에 있는 녀석은 예술가 그 자체였다.
약 3분 정도의 짧은 연주가 끝나고, 우리는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나는 녀석한테 말했다.
“자주 와라. 너 아니면 이 피아노 연주할 사람 없다.”
“그러니까요. 완전 이 피아노 주인이네.”
윤지석도 나랑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런 연주를 들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김신욱은 우리 얼굴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여기 길드원도 아니고 뭐 하러 또 와?”
“길드원 하고 싶으면 길드 들어오든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김신욱은 멋쩍었는지 피아노 뚜껑을 닫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대로 로비를 빠져나갔다.
“나 간다. 저거 버리진 말고 있어.”
저건 또 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부끄러운 것 같길래 우리는 녀석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김신욱이 멈춰 섰다.
“아, 맞다. 이거 말하는 걸 깜빡했네. 이유영, 너 협회랑 친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친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신욱은 내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부산 쪽에서 협회의 체제에 반발하는 길드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 배후에 서울에 있는 대단한 길드 하나가 있는 것 같고. 너도 알아둬.”
“부산에?”
“어, 확실한 정보야. 그럼 나 진짜 간다.”
협회에 반발하는 길드들의 배후 세력이라면, 아마도 강남 길드일 것이다.
강남 길드에서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상황인 만큼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여간 인성은 파탄 났어도 괜찮은 녀석이다.
김신욱은 그렇게 폭풍처럼 휩쓸고 돌아갔다.
윤지석의 말대로 피아노 연주가 심신의 피로를 푸는 효과가 있었던 건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