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소집 명령 (5)
헌터 협회 부협회장 서정현.
외관도 좋고 목소리도 신뢰감을 주는 편이라 그런지, 대중들 사이에서도 서정현의 인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대중에게 신뢰를 얻기는커녕 깎아 먹는 협회장 도나리를 대신해, 협회의 공식 석상에는 서정현이 서곤 했었다.
오늘도 협회 대표로 나온 건 서정현이었다.
그는 백 명이 넘는 헌터들을 향해 조금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바쁜 시간을 쪼개 모여주신 여러분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서정현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짧게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이가 있었다.
“피차 바쁜 사이니 용건만 빠르게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군요.”
강남 길드장, 한이경이었다.
협회와 사이가 나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은 벌써 시비를 걸고 있었다.
서정현은 그럼에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시스템으로부터 S급 이상의 던전이 열린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시스템이 직접 경고를 줄 정도라면, 지금까지와는 규모가 다를 게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인 만큼, 침착하게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서정현은 말에는 한이경의 시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한이경은 피식 웃으며 서정현을 쳐다봤다.
장내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서정현은 이어서 말했다.
“지금까지 협회는 헌터 여러분들의 자율에 따라 던전 공략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협회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협회는 이곳에 참여해주신 헌터분들과 함께, 이번 던전의 공략대를 사전에 꾸려보고자 합니다.”
전례 없는 대규모 레이드 선언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질문한 건 천혜 길드장이었다.
“여기 모인 B급 이상 헌터들을 한 번에 다 집어넣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던전 공략에는 총 3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협회는 1, 2, 3차 공략대를 각각 50명 내외로 꾸릴 예정입니다.”
“그 공략대의 명단은 누가 짜죠?”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사실상 공략대 명단을 짠다는 건 던전 공략의 주도권을 가져간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자리를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 생각하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헌터 협회입니다.”
서정현의 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던전 공략 주도권은 지금까지 헌터들의 고유 권한으로 여겼던 만큼, 곳곳에서 반발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정현은 사람들을 어르는 말투로 말했다.
“던전 공략에 일일이 참견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헌터분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협회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협회는 던전 안에서의 일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저 말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이경은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비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말은 이 던전 공략에 협회원을 파견하지 않을 거라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공략 자체는 협회에서 주도하고, 정작 협회는 공략에서 빠지겠다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한이경의 말에 다시 헌터들의 반발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산 길드장 노진수 역시 화난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이건 뭐, 재주는 헌터가 부리고 공명은 협회가 얻는 셈이구만.”
노진수가 한마디 얹은 후에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강남 길드장의 선동이 제대로 먹혀들어 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서정현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협회는 언제든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할 의사가 있습니다. 만약 협회가 명단을 꾸리는 게 아닌, 순차별 공략대에 지원자를 받는 방식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헌터들은 꽤 만족하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지원자를 받는 형식이라면 협회가 짜주는 명단에 들어가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반응이었다.
서정현은 강당을 한 번 훑어본 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만족하셨다면 다행입니다. 다만 이 방식으로는 전력이 한 군데에 쏠리는 것이 우려되는 관계로, 일부 헌터들만 협회 측에서 지정하겠습니다.”
“지정한다고? 몇 명이나?”
“5명입니다.”
다섯 명이라는 말에 장내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160명이 조금 넘게 모인 곳에서 겨우 5명이라 하면 당연히 남 일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서정현의 수완에 속으로 감탄했다.
협회는 처음부터 명단을 짤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협회가 전부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불만이 터질 테니, 그걸 이용한 것이다.
서정현은 헌터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 자기 뜻대로 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지정하고 싶은 헌터들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시커먼 속내를 협회가 배려해준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역시, 괜히 헌터 협회 부협회장이 아니었다.
저런 사람을 밀어내고 내게 부협회장 자리를 주겠다고 한 도나리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헌터들은 이제 순수하게 협회에서 지정하는 5명이 누구일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서정현은 침착하게 1차 공략대부터 발표했다.
“우선 1차 공략대에는 정하나 헌터와 이유영 헌터가 들어갑니다.”
헌터들은 정하나의 이름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1차 공략대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게 의외였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로 쏠렸다.
서정현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쏟아낼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2차 명단을 불렀다.
“다음으로, 2차 공략대에는 구지상 헌터와 노진수 헌터가 들어갑니다.”
나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 이름이 나오자, 순식간에 그쪽으로 주목이 쏠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강자라 불리는 두 사람이 나보다 뒤늦게 불렸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중 가장 반발이 가장 심한 건 구원 길드장인 박이원과 호명 대상자인 노진수였다.
“이의 있습니다.”
“내가 후발대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서정현은 가볍게 무시하고 3차 공략대에 들어갈 인원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3차 공략대에는 한이경 헌터가 들어갑니다. 균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지정한 것이니,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가 봐도 협회의 견제가 섞여 들어간 명단이었으니 말이다.
정하나가 이끄는 수호 길드가 친 협회파라는 것과, 한이경이 이끄는 강남 길드가 반 협회파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에겐 그저 남 일이어서, 서정현의 호명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공략대에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박이원과 노진수는 납득할 수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서정현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럼, 이제 남은 여러분들께서는 각각 1, 2, 3차 중 어느 공략대에 속할지 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모든 게 협회의 시나리오대로 순순히 흘러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협회와 질기게도 싸워대는 놈이 하나 있었다.
한이경은 서정현을 보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신윤현 헌터의 지원은 3차 공략대에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정현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헌터들의 반응은 달랐다.
장내에 있던 헌터들은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술렁거렸다.
그러던 중, 한 헌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이경에게 소리쳤다.
“그 말은 지금 1, 2차 공략대는 다 죽으라는 소립니까?”
“글쎄요, 그 말은 저를 3차 공략대에 배치한 부협회장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남 길드가 한국 유일의 힐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부협회장도 알고 있었을 텐데요.”
확실히 한이경은 간교한 녀석이었다.
협회에서 기껏 짜둔 판이 신윤현이라는 이름 하나에 뒤집히고 있었다.
“저 안경잡이 녀석이 간만에 맞는 소리 하는군.”
“예, 게다가 우리 구지상 헌터를 2차 공략대로 밀어내겠다는 건 1차 공략대는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노진수와 박이원까지도 협회의 판단에 불응하며 나서자, 거대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확실히, 좀 편파적인 것 같네.”
“그러게. 명단이 저러면 1차 공략대에 들어가긴 좀….”
“솔직히 1차는 못 가지. 죽을 일 있냐?”
순식간에 명단을 다시 짜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자 정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올라가기까지 하며 말했다.
“신윤현이 왜 유일한 힐러야? 우리 길드에도 힐러가 있다는 거 몰라? 영감 왼쪽 팔도 우리 수연 언니가 만들어 준 거잖아. 게다가 뭐, 영감이랑 구지상 없다고 성공률이 떨어져? 나 정하나야, 수호 길드장! 절대 방어의 정하나가 같이 가는데 죽는 사람이 나올 것 같아?”
그러나 안수연과 정하나 두 사람의 이름값만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이경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수연을 보며 물었다.
“정하나 헌터가 안수연 헌터 이름을 꺼냈으니 하는 말인데, 안수연 헌터는 스킬로 상태 이상에 걸린 헌터들을 치유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부상을 입은 헌터들의 치유도 불가능한 것으로 아는데요.”
“간단한 출혈 정도라면 잡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중상은 치유할 수 없다는 소리로군요.”
안수연의 스킬은 원래 공격 계통이라 치유 스킬은 아니다.
다들 아는 사실인데도 한이경이 저러는 이유는, 자기네 길드의 신윤현을 치켜세우기 위함일 것이다.
한이경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즉, 안수연 헌터와 함께 들어간다고 해도 생명의 위험은 동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윤현 헌터와는 달라요. 안 그렇습니까, 정하나 헌터?”
“하지만 내가 있으면 애초에 부상을 당할 일도…!”
“정하나 헌터에게 구지상 헌터나 노진수 길드장과 같은 강력한 공격기가 있습니까? 백 날 천 날 방패로 보호받는 것보단 한 방에 몬스터를 물리쳐 줄 헌터가 함께 가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정하나가 반발해봤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히 한이경에게 말려든 뒤였다.
정하나만으로는 여론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이경은 서정현을 향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대로라면 1차 공략대에 정하나 헌터와 이유영 헌터 두 사람만 보내게 생겼군요.”
그 말을 들은 수호 길드 헌터들은 자기네들도 길드장님을 따라간다며 왁왁 소리쳤지만, 수호 길드원으로 50명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완전히 한이경에게 판이 넘어간 상황이었으나, 서정현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그 서정현의 시선 끝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저 눈빛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도나리한테 내가 힐러라는 걸 들었나 보군.’
어쩐지 협회가 깔아준 판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지만, 지금까지 도움받은 것도 많으니 한 번쯤은 놀아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러모로 최적의 타이밍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이경에게 물었다.
“한이경 씨 말대로라면, 1차 공략대가 가진 문제는 두 개라고 볼 수 있겠군요. 강력한 공격계 헌터와 힐러의 부재.”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를 보던 사람들은 내가 갑자기 일어나서 이러는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하는 것 같았다.
바로 내가 강력한 공격기로 싸우는 영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한이경을 보며 말했다.
“영상 보셨겠지만 제 공격기가 센 편이라서요. 그리고 저희 이유 길드의 소속 길드원인 고주연 헌터도 함께 갈 겁니다.”
고주연이라는 이름이 주는 유명세 덕분에, 점차 내가 왜 1차 공략대에 들어갔는지 납득하는 헌터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서정현은 지원 사격이라도 해주려는 듯, 고주연을 향해 물었다.
“고주연 헌터의 공격력은 무슨 등급이죠?”
“A급이요.”
“A급이면 강력한 공격계 헌터의 부재는 완전히 해결되겠군요.”
서서히 여론이 다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한이경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다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요? 힐러의 부재는 어떻게 해보겠다는 겁니까?”
다만, 그 카드는 나한테 있어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것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원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빠른 법이다. 나는 아이템창에서 화왕검을 꺼내 들어 내 손바닥을 그어 내렸다.
핏방울이 떨어지던 손 위로 스킬을 발동하자, 녹색 빛이 감기며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한이경은 그 모습을 보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냐하면, 제가 힐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