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is an SSS-class reward RAW novel - Chapter 9
9화. 강화 기간 (2)
회귀 전, 내 스탯은 정말 더럽게 안 올랐었다. 남들은 최소 반년이면 벗어나는 F급에 3년 넘게 머무를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급 낮은 던전은 사라졌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던전 역시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던전 밖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앉아만 있기는 싫었기 때문에 나는 랭크를 올리기 위해 별짓을 다 시도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반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반복’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 등급: –
「해당 던전에서 있던 모든 일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
(공략 시간을 일정 비율로 축약하여 머릿속에 재생합니다.)」
리플레이는 헌터라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각성한 헌터가 던전을 한 번이라도 공략하면, ‘아이템 상점’이 상태창에 업데이트된다. 이 아이템 상점의 물건들은 오로지 던전에서 얻은 코인으로만 구매할 수 있는데, 무기나 방어구처럼 값진 물건은 없지만 자잘하게 도움이 될만한 잡템이나 하급 포션을 팔았다.
그 아이템 상점의 첫 번째 목록에서, 가장 값싸게 팔고 있는 아이템이 바로 이 ‘리플레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이 ‘리플레이’를 사용해 스탯을 올릴 예정이다.
[ 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를 사용합니다. ] [ 가장 최근에 클리어한 ‘독의 늪’을 리플레이합니다. ]상태창의 알림과 동시에, 내 눈앞에 어둡고 눅눅한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몇 시간 전 클리어 하고 나왔던 ‘독의 늪’ 던전의 풍경이었다.
‘나’는 함께 들어온 헌터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던전 등급이 D급이라 그런지, 대부분 스탯이 낮거나 경험이 적은 헌터들이었다.
그러나 이 던전은 상태 이상, 중독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등급치고는 제법 까다로운 던전이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략대를 직접 이끄는 게 낫다고 판단한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늪으로 향했다.
늪에 도착하자, 늪 중앙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거대한 두꺼비가 보였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독두꺼비였다.
보스 몬스터를 발견한 사람들은 앞다투어 늪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는 늪 안에 손을 담갔다 뺀 후 사람들에게 손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늪에는 독이 있네요. 독에 저항하면서 늪을 건널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내 손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자힐 스킬이 있는 제가 혼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방금까지만 해도 벌겋던 손이 순식간에 낫는 걸 본 사람들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에게는 잡몹 처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건드리면 독을 뿜어내는 잡몹인 독개구리가 늪 바깥에서 공격을 시도하기 때문에, 이를 막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너무 자세히 설명했다간 의심받을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내 추측인 것처럼 꾸며 사람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설명을 들은 방어계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구체의 실드를 펼쳐 사람들을 에워쌌다.
다른 헌터들도 각자 자기 역할을 찾아 무기를 들거나, 스킬을 준비하거나, 혹은 아이템 상점에서 해독제를 구매해 준비해두고 있었다.
다시 봐도 제법 괜찮은 팀플레이였다.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나’는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보고는 그대로 늪을 향해 걸어 나갔다.
늪을 걸어가는 내내, 상태창이 계속해서 요란하게 뜨고 있었다.
[ 메인 스킬, 가 발동됩니다. ] [ 상태 이상, 중독이 무효화됩니다. ]늪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따끔거리는 감각이 강하게 느껴졌다.
늪 속에서 독을 뿜어내는 보스 몬스터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탓이었다.
마침내 독두꺼비의 거대한 덩치가 내 눈에 온전히 담기는 순간,
휘익!
놈이 ‘나’를 향해 더러운 혀를 길게 내밀며 공격하려 들었다.
그러나 ‘내’가 좀 더 빨랐다. ‘나’는 놈의 혀를 붙잡아 해치의 비늘검으로 혀를 잘라낸 후, 늪 밖의 헌터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다들 독개구리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쪽을 볼 틈 따위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심판의 물을 사용했다.
콰가각!
늪 아래서부터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독두꺼비는 솟구치는 물과 함께 그대로 날아갔고, ‘나’는 공중에 뜬 독두꺼비를 향해 다시 한번 심판의 물을 사용했다.
볼링공만 한 물방울이 매서운 속도로 독두꺼비를 향해 돌진했다.
꾸어어어억!!
물폭탄을 맞은 독두꺼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 당신은 늪을 독으로 물들인 원흉을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 [ D급 던전, 독의 늪 – 공략 성공 ]그와 동시에, 갑자기 손바닥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독두꺼비를 쓰러뜨린다고 고통이 뒤늦게 밀려온 모양이었다.
독두꺼비의 혀를 잡았던 손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공략 완료 알림을 확인한 헌터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으며, 독의 늪 던전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침내 시야가 새까맣게 물든 순간, 알림창이 하나 떴다.
[ 리플레이가 종료되었습니다. ]알림과 동시에 세상이 변했다.
어둡고 눅눅하던 풍경 대신, 작고 아늑한 내 원룸이 보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겨우 1분 정도 지나 있었다.
‘던전 공략 자체가 빨라서 그런가, 이번엔 리플레이 속도도 빠르네.’
눈치가 빠른 사람을 알겠지만, 이 ‘리플레이’는 자신이 던전에서 했던 전투를 돌아볼 기회를 주는 아이템이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리플레이가 끝난 후에도 독두꺼비의 혀에 닿았던 손에 여전히 고통이 남아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탓에, 대부분의 헌터들은 많아봤자 한두 번 정도만 사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그랬다. 한 수영 선수는 자기 전에 매일 레이스를 하는 상상을 한다고. 그렇게 상상을 통한 훈련은 뇌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스탯을 올리는 게 간절했던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갖고 있는 코인을 털어서 리플레이를 반복했다.
100번쯤 리플레이를 마쳤을 무렵, 놀랍게도 내 스탯이 상승했다.
그렇게 과거의 나는 계속해서 던전을 공략한 후 리플레이를 돌렸고, 3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F급에서 탈출해 순식간에 C급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나는 아이템창을 열어 남아있는 리플레이의 갯수를 확인했다.
– 리플레이 × 999
지금부터는 ‘반복’할 시간이다.
***
‘독의 늪’ 던전 리플레이 100번을 마친 나는 헌터넷에 접속해 던전 알림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내가 하고 있는 ‘반복’ 훈련법은 실전을 병행해야 효과를 더욱 크게 볼 수 있다.
헌터에게 가장 좋은 실습은 당연히 던전 공략이다.
십만 개나 되는 던전 공략법을 적긴 했지만, 도깨비 던전같이 특이사항이 없는 던전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내가 들어갈 만한 던전이 지금 열려 있는지는 직접 확인해야 했다.
나는 던전 알림 게시판에 들어가서 내용을 쭉 훑었다.
「202X.03.07 오후 07:38. 수원, 수원 행리단길, E급 던전 발생. 1차 공략대 모집 중.」
「202X.03.07 오후 07:07. 서울, 구산역 3번 출구, D급 던전 발생. 1차 공략대 모집 중.」
「202X.03.07 오후 06:26. 서울, OO 대학교 정문, C급 던전 발생. 1차 공략대 진입. 공략 중」
「202X.03.07 오후 05:02. 인천, 원미문화공원, D급 던전 발생. 공략.」
.
.
.
우선 공략대 모집 중이라 적힌 지역을 체크해둔 뒤, 게시판을 쭉 넘겨 3월 7일 이전에 발생한 던전을 확인했다.
찾아야 할 던전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뒤로 넘긴 후 원하던 걸 발견할 수 있었다.
「202X.03.05 오후 12:09. 강릉 송정해수욕장, A급 던전 발생. 1차 공략대 진입. 공략 진행 중.」
공략 진행 중으로 뜨는 강릉 송정해수욕장의 A급 던전.
이 던전은 회귀 전에 고주연의 고향을 쑥대밭으로 만든 던전이었다.
다행히 지금 공략 진행 중인 공략대는 아직 1차 공략대였다.
던전 브레이크는 던전 공략에 세 번 실패했을 때 터진다.
강릉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는 건 오늘로부터 열흘 뒤다. 만약 현재 공략 중인 공략대가 3차 공략대였다면 던전 브레이크의 피해 자체를 막는 데 집중해야겠지만, 아직 1차 공략대다.
이미 던전에 들어간 1차 공략대까지 구할 방법은 없지만, 2차 공략대가 들어가기 전에 내가 간다면 그 이상의 죽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빨리 강해져야만 한다.
나는 달력을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내가 2차 공략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주일 안으로 강릉에 내려가 봐야 한다.
‘즉, 일주일 안에 C급으로 올라야 한다는 말이지.’
나는 기존에 세워두었던 훈련 스케줄 중에서 수면 시간을 모조리 빼기로 마음먹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간 내게 있던 변화를 점검했다.
우선은 통장 잔고.
다섯 자릿수가 간신히 넘었던 통장에는 수백억 단위의 숫자가 찍혀 있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최초로 나온 S급 무기 이후 새롭게 최고가를 갱신했다고 했던가.
상자에 들어있던 금괴와 보석의 양 자체도 대단했지만,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시가보다 배는 높은 가격을 받았다.
아이템 거래를 위해 협회 창구에 금은보화 상자를 넘기고 난 후, 계좌에 찍힌 돈을 확인했을 때는 순간 계좌번호가 잘못 찍힌 줄 알았다.
담당자에게 5번이나 진짜인지 확인한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내 스탯.
그간 10개의 던전을 공략하고 각 던전당 100번씩, 총 1000번의 리플레이를 반복했다. 남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며 몸을 키웠다.
결과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 상태창 ]이름: 이유영
종합능력치: C
– 공격력: C-
– 방어력: C
– 민첩: C+
날 알아본 헌터증 갱신 창구 직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던 게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일주일 만에 E급에서 C급까지 올린 헌터는 아마 내가 최초이긴 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보유 스킬 목록
– 메인 스킬: ,
– 서브 스킬: ,
리플레이를 총 1000번을 채웠을 때, 알림창과 함께 서브 스킬이 하나 생겨났다.
[ 당신은 자각(自覺)의 경지에 오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 [ 서브 스킬, 이 개화합니다. ]– 분류: 서브 스킬
「깨달음을 얻은 이는 무자각의 상태에서도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스킬 사용 시, 수면 상태에서 원하는 내면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서브 스킬이었다.
잠을 자고 있어도 내 기억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운 스킬이었다.
강릉에 도착할 때까진 3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 안에서는 할 것도 없으니, 스킬을 확인해보기에는 제격이었다.
나는 좌석 시트에 편안하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며칠간 잠도 안 자고 수련만 했던 탓인지, 순식간에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완전히 잠에 빠져들기 전, 새로 얻은 서브 스킬을 발동했다.
[ 서브 스킬, 이 발동됩니다. ]그러자, 백지 같았던 정신세계에 거대한 책 한 권이 펼쳐졌다. 펼쳐진 책은 저절로 넘어가며, 내 일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억의 끝자락에 있던 어린 시절부터 독의 늪을 공략하며 있던 일까지.
때론 문자의 형태로, 때론 이미지의 형태로, 모습을 바꿔가며 내 삶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저 책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건 내 일기장이구나.’
내가 기록한 순간은 물론, 기록하지 않은 순간까지 모두 적혀있는, 나의 모든 일대기가 적힌 일기장이었다.
크기도, 두께도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책이었지만, 나는 내 기억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고주연을 헌터로 각성시킨 던전 브레이크. ‘추락한 용’의 던전 공략법을 기록하던 때를 확인한다.’
속으로 그렇게 되뇌고 나자, 제멋대로 펼쳐지던 일기장이 역으로 페이지를 넘기더니, 어느 한 페이지에서 멈추어 섰다.
그 순간, 페이지에서 빛이 솟아오르더니 거대한 스크린을 띄우며 어떤 장면을 재생시켰다.
「202x. xx. xx. 날씨: 흐림
오늘은 ‘추락한 용’ 던전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사실 던전이라 쓰기에는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추락한 용’은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후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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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리의 비밀 일기장에 공략법을 적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회귀 전, 인류가 멸망하고 다 쓰러진 헌터 협회 건물 안에 앉아서 리리의 비밀 일기장에 공략법을 적었던 그날이다.
기억 속의 내가 공략법을 모두 기록하고 나자, 장면이 종료되었다.
내 기억을 영상처럼 보여주던 스크린은 거대한 일기장의 페이지 속으로 흡수되며, 문자와 이미지가 어지럽게 섞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 서브 스킬, 을 종료합니다. ]내 머릿속엔 방금 꿈속에서 봤던 추락한 용의 공략법을 적던 그 순간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잘 쓰면 유용하겠는데.’
이 스킬을 이용하면 내 머릿속에 묻혀있던 십만 개나 되는 공략법을 책갈피 꺼내 보듯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